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2026070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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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서 문설주까지
목사samuel
예배특별새벽
본문신명기 6:4-9
날짜2026-07-05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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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도입↔서론 / 본문↔본론 / 마무리↔결론 / 결단↔결단찬양 / 기도↔기도제목
섹션별 본문 (9개)
본문 봉독
260자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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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
1265자
성경에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은 이해 못 하는 그분을 직접 만난 사람들이에요.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세상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노아를 보십시오. 보이지도 않는 홍수를 두고 방주를 지었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었겠습니까? 히브리서는 이렇게 적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히 11:7) 하나님을 만났기에, 비웃음이 그를 못 흔들었습니다.
모세도 그렇습니다. 애굽 왕궁의 부귀가 다 그의 것이었어요. 그런데 히브리서가 증언합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히 11:24-26) 어떻게 눈앞의 보화를 거절할 수 있었나요? 바로 다음 절이 답입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히 11:27)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 같이 사는 것, 이것이 만남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풀무불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단 3:17-18) 건져 주셔도 안 절하고, 안 건져 주셔도 안 절합니다. 죽음도 그들을 못 흔들었어요.
바울은요.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뒤 고백합니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 배설물로 여긴다."* (빌 3:7-8) 세상이 붙들라는 것을 배설물로 여깁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의 눈이에요.
이들은 왜 안 흔들렸습니까? 자기가 강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붙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붙들린 사람은, 반드시 그 믿음을 다음 사람에게 전하려 합니다. 어제 우리가 본 디모데의 믿음도 그렇게 흘렀죠.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딤후 1:5) 로이스에서 유니게로, 유니게에서 디모데로.
그런데 여기 순서가 있습니다. 전하려면 내가 먼저 만나야 합니다. 내가 흔들리는데 누구를 붙듭니까? 어제가 무엇을 물려줄까였다면, 오늘은 어떻게 물려줄까입니다. 그 첫 자리가 자녀가 아니라 부모인 나입니다. 지금 모세는 요단강 앞, 우상 가득한 땅으로 들어가는 백성에게 마지막 힘을 다해 외칩니다. 유대인이 지금도 매일 외우는 말씀, **쉐마**, "들으라"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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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부모인 내가 먼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1335자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4-5)
자녀 이야기가 먼저 나올 것 같은데 아닙니다. **너부터 사랑하라**입니다. 6절도 그래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신 6:6) 자녀 마음이 아니라 내 마음입니다.
세월이 흘러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계명 중에 어느 것이 가장 큽니까. 예수님이 바로 이 구절로 답하셨어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 22:37-38) 수많은 계명 가운데 첫째 자리에, 예수님은 쉐마를 놓으셨습니다. 자녀 교육도, 교회 봉사도, 이 첫째가 무너지면 다 헛돕니다.
여호와는 오직 한 분이시랍니다. 그러니 내 마음도 하나여야 해요. 예수님이 이 마음을 또 이렇게 푸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4) 마음을 다하라는 건, 반반씩 섬기지 말라는 겁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에 마음을 다하고 있습니까? 몸은 예배당에 앉아도 마음은 온통 돈 걱정에 가 있지 않습니까? 예배보다 돈이 급하다며 내 예배 자리는 자꾸 비우면서, 아이에게는 교회 가라고 합니다. 그 말에 힘이 실리겠습니까? 아이는 압니다. 우리 집에서 정말 중요한 게 하나님인지 돈인지, 말이 아니라 부모의 발걸음을 보고 알아요.
롯을 보십시오. *"롯은 … 소돔까지 이르러 장막을 쳤더라."* (창 13:12) 물이 넉넉한 땅을 보고 하나님보다 그 땅을 앞세운 겁니다. 그 끝이 무엇이었나요. 심판 직전 사위들에게 도망치자 외쳤지만,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창 19:14) 흔들린 부모의 말은, 농담이 됩니다.
다니엘은 달랐습니다.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진다는 조서 앞에서도,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단 6:10) 죽음 앞에서도 창문을 열었어요. 세상이 그를 못 흔든 겁니다.
