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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받으셨습니다
목사samuel
예배주일
본문마25_34-40
날짜2026-05-17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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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도입↔서론 / 본문↔본론 / 마무리↔결론 / 결단↔결단찬양 / 기도↔기도제목
섹션별 본문 (1개)
본문
14189자
마태복음 25장 34절-40절
> __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__ (34절)
> __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__ (35절)
> __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__ (36절)
> __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__ (37절)
> __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__ (38절)
> __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__ (39절)
> __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__ (4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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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어렸을 때 살던 동네 이야기를 하나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집은 골목 끝에 있었습니다. 겨울이 되면 그 골목 끝까지 바람이 길게 들어왔습니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늘 국을 끓이셨습니다. 무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멸치 한 줌으로 우려낸 그런 평범한 국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끔 모르는 분이 우리 집 문을 두드릴 때가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 저녁, 등에 봇짐을 진 분이 한 그릇만 달라고 하시면, 어머니는 한 번도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부엌 한쪽에 작은 상을 놓고, 따끈한 밥 한 그릇과 그 국을 떠 드리셨습니다. 그분이 다 드시고 떠나실 때까지 어머니는 부엌에 서 계셨습니다. 떠나는 분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얼굴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어린 저는 그것이 그저 어머니의 인심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오늘 본문 앞에 서고 보니, 그것이 인심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 드린 한 그릇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모르고 하셨지만, 주님은 다 받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한 가족을 함께 기억하려고 모였습니다. 사랑의손 복지재단입니다. **40년**을 한결같이 작은 자들의 곁에 서 왔고, 그 헌신이 모이고 모여 **1억의 기금**이 되었습니다. 숫자만 들으면 그저 큰 수입니다. 그러나 그 한 푼 한 푼 뒤에는 누군가의 밥 한 그릇이 있었고, 누군가의 밤샘 기도가 있었고, 누군가의 손이 있었습니다. 그 손이 닿은 곳마다 **주님이 받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마지막 날에 임금이신 주님이 우리 앞에 서시는 장면입니다. 그분이 입을 여십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다." 우리는 깜짝 놀랍니다. "주님, 언제요? 어디서요?" 그러자 임금은 한 마디로 답하십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저는 이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우리가 살면서 한 그 작은 일들이 잊혀지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떠 드린 그 한 그릇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건넨 그 한 봉투가 그저 사람의 손에서 손으로 옮겨간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이 한 분께 닿았습니다.** 우리가 모르고 한 그 일을, 주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고 계셨고, 다 받으셨고,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세 가지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첫째, 작은 일에서 주님을 만나십시오. 둘째, 함께 나누는 공동체가 되십시오. 셋째, 오늘 한 사람에게 행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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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작은 일에서 주님을 만나십시오##
먼저 35절과 3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 __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__
여섯 가지가 차례로 나옵니다. 주린 자에게 먹이는 것. 목마른 자에게 마시게 하는 것. 나그네를 영접하는 것. 헐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는 것. 병든 자를 돌보는 것. 옥에 갇힌 자를 가서 보는 것. 성도 여러분, 이 여섯 가지를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하나도 특별한 일이 없습니다.** 큰 돈이 드는 일도 아니고,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 일도 아닙니다. 누구나, 마음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본문이 보여주는 이 목록은 **일상의 친절**입니다. 이 여섯 가지는 그 시대 유대인들에게 익숙한 선행의 목록이었습니다. 부자가 아니어도 할 수 있고, 학식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 시대 어머니들이 아이에게 가르치던 가장 기본적인 사람의 도리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평범한 목록을 가져다, **영원한 나라의 기준**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은 이 목록을 비유 안에서 무려 네 번이나 반복합니다. 34-36절에서 한 번. 37-39절에서 의인들의 질문 안에서 한 번. 42-43절에서 한 번. 44절에서 또 한 번. **네 번 반복하신 것은 강조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새겨질 때까지 두드리시고, 두드리시고, 또 두드리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거창한 것을 묻지 않으십니다. **밥 한 그릇, 물 한 잔, 옷 한 벌, 그 자리에 가서 한 번 들여다보는 것** — 그것이 영원한 나라의 기준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일찍이 같은 말씀을 외쳤습니다. 이사야 58장 7절입니다. __"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__ 본문의 여섯 가지가 어디서 왔는지 보이십니까? 이사야의 입에서 이미 외쳐졌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원하셨던 참된 금식, 참된 예배, 참된 신앙의 모습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700년을 건너와, 마지막 날 임금이 되신 주님의 입에서 다시 흘러나옵니다.
