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20260816-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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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면서 말했습니다
목사samuel
예배청년부
본문느헤미야2:1-8
날짜2026-08-16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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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도입↔서론 / 본문↔본론 / 마무리↔결론 / 결단↔결단찬양 / 기도↔기도제목
섹션별 본문 (9개)
봉독 — 느헤미야 2장 1절부터 8절
766자
> 1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니산월에
> 왕 앞에 포도주가 있기로
> 내가 그 포도주를 왕에게 드렸는데
> 이전에는 내가 왕 앞에서 수심이 없었더니
> 2 왕이 내게 이르시되
>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하더라
>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 3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 하니
> 4 왕이 내게 이르시되
>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 5 왕에게 아뢰되
>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 6 그 때에 왕후도 왕 곁에 앉아 있었더라
> 왕이 내게 이르시되
> 네가 몇 날에 다녀올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 왕이 나를 보내기를 좋게 여기시기로
> 내가 기한을 정하고
> 7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 강 서쪽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 그들이 나를 용납하여 유다에 들어가기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 8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하매
>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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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그다음 날들
631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지난 몇 주 사이에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는 수련회가 있었고, 누구에게는 그냥 여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다들 각자의 자리로 돌아와 앉아 있습니다.
마음이 크게 움직였던 날이 한 번이라도 있었다면 그다음을 아실 것입니다.
그런 날 뒤에 오는 것은 더 대단한 날이 아닙니다.
개학이 오고 출근이 오고 밀린 과제가 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속에서 이런 소리가 들립니다.
**"그때 그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우리는 그 물음을 대개 자기를 판정하는 말로 바꿉니다.
그날 뜨거웠던 것이 다 가짜였나, 아니면 내가 그만큼 약한 사람인가.
그런데 성경은 그 사이의 날들을 그렇게 적지 않습니다.
느헤미야 1장을 우리는 얼마 전에 함께 보았습니다.
그날 자리에 없으셨어도 따라오시는 데 지장이 없습니다.
페르시아 왕궁에 있던 한 사람이,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이 불탔다는 고향 소식을 듣고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그가 운 것이 1장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여 줍니다.
오늘 세 가지로 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달이 바뀌었습니다.**
둘째, **두려워하면서 말했습니다.**
셋째, **허락한 사람은 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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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달이 바뀌었습니다
1710자
### 1) 본문은 그 사이를 세지 않습니다
1장 1절이 그가 소식을 들은 때를 적어 놓았습니다.
>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기슬르월입니다.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주전 445년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절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니산월에."
**달 이름이 바뀌어 있습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무엇을 했는지도, 얼마나 지났는지도 세지 않습니다.
주석하는 분들은 몇 달쯤으로 재구성하기도 합니다만, 본문 자체는 두 달의 이름만 적어 둡니다.
성경이 세지 않는 것을 우리가 대신 세어 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날과 이날 사이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이의 날들을 성경이 다른 곳에서 노래한 적이 있습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왔지만 땅은 황폐하고 기대했던 회복은 오지 않던 사람들의 노래입니다.
시편 126편 5절과 6절 말씀입니다.
>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울면서 뿌리는 때가 있고, 기쁨으로 거두는 때가 따로 있습니다.
씨를 뿌리고 나면 한동안 땅 위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그렇다고 씨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 사이를 실패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 2) 그가 다시 나타난 자리
그러면 니산월에 느헤미야는 어디 있었습니까.
성전이 아닙니다.
기도원도 아닙니다.
본문 1절이 그를 어디에 세워 놓는지 보십시오.
> "왕 앞에 포도주가 있기로
> 내가 그 포도주를 왕에게 드렸는데."
**잔을 들고 있습니다.**
그의 근무 시간이었습니다.
1장 마지막 절이 그의 직책을 알려 줍니다.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술 관원은 왕이 마실 잔을 먼저 맛보는 사람입니다.
독이 있으면 자기가 먼저 죽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는 시중드는 하인이 아니라, 왕이 목숨을 맡길 만큼 신임하고 사적으로 말을 건넬 수 있는 몇 안 되는 고위직이었습니다.
이런 자리가 성경에 한 번 더 나옵니다.
요셉이 애굽 감옥에 있을 때, 같은 감옥에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이 갇혀 있었습니다.
그가 꾼 꿈을 요셉이 풀어 주었는데, 그 꿈에 이런 장면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40장 11절 말씀입니다.
>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왕의 손에 잔을 올려놓는 일, 그것이 느헤미야의 직무였습니다.
그러니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던 것입니다.
울고 나서 사표를 낸 것이 아닙니다.