같은 위기 앞에 선 두 부모입니다. 흔들린 롯의 말은 농담이 되었고, 붙들린 다니엘의 무릎은 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여호수아처럼 서십시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수 24:15) 나와, 그리고 내 집. **나부터입니다.**
무겁습니까? 나는 못 사는데 싶으십니까?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9) 마음에 새기라는 명령은 짐이 아니라, 먼저 받은 사랑에 답하라는 초대입니다. 오늘 이 새벽, 비운 예배 자리부터 다시 지키기로 결단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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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부지런히, 삶의 모든 틈에서 전하십시오
1285자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 6:7)
자리를 보십시오. 예배 시간이 아닙니다. 앉을 때, 길 갈 때, 누울 때, 일어날 때. **하루의 모든 틈**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부지런합니까? 아이 학원 시간표는 줄줄 외웁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혼자 기도할 줄 아는지는 모릅니다. 세상 것엔 밤낮 부지런하고, 정작 믿음엔 게을렀어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를 들어 보십시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창 18:19) 자식에게 부지런한 사람, 그가 믿음의 조상이었습니다.
디모데는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딤후 3:15) 어려서부터입니다. 로이스와 유니게가 밥 먹이듯 말씀을 먹인 거예요. 어제 들은 그 대물림이, 실은 이 7절을 산 겁니다.
시편 기자도 다짐합니다. *"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시 78:4) 숨기지 않겠다는 거예요. 아이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게 하려고요.
그러면 무엇을 전합니까? 놀랍게도 같은 6장이 그 답까지 줍니다.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 증거와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는 네 아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옛적에 애굽에서 바로의 종이 되었더니 여호와께서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니."* (신 6:20-21) 아이가 물으면 규칙을 외우게 하라 하지 않으십니다. 이야기를 들려주라 하십니다. 우리가 종이었는데 하나님이 건져 주셨다는, 구원의 이야기예요. 우리에게도 그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죄의 종이었던 나를 예수님이 건져 주신 이야기. 아이가 왜 교회 가야 하느냐고 묻거든, 규칙 대신 그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이야기는 명령보다 오래 남습니다.
예수님도 강의실에만 계시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뒤 엠마오 길에서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눅 24:27) 길을 걸으며 푸셨어요. 6장의 "길을 갈 때에든지"가 예수님 삶에 살아 있습니다.
거창한 게 아닙니다. 밥상머리 한마디, 차 안 한마디, 자기 전 손잡은 기도 한마디입니다. 그 틈이 쌓여 믿음이 새겨져요. 지금 우리 교회의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가 바로 그 자리입니다. 한 가정이 벅찬 그 부지런함을, 온 교회가 함께 지는 거예요. 이번 주, 잠들기 전 아이 손을 잡고 한 번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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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삶으로, 온 집 문설주에 새기십시오
1265자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신 6:8-9)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그대로 지켜, 지금도 작은 통에 말씀을 담아 문설주에 붙입니다. 그 문을 드나들 때마다 손을 얹어 말씀을 기억해요. 그런데 형식이 핵심이 아닙니다. 손은 내 행동, 미간은 내 생각, 문설주는 내 가정입니다. 믿음이 입술에서 맴돌지 말고, 행동과 생각과 집 전체에 배어 드나드는 걸음마다 눈에 보이게 하라는 거예요.
왜요? 아이는 부모의 말보다 등을 보고 배웁니다. 입으로 교회 가라면서 삶으로 세상만 좇으면, 아이는 입이 아니라 등을 따라갑니다. 말과 삶이 다른 믿음은, 문설주에 붙지 않습니다.
문설주라는 말에 한 장면을 기억하십시오. 출애굽의 그 밤입니다.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출 12:7) 그리고 약속하셨어요.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출 12:13) 문설주에 피 발린 집은, 온 식구가 죽음을 넘었습니다. 한 사람이 아니라 온 집이 살았어요.
그 피가 누구를 가리켰습니까?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고전 5:7) 문설주의 피는 예수님이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니 문설주에 새기라는 건, 내 집을 그리스도의 피로 덮으라는 거예요.
삶으로 새긴 믿음은 결국 한 자리로 나타납니다. 욥을 보십시오.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욥 1:5) 자녀들의 명수대로, 그러니까 아이들 하나하나의 이름을 두고, 아침에 일어나 제단 앞에 섰습니다. 한 번이 아니라 항상 그리했다고 해요. 아이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른 아침에도, 아버지는 자녀를 위해 하나님 앞에 서 있었던 겁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이 특별새벽기도회가 바로 그 자리 아닙니까? 우리가 지금 욥처럼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의 이름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거예요.
