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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0260705-002
버전 v1

우리를 자라게 하신 이

목사samuel
예배청년부
본문시편 115:9-18
날짜2026-07-05 (일)
📝 정식
📋 간략

정식 = 가이드 §10 (말씀 요약 + 본문 이해 + 질문 + 적용). 간략 = 1장, 질문 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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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별 본문 (6개)

본문 봉독 — 시편 115:9-18

463자
> 9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 10 아론의 집이여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 11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 12 여호와께서 우리를 생각하사 복을 주시되 이스라엘 집에도 복을 주시고 아론의 집에도 복을 주시며 > 13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을 막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곧 너희와 너희의 자손을 더욱 번창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 15 너희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로다 > 16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사람에게 주셨도다 > 17 죽은 자들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로 내려가는 자들은 아무도 찬양하지 못하리로다 > 18 우리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송축하리로다 할렐루야 ---

서론 — 무엇이 우리를 자라게 했습니까

688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 일대일 제자양육 제1기가 수료하는 날이고, 제자양육팀이 다시 주님 앞에 헌신을 드리는 날입니다. 지난 열여섯 주, 양육자와 동반자가 매주 한 번씩 마주 앉았습니다. 정한 시간에 만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피곤한 날도 있었고, 마음이 내키지 않는 날도 있었고, 서로 시간을 맞추느라 애쓴 주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시간을 지나 오늘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오늘 던져야 할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지난 열여섯 주, 무엇이 우리를 자라게 했습니까?** 우리의 성실함이었습니까? 좋은 교재였습니까? 잘 짜인 프로그램이었습니까? 오늘 본문이 그 답을 분명하게 말해 줍니다. 시편 115편은 세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 **시 115:9** >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우리를 자라게 하신 분은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도움이시요 방패 되신 여호와**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는 우리를 자랑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를 붙드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을 송축하는 자리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세 가지로 함께 나누겠습니다. 첫째, **우리를 세운 것은 우리가 아닙니다.** 둘째, **여호와께서 우리를 생각하사 주신 복입니다.** 셋째, **이제부터 영원까지 송축하기 위함입니다.** ---

첫째, 우리를 세운 것은 우리가 아닙니다 (9-11절)

1045자
본문 바로 앞을 보면 시인이 우상을 이야기합니다.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합니다(4-7절). 그리고 8절에서 이렇게 분명하게 말합니다. > **시 115:8** >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 무슨 뜻입니까. 사람이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의지하면, 결국 그 만든 것처럼 무력해진다는 것입니다. 내가 만든 것은 나를 지켜 주지 못합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시인은 방향을 돌립니다. "그러니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리고 세 번을 반복합니다. **이스라엘아** 의지하라, **아론의 집이여** 의지하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의지하라. 온 백성에게, 제사장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똑같이 말합니다. 의지할 대상은 하나뿐입니다. 도움이시요 방패 되신 여호와이십니다. 청년 여러분, 이것을 우리 지난 열여섯 주에 그대로 대어 봅시다. 교재도 좋았고, 만남의 틀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손으로 만든 도구일 뿐입니다. 도구가 우리를 자라게 한 것이 아닙니다. 그 만남 안에서 우리가 함께 의지한 하나님이 우리를 자라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것을 정확히 말한 적이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한때 편이 갈렸습니다. "나는 바울파다", "나는 아볼로파다" 하며, 누가 더 훌륭한 일꾼이냐를 두고 다투었습니다. 그때 바울이 그 다툼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 **고전 3:6-7** >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사람도 있고, 물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양육자가 심었고, 동반자가 물을 받았을 수도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서로에게 "네가 나를 키웠다"고 공을 돌리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를 자라게 하신 하나님께 함께 감사드립니다. ---

둘째, 여호와께서 우리를 생각하사 주신 복입니다 (12-16절)

