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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도입↔서론 / 본문↔본론 / 마무리↔결론 / 결단↔결단찬양 / 기도↔기도제목
섹션별 본문 (8개)
서론 — 왜 나는 못 내려놓는가
1037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지난주 우리는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았습니다. 그런데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은 그가 **기뻐하며** 팔았다고 했습니다. 더 값진 것을 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난주 우리가 나눈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내려놓음은 손해가 아니라 기쁨의 교환이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하나 남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왜 나는 잘 못 내려놓습니까.** 더 좋은 것인 줄 알면서도, 손에 든 것을 놓기가 왜 이렇게 어렵습니까.
오늘 본문에 한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은 지난주 그 사람과 정반대의 길을 갑니다. 똑같이 "다 팔라"는 말을 들었는데, 한 사람은 기뻐하며 팔았고, 이 사람은 슬퍼하며 돌아갑니다. 무엇이 두 사람을 갈랐는지, 함께 본문을 펴 봅시다.
> **막 10:17-22**
>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이 본문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곧 십자가를 향해 올라가시던 길 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마가복음의 이 대목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을 향해 갑니다. 그 부르심 앞에 한 사람이 달려와 섰습니다.
오늘 세 가지로 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달려와 꿇어앉았습니다.**
둘째, **보시고 사랑하사.**
셋째,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첫째, 달려와 꿇어앉았습니다
1328자
### 1)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사람
이 사람이 예수님께 나오는 모습을 보십시오. 17절입니다. 그는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 **꿇어앉았습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묻습니다.
> **막 10:17**
>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가볍게 던진 질문이 아닙니다. 영생을 묻고 있습니다. 사람이 정말 답을 찾고 싶을 때 나오는 모습입니다. 달려와서, 무릎을 꿇고, 가장 중요한 것을 물었습니다.
게다가 이 사람은 도덕적으로도 흠이 없어 보였습니다. 예수님이 계명을 짚으시자 그는 이렇게 답합니다.
> **막 10:20**
>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거짓말이 아니었을 겁니다. 뒤에서 보겠지만, 예수님은 이 대답을 듣고 그를 나무라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를 귀히 여기셨습니다. 열심도 있고, 도덕도 있고, 가진 것도 많았습니다. 우리 눈으로 보면 부족할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 2) 그러나 그 질문에 이미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다 가진 사람이, 다 지킨 사람이, 왜 달려와 무릎을 꿇습니까. 본문은 그의 속마음을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달려와 영생을 물었다는 것은, 다 지켰어도 아직 채워지지 않은 자리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손에 쥔 것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으로 채워지지 않는 자리가 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그 자리를 이렇게 짚었습니다. 이사야는 바벨론 포로를 앞둔 백성에게 하나님의 초청을 전한 사람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헛된 것에 힘을 쏟는 것을 보며 이렇게 외칩니다.
> **사 55:2**
>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양식이 아닌 것에 돈을 쏟고 있다는 것입니다. 배부르게 못 할 것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모습에도 그 말씀이 겹쳐 보입니다. 은을 달아 줄 것은 많았는데, 정작 영생을 물으러 달려와야 했으니 말입니다.
솔로몬도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지혜의 왕이 가진 것의 끝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 **잠 11:28**
>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그것을 의지하면 패망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 사람의 달려옴은 옳았습니다. 문제는 그가 무엇을 붙들고 왔느냐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겉으로는 부족할 것이 없어 보여도, 마음 한 켠에 채워지지 않는 자리가 있지 않습니까. 학점도, 스펙도, 통장도 그 자리를 채워 주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도 이 사람처럼 그 자리를 안고 주님 앞에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예수님이 그 자리를 어떻게 만지시는지 보아야 합니다.
둘째, 보시고 사랑하사
1651자
### 1) 예수님의 눈빛은 정죄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이 이야기의 심장으로 들어갑니다. 21절입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어려운 말씀을 하시기 직전에, 본문은 아주 귀한 한 마디를 끼워 넣습니다.
> **막 10:21**
>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보시고 사랑하사.**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의 마음이 이렇게 직접 적힌 자리는 드뭅니다. 그런데 하필 여기, 가장 아픈 말씀을 하시기 직전에 이 한 마디가 있습니다. 이것을 놓치면 오늘 본문을 다 놓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곧 하실 "다 팔라"는 말씀은 정죄가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그를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그를 살리시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이 때로 아프게 짚는다고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편지를 보내십니다. 그 교회는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여기던 교회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계 3:19**
>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책망이 사랑의 반대가 아닙니다. 오히려 같은 마음이 다른 모습으로 온 것입니다. 아프게 짚어 주시는 그 손이, 사실은 가장 다정한 손입니다.
