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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026082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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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운 채로 앉았습니다

목사samuel
예배청년부
본문창세기 43:16-34
날짜2026-08-23 (일)
📝 정식
📋 간략

정식 = 가이드 §10 (말씀 요약 + 본문 이해 + 질문 + 적용). 간략 = 1장, 질문 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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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별 본문 (7개)

봉독 — 창세기 43장 16절부터 34절

1290자
> 16 요셉은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 자기의 청지기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정오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 > 17 청지기가 요셉의 명대로 하여 그 사람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니 > 18 그 사람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 이르되 전번에 우리 자루에 들어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드는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로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하고 > 19 그들이 요셉의 집 청지기에게 가까이 나아가 그 집 문 앞에서 그에게 말하여 > 20 이르되 내 주여 우리가 전번에 내려와서 양식을 사가지고 > 21 여관에 이르러 자루를 풀어본즉 각 사람의 돈이 전액 그대로 자루 아귀에 있기로 우리가 도로 가져왔고 > 22 양식 살 다른 돈도 우리가 가지고 내려왔나이다 우리의 돈을 우리 자루에 넣은 자는 누구인지 우리가 알지 못하나이다 > 23 그가 이르되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하고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이끌어내고 > 24 그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고 물을 주어 발을 씻게 하며 그들의 나귀에게 먹이를 주더라 > 25 그들이 거기서 음식을 먹겠다 함을 들었으므로 예물을 정돈하고 요셉이 정오에 오기를 기다리더니 > 26 요셉이 집으로 오매 그들이 집으로 들어가서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땅에 엎드려 절하니 > 27 요셉이 그들의 안부를 물으며 이르되 너희 아버지 너희가 말하던 그 노인이 안녕하시냐 아직도 생존해 계시느냐 > 28 그들이 대답하되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평안하고 지금까지 생존하였나이다 하고 머리 숙여 절하더라 > 29 요셉이 눈을 들어 자기 어머니의 아들 자기 동생 베냐민을 보고 이르되 너희가 내게 말하던 너희 작은 동생이 이 아이냐 그가 또 이르되 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 30 요셉이 아우를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 31 얼굴을 씻고 나와서 그 정을 억제하고 음식을 차리라 하매 > 32 그들이 요셉에게 따로 차리고 그 형제들에게 따로 차리고 그와 함께 먹는 애굽 사람에게도 따로 차리니 애굽 사람은 히브리 사람과 같이 먹으면 부정을 입음이었더라 > 33 그들이 요셉 앞에 앉되 그들의 나이에 따라 앉히게 되니 그들이 서로 이상히 여겼더라 > 34 요셉이 자기 음식을 그들에게 주되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다섯 배나 주매 그들이 마시며 요셉과 함께 즐거워하였더라 ---