여호수아도 나와 내 집이라 했고, 다니엘의 세 친구가 불 앞에서 안 흔들린 것도, 믿음이 입술이 아니라 삶에 새겨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집 문설주에는 지금 무엇이 새겨져 있습니까?
**[간증 자리]** 회장님께서 직접 채워 넣으실 부분입니다. 부모나 신앙의 선배의 삶(등)을 보고 믿음을 배웠던 개인적인 기억, 혹은 성도의 가정에서 삶으로 신앙이 문설주처럼 온 집을 덮은 장면을 짧게 한 토막. 창작이 아니라 실제 겪으신 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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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 힘으로 됩니까
672자
무거우십니까? 첫째도 나, 둘째도 나, 셋째도 나. 나는 못 사는데, 아이는 이미 교회를 떠났는데.
다시 문설주의 피를 보십시오. 이스라엘을 살린 건 그들이 착해서가 아니라, 어린양의 피였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우리가 못 새기는 믿음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셨어요.
하나님이 약속하십니다.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렘 31:33) 돌판에 새기던 말씀을, 이제 하나님이 친히 마음판에 새기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아이 마음에 믿음을 새기는 분도 결국 하나님이세요.
이미 교회를 떠난 자녀 때문에 우는 분이 계십니까?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 1:6) 시작하신 분이 이루십니다. 어릴 때 그 아이 마음에 심긴 말씀 한 알을, 하나님은 잊지 않으세요.
바울이 그럽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고전 3:6) 우리는 심고 물 줄 뿐,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아이를 손에 움켜쥐고 걱정 말고, 손을 펴서 하나님 앞에 올려 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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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407자
마음에서 문설주까지입니다. 먼저 내 마음에 새기고, 삶의 틈마다 부지런히 전하고, 온 집을 그리스도의 피로 덮는 것. 마음에서 입술을 지나 문설주까지, 한 흐름입니다.
노아와 모세처럼,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흔들리지 않고 그 믿음을 전합니다. 이 여름, 우리 교회가 하려는 일이 그것이에요. 다음 세대 심령에 하나님을 새기는 일. 그 일은 우리 힘이 아니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오늘 이 새벽, 세 가지를 결단합시다. 하나, 비운 예배 자리부터 다시 지키겠습니다. 둘, 오늘 밤 아이 이름을 부르며 한 번 기도하겠습니다. 셋, 우리 집 문설주를 그리스도의 피로 덮어 달라 구하겠습니다. 그 믿음의 길이 이 여름 우리 가정과 교회 위에 활짝 열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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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제목
303자
1. 부모와 교사인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깊이 만나, 세상 가치관에 흔들리지 않는 자로 서게 하시기를.
2. 예배보다 세상 것을 앞세우던 자리에서 돌이켜,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정이 되게 하시기를.
3. 밥상과 차 안과 잠자리, 그 일상의 틈마다 부지런히 믿음을 전하는 부모와 교사가 되게 하시기를.
4. 우리의 삶과 집안 문설주에 믿음이 배어, 아이들이 우리의 뒷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배우게 하시기를.
5.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를 준비하는 교사와 봉사자를 지키시고, 다음 세대를 붙드는 이 영적 싸움에서 승리를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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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기도
519자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가장 귀한 것이 믿음임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없는 것을 물려줄 수 없으니, 노아와 모세와 다니엘과 바울처럼 오늘 이 새벽 우리가 먼저 주님을 깊이 만나게 하옵소서. 세상 좋은 것에 흔들려 예배를 미루던 자리에서 돌이켜, 마음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는 부모와 교사로 서게 하옵소서. 밥상에서, 길에서, 잠자리에서, 부지런히 그 말씀을 자녀에게 전하게 하시고, 아이가 묻거든 우리를 건지신 구원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하옵소서. 말이 아니라 삶으로 믿음을 보여, 욥처럼 아침마다 자녀의 이름을 가지고 주님 앞에 서게 하시고, 우리 집 문설주까지 그리스도의 피로 덮어 주옵소서. 우리 힘으로 되지 않는 줄 아오니, 마음에 법을 새기시겠다 약속하신 하나님이 친히 우리 아이들 심령에 믿음을 새겨 주옵소서. 이 여름의 모든 예배와 프로그램을 지키시고, 다음 세대를 붙드는 이 거룩한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