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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도입↔서론 / 본문↔본론 / 마무리↔결론 / 결단↔결단찬양 / 기도↔기도제목
섹션별 본문 (10개)
본문
680자
> 1.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 2. 보라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 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 3. 그 뒤에 또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나일 강 가에 서 있더니
> 4. 그 흉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지라 바로가 곧 깨었다가
> 5.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 6.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 7. 그 가늘고 마른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킨지라 바로가 깬즉 꿈이라
> ...
> 14. 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옷을 갈아입고 바로에게 들어가니
> 15.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 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 ...
> 25. 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 ...
> 32.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니**
서론 — 만 2년이 지나도록 잊혀진 사람
923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한 가지 질문드릴게요.
여러분, 누군가에게 부탁한 적 있으세요? "꼭 좀 기억해 줘. 나 이거 정말 필요해" 라고. 그런데 그 사람이 까맣게 잊어버린 거예요. 한 달, 두 달, 일 년이 지나도 연락 한 통 없는 거예요.
저는 그런 경험 있습니다. 정말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마음 졸이며 부탁했는데, 그 사람이 자기 일이 잘 풀리니까 저를 잊어버린 거예요. 그때 진짜 외로웠습니다. **"아, 사람은 사람을 이렇게 잊는구나."**
괜찮아요. 그럴 수 있어요. 사람이니까. 그런데 그게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반복되면, 마음에 생각이 듭니다. **"나는 잊혀진 사람인가? 하나님도 나를 잊으신 건가?"**
오늘 본문 창세기 41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만 2년이에요, 여러분. 무슨 만 2년이냐 하면, 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에게 "나를 기억해 달라" 부탁한 그날로부터 만 2년입니다.
40장 마지막 23절은 이렇게 끝납니다.
>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기억하지 못하고. 잊었더라. 두 번 못 박힌 거예요. **사람이 요셉을 잊었습니다.** 그렇게 만 2년이 흘렀어요.
그 만 2년 동안 요셉은 어디 있었을까요? 본문은 한 줄로 정리합니다. **옥.** 41장 14절 보세요.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만 2년 후에도 요셉은 여전히 옥에 있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하는 화려한 장면을 보지만, 그 화려한 장면 직전까지의 요셉은, **잊혀진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어떻게 다가오면 좋겠어요? 저는 이 한 가지만 붙들고 가고 싶어요.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정하신 때를 행하십니다."**
오늘 이 말씀 함께 나누겠습니다.
배경 해설 — 요셉의 만 13년
979자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요셉이 지나온 시간을 한번 정리해 볼게요.
창세기 37장에서 요셉은 17세에 형들 손에 팔립니다. 애굽 보디발의 집에서 일하다가 누명 쓰고 옥에 들어가요. 옥에서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풀어주고, "나를 기억해 달라" 부탁합니다. 그런데 잊혀집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창세기 41장 46절을 보면, 요셉이 바로 앞에 섰을 때 **30세**예요. 17세에 팔려서 30세에 총리가 됩니다.
**13년이에요, 여러분.** 13년.
여러분, 13년이 어떤 시간인지 와닿으세요? 지금 25살 청년이라면, 12살 때부터 시작된 일이 지금까지 끌려온 거예요. 35살 청년이라면, 22살 때부터의 일이 지금까지 풀리지 않은 거예요.
그 13년 동안 요셉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본문은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추정컨대, 요셉도 우리처럼 흔들렸을 거예요. "하나님, 어디 계세요? 17세에 꾸게 하신 그 꿈은 어떻게 된 겁니까?"
그런데 13년이 지난 어느 날,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요셉이 잊혀진 그 만 2년의 끝, 그러니까 요셉이 팔려간 지 13년이 되는 그해, **하나님이 움직이십니다.**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라, **바로의 꿈을 통해서.**
여기서 우리가 놓치면 안 되는 한 가지가 있어요. 요셉이 옥에서 풀려난 게 술 맡은 관원장이 기억해서가 아니에요. **바로가 꿈을 꿨기 때문이에요.** 바로의 꿈을 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제서야 술 맡은 관원장이 "아, 그 사람" 하고 떠올린 거예요.
