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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도입↔서론 / 본문↔본론 / 마무리↔결론 / 결단↔결단찬양 / 기도↔기도제목
섹션별 본문 (8개)
서론 — 스쳐 지나가시겠습니까
1026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두 주간 우리는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한 사람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기뻐하며** 다 팔았습니다.
또 한 사람은 예수님의 사랑 어린 부르심 앞에서
손에 쥔 것을 놓지 못하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지난주 우리는 한 가지를 결단했습니다.
내가 못 내려놓는 그 한 가지에 이름을 붙여, 종이에 적어,
수련회 가방에 넣어 가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그다음 이야기입니다.
**그 종이를 들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여러분, 은혜의 자리는 그냥 스쳐 지나가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같은 예배에 앉아도 어떤 사람은 꽉 잡고,
어떤 사람은 흘려보냅니다.
나흘 뒤면 우리는 수련회로 떠납니다.
그 자리를 그냥 다녀오는 사람이 있고,
매달려 씨름하다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한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은 밤새 누군가를 붙들고 놓지 않았습니다.
걷지도 못하게 되었는데도 놓지 않았습니다.
그가 밤새 놓지 않으며 한 말이 오늘 우리의 과녁입니다.
함께 본문을 펴 봅시다.
> **창 32:24-26**
>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가 이르되 날이
>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여기 한 사람이 "나로 가게 하라" 하는데,
야곱이 그를 잡고 늘어집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까지 가려고 합니다.
잠깐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몇 달 요셉의 이야기를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요셉이 태어나기도 전,
그 아버지 야곱의 이야기입니다.
시간을 조금 앞으로 돌린 것입니다.
오늘 세 가지로 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홀로 남았습니다.**
둘째, **날이 새도록 씨름하였습니다.**
셋째,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첫째, 홀로 남았습니다
1644자
### 1) 가진 것을 다 건너보냈습니다
이 씨름이 어디서 일어났는지부터 보십시오.
22절에서 24절입니다.
야곱은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넜습니다.
가족을 건너보내고, 소유도 다 건너보냈습니다.
그리고 24절이 이렇게 말합니다.
> **창 32:24**
>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가진 것을 다 강 건너로 보내고 나서, 야곱은 혼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홀로 남은 자리에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야곱이 왜 이렇게 밤중에 두려움으로 잠 못 이루고 있었는지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속이고 축복을 가로챈 뒤,
형을 피해 이십 년을 도망자로 살았습니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인데,
그 형 에서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마주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 밤이 오기 전에 하나님께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 **창 32:11**
>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옴은
살려 달라는 절박한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기도만 한 것이 아닙니다.
야곱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꾀란 꾀는 다 냈습니다.
떼를 나누어 한쪽이 당하면 다른 쪽은 피하게 했고,
예물을 여러 차례 앞서 보내 형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려 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고, 마지막에 남은 것이 이것이었습니다.
홀로 남는 것.
### 2) 혼자 남아야 만나집니다
여기서 우리가 볼 것이 있습니다.
야곱은 가족도 있고 재산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강 건너로 보내고
**혼자가 된 자리**에서 그를 만나셨습니다.
우리는 자주 반대로 삽니다.
손에 쥔 것이 많을수록 하나님을 덜 찾습니다.
믿을 구석이 있으니까요.
야곱도 그랬을 것입니다.
떼가 있고 예물이 있을 때는 그것으로 형을 달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다 건너보내고 나서야,
오직 하나님만 남은 자리에 섰습니다.
솔로몬은 아들에게 신앙의 첫걸음을 이렇게 일러 주었습니다.
잠언은 솔로몬이 젊은이에게 지혜를 가르치려고 쓴 책입니다.
그 첫머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잠 3:5**
>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내 명철, 곧 내 머리와 내 계산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십 년간 자기 명철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 명철을 다 내려놓고 혼자 남은 그 밤에,
비로소 하나님과 마주할 준비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를 이렇게 일러 주셨습니다.
산상에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 **마 6:6**
>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기도가 아니라,
문을 닫고 혼자 서는 골방을 말씀하십니다.
야곱이 홀로 남은 그 밤이 바로 그 골방이었습니다.
아무도 없이 하나님과 나, 둘만 남는 자리 말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도 곧 수련회로 떠납니다.
