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그 인덱스
s-20260807-002
버전 v1

이미 죽었습니다

목사samuel
예배청년부
본문로마서6:3-11
날짜2026-08-07 (금)
📝 정식
📋 간략

정식 = 가이드 §10 (말씀 요약 + 본문 이해 + 질문 + 적용). 간략 = 1장, 질문 위주.

각 섹션의 ✏️ 수정 버튼을 누르고 지시를 입력하면 해당 섹션만 재생성 → v2 자동 저장. 별칭: 도입↔서론 / 본문↔본론 / 마무리↔결론 / 결단↔결단찬양 / 기도↔기도제목

섹션별 본문 (8개)

서론 — 무슨 힘으로 죽습니까

1696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드디어 이 밤에 왔습니다. 우리 수련회 주제가 "죽어보자"입니다. 어제 우리는 한 알의 밀 앞에 섰습니다.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밤이 결단의 밤입니다. 그런데 먼저 정직하게 짚을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밤이 처음이 아닙니다. 산에서 뜨거워진 밤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울었고 결심했고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자리였습니다. 그 기억이 지금 마음 한 구석에 있습니다. "오늘도 또 그러면 어쩌지." 여기서 갈립니다. "죽어보자"를 이렇게 들으면 안 됩니다. 내가 이를 악물고 죽음을 하나 만들어 바치겠다. 그렇게 들으면 오늘 밤은 감정으로 끝납니다. 감정은 식습니다. 근거가 내 쪽에 있으면 흔들립니다. 오늘 본문은 전혀 다른 말을 합니다. **우리가 만들 죽음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미 있었던 죽음이라고 합니다. 오늘 밤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이루어진 그 죽음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두 주 전 우리는 종이 한 장을 준비했습니다. 내가 못 내려놓는 그 한 가지. 이름을 붙여 거기 적었습니다. 지금 그 종이가 여러분 가방 안에 있습니다. 오늘 밤 그 종이를 꺼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에 볼 것이 있습니다. **그 손을 펴는 힘이 어디서 오느냐**입니다. 함께 본문을 펴 봅시다. 로마서 6장 3절부터 11절입니다. >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이 말씀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앞 장에서 은혜를 크게 말했습니다. 로마서 5장 20절입니다. >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그러자 곧 딴소리가 나옵니다. 그러면 죄를 더 지어도 되겠구나. 바울이 그 말을 6장 1절에 적어 놓고 2절에서 잘라 냅니다. >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여기 이미 답이 다 들어 있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 앞으로 죽어야 할 우리가 아닙니다. 이미 죽은 우리입니다. 바울은 그 한마디를 3절부터 풀어 갑니다. 오늘 세 가지로 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그와 함께 장사되었습니다.** 둘째, **단번에 죽으셨습니다.** 셋째, **그렇게 여기십시오.**