서론 — 문 앞에서 연습한 말

1436자
오늘 여러분께 하나 여쭙고 싶습니다. 한참 연락이 끊겼던 사람에게서 밥 한번 먹자는 연락이 오면,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대개는 반갑습니다. 그런데 반가운데도 가는 길이 영 편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갚지 못한 것이 있을 때입니다. 돈일 수도 있고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식당까지 가는 그 길에서 할 말을 연습합니다. 몇 번씩 고쳐 가며 연습합니다.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첫마디가 이렇게 나옵니다. "그거 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상대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밥을 사겠다고 부른 것뿐입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 사람은 초대를 초대로 듣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에 정확히 그런 사람들이 나옵니다. 잔칫상에 초대를 받아 놓고, 문턱을 넘기도 전에 돈 이야기부터 꺼내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부터 보겠습니다. 가나안에 흉년이 길어졌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곡식을 사러 애굽에 한 번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그 길이 좋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총리 앞에서 정탐꾼으로 몰렸고, 사흘을 갇혔고, 시므온을 볼모로 남겨 둔 채 돌아와야 했습니다. 돌아와서 자루를 풀었더니 곡식 값으로 냈던 돈이 그대로 들어 있었습니다. 형들에게 그 돈은 설명할 수 없는 돈이었습니다. 언제 발목을 잡을지 모르는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돈을 누가 넣었는지 성경은 이미 밝혀 두었습니다. 창세기 42장 25절입니다. "각 사람의 돈은 그의 자루에 도로 넣게 하고." 넣으라고 명한 사람이 그 총리였고, 그 총리가 요셉이었습니다. 형들만 그것을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자기를 살리려고 넣어 준 돈을 자기를 잡으려고 놓아둔 덫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 오해를 그대로 안은 채, 스물두 해 만에 다시 그 문 앞에 섭니다. 이번에는 막내 베냐민까지 데리고 내려가야 했습니다. 요셉을 잃고 시므온마저 잃은 늙은 아버지가 마지막 아들을 내어놓으며 이렇게 기도합니다. 창세기 43장 14절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이 기도를 기억해 두십시오. 오늘 설교가 끝나기 전에, 이 기도가 어느 방에서 응답되는지 보게 됩니다. 이제 본문입니다. 16절에서 요셉이 청지기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짐승을 잡으라, 준비하라, 정오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취조 준비가 아닙니다. 잔치 준비입니다. 그런데 그 집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속은 정반대였습니다. 18절입니다. "그 사람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 한쪽에서는 상을 차리는데, 다른 쪽에서는 노예가 될 준비를 합니다. 같은 대문이고 같은 걸음인데 해석이 정반대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우리가 그 상에 앉아 있는 것은 우리가 깨끗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알기도 전에 값이 이미 치러졌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을 세 걸음으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첫째, 두려운 채로 변명합니다

1696자
그 땅에서 총리의 집에 초대받는 것보다 좋은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문턱에서 형들이 무엇을 보았는지 보십시오. 18절 뒷부분입니다.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노예로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한다고 했습니다. 아무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초대장 한 장을 받아 들고 혼자서 판결문까지 다 읽어 낸 것입니다. 왜 그렇게 읽었겠습니까. 이미 마음에 걸려 있는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여행에서 감옥을 나오던 날, 총리가 알아듣는 줄도 모르고 자기들끼리 주고받은 말이 성경에 남아 있습니다. 창세기 42장 21절입니다.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스물두 해가 지났는데 그 일이 아직 그들 안에 살아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부르는 소리가 추궁으로 들립니다. 초대장이 소환장으로 읽힙니다. 여러분도 그런 예배가 있지 않으십니까. 오늘 말씀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나를 지목하는 소리로만 들리는 예배 말입니다. 그러면 은혜의 자리에 앉아서 도망갈 궁리를 하게 됩니다. 두려워진 사람이 그다음에 무엇을 하는지 19절이 보여 줍니다. 그들이 청지기에게 가까이 나아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가 "그 집 문 앞"입니다. 문지방을 넘기 전에 붙잡은 것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늦는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러고는 묻지도 않은 지난 이야기부터 꺼냅니다. 내 주여, 우리가 전번에 내려와서 양식을 사가지고, 하며 여관에서 자루를 풀던 밤까지 되짚어 갑니다. 청지기는 아직 한마디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손님 쪽에서 아무도 열지 않은 서류철을 자기 손으로 펼쳐 보입니다. 그 해명이 이렇게 끝납니다. 22절입니다. "우리의 돈을 우리 자루에 넣은 자는 누구인지 우리가 알지 못하나이다." 세 번을 말했습니다. 도로 가져왔다, 살 돈도 따로 가져왔다, 넣은 사람은 모른다. 두려움은 사람을 조용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이 많아지게 만듭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기도를 시작하면서 사정부터 길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아직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를 더 보셔야 합니다. 그들이 그토록 열심히 증명하는 항목이 무엇입니까. 곡식 값입니다. 그 돈에 관한 한 이 사람들은 실제로 결백합니다. 증거까지 손에 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든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을 스물두 해 동안 눌러 온 것은 곡식 값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처음 손에 쥐어 본 문제의 돈은 따로 있었습니다. 도단 들판에서였습니다. 구덩이에 던져 둔 동생을 두고 형들이 상인들과 값을 흥정했습니다. 창세기 37장 28절입니다.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동생을 넘기고 받은 돈이 은 이십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목숨 걸고 변호하는 것은 곡식 값입니다. 우리에게는 변명할 수 있는 항목이 있습니다. 그보다 훨씬 무거운데 입 밖에 내지 못하는 항목이 따로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바로 이 자리를 짚었습니다. 로마서 3장 19절입니다. "이는 모든 입을 막고." 바울은 유대인도 이방인도 자기 힘으로는 아무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고 길게 논증한 끝에 이 한마디에 도착합니다. 입을 조금 막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입입니다. 우리가 변호할 수 있는 항목과 우리를 실제로 무겁게 하는 항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청년 여러분, 문 앞에서 준비한 말은 잠깐 내려놓으십시오. 그 문 안에서 들을 말은 우리가 준비한 말에 대한 대답이 아닙니다.