성벽 때문에 마음이 무너진 사람이, 다음 달에도 페르시아 왕의 잔을 들고 서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쓰신 자리는 그가 원래 서 있던 자리였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는 은혜를 받고 나면 어딘가 다른 자리로 옮겨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학기는 다르게 살아 보겠다고 다짐했는데, 며칠 지나 같은 강의실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나를 보면 그래서 실망합니다.
아무것도 안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 자리를 실패의 증거로 적지 않습니다.
느헤미야도 같은 왕궁에서 같은 잔을 들고 있었습니다.
이번 한 주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만나실 자리는 새로 생기는 자리가 아닙니다.
**월요일에 어차피 가야 하는 그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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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두려워하면서 말했습니다
2775자
### 1) 왕이 먼저 알아보았습니다
1절 끝에 서술자가 한마디를 미리 붙여 놓습니다.
> "이전에는 내가 왕 앞에서 수심이 없었더니."
이날이 처음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2절에서 왕이 그것을 알아봅니다.
>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여기서 한 단어를 붙잡으십시오.
**"수심"**입니다.
나쁜 것, 괴로운 것을 두루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이 이야기에서 처음 나온 자리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1장 3절입니다.
유다에서 온 사람들이 예루살렘 소식을 전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그 "환난"이 히브리말 성경에서는 이 "수심"과 같은 말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그 나쁜 것이, 이제 느헤미야의 얼굴에 올라와 있습니다.**
그는 남의 도시의 무너짐을 마음에 담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은 조용히 사라지지 않고 달이 바뀌도록 얼굴에 남아 있었습니다.
왕이 그것을 보고 이름을 붙여 줍니다.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마음은 우리가 관리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감추려 해도 얼굴에 남습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물을 것은 "내가 아직 뜨거운가"가 아닙니다.
**"내 얼굴에 아직 그것이 남아 있는가"입니다.**
### 2) 두려움과 기도가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왕이 알아본 다음에 느헤미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2절 마지막입니다.
>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우리가 기대한 문장이 아닙니다.
그만큼 오래 품고 기다린 사람이면 여기서 담대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가 크게 두려워했다고 적습니다.
왜 두려웠는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성경 안에 짚이는 배경이 하나 있습니다.
에스라 4장을 보면, 바로 이 아닥사스다 왕 때에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으려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발하는 사람들이 저 성이 다시 서면 반역할 것이라고 왕에게 글을 올렸고, 왕이 조서를 내려 그 공사를 멈추게 했습니다.
에스라 4장 21절입니다.
> "이제 너희는 명령을 전하여
> 그 사람들에게 일을 그치게 하여
> 그 성을 건축하지 못하게 하고."
많은 주석가들은 그 이유를 여기서 찾습니다.
성벽을 세우게 해 달라는 말은, **왕이 직접 내린 명령을 되돌려 달라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4절을 보십시오.
왕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묻습니다.
그 순간에 느헤미야가 한 일이 이것입니다.
>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두려워한 것이 2절이고, 기도한 것이 4절입니다.
두 절 사이입니다.
**두려움이 가신 다음에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두려운 채로 기도했습니다.
무릎 꿇을 시간도 눈 감을 시간도 없이, 왕이 대답을 기다리는 그 사이에 드린 기도였습니다.
여기서 한 사람이 생각납니다.
1745년 여름, 스물일곱 살의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폐결핵을 앓는 몸으로 지금의 뉴저지 지역에 살던 델라웨어 인디언 부족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그들의 말을 몰랐고, 통역해 주던 사람은 자주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나중에 엮어 낸 그의 일기에는 두 가지가 나란히 적혀 있습니다.
마을로 들어가기 전날 밤마다 숲에서 홀로 무릎 꿇은 기록과, 자기 약함이 너무 분명해서 사라지고 싶다는 고백입니다.
그는 두려움이 가신 다음에 기도한 사람이 아니라, 그 한가운데서 기도한 사람이었습니다.
<!-- illust: 데이비드_브레이너드_숲속_기도 -->
성경도 그 자리를 여러 번 보여 줍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불러 바로 앞에 가서 말하라고 하셨을 때, 모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출애굽기 4장 10절 말씀입니다.
>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하나님이 그 말을 물리치지 않으시고 이렇게 답하십니다.
바로 이어지는 11절과 12절입니다.
>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 할 말을 가르치리라."
말솜씨가 준비된 사람에게 시키신 것이 아닙니다.
입이 뻣뻣하다고 말한 사람에게 "내가 네 입과 함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는 담대함을 떨림이 없는 상태로 오해합니다.
그래서 떨리면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하고 입을 다뭅니다.
그런데 본문은 두려움과 기도를 나란히 놓습니다.