첫째, 그와 함께 장사되었습니다

1582자
### 1) 내가 만든 죽음이 아닙니다 3절을 다시 보십시오. >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여기 **"그의 죽으심"**을 눈여겨보십시오. 내 죽으심이 아닙니다. 그분의 죽으심입니다. 우리는 거기에 합하여진 것입니다. 바울이 왜 하필 세례를 꺼냈습니까. 세례에는 우리가 다 아는 그림이 있습니다. 물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그림입니다. 바울은 그 그림을 "장사되었다"는 말로 받습니다. 그리고 "살리심과 같이"로 이어 갑니다. 바울이 4절에서 그것을 그대로 적습니다. >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장사되었다, 곧 묻혔다는 말입니다. 시제를 보십시오. 앞으로 될 일이 아닙니다. **이미 된 일**입니다. 혹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분이 계실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을 밀어내지 않습니다. 세례가 가리키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입니다. 그 죽음은 이미 있었습니다. 오늘 밤은 그 안으로 들어오라는 초청입니다. 이 순서를 성경은 오래전부터 적어 두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종으로 살던 때입니다. 마지막 재앙의 밤이 왔습니다. 하나님은 집집마다 어린 양을 잡으라 하셨습니다. 그 피를 문에 바르라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2장 13절입니다. >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백성이 먼저 애쓴 것이 없습니다. 피가 먼저 있었습니다. 그다음에 그들이 걸어 나왔습니다. 걸어 나와서 만난 것이 바다였습니다. 바울은 그 홍해를 두고 뜻밖의 말을 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세례까지 받고도 우상에 기웃거렸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조상들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절과 2절입니다. >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홍해를 지난 것을 세례라고 부릅니다. 그 바다에서 애굽의 손이 끊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바다를 누가 갈랐습니까. 백성이 아닙니다. 그들은 갈라진 길을 걸었을 뿐입니다. 오늘 밤도 그렇습니다. 길을 내는 것은 우리가 아닙니다. 이미 갈라진 길로 걸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 2) 죽음만 오지 않았습니다 5절입니다. >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죽음과 부활이 한 묶음입니다. 쪼갤 수 없습니다. 오늘 밤은 "죽어보자"만 있는 밤이 아닙니다. 살아나는 것까지 들어 있습니다. 4절이 그 목적을 밝힙니다. >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새 생명**입니다. 전에 있던 것을 손질한 것이 아닙니다. 없던 것이 들어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훨씬 전에 약속하셨습니다. 에스겔은 나라가 무너져 끌려간 백성에게 보내진 예언자입니다. 그 백성의 마음은 이미 굳어 있었습니다. 정신 차려 보라고 해서 될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에스겔 36장 26절입니다. >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굳은 마음을 스스로 녹여 오라 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바꿔 주겠다고 하십니다. 오늘 밤 우리가 기대할 것도 그것입니다.

둘째, 단번에 죽으셨습니다

1796자
### 1) 옛 사람이 이미 못 박혔습니다 6절입니다. >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옛 사람"**이 무엇입니까. 내 성격의 흠 몇 가지가 아닙니다. 죄 아래 살던 옛날의 나입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던 그때의 나입니다. 그것이 "못 박힌 것"이라고 합니다. 못 박아야 할 것이 아니라 못 박힌 것입니다. 그 이유를 이어서 밝힙니다. >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종 노릇을 그만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다른 편지에 더 분명히 적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바울을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자기가 왜 이렇게 사는지 그 이유를 밝히는 대목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4절입니다. >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계산을 보십시오. 한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모든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우리가 각자 따로 채워 넣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죽음이 우리 것으로 계산된 것입니다. 골로새 교회에는 무언가를 더 해야 온전해진다는 가르침이 돌았습니다.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규정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물리치고 이렇게 씁니다. 골로새서 3장 3절입니다. >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너희가 죽었고."** 느낌을 묻는 문장이 아닙니다. 이미 벌어진 일을 알려 주는 문장입니다. ### 2) 한 번으로 끝났습니다 이제 그 사실의 뿌리로 들어갑니다. 10절입니다. >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단번에.** 한 번으로 끝났다는 말입니다. 이 말이 얼마나 큰지 알려면 옛 제사를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에는 일 년에 하루 속죄일이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이 홀로 지성소에 들어가 피를 뿌리는 날입니다. 백성의 모든 죄를 덮는 날입니다. 그런데 그 규정 끝에 이런 말이 붙습니다. 레위기 16장 34절입니다. >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위하여 일 년에 한 번 속죄할 것이니라 일 년에 한 번입니다. 내년에 또 해야 합니다. 그다음 해에 또 해야 합니다. 끝이 없습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떠날까 흔들리던 성도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옛 제사와 그리스도를 나란히 놓고 견주어 보입니다. 히브리서가 그 반복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히브리서 10장 11절입니다. >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서 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주 드립니다. 한 번으로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옛 제사는 죄를 없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다르다고 합니다. 히브리서 9장 26절입니다. >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단번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마다 다시 죽어 바칠 것이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 신앙생활의 한 습관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수련회마다 새로 죽으려고 애씁니다. 작년에도 죽었고 올해도 또 죽어야 합니다. 그러면 해마다 지성소에 다시 들어가던 대제사장과 같습니다. 서 있는 것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9절이 무엇이라 합니까. >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분이 다시 죽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그와 함께 장사된 우리도 새로 만들 것이 없습니다. 오늘 밤은 없는 죽음을 짜내는 밤이 아닙니다. **이미 있는 그 죽음 안으로 들어가는 밤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밤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본문이 마지막 한 절에서 답합니다.