둘째, 두려운 채로 듣습니다

2016자
형들이 문 앞에서 쏟아 놓은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돈 이야기였습니다. 그 말을 다 들은 청지기가 입을 엽니다. 그런데 돌아온 첫마디가 그들이 설명한 것에 대한 답이 아닙니다. 그들이 감추려던 것에 대한 답입니다. 23절입니다.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돈의 출처를 캐던 사람들에게 돌아온 첫마디가 두려워하지 말라입니다. 그다음 말은 더 놀랍습니다.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이 말을 한 사람은 애굽 사람 청지기입니다. 여러 신을 섬기던 땅의 관리 입에서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이름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건네시는 첫마디가 자주 이렇습니다. 이사야 41장 10절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이 말씀은 곧 나라가 무너져 낯선 땅으로 끌려갈 백성이 들은 말씀입니다. 가진 것을 다 잃게 될 사람들이 가장 먼저 들은 말이 이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아직 문 앞에서 변명을 늘어놓는 동안, 하나님은 이미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두려워하지 말라보다 더 앞선 말이 같은 절 안에 있습니다. 오늘 설교의 심장입니다.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시제를 보십시오. 받겠다가 아닙니다. 이미 받았다입니다. 그들이 자루에서 돈을 발견하고 놀라기 훨씬 전에, 그 값은 이미 처리되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지금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지 보십시오. 손에는 갑절의 돈이 들려 있습니다. 지난번 것과 이번 것을 합쳐 넉넉히 치르려고 밤새 세어 온 돈입니다. 그런데 그 준비가 전부 필요 없었습니다. 우리가 선 자리도 똑같습니다. 베드로가 흩어져 살던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확인시켜 준 것도 값의 문제였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18절과 19절입니다.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은도 아니고 금도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자루에 넣어 갈 수 있는 종류의 값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값은 언제 치러졌습니까. 우리가 회개를 마치고 삶을 정리한 다음입니까. 로마서 5장 8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라고 했습니다. 형들이 문 앞에서 변명하는 동안 값이 이미 치러져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했을 때 십자가가 이미 세워졌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23절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이끌어냈다고 했습니다. 시므온은 정탐꾼이 아님을 증명하기 전에는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붙잡혀 있던 형제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냥 걸어 나옵니다. 조건을 채웠다는 확인도 없고, 몸값을 내라는 요구도 없습니다. 24절에서는 대접이 시작됩니다. 집 안으로 인도되고, 발 씻을 물을 받고, 나귀까지 먹이를 받습니다. 죄인을 다루는 방식이 아니라 손님을 맞는 방식입니다. 여기까지 왔으면 이제 마음이 놓일 만합니다. 그런데 25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한 일은 아버지가 싸 준 예물을 다시 꺼내 정돈하는 일이었습니다. 아직도 무엇인가를 내놓아야 이 자리가 유지된다고 여긴 것입니다. 이 사람들을 나무라기 전에 우리 손을 한번 보십시오. 미가 시대의 이스라엘도 같은 손을 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면목이 없어지자 무엇을 가지고 가야 이 관계가 회복될지 계산을 시작합니다. 그 계산이 이렇게 올라갑니다. 미가 6장 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숫양 천 마리에서 기름 만 줄기까지 값이 계속 올라갑니다. 값을 올릴수록 마음이 편해질 것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합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해 놓고 그다음 주부터 무엇인가로 갚으려 합니다. 봉사를 하나 더 맡고 새벽 기도를 며칠 더 나가서,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을 스스로 만들어 둡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 예물을 받고도 상을 물리지 않습니다. 청년 여러분, 우리 손에 아직 예물이 들려 있어도 그 상은 취소되지 않습니다.