1365자
의지하라는 명령 다음에, 시인의 목소리가 감사로 바뀝니다. > **시 115:12-13** > 여호와께서 우리를 생각하사 복을 주시되 이스라엘 집에도 복을 주시고 아론의 집에도 복을 주시며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을 막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여기 "우리를 생각하사"라는 말이 참 따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생각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제자양육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이 이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마음에 두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복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집에도, 아론의 집에도, 높은 사람에게도 낮은 사람에게도 주십니다. 오래 믿은 사람이든 이제 막 시작한 사람이든, 가르친 사람이든 배운 사람이든, 하나님은 똑같이 복을 주십니다. 그러니 오늘 이 자리에 선 양육자도, 동반자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생각해 주신 복을 함께 받은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수료라는 말 때문에, 자칫 "우리가 해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시편은 맨 앞에서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 **시 115:1** >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 두 번이나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수료하며 드릴 고백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견뎌서 여기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붙드셔서 여기 왔습니다. 영광은 우리 것이 아닙니다. 14절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곧 너희와 너희의 자손을 더욱 번창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복이 나 한 사람에서 멈추지 않고 다음 사람에게로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오늘 수료하는 1기가 끝이 아닙니다. 이 자리에서 자란 사람이 이제 다음 사람을 심고 물 주는 자리로 나아갑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이 제자양육을 통해 이루기 원하시는 번창입니다. 그런데 이 복이 어디서 오는지 15절이 밝혀 줍니다. > **시 115:15** > 너희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로다 우리에게 복 주시는 분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그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옛날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이 성전 지을 준비를 하며 깨달은 것도 이것이었습니다. 시편 127편은 성전에 오르며 부르던 노래인데, 그 첫 줄이 이렇습니다. > **시 127:1** >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집을 세우는 것도, 성을 지키는 것도 사람의 수고로 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세우지 않으시면 헛됩니다. 우리의 제자양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세우셨기에 헛되지 않았습니다. ---

셋째, 이제부터 영원까지 송축하기 위함입니다 (17-18절)

1110자
이제 시인은 마지막에 이릅니다. 그런데 그 결론이 뜻밖입니다. > **시 115:17-18** > 죽은 자들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로 내려가는 자들은 아무도 찬양하지 못하리로다 우리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송축하리로다 할렐루야 죽은 자는 찬양하지 못합니다. 찬양은 살아 있는 자의 특권입니다. 그러니 지금 숨 쉬고 있는 우리,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귀한 일이 무엇입니까. **여호와를 송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이제부터 영원까지"라고 합니다. 여기에 오늘 수료의 참뜻이 있습니다. 수료는 끝이 아닙니다. "이제부터"입니다. 열여섯 주로 마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부터 영원까지 이어지는 송축의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영원까지" 찬양할 수 있는지, 그 답은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죽은 자는 찬양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흩어져 고난받던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이 부활을 "산 소망"이라고 불렀습니다. > **벧전 1:3**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의 찬양은 무덤에서 끊기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영원까지" 이어집니다. 이것이 우리가 제자로 자라 가는 진짜 목적지입니다.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만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닮아,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려고 만난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복음에서 자꾸 멀어지려 하자, 마치 아이를 낳는 산모처럼 아파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 **갈 4:19** >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제자양육의 목표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 지난 열여섯 주, 우리가 서로를 다듬은 것이 아니라, 그 만남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자라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람은 오늘 멈추지 않고 영원까지 갑니다. ---

결론 — 의지하고, 감사하고, 송축하는 자리

567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본 세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우리를 세운 것은 우리가 아니라 **도움이시요 방패 되신 여호와**이십니다. 그 자람은 우리가 이뤄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주신 복**입니다. 그리고 그 복은 오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영원까지 송축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수료하는 오늘, 두 가지를 결단합시다. **첫째, 공을 하나님께 돌립시다.** "내가 해냈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붙드셨다"고 고백합시다.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말고, 오직 주의 이름에 돌립시다. **둘째, 이제부터를 살아갑시다.** 오늘 수료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가 되게 합시다. 여기서 자란 우리가 이제 다음 한 사람을 심고 물 주는 자리로 나아갑시다. 그렇게 이 청년교회가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자라 갈 것입니다. 정한 시간에 만나기가 어려웠던 그 수고의 시간이, 바로 우리 청년교회가 자라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를 자라게 하신 이는 여호와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분을 송축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