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20260807-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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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룹바알의 믿음
목사samuel
예배수요
본문사사기 6:25-32
날짜2026-08-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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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도입↔서론 / 본문↔본론 / 마무리↔결론 / 결단↔결단찬양 / 기도↔기도제목
섹션별 본문 (8개)
여룹바알의 믿음
17자
본문: 사사기 6장 25–32절
서론
599자
성도 여러분, 오래 신앙생활을 해도 마음 깊은 곳의 두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건강과 자녀를 하나님께 맡긴다고 기도했는데 어느새 다시 내가 붙들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기드온도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사사기 6장 11절을 보면 그는 미디안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찾아오셔서 12절에서 이렇게 부르셨습니다. __“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__
기드온이 큰 용사처럼 행동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아직 숨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아직 두려워할 때 하나님께서 먼저 “내가 너와 함께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기드온의 순종보다 먼저였습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을 이해하는 출발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미디안과 싸우기 전에, 자기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고 그 자리에 여호와의 제단을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세 가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 안의 제단을 드러내십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는 두려운 사람을 순종하게 합니다. 셋째, 살아 계신 하나님이 친히 싸우십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 안의 제단을 드러내십니다
1147자
2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말씀하십니다. __“네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며 그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__
이스라엘의 눈앞에는 미디안이라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미디안이 이스라엘의 소산을 빼앗았고, 이스라엘은 매우 궁핍해졌습니다. 백성은 그 고통 때문에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미디안 진영으로 곧바로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그의 집에 있는 바알의 제단을 가리키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문제가 미디안에게만 있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사기 6장 10절에서 하나님은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__“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__ 밖에서는 미디안이 이스라엘을 억압하고 있었지만, 안에서는 우상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기드온이 헐어야 할 제단은 낯선 사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25절은 분명히 “네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제단”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보다 자기 집에 자리 잡은 우상을 허무는 일이 먼저였습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의 문제는 잘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 마음의 제단을 보게 하십니다. 돈과 건강과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그것 자체가 우상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보다 더 큰 두려움이 되고, 그것 때문에 말씀을 따르지 못한다면 선물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26절을 보면 하나님은 바알의 제단을 헐라고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__“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제단을 쌓으라”__고 하셨습니다. 헐어낸 자리를 비워두지 말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로 바꾸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염려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염려의 자리를 기도로, 통제하려던 자리를 맡김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하나님을 향한 새 마음을 세우십니다.
에스겔 36장 26절에서 하나님은 __“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__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일은 우리의 결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새 마음을 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 마음을 붙들고 있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그리고 그 자리에 주님을 향한 믿음을 다시 세워주십시오.”
둘째, 하나님의 은혜는 두려운 사람을 순종하게 합니다
1126자
27절을 보십시오. __“이에 기드온이 종 열 명을 데리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대로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가문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낮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__
이 한 절 안에 기드온의 두 모습이 함께 나옵니다. 그는 두려워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말씀대로 행했습니다.
성경은 기드온의 두려움을 감추지 않습니다. 그가 낮에 하지 못하고 밤에 행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순종도 분명히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대로 행했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우리가 붙들어야 할 믿음의 모습이 있습니다. **믿음은 두려움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믿음은 두려움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더 큰 무게를 두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움이 사라져야 순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두려움이 남아 있는 밤에 순종했습니다.
그보다 먼저 무엇이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23절에서는 __“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__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드온의 순종은 자기 용기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먼저 말씀하시고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움직였습니다.
디도서 2장 11절과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__“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__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정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는 죄를 그대로 두는 값싼 위로가 아닙니다. 은혜는 우리를 찾아오고, 일으키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리며 살아가도록 가르칩니다.
혹시 지금 순종하기 두려운 일이 있습니까? 먼저 사과해야 하지만 미루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맡겨야 하지만 결과가 걱정되어 계속 붙들고 있습니까?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만 보고 “나는 믿음이 없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두려움이 남아 있던 기드온과 함께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담대한가가 아니라, 두려운 가운데 누구의 말씀을 따라 한 걸음을 내딛는가입니다.
