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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0260703-001
버전 v1

여호와께서 하셨습니다

목사사무엘
예배맥추감사절_청년부
본문신명기26장1-11절
날짜2026-07-0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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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별 본문 (5개)

서론

248자
성경에서 첫 열매는 특별한 자리를 갖습니다. 곡식이든 열매든, 가장 먼저 거둔 것을 어디로 가져가느냐. 그것이 한 사람의 신앙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한 해의 절반을 지나며 거둔 것을 놓고 하나님 앞에 서는 날입니다. 그런데 감사절에 성경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네가 지금 손에 든 그 첫 것이, 어디에서 왔느냐.** 오늘 본문은 그것을 어디로, 왜 가져가야 하는지 보여 줍니다.

배경

307자
신명기 26장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남긴 마지막 설교의 마무리 부분입니다. 이 백성은 아직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광야 사십 년을 지나, 이제 곧 요단강을 건너 그 땅에 들어갈 사람들입니다. 모세는 미리 일러 둡니다. 그 땅에 들어가 밭을 갈고, 처음으로 곡식을 거두게 되거든, 그 **첫 소산을 광주리에 담아** 하나님이 택하신 곳으로 가지고 가라. 그리고 제사장 앞에서 정해진 고백을 드리라고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두 가지로 나누어 보려 합니다. 첫째, 기억하십시오, 누가 하셨는지. 둘째, 받은 것은 나누어야 완성됩니다.

첫째, 기억하십시오, 누가 하셨는지

1322자
그 소산을 가져온 사람이 제사장 앞에서 드리는 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애굽에 내려가 거기에서 소수로 거류하였더니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다"(5절). 이 "조상"이 누구인지 본문은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다수의 학자는 야곱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분명한 것은, 이 감사의 고백이 **떠돌던 한 사람, 뿌리내릴 땅 한 평 없던 사람**에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 고백에는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말하는 사람은 지금 자기 손으로 농사지어 거둔 곡식을 들고 왔습니다. 그런데 고백의 내용에는 정작 자기가 한 일이 거의 없습니다. 들어 보십시오. > 우리가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보시고… 인도하여 내시고… 이 땅을 주셨나이다 (7-9절) 들으시고, 보시고, 인도하시고, 주셨다. **구원을 이루신 동사의 주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여호와이십니다.** 예배자가 한 일이라곤 "부르짖었다"(7절), 그리고 오늘 그 소산을 "가져왔다"(10절), 이 둘뿐입니다. 그런데 부르짖음은 내가 이뤄 낸 무엇이 아닙니다. 더는 어쩔 도리가 없을 때 터져 나오는 것이 부르짖음입니다. 이것이 신앙 고백의 뼈대입니다.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 같은 모세가, 바로 몇 장 앞에서 이 백성에게 경고했습니다. 광야를 지나 좋은 땅에 들어가 배부르게 되거든 조심하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신 8:17). 배부른 다음이 위험합니다. 이룬 다음이 되면, 사람은 슬그머니 주어를 바꿉니다. 하나님이 하셨다가, 내가 했다로. 세월이 흘러 사무엘 때에도 같은 고백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미스바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블레셋을 이겼을 때, 사무엘은 돌 하나를 세우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불렀습니다.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삼상 7:12). 그 소산을 든 사람처럼, 사무엘도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주어를 하나님께 돌려 드립니다. 청년 여러분, 우리는 무언가를 이루면 그것으로 나를 증명하려 합니다. 합격, 월급, 성사된 계약. 그것이 곧 나의 값이 되고, 나의 이름이 됩니다. 그래서 이룬 것이 없다 싶은 날에는 감사할 것도 없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본문은 우리를 다른 자리로 부릅니다. 감사의 근거는 내가 거둔 것의 크기가 아닙니다. **떠돌던 나를 여기까지 이끄신 하나님, 그분이 감사의 근거입니다.** 그러니 이번 한 주, 최근 감사했던 일 하나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 앞에 "내가 해냈다" 대신, "하나님이 여기까지 이끄셨다"고 다시 이름을 붙여 보십시오.

둘째, 받은 것은 나누어야 완성됩니다

1227자
기억한 사람은 반드시 다음 걸음을 걷습니다. 본문은 광주리를 내려놓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11절) 감사 예식의 마지막 장면은 함께 즐거워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누가 있습니까. 레위인과 객, 곧 자기 땅이 없는 사람과 나그네입니다. 하나님은 그 소산을 드린 사람에게 곧바로 말씀하십니다. 이제 가진 것 없는 사람과 함께 기뻐하라고. 왜 이렇게 명하실까요. 우리가 가진 것이 본래 우리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서로 자기 것을 자랑하며 나뉘어 있을 때, 바울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고전 4:7). 받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다 받은 것입니다. 받은 사람은 자랑할 수 없고, 받은 사람은 나눌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복음이 열립니다. 이스라엘은 자기 소산의 첫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신약에 오면 그 방향이 뒤집힙니다. 하나님이 먼저, 가장 귀한 첫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원래 오늘 우리가 지키는 맥추감사절은 레위기의 초실절 규례에서 왔습니다. 곡식을 거둘 때 첫 이삭 한 단을 먼저 제사장에게 가져가는 절기입니다(레 23:10). 그 한 단을 드리면, 뒤따라올 온 추수가 하나님의 것으로 보증됩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 "첫 열매"라는 말을 뜻밖의 자리에 씁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그리스도께서 첫 열매로 부활하셨으니, 뒤따를 우리의 부활도 이미 보증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그 첫 것을,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우리에게 먼저 주셨습니다. 떠돌던 사람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다 강한 손에 이끌려 나온 그 옛 이야기가, 죄와 사망 아래 떠돌던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건짐받은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그러니 우리의 나눔은 무언가를 얻어 내려는 거래가 아닙니다. 이미 다 받은 사람의 응답입니다. 청년 여러분, 이번 한 주, 함께 나눌 한 사람을 정해 보십시오. 형편이 어려운 지체, 혹은 새로 온 지체 한 사람에게 식사 한 끼, 작은 것 하나를 나누어 보십시오. 그것이 오늘 본문이 말하는 감사의 완성입니다.

결론

285자
정리하겠습니다. 감사의 주어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께서 하셨습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만이, 받은 것을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이번 한 주 감사할 일 앞에서 주어를 바꾸십시오. "내가 해냈다"에서 "하나님이 이끄셨다"로. 둘째, 이번 한 주 받은 것을 한 사람과 나누십시오. 은혜는 나눌 때 완성됩니다. 오늘 우리가 받은 첫 것을, 여러분은 다시 어디로 가져가시겠습니까. 그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이웃과 함께 즐거워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