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2026082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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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목사samuel
예배청년부
본문창세기 43:16-34
날짜2026-08-23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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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도입↔서론 / 본문↔본론 / 마무리↔결론 / 결단↔결단찬양 / 기도↔기도제목
섹션별 본문 (7개)
서론 —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먼저 꺼내는 말
1090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먼저 해명을 꺼내 본 적이 있습니까.
"그거 제가 그런 거 아닙니다."
"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누가 추궁한 것도 아닌데 내 입이 먼저 열리고, 말해 놓고 나면 더 이상해집니다.
왜 그럴까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걸리는 것이 있는 사람은 자기가 앉은 자리를 계산합니다.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가.
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그 계산이 시작되면 좋은 자리도 편치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바로 그런 사람들이 나옵니다.
잔칫상에 초대받아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집 문 앞에서 돈 이야기부터 먼저 꺼냅니다.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먼저 본문의 배경을 잡겠습니다.
가나안 땅에는 흉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지난번에 애굽에 한 번 다녀왔습니다.
그 길은 좋지 않았습니다.
정탐꾼으로 몰려 사흘 갇혔고, 시므온은 볼모로 남겨 두고 와야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자루를 풀었더니 곡식 값으로 낸 돈이 그대로 들어 있었습니다.
그 돈을 도로 넣게 한 사람은 요셉이었습니다.
> **창세기 42장 25절**
> 명하여 곡물을 그 그릇에 채우게 하고 각 사람의 돈은 그의 자루에 도로 넣게 하고
그러나 형들은 이 사실을 모릅니다.
그들에게 그 돈은 설명할 수 없는 돈, 언제 문제가 될지 모르는 돈이었습니다.
이제 그 형제들이 막내 베냐민을 데리고 두 번째로 내려갑니다.
아버지 야곱은 아들들을 떠나보내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 **창세기 43장 14절**
>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기도를 기억해 두십시오.
오늘 설교 끝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여러분이 깨끗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알기도 전에 값이 이미 치러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세 가지로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묻지도 않았는데 결백부터 꺼냈습니다.**
둘째,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셋째, **두려운 채로 앉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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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묻지도 않았는데 결백부터 꺼냈습니다
2196자
### 1) 요셉의 지시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베냐민을 데리고 온 형들을 보고 요셉이 청지기에게 지시합니다.
> **창세기 43장 16절**
> 요셉은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 자기의 청지기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정오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
요셉의 입에서 나온 말을 그대로 보십시오.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정오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라고 합니다.
조사하겠다는 말도, 재판하겠다는 말도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요셉이 왜 이렇게 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용서하려고 그랬다는 말도, 시험하려고 그랬다는 말도 본문에 없습니다.
요셉의 속마음은 두 장을 더 가야 열립니다.
오늘은 본문이 말한 데까지만 보겠습니다.
상이 차려졌다는 것뿐입니다.
### 2) 형들은 그 초대를 위협으로 읽습니다
초대받은 사람들의 반응이 이렇습니다.
> **창세기 43장 18절**
> 그 사람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 이르되 전번에 우리 자루에 들어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드는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로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한 사건인데 읽기가 둘로 갈립니다.
요셉 쪽의 사실은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입니다.
형들 쪽의 해석은 "우리를 노예로 삼으려 함이로다"입니다.
상이 차려지고 있는데 형들은 감옥을 보고 있습니다.
18절이 밝힌 두려움의 근거는 자루 속 돈입니다.
요셉을 판 이야기는 이 절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그 돈이 그토록 무서운 물건이 되었습니까.
이 사람들이 이미 스스로 뱉어 놓은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애굽 길에서 사흘 동안 갇혀 있을 때였습니다.
거기서 아무도 요셉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형들끼리 이렇게 말했습니다.
> **창세기 42장 21절**
>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스스로 유죄를 인정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설명 안 되는 돈 하나면 됩니다.
그 하나가 지난 일을 다 끌고 올라옵니다.
이것은 이 형제들만의 모습이 아니라 성경이 첫 사람에게서부터 보여 주는 모습입니다.
아담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열매를 먹은 다음이었습니다.
동산을 거니시는 하나님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때까지 하나님은 아직 아무 벌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이름을 부르셨을 뿐입니다.
> **창세기 3장 9절과 10절**
>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부르시는 소리가 무서워졌습니다.
지은 죄가 있는 사람에게는 은혜도 위협으로 들립니다.
### 3) 묻기도 전에 결백부터 내놓습니다
겁에 질린 형들은 집에 들어가기도 전에 청지기를 붙잡고 먼저 말을 꺼냅니다.
