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20260807-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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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1
이미 죽었습니다
목사samuel
예배청년부
본문로마서6:3-11
날짜2026-08-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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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도입↔서론 / 본문↔본론 / 마무리↔결론 / 결단↔결단찬양 / 기도↔기도제목
섹션별 본문 (5개)
서론 — 오늘 밤이 그 밤입니다
682자
둘째 날 밤입니다.
문을 밀고 들어오는 걸음이 무겁습니다.
낮에 흘린 땀이 옷에 아직 남아 있습니다.
다리가 뻐근합니다.
목소리도 반쯤 잠겼습니다.
자리에 앉으면서
주머니를 한 번 만져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수첩 사이에 끼워 둔 종이를
손끝으로 확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2주 전에 적은 종이입니다.
거기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내가 못 내려놓는 한 가지."**
그 종이가 하루 종일 무거웠습니다.
운동장에서 뛸 때도 마음 한쪽에 걸렸습니다.
조별로 모여 앉았을 때도 그랬습니다.
꺼내야 하는데 꺼내기가 싫었습니다.
어젯밤 우리는 밀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땅에 떨어져 먼저 죽으신 분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밤에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 "종이는 아직 꺼내지 않습니다.
> 꺼내는 밤이 곧 옵니다."
오늘 밤이 그 밤입니다.
오늘 밤 그 종이를 꺼냅니다.
그런데 꺼내기 전에 물을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힘으로 이 종이를 내려놓습니까.
이를 악물고 참아서 내려놓습니까.
아니면 나에게 이미 일어난 일 때문입니까.
로마서 6장이 그 답을 줍니다.
바울은 앞의 다섯 장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 선언 위에 서서 6장을 엽니다.
오늘 본문은 결심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나에게 이미 벌어진 일을 알려 줍니다.
세 가지를 함께 보겠습니다.
---
첫째, 나는 세례에서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습니다
1962자
### 1) 세례는 물 아래로 사라진 장례였습니다
3절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바울이 묻습니다.
"알지 못하느냐."
새로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벌써 일어난 일을 짚어 주는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입니까.
내가 예수님을 믿겠다고 했을 때
나는 그분의 죽음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내가 만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거기 넣으셨습니다.
잠깐 그 시대의 세례를 보겠습니다.
바울은 4절에서 세례를 장사라고 부릅니다.
물 속에 잠기는 것을 무덤에 묻히는 것으로,
물에서 올라오는 것을 살아나는 것으로 말합니다.
사람이 물 아래로 내려가면
보는 눈에서 잠시 사라집니다.
그리고 다시 올라옵니다.
몸이 통째로 없어졌다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 동작 하나가 전부를 말했습니다.
죽고, 묻히고, 다시 살아난 일을
몸으로 그대로 따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이상합니다.
세례를 아홉 절이나 말합니다.
그런데 "물"이라는 말이 한 번도 없습니다.
"씻는다"는 말도 없습니다.
"깨끗하게 한다"는 말도 없습니다.
장사와 부활만 말합니다.
세례가 때를 미는 예식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옛 주인 앞에서 치른 장례였기 때문입니다.
시리아 사람 나아만이 요단강에 들어갔습니다.
열왕기하 5장 14절 말씀입니다.
> "그가 곧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몸을 잠근 사람이 다른 몸으로 올라왔습니다.
물이 그를 문지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를 고치신 것입니다.
바울은 다른 편지에서 같은 말을 합니다.
골로새서 2장 12절 말씀입니다.
>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한 번 더 눈여겨보십시오.
여기 내가 한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그분이 가신 길에 실려 갔습니다.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분이 있다면
오늘 밤 그 자리를 사모하십시오.
### 2) 그래서 나는 새 생명 가운데서 걷습니다
4절 뒷부분이 목적을 말합니다.
>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부활이 왜 나에게 왔습니까.
훗날 상을 받게 하시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오늘 아침 걷게 하시려고 왔습니다.
"행하게 하려 함이라"가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부활은 결승선이 아닙니다.
출발선입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을 기억하십니까.
에스겔 37장 12절과 13절 말씀입니다.
>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무덤을 여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뼈들이 스스로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열린 무덤에서 나온 사람은
그다음에 자기 발로 걷습니다.
시편 40편 2절은 그 걸음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끌어올리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반석 위에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제 그 발이 걷습니다.