**떨리는 것은 자격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떨리는 그 자리가 기도할 자리라는 뜻입니다.
### 3) 그가 부른 그 성읍의 이름
그러고 나서 그가 입을 엽니다.
3절과 5절인데, 여기 이상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왕 앞에서 그 도시의 이름을 한 번도 말하지 않습니다.
>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5절에서도 똑같습니다.
>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두 번 다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입니다.
1장 3절에서 유다 사람들은 분명히 "예루살렘"이라고 말했고, 2장 11절에 가면 다시 "예루살렘에 이르러"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이 왕궁 장면 안에서만은 그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왜 그랬는지 본문은 말하지 않으니 우리도 짐작하지 맙시다.
다만 본문이 분명히 말하는 것은, 그가 무너진 성벽 이야기를 왕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꺼냈다는 것입니다.
조상의 무덤이 방치되어 있다는 말은 그 시대 사람 누구에게나 통했습니다.
**그는 울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고 나온 사람이었습니다.**
울음이 진짜였기 때문에 준비도 진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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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허락한 사람은 왕이었습니다
1968자
### 1) 좋게 여기시거든
5절부터 8절까지 그의 요청이 하나씩 커집니다.
5절은 "나를 보내 주십시오"입니다.
7절은 "가는 길에 통과할 수 있게 조서를 주십시오"입니다.
8절은 "성문과 성곽에 쓸 재목을 주십시오"입니다.
**즉흥으로 나올 수 있는 목록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요청마다 그가 붙이는 말이 있습니다.
5절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6절 "왕이 나를 보내기를 좋게 여기시기로."
7절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좋게 여기시거든"이 이 짧은 장면에 세 번 나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이 자리에서 결정권을 가진 사람은 왕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여덟 절 안에 "왕"이라는 말이 **열여덟 번** 나옵니다.
한 절에 두 번꼴입니다.
이 장면은 처음부터 끝까지 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자리를 이렇게 봅니다.
잠언은 이스라엘의 지혜를 모아 놓은 책이고, 그 안에는 왕과 권력을 다루는 말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중 한 구절입니다.
잠언 21장 1절 말씀입니다.
>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 마치 봇물과 같아서
>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봇물은 논에 물을 대는 물길입니다.
농부가 흙을 조금 터 주면 물이 그쪽으로 흐릅니다.
물이 스스로 방향을 정한 것 같지만 길을 낸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여러분 앞에도 결정권을 쥔 사람이 있습니다.
교수님일 수도 있고, 팀장일 수도 있고, 부모님일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의 기분을 살피느라 하루가 다 가는 날이 있습니다.
그 마음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니 그 사람을 설득할 말을 궁리하기 전에, 한 번만 먼저 하늘을 보십시오.
### 2) 문장은 하나님의 손으로 끝납니다
이제 8절 마지막을 보십시오.
>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여기서 여러분과 함께 세어 볼 것이 있습니다.
이 여덟 절에 "왕"은 열여덟 번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몇 번 나옵니까.
**두 번입니다.**
4절에 "하늘의 하나님", 8절에 "내 하나님", 이렇게 두 번뿐입니다.
열여덟 번과 두 번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설명하는 것은 그 두 번 쪽입니다.
왕이 열여덟 번 등장하는 이 이야기가,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손으로 끝을 맺습니다.
히브리말 성경에서는 이 문장이 "내 위에"라는 말로 닫힙니다.
**선한 손이 내 위에 있었다.**
장면이 그렇게 끝납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왕에 대해서 세 번 쓰인 그 말, "좋게 여기시거든"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8절에서 하나님의 손을 가리켜 쓰인 말이 무엇입니까.
**"선한" 손입니다.**
히브리말로 둘 다 "좋다"는 뜻의 같은 계열입니다.
왕의 좋게 여기심이 세 번 있었고, 그 위에 하나님의 선하심이 한 번 있습니다.
**그 한 번이 나머지 세 번을 다 설명합니다.**
이 표현은 느헤미야가 즉흥적으로 만든 말이 아닙니다.
같은 시대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학자이자 제사장이 있었습니다.
에스라입니다.
그는 페르시아에서 백성을 이끌고 돌아왔는데, 그 여정을 적으면서 같은 말을 반복해서 씁니다.
에스라 7장 9절 말씀입니다.
> "그의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었더라."
에스라도 그렇게 적었고 느헤미야도 그렇게 적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사람들 앞에 설 때도 이 말부터 꺼냅니다.
2장 18절입니다.
>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순서를 보십시오.
왕이 무슨 말을 해 주었는지보다 하나님의 손을 먼저 말합니다.