그리고 의인들의 반응이 놀랍습니다. 37절부터입니다. __"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__ 본문은 분명합니다. 의인들은 자기가 한 일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주님께 했다"는 의식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눈 앞에 굶주린 사람이 있어서 밥을 드렸고, 추워 떠는 사람이 있어서 옷을 덮어 주었을 뿐입니다.
여기서 한 단어를 짚어 드리고 싶습니다. 40절에 "지극히 작은 자"라는 말이 나옵니다. 헬라어로 "**엘라키스토스**"라고 합니다. "가장 작은" 이라는 뜻입니다. 그냥 작은 것이 아니라 **최상급으로 작은 것**입니다. 세상이 가장 가치 없다고 여기는, 그래서 사람의 시야 밖으로 밀려난 그 사람. 주님은 그 사람을 가리키시며 "**여기 내 형제**"라고 부르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눈을 완전히 뒤집어 놓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그 한 사람의 자리에, **주님이 서 계셨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에도 그러셨습니다. 주님이 가장 많이 머무신 자리는 어디였습니까? 종교 지도자들의 회당이었습니까? 부자들의 잔치 자리였습니까? 아닙니다. **세리와 죄인들의 식탁**이었습니다. **나병환자의 곁**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우물가**였습니다. **죽은 자의 무덤 앞**이었습니다. 주님은 평생 가장 작은 자들을 찾아 다니셨습니다. 그러니 마지막 날에도 그분이 가장 작은 자의 얼굴로 우리 앞에 서신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그렇게 사셨던 분이, 그 날에도 그렇게 서 계실 뿐**입니다.
성도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꾸 큰 것을 찾습니다. 큰 봉사. 큰 헌신. 큰 결단. 그런데 본문은 정 반대로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가장 작은 자리에서 시작된다**고요. 평생 무명으로 사신 분들이 있습니다. 자기 이름 한 번 드러내지 않으시고, 새벽마다 교회 마당을 쓸고 가신 권사님들이 계셨습니다. 주일마다 어린아이들 손을 잡고 화장실로 데려가신 집사님들이 계셨습니다. 새 가족이 처음 교회에 오시면 자기 점심 한 끼를 사 드리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분들이 한 그 모든 일을, 주님은 다 받으셨습니다.**
저는 한 봉사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해 4월, 한 분의 거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머시라는 분의 작은 아파트에는 전쟁을 피해 온 여덟 명의 여성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 그 여인들은 임시 청소 일자리로 나갔고, 머시와 자원봉사자 그레이스는 부엌에 남았습니다. 두 사람은 감자를 깎으며 100인분의 쌀과 닭 스튜를 함께 준비했습니다. 부엌 한쪽 벽에는 머시가 적어 붙여 둔 성경 구절들이 가득했습니다. 기도와 봉사가 한 자리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 illust: 계속되는_헌신_기도와_함께하는_봉사 -->
이 이야기에는 거창한 사역도, 큰 단체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저 **부엌에서 감자를 깎는 두 손**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손이 100명의 굶주린 입을 채웠습니다. 그 손이 곧 주님의 손이었습니다. 본문이 말씀하시는 그 손이었습니다.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느니라."** 그 한 줄의 칭찬을 위해, 머시는 매일 부엌에 섰던 것입니다.
