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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0260808-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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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 몸을 드리겠습니다

목사samuel
예배청년부
본문로마서12:1-2
날짜2026-08-08 (토)
📝 정식
📋 간략

정식 = 가이드 §10 (말씀 요약 + 본문 이해 + 질문 + 적용). 간략 = 1장, 질문 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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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별 본문 (8개)

서론 — 며칠이나 갈까

943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짐은 다 싸셨습니까. 몇 시간 뒤면 이 산을 내려갑니다. 저녁이면 각자 방으로 흩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이 옵니다. 여기까지 온 길을 짧게 짚어 봅시다. 세 주 전에는 보화를 발견하고 기뻐하며 다 판 사람을 만났습니다. 두 주 전에는 손에 쥔 것을 놓지 못해 근심하며 돌아간 사람을 만났습니다. 지난주에는 밤새 씨름해 새 이름을 얻은 야곱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 산에 도착하던 날, 우리는 한 알의 밀알 앞에 섰습니다. 죽어야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어젯밤에는 우리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라는 말씀 앞에 섰습니다. 그 자리에서 가방의 종이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마음 한쪽에 질문이 하나 있을 것입니다. **"이게 며칠이나 갈까."** 정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그 답을 어렴풋이 압니다. 작년에도 이런 자리에 앉아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때도 뜨거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며칠 못 갔습니다. 부끄러운 질문이 아닙니다. 다만 그 질문에는 전제가 하나 숨어 있습니다. 내가 며칠 버티느냐에 변화가 달려 있다는 전제입니다. 그 전제가 맞다면, 우리 예상도 맞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전제를 바꿉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각오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한 단어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함께 본문을 펴 봅시다. 로마서 12장 1절과 2절입니다. > 그러므로 형제들아 >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오늘 세 가지로 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그러므로.** 둘째, **너희 몸을 드리라.** 셋째, **변화를 받으라.**

첫째, 그러므로

1286자
### 1) 이 단어는 앞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는 접속사입니다. 접속사는 혼자 서지 못합니다. 앞에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그러므로"인가.** 바울은 이 편지의 앞 열한 장을 한 가지로 채웠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일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죄인을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 하셨습니다.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셨습니다. 아무것도 그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열한 장이 어떻게 끝나는지 보십시오. 논쟁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찬양으로 끝납니다. 로마서 11장 36절입니다. >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논증하던 사람이 경배하는 사람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절에서 "그러므로"라고 말합니다. 찬양 다음에 헌신이 옵니다. 순서가 이렇습니다. ### 2) 근거는 내 결심이 아닙니다 본문은 이어서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권하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내 열심이 아닙니다. 어젯밤의 감동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입니다. 이 순서는 성경 곳곳에 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에베소는 우상 신전으로 이름난 도시였습니다. 거기서 돌아선 사람들이 모인 교회입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삶을 말하기 전에 근거를 먼저 말합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입니다. >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행위가 먼저가 아닙니다. 선물이 먼저입니다. 행함은 그 선물에서 나옵니다. 바울은 이 편지 안에서 이미 같은 말을 했습니다. 로마서 6장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어젯밤 우리가 선 그 말씀입니다. 그 사실을 먼저 말하고 이렇게 잇습니다. 로마서 6장 13절입니다. >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오늘 본문의 "드리라"가 처음이 아닌 것입니다. 살아난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며칠이나 갈까" 하는 질문으로 돌아갑시다. 그 질문의 주어는 나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주어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입니다. 어젯밤 손이 펴진 것은 여러분이 강해서가 아닙니다. 먼저 받은 자비가 손을 펴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비는 산 아래로 내려가도 줄지 않습니다.