셋째, 그렇게 여기십시오

1742자
11절입니다. >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여기 **"여길지어다"**를 보십시오. 본문에서 처음 나오는 명령입니다. 3절부터 10절까지는 전부 사실이었습니다. 사실을 여덟 절 쌓아 놓고 마지막에 하나만 명하십니다. **"여기라."** ### 1) 그런 척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을 자기암시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나는 죽었다, 나는 죽었다" 되뇌는 것.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셈을 하는 자리에서 쓰던 말입니다. 장부에 적어 계산한다는 말입니다. 없는 것을 있다고 우기는 것이 아닙니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적는 것입니다.** 성경이 스스로 그것을 보여 줍니다. 바울은 이 편지 앞부분에서 아브라함을 꺼냈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의롭게 되는지 보이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식 하나 없이 늙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로마서 4장 3절입니다. >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우리 성경이 6장 11절과 같은 말로 옮겼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의로 계산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여기라"는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그렇게 계산하셨으니, 너희도 그렇게 계산하라.** 내가 우겨서 만드는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장부를 그대로 읽는 것입니다. 같은 대목에서 바울은 다윗도 불러옵니다. 다윗이 자기 죄를 숨기고 입을 열지 않던 때가 있습니다. 그때 뼈가 쇠하였다고 했습니다. 뼈가 말라 가는 것 같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다 주께 자기 죄를 아뢰었습니다. 그 노래가 시편 32편입니다. 바울이 그 시편에서 이 대목을 인용합니다. 로마서 4장 8절입니다. >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인정하지 아니하실."** 우리말로는 다르게 옮겼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쓴 말은 4장 3절과 같습니다. 셈을 하는 그 말입니다. 하나님의 장부에 우리 죄가 달려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언자도 같은 것을 전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눈으로 본 사람입니다. 그 절망 속에서 하나님이 새 언약을 약속하십니다. 예레미야 31장 34절입니다. >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깜빡 잊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시 계산에 올리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 2) 사실이 먼저입니다 순서를 놓치면 오늘 밤이 다 무너집니다. 내가 여겨서 그 죽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 죽음이 있어서 내가 그렇게 여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그러면 오늘 밤 눈물이 안 나면 어떻게 됩니까. 괜찮습니다. 느낌이 사실을 만들지 않습니다. 사실이 느낌보다 먼저 있습니다. 내려가서 또 넘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넘어지는 것이 그 사실을 지우지 못합니다. 잠언은 젊은 사람에게 지혜를 가르치는 책입니다. 그 잠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잠언 24장 16절입니다. >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일곱 번 넘어진다고 적습니다. 그런데도 의인이라고 부릅니다. 넘어짐이 신분을 바꾸지 못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무너진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내 각오를 근거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각오는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내가 붙들고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다릅니다. 단번에 끝났습니다. 그 위에 서면 넘어져도 신분이 그대로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그 물에 들어가신 분