창세기에 이름 하나가 조용히 지나갑니다.
창세기 5장 24절 말씀입니다.
>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성경은 에녹의 업적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동행만을 기록합니다.
새 생명은 큰 사건으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내일 아침 걷는 걸음으로 드러납니다.
그런데 그 걸음을 붙드는 손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를 부리던 그 주인은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
둘째, 옛 주인은 나를 잃었습니다
2234자
### 1)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6절 앞부분을 보십시오.
>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시제를 보십시오.
"못 박을 것이니"가 아닙니다.
"못 박힌 것은"입니다.
끝난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내가 지금 올라갈 곳이 아닙니다.**
**내가 이미 못 박힌 곳입니다.**
여기서 성경은 우리에게
"옛 사람과 싸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겨 보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알거니와"라고 말합니다.
이미 벌어진 일을 알라는 것입니다.
잠깐 그 시대의 노예를 보겠습니다.
로마 사회에서 종의 신분은
마음먹기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나는 오늘부터 자유다."
이렇게 선언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신분이 바뀌려면 실제 사건이 있어야 했습니다.
주인이 세상을 떠나든지,
몸값이 지불되든지,
주인이 사람들 앞에서 놓아준다고 말하든지.
셋 중 하나가 실제로 일어나야 했습니다.
6절의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은
바로 그 세계 위에 서 있는 말입니다.
내 결심이 얼마나 단단하냐를 묻지 않습니다.
주인이 바뀌는 사건이 일어났느냐를 묻습니다.
그리고 본문은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삼손을 기억해 보십시오.
사사기 16장 21절 말씀입니다.
> "블레셋 사람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로 매고
>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힘이 세다고 자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힘이 세도 맷돌을 돌렸습니다.
매인 사람은 매인 채로 돕니다.
예수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 34절과 36절 말씀입니다.
>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자유를 주는 분이 따로 계십니다.
내가 나에게 줄 수 없습니다.
### 2) 그래서 나는 다시 죄의 종이 아닙니다
6절 뒤와 7절이 결과를 말합니다.
>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여기서 죄가 무엇으로 그려집니까.
내가 저지른 잘못들의 목록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종 노릇을 시키는 주인입니다.
성경은 죄를 그렇게 그립니다.
9절에서는 사망이 사람을 "주장한다"고 말합니다.
죄와 사망이 사람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손에 든 종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거기 적은 그 한 가지가
지금 여러분에게 무엇을 시키고 있습니까.
누군가에게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눈빛 하나에 하루가 흔들립니다.
그가 나를 인정해 주어야 내가 괜찮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성적과 순위입니다.
숫자가 올라가야 내가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숫자가 내려가면 내가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밤마다 켜는 화면입니다.
잠깐 꺼 두려고 켰는데 내가 꺼졌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계획입니다.
내가 다 짜 놓아야 겨우 숨이 쉬어집니다.
하나라도 어긋나면 밤새 잠이 오지 않습니다.
이 넷은 서로 달라 보입니다.
그런데 하는 일이 똑같습니다.
"내가 살아 있으려면 이게 있어야 한다."
이 자리에 앉아서 나를 부립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내 의지가 약해서 못 끊는다."
그래서 더 세게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번번이 그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7절은 다른 말을 합니다.
죽은 사람이 그 주인에게서 벗어났다고 말합니다.
빠져나온 것이 아닙니다.
주인이 그 사람을 잃은 것입니다.
시편 107편 14절이 그 장면입니다.
>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
줄을 끊으신 분이 계십니다.
갇힌 사람이 스스로 푼 것이 아닙니다.
율법도 이미 그 방향을 가리켰습니다.
출애굽기 21장 2절 말씀입니다.
>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
종 됨에는 끝나는 날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을 정해 두셨습니다.
예수님이 회당에서 펴신 두루마리도 같습니다.
이사야 61장 1절 말씀입니다.
>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선포는 밖에서 옵니다.
갇힌 사람이 자기에게 선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오늘 밤 필요한 것은 더 센 결심이 아닙니다.
주인이 이미 바뀌었다는 소식입니다.
그러면 그 소식이 내일 아침에도 그대로입니까.
소식을 가져오신 그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겠습니다.
---
셋째, 그리스도는 다시 죽지 않으십니다
1753자
### 1)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나는 그분과 함께 삽니다
8절입니다.
