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20260529-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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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게 하시고 번성케 하시는 손
목사samuel
예배청년부
본문창세기 41:46-57
날짜2026-05-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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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도입↔서론 / 본문↔본론 / 마무리↔결론 / 결단↔결단찬양 / 기도↔기도제목
섹션별 본문 (9개)
서론 — 서른 살에 선 한 사람
649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본문 46절에 한 숫자가 적혀 있습니다.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서른 살. 우리에게도 익숙한 나이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고, 결혼을 생각하고, "이쯤이면 내 인생이 어디쯤 와 있어야 하지 않나" 스스로 묻게 되는 나이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이 서른 살에 어디 있었습니까. 애굽의 총리 자리입니다. 한 나라의 곡식을 다 맡은 자리입니다.
그러면 그 전에는 어디 있었을까요. 창세기 37장 2절을 보십시오.
> **창세기 37:2**
>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열일곱 살.** 형들에게 팔리던 그 나이입니다. 그러니까 요셉은 **열일곱에서 서른까지, 꼬박 십삼 년**을 구덩이와 노예와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여러분, 십삼 년입니다. 청년 여러분이 지금 통과하고 있는 시간의 길이와 비슷합니다. 그 십삼 년 동안 요셉의 인생은 한 번도 위로 올라간 적이 없었습니다. 구덩이로, 노예 시장으로, 감옥으로 — 계속 아래로만 내려갔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십삼 년 끝에 서른 살의 요셉을 우리 앞에 세워 놓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묻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하나님은 어디 계셨는가.** 본문을 함께 펴 봅니다.
본문 배경 — 십삼 년 동안 보이지 않던 손
646자
요셉의 이야기에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이삭에게도, 야곱에게도 하나님은 직접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요셉에게는 하나님이 한 번도 직접 나타나지 않으십니다. 꿈을 두 번 꾸게는 하셨지만,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하고 음성으로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대신 성경은 이렇게만 적습니다.
> **창세기 39:2**
>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노예로 끌려간 집에서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누명을 쓰고 갇힌 감옥에서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보이지는 않는데, 함께 계셨습니다.** 손은 안 보이는데, 일은 되어 갔습니다.
요셉은 자기가 형통한 줄도 몰랐을 겁니다. 구덩이 안에서, 감옥 안에서 "내가 지금 형통하다"고 느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그를 **형통한 자**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붙잡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형통은 **고난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어떤 깊은 자리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계신 상태입니다.
오늘 본문 46절부터 57절을 세 가지로 나누어 듣고자 합니다.
첫째, **때를 채워 세우신 손.**
둘째, **풍년에 흉년을 준비한 손.**
셋째, **잊게 하시고 번성케 하신 손.**
첫째, 때를 채워 세우신 손
1509자
먼저 46절을 다시 보십시오.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성경이 굳이 나이를 적어 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십칠 세에서 삼십 세까지 — 그 십삼 년이 **그냥 흘러간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 시간이 요셉에게 무엇을 했는지, 두 가지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 1) 십삼 년이 "내가"를 "하나님께서"로 바꾸었습니다
요셉이 바로 앞에 섰을 때, 그가 한 첫마디를 보십시오.
> **창세기 41:16**
>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열일곱 살의 요셉은 형들 앞에서 자기 꿈을 자랑하던 소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서른 살의 요셉은 왕 앞에서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십삼 년이 한 일이 이것입니다. **"내가"를 "하나님께서"로 바꾸는 데 십삼 년이 걸렸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급하게 끌어올리지 않으셨습니다. 그 시간 동안 요셉의 입술을 바꾸고 계셨습니다.
### 2) 늦은 때가 아니라 정확한 때입니다
성경 전체가 이 "때"를 말합니다. 전도서 기자가 이렇게 노래합니다.
> **전도서 3:1**
>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 **전도서 3:11**
>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때를 따라 아름답게."** 그런데 한 구절이 더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시간표는 우리가 미리 다 알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십삼 년 동안 자기 인생의 시종을 측량할 수 없었습니다. 구덩이에서 "이게 총리로 가는 길이야" 하고 알았을까요. 몰랐습니다. 감옥에서 "이 년만 더 있으면 풀려나" 하고 알았을까요. 몰랐습니다.
> **잠언 16:9**
>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요셉이 계획한 길은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걸음을 인도하신 분은 여호와셨습니다. **요셉의 계획은 전부 깨졌는데, 하나님의 인도는 한 번도 끊긴 적이 없었습니다.**
청년 여러분. 솔직히 말해 봅시다. 지금 여러분의 인생 시계가 남보다 늦게 가는 것 같아 불안하지 않습니까. 친구는 취업했는데 나는 아직이고, 동기는 결혼했는데 나는 아직이고, SNS를 열면 다들 나보다 앞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말합니다. 요셉의 서른 살은 **늦은 게 아니라 정확한 때**였습니다. 그 십삼 년이 하루라도 빠졌다면, 요셉은 그 자리를 감당할 사람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 **베드로전서 5:6**
>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때가 되면."** 우리가 정한 때가 아니라, 하나님이 정한 때입니다. 그 손 아래에서 겸손히 기다리는 것 — 이것이 첫 번째 부르심입니다.