본문 38절과 39절을 더 보십시오. __"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__ 의인들은 "주님께"라고 생각하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저 곁의 사람에게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임금이 답하십니다.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주님은 작은 자의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우리가 알아보지 못해도 다가오십니다. 우리가 거창한 일이라고 여기지 않아도 다가오십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작은 일에서 주님을 만나십시오.** 큰 일을 기다리느라 눈 앞의 작은 사람을 놓치지 마십시오. 큰 사역을 꿈꾸느라 옆 자리의 외로운 한 사람을 흘려보내지 마십시오. 주님이 그 자리에 서 계십니다.
옛 신앙의 선배 한 분이 이런 말을 남기셨습니다. "**이웃 사랑은 자아의 감옥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통로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누구나 자기 자신이라는 감옥 안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내 형편. 내 걱정. 내 자식. 내 건강. 내 미래. 이 감옥 안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문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웃의 얼굴**이라는 것입니다. 옆 자리의 한 사람을 향해 눈을 돌리는 그 순간, 우리는 자아의 감옥에서 한 걸음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주님이 서 계신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둘째로 넘어가겠습니다. 본문 32절과 34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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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함께 나누는 공동체가 되십시오##
32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__"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__ 34절은 이어집니다. __"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__
여기서 두 가지가 보입니다. 하나는 **"모든 민족"** 이라는 말씀입니다. 또 하나는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는 말씀입니다.
먼저 "모든 민족"입니다. 주님 앞에 서는 사람은 한 개인만이 아닙니다. **모든 민족**이 함께 섭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은 결코 혼자 가는 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함께 가는 길**입니다. 본문이 그리는 마지막 날의 풍경은 한 사람씩 줄을 서서 점수를 받는 장면이 아닙니다.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이고, 그 가운데서 임금이 양과 염소를 가르시는 장면입니다. 그 자리에서 칭찬을 받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함께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다음으로 "예비된 나라"입니다. 본문은 분명합니다.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 이 나라는 우리가 만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공로로 얻어내지 않았습니다. **창세로부터 하나님이 친히 예비하신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본문은 "선행으로 천국에 가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이미 너희를 위해 예비된 그 나라를 상속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상속이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이미 아버지의 것이 자녀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라 자녀이기에, 우리는 종이 아니라 상속자이기에, 그 나라가 우리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묻고 싶어집니다. 자녀라면 자녀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상속자라면 상속자답게 행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녀의 표는 자녀의 모양**입니다. 아버지가 사랑하시는 것을 자녀도 사랑할 때, 그 자녀의 모양이 드러납니다. 주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분이 누구셨습니까? 본문이 답합니다. **지극히 작은 자**였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자녀라면, 우리도 그 작은 자를 사랑하게 됩니다. 외적인 행동은 내면의 믿음에서 흘러나오는 **열매**입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 것과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래서 본문이 그리는 그림은 한 개인의 영웅적인 선행이 아닙니다. **함께 나누는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초대교회를 보십시오. 사도행전 4장 32절입니다. __"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__ 34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__"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__ 초대 교회의 모습입니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짊어진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조금씩 내어놓으니, 그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사라진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이 모습은 한 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이 부어지신 후, 그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날마다, 집에서. 거창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일상의 식탁**이었습니다. 그 일상이 쌓이고 쌓여,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더라**"는 놀라운 공동체가 빚어진 것입니다. <!-- illust: 초대교회의_공동체적_나눔 -->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기억하는 사랑의손 복지재단도 그렇습니다. 한 사람이 1억을 모은 것이 아닙니다. **40년 동안** 한 분이 작은 봉투를 내미셨고, 또 한 분이 따뜻한 한 끼를 나누셨고, 또 한 분이 새벽에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그 작은 손들이 모이고 모여 **1억**이 된 것입니다. 1억이라는 숫자는 결과일 뿐입니다. **그 결과 뒤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작은 자에게 한 그릇의 밥"이 있었습니다.** 그 한 그릇 한 그릇을, 주님이 모두 세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본문 34절에 있는 "**상속**"이라는 단어입니다. 상속은 **혼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상속은 **가족이 함께 받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가 함께 한 아버지의 유산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형제답게 살았느냐?**" 우리가 한 아버지의 자녀이면서, 한 식탁의 형제 자매이면서, 옆 자리의 한 사람의 굶주림을 모른 척했다면, 그것은 상속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상속자가 되려면, **함께 나누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본문 40절에서 임금이 그 작은 자들을 가리키시며 부르신 호칭을 보십시오.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 **"내 형제."** 임금이신 주님이 가장 작은 자들을 "내 형제"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세상이 외면한 그 한 사람을,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 인자가 친히 "내 형제"라고 끌어안으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주님이 형제라고 부르신 그 사람을, 우리가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이 한 가족으로 받으신 그 사람을, 우리가 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본문이 말하는 **함께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혼자서 큰 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작은 일을 오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함께 나누는 공동체가 되십시오.** 옆에 앉은 형제 자매를 돌아보십시오. 우리 가운데 굶주린 자가 있으면 함께 먹입시다. 우리 가운데 외로운 자가 있으면 함께 영접합시다. 우리 가운데 병든 자가 있으면 함께 돌봅시다. **그 공동체가 곧 천국의 모습**입니다.