셋째, 두려운 채로 앉습니다

2208자
정오가 되어 요셉이 집으로 들어옵니다. 26절에서 형제들이 예물을 드리고 땅에 엎드려 절합니다. 이 사람은 물을 것이 아주 많은 사람입니다. 구덩이에 대해, 은 이십에 대해, 아버지를 속인 그날에 대해 물을 자격이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27절에서 그가 꺼낸 첫 질문이 무엇입니까. "너희 아버지 너희가 말하던 그 노인이 안녕하시냐." 심문이 아니라 안부입니다. 예수님이 이런 마음을 이야기로 들려주신 적이 있습니다. 재산을 미리 받아 나간 아들이 그것을 다 탕진하고 돌아옵니다. 그 아들도 돌아오는 길 내내 할 말을 연습했습니다.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으니 품꾼으로만 봐 달라고 말할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누가복음 15장 20절입니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직도 거리가 먼데입니다. 준비한 대사를 다 듣고 판단하신 것이 아닙니다. 죄를 묻기 전에 안부를 묻는 것, 그것이 그 마음이 이미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29절에서 요셉이 눈을 들어 베냐민을 봅니다. 어머니가 같은 동생입니다. 스물두 해 전 집을 떠날 때는 어린아이였습니다. 그 얼굴을 보고 요셉이 이렇게 말합니다. "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이 말을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서론에서 기억해 두시라고 부탁드린 그 기도입니다. 가나안의 늙은 아버지가 아들들을 보내며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라고 구했습니다. 그 기도의 말이 지금 애굽의 그 사람 입에서 그대로 흘러나옵니다. 아버지는 자기 기도가 응답되는 장면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는 그 방에서 응답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30절에서 그 사람이 무너집니다. 아우를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었다고 했습니다. 급히 찾았다고 합니다. 참으려 했는데 참아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애굽의 총리가 자기 집 안방으로 뛰어 들어가 혼자 웁니다. 아버지가 구한 그 긍휼이 이 방에서 터진 것입니다. 그가 얼굴을 씻고 나옵니다. 그리고 31절에서 명령을 내립니다. 조사하라가 아니었습니다. 음식을 차리라였습니다. 아직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형들은 자기들이 누구 앞에 서 있는지도 모릅니다. 죄가 덮여서 상이 차려진 것이 아닙니다. **죄가 아직 다뤄지지도 않았는데 상이 먼저 차려진 것입니다.** 다윗도 이런 상을 받아 본 사람입니다. 시편 23편 5절입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상황이 정리된 다음에 차려진 상이 아닙니다. 원수가 아직 눈앞에 있는데 그 앞에서 차려진 상입니다. 그러면 그 상이 어떤 상이었는지, 미화하지 말고 그대로 보셔야 합니다. 32절입니다. "그들이 요셉에게 따로 차리고 그 형제들에게 따로 차리고 그와 함께 먹는 애굽 사람에게도 따로 차리니." 상이 하나가 아닙니다. 셋입니다. 요셉 따로, 형제들 따로, 애굽 사람들 따로입니다. 겸상이 아닙니다. 형제들은 요셉의 음식을 먹지만 요셉과 마주 앉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가 붙들 자리입니다. **겸상도 못 했는데 상은 이미 차려졌습니다.** 저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채로, 마음이 하나도 정리되지 않은 채로 그들은 그 집 안에서 먹고 있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요셉 앞에 앉되 나이에 따라 앉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자기들이 고른 자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순서가 나이 순서입니다. 애굽의 관리가 알 수 없는 정보입니다. 이유는 모르는데, 자리는 이미 정확히 자기 것이었습니다. 우리 자리도 그렇게 정해졌습니다. 에베소서 2장 13절입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멀리 있던 사람을 가깝게 만든 것은 그 사람의 노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였습니다. 오늘 세 개로 나뉜 그 상이 언젠가 하나가 되는 것도, 값을 치르신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두려워 떨며 변명하던 사람들의 하루가 어떻게 끝나는지 보십시오. 34절입니다.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다섯 배나 주매 그들이 마시며 요셉과 함께 즐거워하였더라." 베냐민의 몫은 다섯 배였습니다. 요구하지도 않았고 계산하지도 않은 몫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이 즐거워하였더라입니다. 두려움이 다 가신 다음에 앉은 것이 아닙니다. 두려운 채로 앉았더니, 앉은 그 자리에서 두려움이 풀린 것입니다.