**이것이 이 사람이 자기 인생을 읽는 방식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가 무언가를 해냈을 때 우리는 대개 이렇게 셉니다.
그때 그 사람이 도와줬고, 그때 그 자리가 마침 났고, 그때 내가 준비돼 있었다.
다 사실입니다.
느헤미야도 왕이 허락했다는 사실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위에 한 줄을 더 얹었습니다.
**선한 손이 내 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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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보다 먼저 그 잔 앞에 엎드리신 분
861자
오늘 본문은 잔을 든 사람으로 시작했습니다.
성경에 잔을 받으신 분이 또 계십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이었습니다.
겟세마네라는 동산에서 제자들을 조금 떨어진 곳에 두시고 혼자 나아가셨습니다.
마가복음은 그때 예수님의 상태를 이렇게 적습니다.
마가복음 14장 33절과 34절 말씀입니다.
>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그리고 땅에 엎드려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바로 이어지는 36절입니다.
>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느헤미야는 왕의 잔을 들고 서 있었고, 예수님은 아버지의 잔을 받으셨습니다.
느헤미야는 성을 세우게 해 달라고 구했고 그 요청은 허락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잔을 옮겨 달라고 구하셨고 그 잔은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오늘 붙드는 선한 손은 그 잔을 끝까지 받으신 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떨면서 왕궁에 서 있지 않아도 됩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백성을 대신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소개하는 편지입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과 16절 말씀입니다.
>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 죄는 없으시니라
> 그러므로 우리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느헤미야는 왕의 얼굴빛을 살펴야 했습니다.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나아가는 그 보좌에 앉으신 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이미 겪어 보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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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선한 손이 내 위에
1012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오늘 본문을 처음부터 다시 짚어 봅시다.
기슬르월에 한 사람이 소식을 듣고 울었고, 그다음에 니산월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는데, 다시 나타난 그의 얼굴에 그 마음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크게 두려워하면서 입을 열었고, 떨리는 채로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허락한 사람은 왕이었지만, 그가 적은 문장은 하나님의 손으로 끝납니다.
지난 몇 주 사이에 마음이 움직인 자리가 있었다면, 오늘 이렇게 물으십시오.
그것이 아직 뜨거운가를 묻지 마십시오.
**그것이 아직 내 얼굴에 남아 있는가를 물으십시오.**
이제 두 가지를 결단하고자 합니다.
**결단 1 — 이번 한 주, 원래 있던 자리로 그대로 돌아가겠습니다.**
느헤미야는 울고 나서 자리를 옮기지 않았습니다.
다음 달에도 같은 왕궁에서 같은 잔을 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부르신 자리는 특별한 무대가 아니라 그가 매일 서던 자리였습니다.
학교로 돌아가고 일터로 돌아가는 것이 은혜에서 멀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예배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배의 자리가 옮겨지는 것입니다.
**결단 2 — 떨리는 자리에서 한 문장 기도하고 한 마디 말하겠습니다.**
느헤미야가 한 일은 두 가지였습니다.
왕이 물을 때 먼저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했습니다.
그리고 입을 열어 말했습니다.
이번 한 주에도 그런 순간이 반드시 옵니다.
말을 꺼내야 하는데 목이 막히는 순간입니다.
그때 무릎 꿇을 시간이 없어도 됩니다.
속으로 한 문장만 드리십시오.
"하나님, 지금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하려던 말을 하십시오.
떨림이 가시기를 기다리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이번 주에 무엇을 해내든, 그 끝에 한 줄을 더 얹으시기 바랍니다.
그날 그 사람이 도와주었고, 그날 그 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이 한 줄이 있습니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내 위에 있었습니다."**
이 고백을 가지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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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제목
218자
1. 마음이 식은 것 같은 날에도 나를 정죄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직 남아 있음을 보게 하옵소서.
2. 떨리는 자리를 피하지 않게 하시고, 바로 그 자리에서 먼저 하나님께 한 문장을 드리게 하옵소서.
3. 제가 매일 서 있는 학교와 일터가 하나님이 저를 두신 자리인 줄 알게 하옵소서.
4. 무엇을 이루든 그 끝에 "주의 선한 손이 내 위에 있었다"고 고백하게 하옵소서.
나눔 질문
191자
1.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가 며칠 뒤 식은 것 같았던 경험이 있나요? 그때 자신에게 뭐라고 말했나요?
2. 느헤미야는 두려워하면서 말했습니다. 요즘 내가 떨려서 미루고 있는 말이나 자리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3. 이번 한 주 내가 가장 오래 머무는 자리는 어디인가요? 그 자리에서 "선한 손이 내 위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일이 있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