수련회의 자리는 혼자 남는 자리입니다.
늘 손에 쥐고 있던 것들, 스마트폰도, 바쁜 일정도,
나를 지켜 주던 관계들도 잠시 강 건너로 보내고,
하나님 앞에 혼자 서는 자리입니다.
그 혼자 남음이 두려우십니까.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홀로 남은 그 자리가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자리입니다.
둘째, 날이 새도록 씨름하였습니다
2597자
### 1) 가장 강한 곳이 꺾였습니다
이제 이 이야기의 심장으로 들어갑니다.
홀로 남은 야곱에게 어떤 사람이 다가와
밤새도록 씨름을 합니다.
24절과 25절입니다.
> **창 32:24-25**
>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본문은 이 상대를 조심스럽게 부릅니다.
처음에는 그냥 **"어떤 사람"**이라고 합니다.
뒤에 가서 야곱은 이 자리를 두고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다"고 고백합니다.
본문이 그 정체를 단숨에 밝히지 않고 조심스럽게 다루니,
우리도 그 긴장을 따라가는 것이 옳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입니다.
야곱은 밤새 사람의 힘을 넘어서는 어떤 분과 겨루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상한 장면이 나옵니다.
그 사람이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쳐서 어긋나게 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한 번의 손길로 관절을 어긋나게 하실 수 있는 분이,
밤새 정말 못 이기셨겠습니까.
본문은 그 이유를 우리에게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야곱의 가장 강한 곳이 꺾이고
나서야 그 밤의 겨룸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자기 두 발로 버티던 사람이,
그 힘의 한계를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손이,
야곱이 두 발로 버티던 허벅지 관절에 닿았습니다.
야곱은 이제 걷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힘으로 버티던 마지막 다리가 꺾인 것입니다.
### 2) 걷지 못하게 되어서야 붙들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허벅지가 어긋나 걷지도 못하게 된 야곱이,
도리어 그 사람을 더 꽉 붙듭니다.
26절입니다.
> **창 32:26**
>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도망갈 수도 없고, 힘으로 이길 수도 없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매달리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이 씨름의 목적지였습니다.
야곱은 이제껏 자기 두 발로 서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발이 꺾이고 나서야,
오직 붙드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고 나서야,
참된 기도가 나온 것입니다.
바울도 똑같은 것을 배웠습니다.
바울은 몸에 가시 같은 고통이 있어 그것을 없애 달라고
세 번이나 기도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없애 주시는 대신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 **고후 12:9**
>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해진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뒤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강하다고요.
야곱의 어긋난 허벅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약해진 그 자리가 도리어 매달리는 힘이 된 것입니다.
이 씨름을 성경은 다른 곳에서 한 번 더 풀어 줍니다.
야곱이 죽고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예언자 호세아가 북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책망하면서
그들의 조상 야곱을 불러옵니다.
그때 호세아가 얍복강의 그 밤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 **호 12:4**
>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겨루는 장면이라 해서
우리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모습을 떠올리지만,
성경은 그것을 **"울며 간구하였다"**고 풀어 줍니다.
야곱의 씨름은 결국 눈물의 기도였습니다.
놓지 않는 기도, 축복받기까지 매달리는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간절히 구하는 기도조차 우리 혼자
힘으로 짜내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에 편지하면서,
무어라 기도할지 몰라 말이 막히는 우리를 성령이
어떻게 도우시는지 이렇게 말합니다.
> **롬 8:26**
>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기도할 말조차 잃은 자리에서도 성령이 탄식으로
대신 간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매달리는 기도는 내가 이를 악물고
버티는 악력이 아니라, 성령이 함께 이끄시는 기도입니다.
예수님도 이런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낙심하지 말고
항상 기도할 것을 가르치시려고 한 비유를 드셨습니다.
한 과부가 억울한 일을 당해 재판장을 찾아가는데,
그 재판장이 들어주지 않자 과부가 날마다 찾아가 매달립니다.
결국 재판장이 그 끈질김에 져서 원한을 풀어 줍니다.
예수님은 그 비유 끝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눅 18:7**
>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밤낮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밤새 놓지 않았듯이, 매달려 구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는 은혜의 자리에서도 자주 예의 바르게 스쳐 지나갑니다.
적당히 은혜받은 척하고 돌아섭니다.