> **창세기 43장 20절부터 22절**
> 이르되 내 주여 우리가 전번에 내려와서 양식을 사가지고 여관에 이르러 자루를 풀어본즉 각 사람의 돈이 전액 그대로 자루 아귀에 있기로 우리가 도로 가져왔고 양식 살 다른 돈도 우리가 가지고 내려왔나이다 우리의 돈을 우리 자루에 넣은 자는 누구인지 우리가 알지 못하나이다
세 마디를 나누어 보십시오.
그 돈은 도로 가져왔다고 합니다.
살 돈은 따로 더 가져왔다고 합니다.
누가 넣었는지 우리는 모른다고 합니다.
세 마디가 결국 우리는 깨끗하다는 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 결백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바로 한 장 뒤에서 무너집니다.
요셉의 은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나오는 장면입니다.
형들은 자기들의 결백을 증명할 길이 없어집니다.
그때 유다가 이렇게 말합니다.
> **창세기 44장 16절**
>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낼 길이 없다는 말입니다.
자기 결백을 자리의 근거로 삼은 사람은 결국 여기까지 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도 이 계산을 합니다.
예배에 오면서 이번 한 주 내가 어땠는지 셉니다.
말씀을 읽었는가, 기도했는가, 그 죄를 또 지었는가.
셈이 맞지 않으면 마음이 뒤로 물러섭니다.
나중에 정리가 좀 되면 가겠다고 미룹니다.
그 마음이 하는 일은 형들이 문 앞에서 한 일과 똑같습니다.
---
둘째,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1870자
### 1)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온 대답
변명을 쏟아 놓은 사람들에게 청지기가 대답합니다.
> **창세기 43장 23절**
> 그가 이르되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하고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이끌어내고
죄를 캐물을 줄 알았는데 첫마디가 평안을 비는 인사였습니다.
게다가 애굽 총리 집 청지기의 입에서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누가 시킨 말인지 본문은 밝히지 않습니다.
그 집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사실만 남아 있습니다.
### 2) 한 절 안에서 두 말이 갈립니다
청지기는 자루 속에 들어 있던 그것을 "돈"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재물"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너희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것이라고 합니다.
형들이 증거물로 여기던 물건을 선물이라고 다시 불러 준 것입니다.
성경 원문에서도 이 두 말은 서로 다른 단어입니다.
자루 속 그것을 가리키는 말은 감추어 둔 보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갚아야 할 그 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이 반절이 본문의 심장입니다.
형들이 무서워한 것은 갚지 못한 값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값은 벌써 끝나 있었습니다.
형들이 알기도 전에 끝나 있었습니다.
### 3) 형들은 값을 치른 적이 없습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세 번 반복합니다.
첫 번째는 42장 25절, 돌아가는 길에 돈이 자루로 도로 들어간 일입니다.
두 번째가 오늘 23절, 값은 이미 받았다는 선언입니다.
세 번째는 잔치가 끝나고 길을 떠나는 아침, 44장 1절입니다.
> **창세기 44장 1절**
> 요셉이 그의 집 청지기에게 명하여 이르되 양식을 각자의 자루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자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세 번 다 형들 모르게 일어난 일입니다.
성경은 그 값을 누가 지불했는지 밝혀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돈을 도로 넣게 한 손이 요셉의 손이었다는 것만 적어 놓았습니다.
본문이 말하지 않은 것을 채워 넣지는 않겠습니다.
값 문제는 그들이 모르는 사이에 진작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 4) 성경은 이것을 가려짐이라고 부릅니다
이 은혜를 노래한 사람이 다윗입니다.
죄를 숨기는 동안 뼈가 쇠하는 것 같았다가, 그 죄를 자복한 뒤에 쓴 노래입니다.
> **시편 32편 1절**
>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가려졌다는 말입니다.
없던 일이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로부터 천 년쯤 지나 바울이 로마 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사람이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받는가를 설명하는 대목이었습니다.
바울은 거기서 다윗의 이 노래를 그대로 가져다 씁니다.
> **로마서 4장 7절과 8절**
>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바울이 이 인용에 붙인 설명이 있습니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값을 치른 적이 없는데 셈이 끝나 있는 것.
형들이 그 문 앞에서 들은 말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값은 누가 치렀습니까.
요셉의 이야기는 거기까지는 말해 주지 않습니다.
같은 편지의 조금 뒤에서 바울이 그 값을 밝힙니다.
> **로마서 5장 8절**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입니다.
우리가 돌이키기 전입니다.
우리가 알기도 전입니다.
바로 그때 값이 치러졌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오늘 이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는 근거도 이번 한 주 내 성적표가 아닙니다.
내가 알기도 전에 그분이 치르신 값입니다.