다시 말하면, 요셉을 풀어내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셨다는 거예요. 사람이 잊어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침묵해도, 하나님은 정하신 때에 행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함께 나눌 말씀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시간은 따로 있습니다.
둘째,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셋째, 하나님이 정하시면 속히 행하십니다.
함께 나누겠습니다.
본론 1 — 하나님의 시간은 따로 있습니다
1238자
첫째, **하나님의 시간은 따로 있습니다.**
본문 1절을 다시 봅니다.
>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여러분, 이 한 절이 얼마나 무거운지 모릅니다. 만 2년. 요셉의 입장에서는 **하루도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을 거예요. 무죄인데 옥에 있고, 도와줄 수 있다고 했던 사람은 침묵하고. 하루하루가 고문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 만 2년을 한 줄로 끝냅니다. **"만 이 년 후에..."**
하나님께는 만 2년이 한 절이에요, 여러분. 우리에게는 평생이 무너지는 시간이지만, 하나님께는 정하신 때를 향해 가는 시간입니다.
여기서 한 본문이 떠오릅니다. 베드로후서 3장 8절입니다.
>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이 시간을 모르신다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시간 안에 갇히지 않으신다**는 거예요. 우리는 시간 안에 살지만, 하나님은 시간 위에 계세요.
그래서 우리에게 만 2년은 끝없이 긴 시간이지만, 하나님께는 **정확히 그날, 정확히 그 시간**이 있는 거예요. 그날이 와야 일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 혹시 "왜 이렇게 안 풀리나" 라고 생각하시는 분 계세요?
취업이 안 풀려서, 관계가 안 풀려서, 진로가 안 보여서.
"하나님, 언제까지요?" 라고 묻고 계신 분 계세요?
괜찮아요. 그렇게 묻는 게 정상이에요. 요셉도 그랬을 거예요. 추정컨대, 그 만 2년 동안 요셉도 매일 물었을 거예요. "하나님, 언제요?"
그런데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한 가지는, **하나님께는 정하신 때가 있다**는 거예요. 그 때가 빨리 안 오는 게 아니라, **정확히 그때를 향해 모든 게 정렬되고 있는**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만약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곧바로 기억해서 풀어줬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요셉은 그냥 옥에서 풀려난 한 사람이 됐을 거예요. 바로 앞에 설 일도 없고, 총리가 될 일도 없고, 가족을 살릴 일도 없었을 거예요.
**잊혀진 만 2년이 있어야, 바로의 꿈을 만날 수 있었어요.**
이번 한 주, 청년 여러분. "왜 안 풀리나" 라는 질문을 잠시 내려놓고, 이 한 질문으로 바꿔보세요.
**"하나님, 지금 저를 어디로 정렬시키고 계신가요?"**
이 질문이 여러분 마음을 살릴 거예요. 만 2년은 버려진 시간이 아니라, **정렬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본론 2 —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1622자
둘째,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14절부터 16절을 같이 봅니다.
> "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옷을 갈아입고 바로에게 들어가니
>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여러분, 이 장면이 얼마나 극적인지 모릅니다. 옥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끌려 나와서, 수염을 깎고, 옷을 갈아입고, 그 시대 최고 권력자 앞에 섭니다. 13년의 한이 풀릴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예요.
만약 우리였으면 어땠을까요? 솔직히 말해볼까요? 저였으면, "네, 제가 풀어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옛날부터 꿈 해석에 능했어요. 보디발 집에서도, 옥에서도 다 알아주는 실력이었어요" 라고 어필했을 것 같아요.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니까.**
그런데 요셉은 첫 마디가 뭐냐면, **"내가 아니라"** 예요.
내가 아니라.