이제 셋째 대지로 가겠습니다. 40절을 한 번 더 가리키며 넘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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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오늘 한 사람에게 행하십시오##
40절 말씀입니다.
> __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__
성도 여러분, 이 말씀에서 한 단어를 강조해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 입니다. 본문은 "지극히 작은 자들"이라고 복수로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라고 단수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반복하십니다. 40절에서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 45절에서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 **한 사람**입니다. 우리 앞의 한 사람.
왜 주님은 굳이 "하나"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우리가 흔히 빠지는 함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묶어 부르는 순간, 한 사람의 얼굴이 사라집니다.** "노숙자들". "환자들". "독거 노인들". "장애인들". 이렇게 묶어 부르면 마음에 부담은 사라지지만, 동시에 **그 한 사람의 얼굴도 사라집니다.** 주님은 그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굳이 **"하나"**라고 못 박으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누가복음 10장의 선한 사마리아인을 기억합니다. 그 비유에서 강도 만난 자가 누구였습니까? 어떤 단체였습니까? 어떤 그룹이었습니까? 아닙니다. **"한 사람"**이었습니다. 길에 쓰러진 한 사람. 그 한 사람을 그냥 지나간 제사장이 있었고, 레위인이 있었고, 그 한 사람을 안고 간 사마리아인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그 비유에서 칭찬하신 분이 누구셨습니까? **그 한 사람의 얼굴을 본 자**였습니다. 본문 25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항상 **한 사람의 얼굴**을 보십니다. 우리에게도 그 한 사람을 보라고 하십니다.
이어지는 41절부터 45절까지를 잠깐 보시기 바랍니다.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임금이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그들이 행한 큰 죄악을 꼽으십니까? 아닙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도둑질이나 살인이 죄목이 아닙니다. **하지 않은 것**이 죄목입니다. 야고보서 4장 1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__"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__ 본문은 우리에게 무서운 진리를 알려 줍니다. **악을 행한 것만 죄가 아니라, 선을 행하지 않은 것도 죄**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흔히 죄를 "내가 한 잘못"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네가 하지 않은 그 일은 어찌할 것이냐?"** 눈 앞에 작은 자가 있는데 못 본 척했다면, 그것도 죄입니다. 손을 내밀 수 있었는데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면, 그것도 죄입니다. 한 번 가서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바쁘다고 미루었다면, 그것도 죄입니다.