>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앞부분이 참이면 뒷부분도 참입니다.
함께 무덤에 들어간 사람은
함께 무덤에서 나옵니다.
반쪽만 데려가시는 법이 없습니다.
다윗은 무덤 앞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시편 16편 10절 말씀입니다.
>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이 노래가 예수님에게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분과 하나로 묶인 나에게도 이릅니다.
잠깐 9절의 한 단어를 보겠습니다.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주장하다"는 법정과 통치의 말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목숨과 시간과 재산을
전부 틀어쥐는 권한을 뜻했습니다.
사망은 모든 사람에게 그런 권력자였습니다.
왕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부자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누구도 그 손아귀 밖으로 걸어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9절이 놀라운 말을 합니다.
사망이 그리스도에게는
그 권한을 다시 쓰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사망의 통치가 끝난 첫 사람이 나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분 안에 있습니다.
요한이 밧모섬에서 들은 음성이 이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18절 말씀입니다.
> "곧 살아 있는 자라
>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열쇠가 누구 손에 있습니까.
문을 잠그던 자에게 있지 않습니다.
문을 여신 분 손에 있습니다.
### 2) 그 죽음은 단번에 끝났습니다
10절입니다.
>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단번에."
이 말 하나에 오늘 밤이 걸려 있습니다.
옛 언약의 백성은 해마다 같은 날을 지켰습니다.
레위기 16장 29절과 30절 말씀입니다.
> "일곱째 달 곧 그 달 십일에
>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 아무 일도 하지 말되
>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해마다 돌아왔습니다.
지난해 피가 올해까지 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드리고 또 드렸습니다.
해마다 다시 드려야 했다는 사실이
그 제사로는 끝나지 않는다는 표였습니다.
그리스도는 그 일을 한 번에 끝내셨습니다.
다시 오르실 십자가가 없습니다.
다시 열릴 무덤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오늘 밤 실패해도
그 사건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내 컨디션이 그 일을 취소하지 못합니다.
한 사람이 쓰러졌을 때
군대 전체가 무너진 날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51절 말씀입니다.
>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 그의 칼을 그 칼집에서 빼내어
>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니
>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골리앗이 쓰러진 뒤에도
블레셋 진영에는 창을 든 사람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승부는 이미 끝나 있었습니다.
남은 것은 도망치는 일뿐이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아직 소리가 남아 있습니다.
그 한 가지가 여전히 나를 부릅니다.
그러나 부르는 소리와 권한은 다릅니다.
목소리는 남았고 권한은 끝났습니다.
호세아가 이미 그렇게 외쳤습니다.
호세아 13장 14절 말씀입니다.
>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이 말은 겁먹은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끝난 것을 보고 부르는 노래입니다.
---
결론 — 이제 그 손을 폅니다
2660자
이제 11절입니다.
아홉 절 동안 사실만 말하던 본문이
여기서 처음으로 명령을 합니다.
딱 하나입니다.
>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여길지어다."
이 말이 오늘 밤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동작입니다.
**여기라는 말은 마음먹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실대로 세어보라는 말입니다.**
장부를 펴고 숫자를 확인하는 일입니다.
없는 것을 있다고 우기는 일이 아닙니다.
이미 적힌 것을 내 이름으로 읽는 일입니다.
이 계산은 하나님이 먼저 하셨습니다.
로마서 4장 3절 말씀입니다.
>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두고 셈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두고도 셈하셨습니다.
11절은 그 셈을 내가 나에게 적용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지가
내가 나를 볼 유일한 근거입니다.
### 결단 1 — 나는 오늘 밤 그 사실을 셉니다
먼저 세십시오.
"나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다."
"나는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 자다."
이것을 소원으로 말하지 마십시오.
사실로 세십시오.
느낌이 따라오지 않아도 셉니다.
오늘 몸이 피곤해도 셉니다.
**눈물이 증거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신 선언이 증거입니다.**
가슴이 뜨거워지면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뜨거움이 나를 살린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끝난 일이 나를 살렸습니다.
지금 입으로 한 번 세어 보십시오.
문장 앞에 자기 이름을 넣으십시오.
"○○○은 죄에 대하여 죽은 자다."
입에서 나온 그 말을 귀로 들으십시오.
세는 동안 속에서 대드는 소리가 올라옵니다.