864자
이 말씀을 다 듣고도 마음이 무거우실 수 있습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손이 안 펴진다." 그렇다면 오늘 밤 가장 중요한 대목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그분께는 씻을 죄가 없었습니다. 씻을 것이 없는 분이 왜 물에 들어가십니까. 세례 요한도 그것을 만류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이렇게 답하십니다. 마태복음 3장 15절입니다. >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모든 의를 이루려"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자기가 필요해서 들어가신 것이 아닙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 죄인들이 서는 자리에 서신 것입니다. 요단강 물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또 한 번 받을 세례를 말하십니다. 제자들에게 앞으로 있을 일을 말씀하시던 자리입니다. 누가복음 12장 50절입니다. >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그분이 받으실 세례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였습니다. 요단강의 그 물과 십자가의 그 죽음. 자기 죽음을 "세례"라고 부르신 것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우리에게 죄에 대하여 죽으라 하신 그분이, 먼저 그 물에 온몸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어제 우리가 들은 말씀도 같은 것을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2장 24절입니다. >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 한 알이 먼저 그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열매입니다. 그러니 오늘 밤 우리는 이를 악물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이 먼저 그 죽음에 들어가셨습니다. 본문 5절이 우리를 이렇게 부릅니다.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 우리가 하는 일은 그 사실을 읽는 것입니다.

결론 — 오늘 밤 그 종이를 내려놓겠습니까

910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처음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그 손을 펴는 힘이 어디서 옵니까. 내 각오에서 오지 않습니다. 오늘 밤 이 분위기에서 오지 않습니다. **단번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그분에게서 옵니다.** 세 주 전 우리는 발견의 기쁨을 배웠습니다. 두 주 전 우리는 못 내려놓는 한 가지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지난주 우리는 붙들고 놓지 않는 손을 배웠습니다. 어제 우리는 한 알의 밀 앞에 섰습니다. 오늘 밤 우리는 그 손을 폅니다. 두 가지를 결단하고자 합니다. **결단 1 — 오늘 밤, 그 종이를 그분 앞에 내려놓겠습니다.** 가방에서 그 종이를 꺼내십시오. 거기 적힌 이름을 다시 한번 읽으십시오. 그리고 이 밤 기도의 자리에서 주님 앞에 내려놓기 원합니다. 그 종이를 내려놓는 일이 여러분을 새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일을 장부에서 읽는 것입니다.** 오늘 손이 잘 펴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안 펴지는 그 손이, 그분이 얼마나 필요한지 보여 줄 뿐입니다. 응답이 더딘 사람을 아무도 재촉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분은 재촉하지 않으십니다. **결단 2 — 각오를 근거로 삼지 않고, 그 사실을 근거로 삼겠습니다.** 오늘 밤 잠자리에 들기 전 한 번 더 아뢰기 원합니다. "주님, 제가 죽어 보겠다는 각오를 내려놓습니다." "주님이 단번에 죽으신 그 죽음 안에 제가 있는 줄 믿습니다." 이 밤의 감격은 식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11절은 "느껴라" 하지 않고 **"여기라"** 합니다. 느낌이 흔들리는 날에도, 장부에 적힌 사실은 그대로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그 물에 들어가시고 단번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 오늘 밤 손을 펴서, 죄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자기를 여기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제목

144자
1. 내가 죽을 힘을 짜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단번에 죽으신 그분 안에 있는 줄 믿게 해 주세요. 2. 가방에 넣어 온 그 한 가지를 오늘 밤 주님 앞에 실제로 내려놓게 해 주세요. 3. 감격이 식은 뒤에도 느낌이 아니라 그 사실을 근거로 서게 해 주세요.

나눔 질문

210자
1. 그동안 수련회에서 "내가 열심히 죽어야 한다"고 여겼던 자리가 있다면 어디였나요? 오늘 본문이 그 생각을 어떻게 뒤집었나요? 2. 본문은 "여기라"를 마지막에 딱 한 번 명령합니다. 하나님의 장부에 이미 적힌 사실 중에 내가 아직 잘 못 믿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3. 오늘 밤 종이에 적힌 그 한 가지를 내려놓는 데 무엇이 가장 걸리나요?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