### 2) 사랑이 한 가지를 짚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짚었습니까. 21절을 이어 보십시오.
> **막 10:21**
>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계명을 다 지킨 사람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 한 가지가 무엇이었습니까. 그가 가장 붙들고 있던 것, 곧 재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재물을 없애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팔아서 **하늘에 보화**를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손에 든 것을 더 좋은 곳으로 옮기라는 것입니다. 바울도 부한 성도들에게 똑같이 권했습니다. 바울이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가진 것 많은 성도를 어떻게 가르칠지 일러 줍니다.
> **딤전 6:18-19**
>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땅의 재물을 하늘의 터로 옮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자 청년에게 하신 말씀과 정확히 같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지막에 한 마디를 더하셨습니다. **"와서 나를 따르라."** 이것이 부탁의 진짜 목적지였습니다. 가진 것을 파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손을 비워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마가복음에서 "따르라"는 말은 무겁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에게 따름이 무엇인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막 8:34**
>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따른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내 손에 쥔 것을 놓고, 그분이 가시는 길로 방향을 맞추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그 길을, 십자가의 길을 앞서 걸어가고 계셨습니다. 이 사람에게 "따르라" 하신 것은,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걷자는 초청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초청은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옵니다. 손에 쥔 것을 내려놓고 나를 따르라. 그 부르심 앞에서, 지금 여러분의 손이 붙들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붙든 채로도 그분을 따를 수 있다고 우리는 자주 생각합니다.
셋째,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1946자
### 1) 같은 초청, 다른 응답
그 초청 앞에서 이 사람이 어떻게 했습니까. 22절입니다.
> **막 10:22**
>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여기서 우리는 지난주 그 사람을 떠올려야 합니다. 지난주 보화를 발견한 사람도 똑같이 "다 팔라"는 자리에 섰습니다. 그는 **기뻐하며** 팔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사람은 같은 자리에서 **슬퍼하며** 돌아갑니다.
같은 부름이었습니다. 다 팔라는 초청은 동일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기쁨으로 응답했고, 한 사람은 근심으로 돌아섰습니다. 무엇이 달랐습니까. 한 사람은 판 것보다 값진 것을 알아보았고, 한 사람은 손에 든 것이 더 크게 보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사람 마음의 원리를 짚으셨습니다. 산상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마 6:24**
>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두 주인을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냐 재물이냐, 어느 하나가 마음의 주인이 됩니다. 이 사람에게는 그것이 주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있어도, 결국 그 주인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 2) 그가 붙든 것이 그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본문을 다시 보면 순서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는 가진 것이 많았는데, 정작 **재물이 그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가 소유한 것이 그를 소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자리에서 이것을 경고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재산 문제로 다투며 나오자, 예수님이 무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눅 12:15**
>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생명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소유에 생명을 걸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봅니다. 골로새 교회에 편지하면서, 벗어 버려야 할 옛 성품을 나열하다가 탐심을 이렇게 부릅니다.
> **골 3:5**
>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탐심이 곧 우상 숭배라고 합니다. 재물이 마음의 자리를 차지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은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이것을 아셨습니다. 모세는 광야 사십 년을 지나 풍요의 땅 가나안을 앞둔 백성에게, 그 땅에 들어가면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미리 당부했습니다.
> **신 8:17-18**
>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그것은 내 손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잊는 순간, 재물이 하나님을 밀어내고 주인 자리에 앉습니다.
이 사람이 어려서부터 계명을 다 지켰다고 했지만, 정작 계명의 심장 앞에서 걸린 것입니다. 모세가 전한 계명의 첫 자리는 이것이었습니다.
> **신 6:5**
>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 한 자리를 재물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살인·간음·도둑질은 지켰어도, 마음의 주인 자리에서는 걸린 것입니다.
그리고 22절이 말한 그 **"근심"**을 보십시오. 바울도 돈을 붙드는 마음이 어떻게 무거운 마음으로 이어지는지 말했습니다.
> **딤전 6:10**
>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그런 사람은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찌른다고 합니다. 부자 청년이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선 자리에도, 이런 마음의 결이 겹쳐 보입니다. 그는 가진 것을 지켰지만, 그 소유가 도리어 그의 마음을 눌렀습니다.
이 근심은 먼 옛날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무언가를 손에 꽉 쥔 우리 마음에, 같은 무게가 자랍니다. 붙들수록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붙들수록 무거워집니다.