"너는 지난달에도 똑같았잖아."
그 소리와 말씨름하지 마십시오.
장부를 다시 펴십시오.
하나님이 적으신 줄을 한 번 더 읽으십시오.
이 셈은 오늘 밤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흔들릴 때마다 같은 줄을 다시 읽습니다.
### 결단 2 — 나는 그 종이를 여기 내려놓습니다
이제 종이를 꺼내십시오.
주머니에 손을 넣으십시오.
수첩에 끼워 둔 사람은 그 갈피를 여십시오.
접힌 자리를 손가락으로 펴십시오.
하루 종일 만져서 모서리가 닳았습니다.
2주 전에 적은 그 한 가지를 다시 보십시오.
소리를 내지 않아도 됩니다.
입술로만 한 번 읽으십시오.
그리고 그 종이를 손바닥 위에 올리십시오.
**이 종이는 내가 이겨서 내려놓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끝난 자리에 손을 펴는 것입니다.**
무덤에 이미 들어간 것을
내가 다시 꺼내 들고 있었습니다.
오늘 밤 그 손을 폅니다.
꽉 쥔 손가락에 힘을 빼는 일입니다.
손가락을 하나씩 펴십시오.
그리고 앞으로 나와 내려놓으십시오.
내려놓은 자리를 뒤돌아보지 마십시오.
이 손짓이 로마서 끝에서 다시 나옵니다.
로마서 12장 1절 말씀입니다.
> "그러므로 형제들아
>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
받은 은혜가 먼저 있고
드리는 손이 그다음에 옵니다.
오늘 밤 펴는 손이 바로 그 순서입니다.
종이는 오늘 밤 여기 두고 갑니다.
그런데 거기 적힌 그 한 가지는 집까지 따라옵니다.
그때 쓰려고 오늘 밤 셈을 배웠습니다.
월요일 아침을 미리 보십시오.
알람이 울리고 눈이 떠집니다.
어젯밤의 뜨거움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렇게 세십시오.
"나는 이미 죽었습니다."
"그러니 오늘도 그렇게 셉니다."
밤에 핸드폰을 드는 순간을 미리 보십시오.
손가락이 늘 가던 자리로 먼저 갑니다.
화면이 켜지기 전에 한 번 멈추십시오.
"이 주인은 나를 이미 잃었습니다."
그 말을 하고 손을 내리십시오.
그 사람 앞에 서는 순간을 미리 보십시오.
표정 하나에 하루가 걸리던 자리입니다.
얼굴을 살피기 전에 먼저 세십시오.
"나는 저 눈빛으로 살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습니다."
세 자리가 요구하는 문장은 하나입니다.
새로 결심할 것이 없습니다.
이미 끝난 일을 그 자리에서 세면 됩니다.
그 아침들이 전부 오늘 밤에서 시작합니다.
문을 밀고 들어올 때
걸음이 무거웠습니다.
주머니 속 종이를 만지작거렸습니다.
그 종이가 지금 손바닥 위에 있습니다.
이제 그 손을 폅니다.
여러분이 이겨서 펴는 손이 아닙니다.
이미 장사된 자리에 펴는 손입니다.
그 손 위에서 하나님이 일하실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 기도제목
1. 내가 손에 쥔 그 한 가지를 오늘 밤 무덤에 두고, 그 자리에서 손을 펴게 하여 주옵소서.
2. 내일 아침 다시 흔들릴 때, 느낌을 확인하지 말고 하나님이 하신 선언을 세게 하여 주옵소서.
3. 월요일 아침과 화면 앞과 그 사람 앞에서, 결심을 새로 짜내지 말고 이미 끝난 일을 그 자리에서 세게 하여 주옵소서.
### 나눔질문
오늘 밤 뜨거웠는지 서로 묻지 마십시오.
무엇을 셈했는지 물으십시오.
1. 내 종이에 적힌 그 한 가지는, 나에게 무엇을 시켜 왔습니까. 언제 가장 세게 시켰습니까.
2. "나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다." 이 문장을 내 이름을 넣어 소리 내어 세어 보십시오. 셀 때 가장 걸리는 대목이 어디였습니까.
3. 이번 주에 그 한 가지가 다시 손에 쥐어지려는 순간은 언제입니까. 그 자리에서 어떤 문장을 세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