그러나 야곱은 놓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 한마디가 오늘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수련회에 가시거든,
하나님이 여러분의 마음을 만지시는 그 한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마십시오.
그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오늘 받은 은혜를 붙들고 한 번 더 무릎 꿇는 그 사람이,
새 이름을 얻고 돌아옵니다.
셋째,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2234자
### 1) 네 이름이 무엇이냐
밤새 놓지 않은 야곱에게, 그 사람이 뜻밖의 질문을 던집니다.
27절입니다.
> **창 32:27**
>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하나님이 야곱의 이름을 몰라서 물으셨겠습니까.
그런데 왜 이름을 물으셨을까요.
이 질문의 무게를 알려면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야곱은 쌍둥이 형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야곱, 곧 "발뒤꿈치를 잡은 자",
"속이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름 자체가 그의 인생이었습니다.
형의 장자권을 빼앗고,
아버지를 속여 축복을 가로챈 사람입니다.
그러니 "네 이름이 무엇이냐"는 물음은,
"네가 어떤 사람인지 네 입으로 말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야곱이니이다" 하고 답합니다.
자기 이름이 속이는 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이름을 그대로 내놓은 것입니다.
이 고백이 얼마나 큰 것인지는 야곱의 과거를 보면 압니다.
옛날 야곱이 눈먼 아버지 이삭 앞에 형인 척 나아가 축복을
훔칠 때, 아버지가 "네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야곱은 이렇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 **창 27:19**
> 야곱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옛날에는 "나는 에서입니다" 하고 자기를 속였습니다.
그런데 얍복강에서는 "나는 야곱입니다" 하고
자기를 정직하게 내놓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참된 만남은 언제나
이 정직한 고백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나를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놓는 자리 말입니다.
### 2) 절뚝이며 새 아침을 맞았습니다
그 고백을 받으신 하나님이, 야곱에게 새 이름을 주십니다.
28절입니다.
> **창 32:28**
>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속이는 자 야곱이, 하나님과 겨룬 자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훗날 한 민족 전체의 이름이 됩니다.
한 사람의 얍복강 밤이,
하나님의 백성 전체의 이름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새 이름을 주시는 것은 야곱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훗날 무너졌다가 회복될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이 친히 새 이름을 지어 주실 것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 **사 62:2**
>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 일컬음이 될 것이며
이사야가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전한 이 약속의 정신이,
오늘 하나님을 만나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임합니다.
새 이름은 내가 지어 붙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이루어집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화목의 은혜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 **고후 5:17**
>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전의 나는 지나가고 새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자리에서 야곱이 새 이름을 얻었듯,
그리스도를 만난 우리도 새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아침이 밝습니다.
31절입니다.
> **창 32:31**
>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여기 두 가지가 함께 있습니다.
**해가 돋았다**는 것과,
**절뚝였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승리자로 아침을 맞았지만,
다리는 절뚝이고 있었습니다.
그 절뚝임은 평생 갔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상처 없이
매끈하게 걸어 나오지 않습니다.
자기 힘으로 버티던 그 자리가 꺾인 채로,
그러나 새 이름을 얻고 걸어 나옵니다.
그 절뚝임이 오히려 그가 하나님을 만났다는 증거였습니다.
밤이 아무리 길어도 아침은 옵니다.
성전에 올라가며 부르던 한 시편은,
깊은 절망 가운데서 밤을 새워 하나님을 기다리는 마음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 **시 130:6**
>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밤을 지키는 파수꾼이 아침을 애타게 기다리듯,
야곱도 밤새 놓지 않고 아침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다윗도 그것을 노래했습니다.
병에서 건짐받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부른 시편입니다.
> **시 30:5**
>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저녁의 울음이 아침의 기쁨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밤샘 씨름, 울며 드린 그 간구가,
해 돋는 아침의 새 이름으로 응답된 것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씨름하신 분
1108자
여기까지가 야곱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를 더 보아야 합니다.
이 겨룸에는 이상한 데가 있습니다.
매달리는 쪽은 야곱인데,
"나로 가게 하라"고 청하는 쪽은 그 사람입니다.
능히 야곱을 이기실 수 있는 분이, 야곱에게 붙들려 주십니다.
놓아 달라 하시면서도,
끝내 뿌리치지 않으시고 축복하고 떠나십니다.