여러분, 이 부분이 가장 무섭습니다. 우리는 보통 죄를 짓지 않는 것에만 신경을 씁니다. 거짓말하지 않기. 도둑질하지 않기. 미워하지 않기. 다 옳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네 손이 닿을 자리에 가만히 있지 않았느냐"** 라고 묻습니다. 가만히 있는 것이 안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본문에 따르면 **가만히 있는 것이 곧 심판의 자리**가 됩니다. 본문 45절을 보십시오. __"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__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았느냐**로 갈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본문이 답합니다. **"하나에게 하라."** 모든 사람에게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에게는 할 수 있습니다. 옛 신앙의 선배 한 분이 이런 고백을 남겼습니다. "**자선이 모든 선행의 근원이다.**" 아무리 외적으로 좋은 행위라도, 사랑에서 비롯되지 않으면 진정한 선행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이 빠진 모든 행위는 그저 행위에 그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을 향한 작은 사랑은, 그것이 곧 주님께 한 것이 됩니다. <!-- illust: 사랑이_모든_선행의_근원 -->
여러분, 이 "**한 사람**"이라는 말씀이 얼마나 따뜻한지 모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온 세상을 사랑하라"고 막연하게 짐을 지우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한계를 아십니다. 우리의 시간과 힘이 얼마나 작은지 아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에게 **딱 한 사람**만 보라고 하십니다. **오늘 내 앞에 보내신 한 사람**. 그 한 사람을 사랑하면, 주님이 다 받으십니다. 그 한 사람을 도우면, 그것이 곧 천국에 쌓인 보물이 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사랑의손 복지재단의 40년을 기념하지만, 본문은 우리를 더 깊은 자리로 부르십니다. "40년의 헌신"도 결국 **첫 한 사람**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첫 한 그릇의 국밥을 끓이지 않으셨다면, 40년의 봉사도 없습니다. 누군가 첫 한 봉투를 내밀지 않으셨다면, 1억의 기금도 없습니다. **모든 위대한 헌신은 한 사람에게 행한 한 번의 작은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디모데후서 2장 2절을 잠깐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__"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__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부탁입니다. 한 사람에서 한 사람으로, 한 사람에서 한 사람으로. 신앙은 그렇게 이어집니다. **사랑도 그렇게 이어집니다.** 한 사람에게 한 번 사랑을 행하면, 그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에게 사랑을 흘려보냅니다. 그렇게 흘러서 40년이 되고, 1억이 되고, 사랑의손 복지재단이 됩니다.
사랑의손 복지재단이 처음 시작될 때를 상상해 보십시오. 40년 전, 우리 사회가 아직 가난과 결핍 가운데 있던 그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한국 교회는 가난한 이웃을 돌보아야 한다는 책임감 앞에 서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결단이 있었습니다. "**오늘 내 앞의 이 한 사람을 돕자.**" 그 결단이 두 번째 사람을 모았고, 세 번째 사람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처음의 그 한 사람의 결단이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도 없습니다.** 시작은 언제나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이 곧 다음 한 사람을 만듭니다.
여러분은 오늘 누구의 한 사람이 되시겠습니까? 우리 가운데에는 평생 아무에게도 손을 내밀어 본 적이 없다고 느끼시는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 첫 한 사람을 만나는 날**이 될 수 있습니다. 큰 일을 약속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한 통의 안부 전화면 됩니다. 한 봉지의 반찬이면 됩니다. 한 번의 병문안이면 됩니다. **그 작은 시작이 곧 주님이 받으시는 첫 번째 한 그릇**이 됩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한 사람에게 행하십시오.** "내가 무엇을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까" 묻기 전에, **"오늘 내 앞의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라고 주님께 묻기 바랍니다. 한 사람의 안부 전화. 한 사람의 봉투. 한 사람의 식탁 초대. 한 사람을 위한 무릎의 기도. **그 작은 한 가지가 곧 주님께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을 향한 사랑이 쌓이고 쌓여, 어느 날 누군가가 우리의 40년을 기념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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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세 가지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첫째, 작은 일에서 주님을 만나십시오.** 주님은 가장 작은 자의 얼굴로 다가오십니다. 우리가 큰 일에만 눈을 두면 그분을 놓칩니다. 일상의 작은 자리에서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둘째, 함께 나누는 공동체가 되십시오.** 주님 앞에 서는 자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모든 민족이 함께 섭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칭찬받는 자들은 함께 짐을 진 공동체입니다.