여러분, 이게 얼마나 무서운 한 마디인지 보세요. 13년 만에 잡은 단 한 번의 기회 앞에서, **자기를 먼저 빼는 사람**이 요셉이에요. 자기를 어필할 시간에 **하나님을 먼저 올린** 거예요.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본문은 이 한 마디의 배경을 직접 설명하지 않지만, 우리는 추정할 수 있어요. **만 2년을 잊혀져 있던 사람이라야 이 말이 가능합니다.**
순탄하게 살았으면, 자기 실력을 자랑했을 거예요. 사람의 도움으로 풀려났으면, 그 사람한테 감사했을 거예요. 그런데 요셉은 사람한테 잊혀져 봤거든요. 사람의 약속이 얼마나 가벼운지 봤거든요. 그래서 알게 된 거예요. **나를 옥에서 끌어낸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이 본문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한 단어가 있어요. **"편안한 대답"** 이라는 말입니다. 16절 보세요.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이 말은, 요셉이 자기 해석을 자랑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주실 평안한 답을 받아 전달하는 통로일 뿐이라는 거예요. **요셉은 자기를 통로로 본 거예요.**
청년 여러분, 우리도 살다 보면 어느 날 기회가 옵니다. 13년을 기다리던 그 기회가, 어느 날 갑자기 옵니다. 면접 자리, 발표 자리, 새로운 만남, 결정의 순간.
그때 첫 마디가 뭐가 될까요? **"내가 했어요"** 일까요, **"하나님께서 하셨어요"** 일까요?
물론 노력 안 한 것을 했다고 거짓말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게 아니에요. **모든 결과의 첫 자리에 누구를 두느냐**의 문제예요. 내 실력을 첫 자리에 두면, 잘 됐을 때 교만해지고, 안 됐을 때 무너집니다. 하나님을 첫 자리에 두면, 잘 됐을 때 감사하고, 안 됐을 때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번 한 주, 청년 여러분. 작은 일에서 한번 연습해 보세요. 누가 "이거 어떻게 했어?" 라고 물었을 때, **"하나님이 도와주셨어요"** 라고 한 번만 말해보세요. 처음엔 어색할 거예요. 괜찮아요. 그 한 마디가 여러분 자리를 정렬시키는 시작이에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이 한 마디가 요셉을 13년의 옥에서 총리의 자리로 옮긴 다리였습니다.
본론 3 — 하나님이 정하시면 속히 행하십니다
1567자
셋째, **하나님이 정하시면 속히 행하십니다.**
본문 32절을 같이 봅니다.
>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니"
여러분, 이 32절이 오늘 본문의 결론이에요. 두 가지가 한 절에 들어 있어요.
첫째, **하나님이 정하셨다.**
둘째, **하나님이 속히 행하신다.**
먼저 "정하셨다" 라는 말부터 봅시다. 바로의 꿈이 두 번 겹쳐서 나타난 이유가 뭐냐면, **이미 하나님이 정하셨다는 표시**라는 거예요. 일이 일어날지 말지 결정 중이 아니라,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뜻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 가장 헷갈리는 부분이 이거예요.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실까, 안 하실까?" 우리는 이 질문 앞에서 흔들리고, 잠 못 자고, 사람한테 물어보고 합니다.
그런데 32절은 말합니다. **이미 정하셨다.** 우리가 흔들리는 동안, 하나님은 이미 정해 놓고 계셨다는 거예요. 흔들릴 일이 아니에요. 받을 일이에요.
그리고 두 번째, **"속히 행하시리니"** 라는 말씀이 충격적이에요.
요셉의 13년을 보세요. 17세에 팔려서 30세에 총리가 됐어요. 13년이 어디가 "속히" 입니까? 우리 기준에서는 13년은 절대 "속히" 가 아니에요. 영원처럼 긴 시간이에요.
그런데 32절은 그것을 "속히" 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게 있어요. **하나님의 "속히"는 우리의 시계로 재는 게 아니에요.** 정하신 그날이 오면, 그게 하나님의 "속히" 예요.