**하나님은 붙들리기를 마다하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붙들려 주시는 하나님이,
신약에 와서 한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분도 어느 밤, 혼자 남아 기도로 겨루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혼자 기도하실 때입니다.
> **눅 22:44**
>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야곱이 얍복강에서 밤새 겨루었듯이,
예수님도 그 밤 혼자 피땀 흘리며 기도하셨습니다.
히브리서는 그 밤의 예수님을 이렇게 전합니다.
> **히 5:7**
>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호세아가 야곱을 두고 "울며 간구하였다"고 한 그 말이,
겟세마네의 예수님께 그대로 겹칩니다.
통곡과 눈물의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야곱은 허벅지를 맞고도 살아서 절뚝이며 아침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려고,
맞아서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이사야는 그 죽음을 이렇게 미리 내다보았습니다.
이사야가 고난받는 한 종이 올 것을 예언한 대목입니다.
> **사 53:5**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야곱의 허벅지를 치신 그 손이,
이번에는 예수님을 치도록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축복받게 하시려고요.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을 붙들 수 있는 것은,
그분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달리기 전에,
그분이 우리를 위해 먼저 통곡하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씨름하듯 매달리는 기도는,
억지로 하나님의 팔을 비트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를 축복하기로 작정하신 분께,
그 축복을 받아 쥐는 것뿐입니다.
결론 — 붙들고 가시겠습니까
877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처음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은혜의 자리를 그냥 스쳐 지나가시겠습니까,
붙들고 씨름하시겠습니까.
오늘 야곱은 홀로 남았고, 걷지 못하게 되어서야 붙들었고,
밤새 매달려 새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매달리기 전에,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위해 혼자 겨루시고 맞으셨습니다.
그 사랑을 아는 사람은 은혜의 자리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습니다.
나흘 뒤, 우리는 수련회로 떠납니다.
두 가지를 결단하고자 합니다.
**결단 1 — 홀로 하나님 앞에 서겠습니다.**
수련회에서 늘 손에 쥐던 것들을 잠시 강 건너로
보내기 원합니다.
첫날 밤 개인기도 시간에는,
스마트폰도 나를 지켜 주던 관계도 잠시 내려놓고,
야곱처럼 혼자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을 만드십시오.
홀로 남는 그 자리가,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자리입니다.
**결단 2 — 붙들고 놓지 않겠습니다.**
지난주 우리가 종이에 적어 가방에 넣기로
한 그 한 가지를 기억하십니까.
그것을 들고 얍복강으로 가십시오.
수련회에서 하나님이 그 문제를 만지실 때,
적당히 은혜받은 척하고 스쳐 지나가지 마십시오.
야곱처럼 붙드십시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 기도가 나흘 뒤 여러분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매달려 씨름한 사람은,
절뚝이며 걸어 나올지라도 새 이름을 얻습니다.
우리는 수련회에서 한 알의 밀알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죽어야 산다는 말씀 앞에 서기 전에,
오늘은 붙드는 손을 준비하는 날입니다.
놓지 않을 줄 아는 사람이,
그 자리에서 정말 죽고 다시 삽니다.
홀로 남아 밤새 붙들고
놓지 않았던 야곱처럼 — 은혜의 자리를 스쳐 보내지 않고,
축복받기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붙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제목
162자
1. 손에 쥔 것을 잠시 내려놓고, 홀로 하나님 앞에 서는 자리를 두려워하지 않게 해 주세요.
2. 내 힘으로 버티려는 마음이 꺾일 때, 절망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해 주세요.
3. 다가오는 수련회를 그냥 다녀오지 않고, 축복받기까지 끝까지 씨름하는 자리가 되게 해 주세요.
나눔 질문
312자
1. 야곱은 가진 것을 다 강 건너로 보내고 홀로 남은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요즘 내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있어서, 잠시 강 건너로 보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2. 야곱은 허벅지가 꺾여 걷지 못하게 되어서야 하나님을 꽉 잡았습니다. 내 힘으로 버티다 꺾였던 경험, 그런데 돌아보니 그 자리가 도리어 하나님께 매달린 자리였던 경험이 있다면 나눠 주세요.
3.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다가오는 수련회에서 이 기도로 하나님께 구하고 싶은 나의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지난주 종이에 적은 그것을 떠올려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