**셋째, 오늘 한 사람에게 행하십시오.** 본문은 "하나"를 강조하십니다. 모두를 사랑할 수는 없어도, 오늘 내 앞의 한 사람은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이 곧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가 합쳐져, **40년의 헌신**과 **1억의 기금**이 빚어졌습니다. 사랑의손 복지재단의 40년은 한 분의 영웅 이야기가 아닙니다. **수많은 손이 한 사람씩, 작은 한 가지씩, 오랜 세월 행한 결과**입니다. 그 모든 손이 한 곳을 향해 모였습니다. 바로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보낸 사람은 옆집 할머니였을지 모르나, 우리가 도운 사람은 외국인 노동자였을지 모르나, **주님이 그 모든 것을 받으셨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어머니의 국 한 그릇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어머니는 그저 한 그릇 떠 드린 것뿐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그 한 그릇은 주님이 받으셨습니다.** 어머니는 모르셨지만, 주님은 그 골목 끝의 작은 상에 앉아 그 국을 잡수셨습니다. 어머니의 손은 그날, **주님의 발 앞에 닿은 손**이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머니가 그 국 한 그릇을 떠 드리시던 그 부엌이 곧 우리 집의 가장 거룩한 자리였습니다. 가장 작은 사람이 우리 집에 들어왔던 자리, 가장 작은 사람이 주님의 얼굴로 우리 어머니 앞에 서 계셨던 자리. 그날 저녁 우리 집은 평범한 시골집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잠시 머무신 작은 천국**이었습니다.
오늘 사랑의손 복지재단도 마찬가지입니다. 40년 동안 흘린 땀이 그저 사람의 일로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1억의 기금이 그저 통장의 숫자로 남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친히 받으셨습니다. 주님이 친히 세시고, 주님이 친히 기억하시며, 그날 마지막 자리에 임금으로 서셔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느니라."**
여러분, 한 가지 더 기억해 주십시오. 본문이 말하는 임금은 그저 멀리서 보고만 계신 분이 아닙니다. 35절을 다시 보십시오. __"내가 주릴 때에."__ 임금이 친히 주리신 것입니다. __"내가 목마를 때에."__ 임금이 친히 목마르신 것입니다. __"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__ 임금이 친히 나그네가 되신 것입니다. 본문이 보여주는 임금은 보좌 위에서 사람의 행적을 적기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친히 작은 자의 자리로 내려오셔서, 그 자리에서 우리의 친절을 받으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임금이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섬기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사랑의손 복지재단의 40년을 돌아보는 이 자리는, 사람의 공로를 자랑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친히 작은 자의 자리에서 우리의 손을 받으신 주님을 찬양하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받아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1억이 큰 것이 아니라, **주님이 친히 그 곳에 내려와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신 것**이 큰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날을 향해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날 임금 앞에 서서 듣고 싶은 말은 "수고했다, 큰 일을 했구나"가 아닙니다. **"네가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입니다. 그 한 마디면 우리의 일생이 다 보상받습니다.
이번 한 주, 여러분의 손이 닿는 한 사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한 번의 안부, 한 번의 식탁, 한 번의 기도. 그 작은 한 가지를 그저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 한 가지를 주님이 받으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쌓여,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40년이 되고, 또 다른 사랑의손이 될 줄 믿습니다.
@@주님이 받으셨습니다.@@ 어머니의 한 그릇도, 사랑의손 40년의 헌신도, 오늘 여러분이 한 사람에게 행하실 그 한 가지도, **주님이 받으십니다.** 이 약속을 붙들고 한 주를 살아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에게 마지막 날의 임금을 보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가장 작은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을 보게 하소서. 우리의 눈이 큰 것만 좇지 않게 하시고, 옆 자리의 한 사람을 바라보게 하소서.
사랑의손 복지재단의 40년을 받아 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그 모든 작은 손길을 주님이 친히 받으셨음을 믿사오니, 이 공동체가 다음 40년도 한 사람씩, 한 그릇씩, 한 봉투씩 충성하게 하옵소서.
이번 한 주, 우리 각 사람 앞에 한 사람을 보내 주옵소서. 그리고 그 한 사람에게 작은 친절을 베풀 손을 주옵소서. 그 손이 곧 주님께 닿는 손인 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