본문 14절을 다시 보세요.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고, 바로가 부르고, 옥에서 끌어내고, 수염 깎고, 옷 갈아입고, 바로 앞에 서기까지. 한 절이에요. **만 2년을 기다린 그날, 일은 한 절 안에서 다 일어났어요.**
이게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이에요. 만 2년은 만 2년대로 흘러가다가, 정하신 그날이 오면, 한 절 안에서 다 일어나요. 우리가 13년을 기다리다 지쳐서 무너질 때쯤, 하나님의 "속히" 가 시작되는 거예요.
여기서 한 본문이 떠오릅니다. 갈라디아서 4장 4절입니다.
>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때가 차매. 이 한 마디 안에 인류 역사 전체가 들어 있어요.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 약 2천 년이 흘렀어요. 우리에게는 아득한 시간이지만, 하나님께는 "때가 차매" 한 마디예요. 그리고 그 때가 차자, **속히** 보내셨어요.
청년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그 "때" 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모르는 동안, 하나님은 정해 놓으셨고, 그 때를 향해 모든 것이 정렬되고 있어요.
여러분이 지금 만 2년의 한복판에 있을 수 있어요. 잊혀진 것 같고, 안 풀리는 것 같고, 사람의 약속도 다 가벼워 보이는 그 자리. 괜찮아요. **그 만 2년의 끝에 한 절이 기다리고 있어요.**
이번 한 주, 청년 여러분. 이 한 절을 외워 두세요.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니"** (창세기 41:32)
흔들릴 때마다, 잊혀진 것 같을 때마다, 사람이 침묵할 때마다 이 절을 붙드세요. **이미 정하셨다. 속히 행하신다.** 이 한 절이 여러분의 만 2년을 견디게 할 거예요.
결론 — 잊혀진 시간의 끝에 정하신 때가 있습니다
745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세 가지를 함께 나눴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시간은 따로 있습니다.** 만 2년은 버려진 시간이 아니라 정렬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둘째,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13년의 기다림이 요셉의 첫 마디를 "내가 아니라" 로 만들었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정하시면 속히 행하십니다.** 우리의 13년이 하나님의 "속히" 입니다. 정하신 그날이 오면, 한 절 안에서 다 일어납니다.
서두에 제가 한 가지 고백을 했었어요. 누군가에게 부탁했는데 잊혀져서 진짜 외로웠던 경험. **"사람은 사람을 이렇게 잊는구나"** 라는 마음.
오늘 본문이 그 마음에 답해줍니다. **사람은 잊을 수 있어요.** 술 맡은 관원장도 요셉을 잊었어요. 그게 사람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만 2년이 지나도, 13년이 지나도, 하나님은 정하신 그날을 향해 모든 것을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청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자리가 어디든, 잊혀진 자리가 아닙니다. **정하신 그날을 향해 정렬되고 있는 자리**입니다.
이번 한 주, 흔들릴 때마다 한 절을 붙드십시오.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니"** (창 41:32).
그리고 작은 자리에서 한 번 연습하십시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만 2년의 끝에 한 절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믿고, 오늘도 자기 자리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청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140자
1. 하나님의 정하신 때를 신뢰하며, 잊혀진 것 같은 시간을 견디게 하소서.
2. 작은 일에서도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입술을 주소서.
3. 13년의 기다림 끝에 한 절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오늘도 정직하게 살게 하소서.
추천 찬양
181자
**주의 시간에 (Marshmallow Worship)**
오늘 설교의 핵심은 "하나님의 시간은 따로 있다" 입니다.
요셉의 만 2년, 13년의 기다림 끝에 정하신 때를 행하시는 하나님.
이 찬양을 통해 우리의 시간이 아닌 주의 시간을 신뢰하며,
잊혀진 것 같은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고백을 함께 드리면 좋겠습니다.
나눔 질문
249자
1. 최근에 누군가에게 잊혀진 것 같아 외로웠던 경험이 있다면 나눠 주세요. 그때 하나님은 어떻게 느껴졌나요?
2. 요셉의 첫 마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를 내 일상에 적용한다면, 가장 어색하고 어려운 자리는 어디일까요? (취업, 인간관계, SNS, 성취 등)
3. 창세기 41장 32절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니" 라는 말씀을 붙들고, 이번 한 주 기다리며 견뎌내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