저에게도 두렵고 부담스러웠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작은 한 걸음을 내디뎌야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개인 간증 — 약 4분
267자
[이곳에 이석경 권사님의 간증을 넣습니다.]
[간증은 ‘당시 상황 → 두려움과 내 힘으로 붙들었던 것 → 말씀 앞에서 행한 작은 순종 → 하나님께서 주신 변화’의 순서로 나눕니다.]
[마지막 문장 예시: “상황이 모두 제 뜻대로 된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했을 때 제 마음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다시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움이 없는 사람만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말씀을 의지하는 사람을 붙들어 순종의 길로 이끄십니다.
셋째, 살아 계신 하나님이 친히 싸우십니다
1060자
기드온이 바알의 제단을 헐자 성읍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때 아버지 요아스가 31절에서 말합니다. __“바알이 과연 신일진대 그의 제단을 파괴하였은즉 그가 자신을 위해 다툴 것이니라.”__
이 말에는 분명한 물음이 들어 있습니다. 바알이 정말 신이라면 왜 사람들이 그를 지켜주어야 합니까? 자기 제단 하나 지키지 못하는 신을 사람이 구해주어야 한다면, 과연 그가 신입니까?
32절은 그날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불렀다고 말합니다. 본문은 그 뜻을 __“그가 바알의 제단을 파괴하였은즉 바알이 그와 더불어 다툴 것”__이라고 직접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여룹바알은 우리가 사람들과 싸우라는 이름이 아닙니다. 바알이 기드온과 직접 다투게 두라는 풍자적인 이름입니다.
그런데 바알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무너진 제단을 다시 세우지도 못했고 기드온을 벌하지도 못했습니다. 다음 단락에서 기드온에게 임한 분은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의 영이었습니다. 바알의 침묵과 하나님의 역사가 대조됩니다.
여기서 믿음의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기드온이 바알보다 강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닙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기드온과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내가 하나님을 지켜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붙드신다는 사실에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상을 내려놓으면 무너질 것처럼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지키는 것은 우리가 붙든 것들이 아닙니다. 우리를 지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 죄의 심판을 대신 받으셨고 부활하셔서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골로새서 2장 15절은 주님께서 __“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__고 말합니다. 우리가 우상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돌아설 수 있는 근거는 우리의 결심이 아니라 이미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기드온은 그날 새로운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보다 먼저 있었던 말씀이 있습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나님께서 먼저 부르셨고, 먼저 함께하셨고, 그 은혜가 기드온을 순종하게 했습니다.
결론
624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세 가지를 나누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 안의 제단을 드러내십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보다 더 붙들고 있는 내 마음의 제단을 보게 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는 두려운 사람을 순종하게 합니다. 기드온은 두려웠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했습니다.
셋째, 살아 계신 하나님이 친히 싸우십니다. 바알은 자기 제단도 지키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붙드시고 구원의 일을 이어가셨습니다.
이번 한 주에 작은 순종 하나를 정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지배하던 염려 한 가지를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맡겨드리십시오. 미루고 있던 순종이 있다면 완벽한 용기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오늘 할 수 있는 한 걸음을 시작하십시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순종해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성령으로 함께하시기 때문에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어떤 이름으로 기억하느냐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엇이라 부르시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받는 자녀라는 부르심을 믿고, 두려움 속에서도 말씀을 따라 걸어가기를 바랍니다.
마무리 기도
202자
하나님 아버지, 우리보다 먼저 찾아오시고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던 것을 보여주시고, 그 자리에 기도와 말씀의 제단을 세우게 하옵소서. 두려움 때문에 멈추지 말게 하시고, 함께하시는 은혜를 의지하여 작은 순종의 걸음을 내딛게 하옵소서. 십자가와 부활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