먼저 다 파신 분
902자
여기까지가 부자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솔직히 이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도 못 내려놓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 앞에서 우리도 근심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그 손을 펼 수 있습니까. 여기에 복음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다 팔라" 하신 그분이, 우리보다 먼저 다 파셨습니다.**
이 부자 청년을 만나신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를 향해 가고 계셨습니다. 그 길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왜 가는지 이렇게 밝히셨습니다.
> **막 10:45**
>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목숨을 대속물로 내주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낮아지심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빌립보 교회에 편지하면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권하며 이렇게 씁니다.
> **빌 2:6-7**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이 **자기를 비우셨습니다.** 하늘의 모든 부요를 가지신 분이, 종의 형체가 되기까지 다 내려놓으셨습니다. 부자 청년에게 "네게 있는 것을 다 팔라" 하신 그 입술이, 정작 자신은 가진 모든 것을 먼저 다 파신 입술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언가를 손에서 놓는 일은, 밑지는 장사가 아닙니다. 이미 우리를 위해 전부를 내놓으신 분께 응답하는 것뿐입니다. 시편 73편의 기자는 악인이 형통하는 것을 보며 마음이 흔들렸던 사람입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 눈이 열린 뒤, 이렇게 고백합니다.
> **시 73:25**
>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주님 한 분으로 충분하다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이 있는 사람은 손을 펼 수 있습니다.
결론 — 무엇을 근심하고 계십니까
1082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오늘 본문의 청년은 영생을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달려왔고, 무릎을 꿇었고, 계명을 다 지켰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한 가지, 손에 쥔 것을 놓지 못해 슬픈 기색을 띠며 돌아섰습니다.
그를 향한 예수님의 눈빛을 기억하십시오. **보시고 사랑하사.** 그 한 가지를 짚으신 것은 정죄가 아니라 사랑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안의 아픈 자리를 짚으시는 손길도 같은 마음입니다.
우리는 두 주 뒤 여름 수련회에서 한 알의 밀알 앞에 서게 됩니다. 죽어야 산다는 말씀 앞에 서기 전에, 오늘 우리는 각자 직면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를 결단하고자 합니다.
**결단 1 — 내가 못 내려놓는 그 한 가지를 이름 붙여 직면하겠습니다.**
막연히 "다 드립니다" 하고 넘어가지 마십시오. 부자 청년의 한 가지는 재물이었습니다. 나에게 그것은 무엇입니까. 관계일 수도, 계획일 수도, 미래의 안정일 수도 있습니다. 이번 한 주, 하나님 앞에 조용히 아뢰기 원합니다. "주님, 제가 붙들고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이름을 붙여 부르는 것이 직면의 시작입니다.
**결단 2 — 그것을 붙든 채가 아니라, 들고 나아가겠습니다.**
직면했다고 오늘 당장 다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부자 청년처럼 무거운 마음이 밀려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안고 돌아서지 말고, 그것을 안은 채 수련회의 자리로 나아가기 원합니다. 구체적으로 하나 제안합니다. 결단 1에서 이름 붙인 그 한 가지를 종이에 적어, 수련회 가방에 넣어 가십시오. 죽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가면, 은혜만 받고 그대로 돌아옵니다.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지 적어서 손에 쥐고 가는 사람이, 그 자리에서 정말 손을 폅니다.
다음 주 우리는 얍복강에서 홀로 씨름하는 야곱을 만납니다. 그리고 곧 한 알의 밀알 앞에 서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의 근심이 기쁨으로 바뀌기를 바랍니다. 먼저 다 파신 분을 알아본 사람에게, 내려놓음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달려와 꿇어앉았으나 근심하며 돌아간 그 사람이 아니라 —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어린 부르심 앞에서, 손을 펴 그분을 따르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제목
155자
1. 내 안에 못 내려놓는 한 가지가 무엇인지, 회피하지 않고 정직하게 직면하게 해 주세요.
2. 그 한 가지를 짚으시는 손길이 정죄가 아니라 따뜻한 마음임을 믿게 해 주세요.
3. 다가오는 수련회가 은혜만 받고 돌아오는 자리가 아니라, 정말 손을 펴는 자리가 되게 해 주세요.
나눔 질문
223자
1. 부자 청년은 부족할 것 없어 보였지만 "한 가지"에 걸려 근심하며 돌아섰습니다. 요즘 내가 붙들고 있어 잘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2. 예수님이 "보시고 사랑하사" 아픈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를 아프게 짚으신 말씀이나 상황이, 돌아보니 따뜻한 마음이었던 경험이 있다면 나눠 주세요.
3. 수련회를 앞두고, 이번 주에 하나님 앞에 이름 붙여 아뢰고 싶은 나의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