---
셋째, 두려운 채로 앉혀졌습니다
3286자
### 1) 형들은 여전히 무언가를 내밀려 합니다
정오가 되어 요셉이 집으로 들어옵니다.
> **창세기 43장 26절**
> 요셉이 집으로 오매 그들이 집으로 들어가서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땅에 엎드려 절하니
여기서도 본문을 넘지 않겠습니다.
26절은 드렸다는 데까지이고, 요셉이 받았다는 말은 없습니다.
값이 끝났다는 말을 듣고도 형들은 또 무언가를 내밉니다.
왜 그랬는지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다시 무언가를 내밀었다는 행동만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 행동이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도 무언가를 내야 이 자리가 안전해진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 2) 상은 아직 한 상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 상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 **창세기 43장 32절**
> 그들이 요셉에게 따로 차리고 그 형제들에게 따로 차리고 그와 함께 먹는 애굽 사람에게도 따로 차리니 애굽 사람은 히브리 사람과 같이 먹으면 부정을 입음이었더라
상이 셋입니다.
요셉의 상이 따로 있고, 형제들의 상이 따로 있습니다.
함께 먹는 애굽 사람들의 상도 따로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과 겸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절을 빼놓으면 오늘 본문을 잘못 읽게 됩니다.
43장은 화해가 다 끝난 장이 아닙니다.
겸상도 못 하는 사이인데 상이 먼저 차려진 것입니다.
이 상은 형들의 죄를 없던 일로 만든 상이 아닙니다.
43장 전체에 죄 이야기가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청지기도 요셉도 형들도 그 일을 입에 올리지 않고, 용서한다는 말도 없습니다.
오히려 바로 다음 장에서 유다가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다는 말입니다.
은혜는 죄를 덮으면서 동시에 그 죄를 회개의 자리로 데려갑니다.
그리고 형들은 지금 자기 앞에 앉은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요셉이라" 하는 그 말은 두 장 뒤에 옵니다.
창세기 45장 3절에 가서야 나옵니다.
그런데 은혜는 그 선포보다 먼저 일하고 있었습니다.
### 3) 다 알고 앉혔습니다
> **창세기 43장 33절**
> 그들이 요셉 앞에 앉되 그들의 나이에 따라 앉히게 되니 그들이 서로 이상히 여겼더라
열한 형제가 맏이부터 막내까지 순서대로 앉혀졌습니다.
누가 이렇게 앉혔는지 33절은 밝히지 않습니다.
"앉히게 되니"라고만 적혀 있습니다.
처음 만난 애굽 총리가 알 수 없는 순서입니다.
그래서 서로 이상히 여겼습니다.
형들은 이 사람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상을 차리게 한 쪽은 형들을 다 알고 있습니다.
이름도 알고 태어난 순서도 압니다.
요셉이 열일곱 살에 팔려 갔으니 이십여 년 전 일입니다.
그 구덩이에서 있었던 일까지 압니다.
**다 아시면서, 상에 앉히십니다.**
몰라서 받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 4) 아버지의 기도가 여기서 응답됩니다
서론에서 기억해 두시라고 한 기도가 있습니다.
야곱은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를 원한다고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본문이 보여 줍니다.
요셉이 친동생 베냐민을 알아본 순간입니다.
> **창세기 43장 30절**
> 요셉이 아우를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야곱이 구한 그 "은혜"와 30절에서 복받친 그 "마음"은 성경 원문에서 같은 단어입니다.
14절에서 아버지의 기도가 올라갔습니다.
30절에서 그 단어가 그 사람 안에서 터집니다.
43장은 기도와 응답이 같은 말로 닫히는 장입니다.
그런데 형들은 자기들을 위해 무엇이 움직이는지 모른 채 그 상에 앉아 있습니다.
### 5) 두려움이 가셔서 앉은 것이 아닙니다
> **창세기 43장 34절**
> 요셉이 자기 음식을 그들에게 주되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다섯 배나 주매 그들이 마시며 요셉과 함께 즐거워하였더라
노예로 끌려갈 줄 알고 들어온 사람들이 지금 마시며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왜 하필 다섯 배인지 본문은 밝히지 않습니다.
밝히지 않은 것은 그대로 두겠습니다.
형들은 두려움이 가셔서 앉은 것이 아닙니다.
**두려운 채로 앉혀졌습니다.**
자리의 근거는 그들의 마음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 바깥에서 벌써 끝나 있던 일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음이 정리되어야 앉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리되지 않은 채로 앉아 있어도 됩니다.
### 6) 이 상이 가리키는 곳
이 대접의 배후가 무엇이었는지는 창세기 자신이 설명합니다.
두 장 뒤에 요셉이 자기 정체를 밝히는 장면입니다.