둘째, 너희 몸을 드리라

1916자
### 1) 제물은 죽는 것인데, 산 제물이라 하십니다 본문이 무엇을 드리라고 합니까. "거룩한 산 제물"입니다. 여기서 "산"은 산꼭대기가 아닙니다.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상한 데가 있습니다. 제물은 죽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를 잠깐 보십시오. 레위기가 그것을 적은 책입니다. 성막을 세운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 어떻게 나아갈지를 정해 주신 말씀입니다. 그 첫 장이 번제입니다. 레위기 1장 5절입니다. >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잡습니다. 그리고 제단 위에서 전부 불사릅니다.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제물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산** 제물이라고 씁니다. 죽는 것을 살아서 드리라는 것입니다.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산에 오던 날 이 말을 이미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뒤입니다. 자기 죽을 때가 왔다고 하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2장 24절입니다. >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 한 알 그대로 있고 >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밀알은 죽어서 삽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열매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밀알이 먼저 그분이셨습니다. 이 사흘 우리가 붙든 말씀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 결단이 일상에서 어떤 모습이 되는지 보여 줍니다. **매일 쓰는 이 몸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하겠습니다. 우리 몸을 드려서 죄가 씻기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씻는 제사는 이미 끝났습니다. 히브리서는 옛 제사 제도로 되돌아가려는 신자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짐승의 피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 참 제사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10장 10절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단번에 끝났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드리는 산 제물은 값을 치르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값이 치러진 사람이 드리는 감사입니다. 제단 위가 아니라 사는 자리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 2) 하필 몸이라 하십니다 본문을 다시 보십시오. 마음을 드리라 하지 않습니다. **몸을** 드리라 합니다. 마음은 산 위에 두고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몸은 그럴 수 없습니다. 몸은 장소를 가집니다. 몸은 시간표를 가집니다. 몸은 월요일 아침에 어딘가에 있습니다. 교실에 있고, 일터에 있고, 집 부엌에 있습니다. 바로 그 자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은 그것을 "영적 예배"라 부릅니다. 영적인 것과 몸이 따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도 몸을 말했습니다. 항구 도시라 드나드는 사람이 많았고, 몸을 아무렇게나 쓰는 일이 흔한 곳이었습니다. 그 교회에 바울이 이렇게 씁니다. 고린도전서 6장 20절입니다. >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여기도 순서가 같습니다. 값으로 산 것이 먼저입니다. 그러므로 몸으로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골로새 교회에는 더 구체적으로 씁니다. 이 말씀은 본래 종으로 일하던 사람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남의 집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입니다. >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종에게 주신 말씀이지만 여기에 시대를 넘는 원리가 있습니다. 누가 보든 안 보든, 하는 일 자체가 예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과제도, 알바도, 설거지도 예배의 자리가 됩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는 예배를 자주 시간으로 셉니다. 집회 몇 시간, 기도 몇 분으로 셉니다. 그런데 본문은 예배를 **몸으로** 셉니다. 그러니 산 아래는 예배가 끝나는 곳이 아닙니다. 예배의 자리가 옮겨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몸을 드리기로 정한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산에서 내려간 자리에는 늘 밀어붙이는 힘이 있습니다. 본문은 그것까지 말합니다.

셋째, 변화를 받으라

2125자
### 1) 세상은 설득하지 않고 누릅니다 2절로 갑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본받는다는 말은 겉만 따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틀에 나를 맞춘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설득하지 않습니다. 그저 계속 누릅니다. 비교하게 만들고, 조급하게 만들고, 무디게 만듭니다. 산에서 내려가면 그 힘이 바로 시작됩니다. 성경도 그 내려가는 길을 적어 놓았습니다. 예수님이 세 제자를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다. 얼굴이 해같이 빛났습니다. 제자들은 그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은 곧 이렇게 적습니다. **"산에서 내려올 때에."** 산 아래에는 아픈 아들을 데려온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남아 있던 제자들은 그 아이를 고치지 못했습니다. 마태복음 17장 16절입니다. >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산 위의 빛과 산 아래의 무력함이 나란히 적혀 있습니다. 산 위에서 본 것이 산 아래의 힘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이야기가 특별히 못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이미 알고 있는 길입니다. ### 2) 고치라 하지 않고, 받으라 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을 그대로 읽어 보십시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여기 "마음"을 오해하기 쉽습니다. 우리말로 마음이라 하면 감정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본문이 새롭게 하라는 마음은 감정의 자리가 아닙니다. 생각하고 판단하는 자리입니다. 무엇을 옳다 하고 무엇을 좋다 할지 정하는 자리입니다. 변화시키라고 하지 않습니다. 변화를 **받으라**고 하십니다. 내가 나를 뜯어고치는 일이 아닙니다. 이것이 "며칠이나 갈까"에 대한 성경의 답입니다. 버티는 힘이 아니라 새로워지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직해야 합니다. 그러면 누가 그 일을 하시는가. 본문은 이 자리에서 그것을 밝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게 물어야 합니다. 바울이 다른 편지에서 그 답을 줍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 얼굴에 광채가 있어 수건을 썼다는 출애굽기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울은 그 수건을 이야기하다가, 수건이 벗겨진 사람들을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3장 18절입니다. >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마지막 구절을 보십시오.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변화의 주인이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광에서 영광에 이른다고 합니다. 한 번에 끝나는 일이 아니라 이어지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새롭게 하신다는 말은 신약에서 처음 나온 것이 아닙니다. 에스겔은 바벨론에 끌려간 포로들 가운데 있던 선지자입니다. 나라가 무너지고 성전이 불탄 뒤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에스겔 36장 26절입니다. >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동사의 주인을 보십시오. 주시고, 제거하시고, 주실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손 놓고 있어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성경이 그 균형을 정확하게 잡아 줍니다. 바울이 옥에 갇혀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자기가 곁에 없어도 그들이 어떻게 살 수 있는지 말합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과 13절입니다. >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이루라고 하고, 곧이어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니 내가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니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은 마지막에 목적을 밝힙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분별은 산 위에서 한 번 받는 지도가 아닙니다. 산 아래에서 매일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월요일 첫 판단의 순간을 기억하십시오. 늘 하던 대로 반응하기 전에 한 박자만 멈추십시오. 그 한 박자가 새로워진 마음이 일하는 자리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그러면 오늘 여기서 무엇을 가져가야 합니까. 감정은 산에 두고 내려갈지 모릅니다. 그러나 **새로워진 판단은 함께 내려갑니다.** 그것이 오늘 여러분이 가져갈 짐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드려진 몸