결론 — 두려운 채로 앉으십시오

1353자
오늘 이 사람들이 걸어온 길을 한 줄로 이어 보겠습니다. 두려우면 변명하게 되고, 변명하던 입이 막히면 그제야 값이 치러졌다는 말이 들리고, 그 말을 들었으면 정리되지 않은 채로 그 상에 앉는 것입니다. 앉는 것이 마지막입니다. 정리하는 것이 마지막이 아닙니다. 처음의 그 길로 돌아가겠습니다. 밥 한번 먹자는 연락을 받고, 갚지 못한 것을 떠올리며 할 말을 연습하던 그 길 말입니다. 오늘 본문이 알려 준 것은 그 길에서 준비한 말이 필요 없다는 사실입니다. 값이 언제 치러졌는지를 바울이 가장 짧은 문장으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절과 4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우리가 그 죄를 다 정리한 다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 값을 알기도 전에 그리스도께서 치르셨습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이 예배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이번 주를 잘 살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한 가지는 짚고 가겠습니다. 상이 먼저 차려졌다고 해서 형들의 이야기가 여기서 끝난 것은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곧 한 번 더 시험 앞에 서게 되고, 그 자리에서 유다가 동생 대신 자기를 종으로 내어놓겠다고 나섭니다. 은혜가 회개보다 먼저 왔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가 회개를 건너뛰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먼저 받은 은혜가 사람을 정직한 자리로 데려갑니다. 이번 한 주간 두 가지를 함께 하기 원합니다. **첫째, 무너진 채로 그 자리에 앉겠습니다.** 수련회에서 세운 것이 지금 무너져 있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조용히 빠질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이번 주일, 그 자리에 그대로 앉으십시오. 앉으시면서 속으로 이 한 문장만 올려 드리십시오. **"하나님, 저 아직 정리 못 했습니다. 그래도 앉습니다."** 정리한 다음에 앉으려 하면, 그날은 오지 않습니다. **둘째, 값을 다시 치르려는 손을 내려놓겠습니다.** 이번 주에 반드시 그런 순간이 옵니다. 무엇인가를 더 해서 마음을 편하게 만들고 싶어지는 순간입니다. 그때 손을 멈추고 소리 내어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값은 이미 치러졌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는 봉사는 값이 아니라 감사가 됩니다. 성경은 우리 앞에 놓인 마지막 상을 이렇게 알려 줍니다. 요한계시록 19장 9절입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우리가 깨끗해진 다음에 차려지는 상이 아닙니다. 어린 양이 값을 치르셨기 때문에 차려지는 상입니다. 그러니 두려움이 가시기를 기다리지 마십시오. 두려운 채로 앉으십시오. 앉은 그 자리에서 두려움이 풀리는 것을 경험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제목

192자
1. 부르시는 음성을 추궁으로 듣지 않게 하시고, 문 앞에서 변명을 준비하는 대신 안으로 들어가 앉게 하옵소서. 2. 값이 이미 치러졌다는 선언을 우리 귀로 듣게 하시고, 손에 든 것으로 자격을 만들려는 마음을 내려놓게 하옵소서. 3. 무너진 것이 정리되기를 기다리다 예배 자리를 비우지 않게 하시고, 무너진 채로도 그 상 앞에 앉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