> **창세기 45장 5절**
>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아버지 야곱이 죽은 뒤 형들이 다시 두려워할 때에도 요셉의 대답은 같았습니다.
> **창세기 50장 20절**
>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이 이야기를 그대로 읽어 낸 사람이 또 있습니다.
유대 공회 앞에 끌려가 재판을 받던 스데반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처음부터 훑어 나가다가 요셉을 이렇게 말합니다.
> **사도행전 7장 9절**
>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같은 설교의 끝에서 스데반은 이 흐름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말합니다.
> **사도행전 7장 52절**
>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스데반의 설교는 이 흐름을 담고 있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미워해 팔았듯이, 이스라엘도 하나님이 보내신 의인을 미워해 죽였습니다.
그런데 팔려 간 요셉이 도리어 형들을 살리는 사람이 되었던 것처럼,
배척당한 그 의인도 생명의 통로가 되셨습니다.
성경은 그 길이 한 분에게서 끝났다고 말합니다.
요셉은 값이 끝났다는 소식을 청지기의 입으로 전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기 피로 그 값을 치르셨습니다.
성전 안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휘장 안쪽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서는 그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열렸다고 말합니다.
그 길을 여신 분이 누구인지도 함께 말합니다.
> **히브리서 10장 19절부터 22절**
>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담력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내 마음이 깨끗해져서가 아닙니다.
예수의 피를 힘입어서입니다.
---
결론 — 두려운 채로 앉으십시오
1293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오늘 본문을 정리하겠습니다.
형들은 초대를 받고도 끌려간다고 읽었습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문 앞에서 결백부터 꺼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결백에 대한 판정이 아니었습니다.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값을 치른 적이 없는데 셈은 끝나 있었습니다.
겸상도 못 하는 사이인데 상은 먼저 차려져 있었습니다.
**값은 이미 치러졌습니다.**
**그러므로 이곳은 내가 지켜 내야 하는 곳이 아니라 이미 나에게 주어진 자리입니다.**
**그러니 두려운 채로 앉으십시오.**
두려움을 없애고 나서, 마음이 정리되고 나서 앉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형들도 떨면서 앉았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 오해를 덜어 드리겠습니다.
하나는 값이 다 치러졌으면 마음대로 살아도 되지 않느냐는 생각입니다.
성경이 보여 주는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이 상을 받은 바로 다음 장에서, 베냐민이 종으로 잡힐 위기에 유다가 나섭니다.
아우 대신 자기가 종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44장 33절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 온 것은 느슨함이 아니었습니다.
또 하나는 나는 자격이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형들은 자격이 생겨서 앉은 것이 아닙니다.
앉히신 분이 앉히셨기 때문에 앉은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앉히신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 앞에서 두 가지를 결단하고자 합니다.
**결단 1 — 정리하고 오지 말고 그냥 오십시오.**
형들은 묻지도 않았는데 돈 이야기부터 꺼냈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너희는 안심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우리도 묻기 전에 해명부터 준비합니다.
소그룹에서 "요즘 괜찮아요" 한마디로 넘어갑니다.
이번 주에는 그 한마디 대신 이렇게 말해 보십시오.
"수련회 때 정한 그거, 저 못 지키고 있습니다."
정리하고 나서 말하려고 하면 그날은 오지 않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채로 그 자리에 앉으십시오.
**결단 2 — 기도의 첫 문장을 바꾸십시오.**
우리 기도는 사과와 변명으로 시작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 제가 요즘 이래서 죄송하고, 사실 이런 사정이 있었고.
그렇게 시작하면 기도가 아니라 해명이 됩니다.
이번 주 기도는 오늘 본문 23절 두 문장을 소리 내어 읽고 시작하십시오.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자리의 근거를 내 상태에서 그분이 치르신 값으로 옮기는 연습입니다.
여러분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여러분이 깨끗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알기도 전에 값이 이미 치러졌기 때문입니다.
그 값을 힘입어 두려운 채로 그 자리에 앉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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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제목
142자
1. 나아갈 자격을 내 상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치르신 값에서 찾게 하소서.
2. 정리된 다음에 가겠다고 미루지 말고, 무너진 채로 앉는 믿음을 주소서.
3. 받은 은혜가 느슨함이 아니라 형제를 위해 나를 내놓는 데까지 우리를 데려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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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질문
144자
1.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먼저 해명을 꺼낸 적이 있나요? 그때 마음에 걸린 것은 무엇이었나요?
2. 예배나 기도로 나아갈 때 "이번 주 나는 어땠는가"를 자격으로 계산한 적이 있나요?
3. 이번 주 소그룹에서 정리되지 않은 채로 꺼내 볼 한 문장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