305자
본문은 우리에게 몸을 드리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드리기 전에 먼저 드려진 몸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 편지 앞부분에서 그것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입니다.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결단한 뒤가 아닙니다. 아직 죄인이었을 때입니다. 드릴 것이 하나도 없을 때 그분의 몸이 먼저 드려졌습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드리는 것은 값이 아닙니다. 응답입니다. 시험이 아닙니다. 감사입니다. 이것이 "그러므로"의 뜻입니다.

결론 — 그러므로 이 몸을 드리겠습니다

974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처음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이게 며칠이나 갈까." 그 질문을 지우지 않겠습니다. 다만 주어를 바꾸겠습니다. 내가 며칠 버티느냐가 아닙니다. 나를 붙드신 그 자비가 며칠 가느냐입니다. 이 산을 내려가며 두 가지를 결단하고자 합니다. **결단 1 — 그 종이를 눈에 보이는 자리에 두겠습니다.** 어젯밤 내려놓은 그 종이를 가방 안에 묻어 두지 마십시오. 집에 돌아가면 책상 위나 다이어리 첫 장에 붙이십시오. 마음이 새로워지는 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 은혜도 하루치씩 다시 꺼내야 합니다. 그 종이를 볼 때마다 한 문장만 기도하십시오. "주님, 오늘도 이 몸을 드립니다." **결단 2 — 산을 내려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한 가지를 다르게 하겠습니다.** 집에 가면 누군가가 문을 열어 줄 것입니다. 월요일에는 늘 보던 사람을 다시 만날 것입니다. 바로 그 첫 자리에서 한 가지만 다르게 하십시오. 짜증으로 답하던 자리에서 먼저 인사하는 것입니다. 못 본 척하던 자리에서 안부를 묻는 것입니다. 크지 않아도 됩니다. 몸이 하는 일이면 됩니다. 그 몸의 자리가 본문이 말한 영적 예배입니다. 그 한 가지를 정할 때 한 번만 물으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인가." 그 물음이 본문이 말하는 분별입니다. 여러분의 결심이 며칠 갈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를 산 제물로 받으신 분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감동이 식어도 그 자비는 식지 않습니다. 그러니 감동이 식은 아침에도 다시 그 앞에 서십시오. 그 자리에서 마음이 다시 새로워집니다. 도착하던 날 밀알 앞에 섰고, 어젯밤 그 손을 펴셨습니다. 이제 그 손으로 짐을 들고 내려가십니다. 산을 내려가는 것은 예배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의 자리가 옮겨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을 먼저 받은 사람으로 — 이 산을 내려가 학교와 집과 일터에서 몸으로 드리는 예배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제목

164자
1. 내 결심의 힘이 아니라 먼저 받은 자비가 나를 붙들고 있음을 매일 다시 믿게 해 주세요. 2. 산 아래 학교와 일터와 집이 예배의 자리인 줄 알고, 몸으로 드리는 하루를 살게 해 주세요. 3. 감동이 식는 날에도 스스로를 정죄하지 않고, 다시 말씀 앞에 서서 마음이 새로워지게 해 주세요.

나눔 질문

183자
1. 어젯밤 내려놓은 그 종이를, 집에 돌아가면 어디에 두려고 하시나요? 2. 본문은 마음이 아니라 "몸을" 드리라고 합니다. 이번 한 주 내 몸이 가장 오래 머무는 자리는 어디인가요? 그 자리가 예배의 자리가 된다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3. 은혜가 식어 본 경험이 있다면 나눠 주세요. 그때 나를 다시 세운 것은 무엇이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