둘째, 풍년에 흉년을 준비한 손
1492자
그러면 서른 살의 요셉이 총리가 되어 무엇을 했습니까. 두 가지를 함께 보겠습니다.
### 1) 풍년의 한가운데서 흉년을 보았습니다
47절부터 49절을 보십시오.
> **창세기 41:47-49**
> 일곱 해 풍년에 토지 소출이 심히 많은지라 요셉이... 그 칠 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장하되... 쌓아 둔 곡식이 바다 모래 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었더라
여기 중요한 한 단어가 있습니다. **"풍년에."** 흉년이 닥친 다음에 곡식을 모은 게 아닙니다. **풍년일 때, 모든 것이 넘칠 때, 그때 흉년을 준비했습니다.**
여러분, 이게 보통 사람의 본능과 반대입니다. 풍년이 들면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다 씁니다. 쌓이는 게 당연하니까, 내일도 그럴 거라고 믿으니까, 마음 놓고 누립니다.
그런데 요셉은 풍년의 한가운데서 흉년을 봤습니다. 왜요. 하나님이 바로의 꿈을 통해 미리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앞을 본 사람만 준비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 준비의 지혜를 곳곳에서 말합니다. 잠언이 개미를 가리키며 말합니다.
> **잠언 6:6, 8**
>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개미는 여름에 겨울을 준비합니다.** 여름이 영원할 줄 알고 노는 게 아니라, 여름이 끝날 것을 알기에 모읍니다. 요셉이 한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나라 전체를 한 마리 지혜로운 개미로 만든 것입니다.
### 2) 지금 쌓는 것이 나중에 꺼내 쓰는 것입니다
이 준비가 결국 무엇이 되었습니까. 53절부터 보십시오.
> **창세기 41:54, 57**
>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먹을 것이 있더니...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온 세상이 굶주릴 때, 애굽에는 먹을 것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풍년에 준비한 것이 **온 세상의 생명**을 살린 것입니다.
청년 여러분. 지금이 여러분 인생의 풍년인지 흉년인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지금 쌓는 것이 나중에 꺼내 쓰는 것입니다.**
지금 말씀을 읽어 두면, 흔들리는 날에 그 말씀이 떠오릅니다. 지금 기도를 쌓아 두면, 무너지는 날에 그 기도가 버팀목이 됩니다. 지금 작은 신실함을 쌓아 두면, 큰 일이 맡겨지는 날에 그것이 그릇이 됩니다.
요셉의 십삼 년이 그냥 버린 시간이 아니었듯이, **여러분의 지금 이 시간도 창고에 쌓이고 있습니다.** 흉년이 와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은, 풍년에 미리 준비한 사람입니다.
> **갈라디아서 6:9**
>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지금 심는 것이 보이지 않아도, 거두는 때는 반드시 옵니다. 그러니 풍년이라고 흩어 버리지 말고, 흉년 같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둘 다 준비의 시간입니다.
셋째, 잊게 하시고 번성케 하신 손
2073자
이제 본문의 가장 따뜻한 자리로 갑니다. 50절부터 52절입니다.
> **창세기 41:51-52**
>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이 곧 요셉의 **신앙 고백**입니다.
첫째 이름이 **므낫세** —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둘째 이름이 **에브라임** —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 1) 므낫세 — 고난이 사라진 게 아니라 의미가 바뀝니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있습니다. 요셉이 십삼 년의 고통을 **삭제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형들이 자기를 판 일, 누명 쓴 일, 잊혀진 일 — 그 기억이 머릿속에서 지워진 게 아닙니다.
본문이 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그 고난이 더 이상 요셉을 지배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난은 그대로 있는데, 그 고난을 보는 눈이 바뀌었습니다. 원망의 자리에서 감사의 자리로 옮겨진 것입니다.
> **요셉 — 당신들은 악을 꾸몄으나 하나님은 선을 이루셨다**
>
> 17세 요셉은 형들에게 팔렸습니다. 노예가 되어 애굽으로 끌려갔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꿈 해석으로 도와준 술 맡은 관원은 2년을 잊었습니다. 요셉의 13년은 — 우물에서 노예 시장으로, 노예 시장에서 감옥으로 — 내려가기만 한 시간이었습니다.
> 그런데 총리 자리에 오른 뒤, 요셉은 형들 앞에서 그 13년을 이렇게 한 줄로 정리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세기 50:20).
> 요셉이 우물 안에서 이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못합니다. 감옥에서 할 수 있었을까요. 못합니다. 그러나 총리 자리에서 뒤돌아봤을 때 — 흩어져 있던 점들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본문 51절의 "잊어버리게 하셨다"의 진짜 뜻입니다. 고난이 사라진 게 아니라, **고난의 의미가 바뀐 것**입니다.
> **로마서 8:28**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은 **"고난 자체가 선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형들이 요셉을 판 것은 끝까지 죄였습니다. 본문은 그 죄를 미화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악조차도 **하나님의 손 안에서** 선을 이루는 재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은 환난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의 십삼 년을 살아 있는 모델로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 2) 에브라임 —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십니다
청년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잊고 싶은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 실패한 일, 부끄러운 기억.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하고 묻고 싶은 자리가 있을 것입니다.
요셉도 그 질문 안에서 십삼 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약속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그 고난이 끝내 **므낫세**가 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에브라임** — 번성이 일어납니다.
다만 한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요셉이 "잊게 하셨다"고 고백한 것은 **총리 자리에서**였습니다. 구덩이 안에서가 아닙니다. 그러니 지금 우물 안에 있는 분이 억지로 "이게 다 합력하여 선이야" 하고 자기를 다그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붙잡을 것은 하나입니다. **이 일을 합력시키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 재해석은 끝에서 옵니다. 그러나 반드시 옵니다.
> **고린도전서 10:13**
>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은 감당 못할 시험은 주지 않으십니다. 요셉의 십삼 년도 그분이 재셔서 주신 길이였습니다. 그 끝에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있었습니다.
결론 — 십자가에서 펴진 손
1062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처음에 본 서른 살의 요셉으로 돌아갑니다.
서른 살에 한 나라를 살린 사람. 그러나 그를 세운 것은 그의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십삼 년 동안 보이지 않게 함께하신 손**이었습니다. 때를 채우신 손, 풍년에 준비하게 하신 손, 고난을 잊게 하시고 번성케 하신 손.
그런데 이 손에는 더 깊은 그림자가 있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 많은 백성을 살린 이야기는, 훗날 또 한 분을 가리킵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악의로 팔려 갔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많은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악의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온 인류의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요셉이 풍년에 곡식을 쌓아 흉년의 세상을 먹였듯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기를 다 내어 주셔서 굶주린 우리 영혼을 먹이셨습니다. 그 두 손이 못 박혀 펴졌습니다. 우리를 살리시려고 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십삼 년의 어둠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강해서가 아닙니다. **이미 우리를 위해 먼저 펴진 손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두 가지 결단으로 이 자리를 마치고자 합니다.
**결단 1 — 지금 이 시간을 창고로 삼겠습니다.**
지금이 풍년이든 흉년이든, 늦은 것 같든 빠른 것 같든, 이 시간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이번 한 주, 딱 하루만 — 잠들기 전 5분, 오늘 본문 한 절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한 절씩 쌓인 말씀이 흉년의 날에 꺼내 먹는 양식이 됩니다.
**결단 2 — 내 십삼 년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겠습니다.**
지금 내 인생의 점들이 흩어져 보여도, 그 점을 잇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겠습니다. 지금 당장 "이게 다 선이야" 하고 억지로 외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한 가지 — **이 일을 합력시키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이것만 붙잡고 한 걸음 더 걸어가십시오.
요셉의 서른 살이 늦지 않았듯이, 여러분의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게 함께하신 그 손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먼저 펴진 그 손이, 여러분의 십삼 년을 끝내 므낫세와 에브라임으로 바꾸어 주시기를 —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제목
161자
1. 내 인생의 시계가 남보다 늦어 보일 때,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며 그 손 아래 겸손히 기다리게 하소서.
2. 지금 이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말씀과 기도를 쌓는 풍년의 준비로 삼게 하소서.
3. 잊고 싶은 상처와 실패를 하나님의 손에 맡겨,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고백으로 바뀌게 하소서.
추천 찬양
137자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통합 487장)**
오늘 본문은 보이지 않게 함께하신 하나님의 손을 말합니다. 십삼 년의 어둠 속에서도 요셉과 함께하신 그 손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펴진 손이라는 것을 이 찬양으로 함께 고백하면 좋겠습니다.
나눔 질문
166자
1. 요셉의 십삼 년처럼, 지금 내 인생에서 "왜 이렇게 더딘가" 싶은 시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2. 지금이 내 인생의 풍년이라면 무엇을 쌓아 두고 싶고, 흉년이라면 무엇을 꺼내 쓰고 싶은가요?
3. 아직 므낫세(잊게 하심)로 바뀌지 않은,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싶은 기억이 있다면 나눠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