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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도입↔서론 / 본문↔본론 / 마무리↔결론 / 결단↔결단찬양 / 기도↔기도제목
섹션별 본문 (7개)
봉독 — 창세기 44장 18절부터 34절
1219자
> 18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당신의 종에게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아뢰게 하소서 주의 종에게 노하지 마소서 주는 바로와 같으심이니이다
> 19 이전에 내 주께서 종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아버지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 하시기에
> 20 우리가 내 주께 아뢰되 우리에게 아버지가 있으니 노인이요 또 그가 노년에 얻은 아들 청년이 있으니 그의 형은 죽고 그의 어머니가 남긴 것은 그뿐이므로 그의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하였더니
> 21 주께서 또 종들에게 이르시되 그를 내게로 데리고 내려와서 내가 그를 보게 하라 하시기로
> 22 우리가 내 주께 말씀드리기를 그 아이는 그의 아버지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그의 아버지가 죽겠나이다
> 23 주께서 또 주의 종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 막내 아우가 너희와 함께 내려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기로
> 24 우리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로 도로 올라가서 내 주의 말씀을 그에게 아뢰었나이다
> 25 그 후에 우리 아버지가 다시 가서 곡물을 조금 사오라 하시기로
> 26 우리가 이르되 우리가 내려갈 수 없나이다 우리 막내 아우가 함께 가면 내려가려니와 막내 아우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음이니이다
> 27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이르되 너희도 알거니와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 28 하나는 내게서 나갔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틀림없이 찢겨 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
> 29 너희가 이 아이도 내게서 데려 가려하니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하리라 하니
> 30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 31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 32 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 33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 34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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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한 사람이 남는 자리
662자
집안에 큰일이 생기면 형제가 여럿이어도 결국 한 사람이 남습니다. 병원 복도에서 밤을 지키는 사람 말입니다. 집안 어른이 편찮으시면 그 복도에 누가 서 있었는지, 우리도 대개는 알고 있습니다. 다른 형제들이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닙니다. 다들 사정이 있고 다들 할 만큼은 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손대지 않는 자리가 하나 남고, 거기에는 늘 한 사람이 남습니다.
오늘 본문에 그런 자리가 하나 열립니다. 가나안에 흉년이 길어져서 야곱의 아들들이 두 번째로 애굽에 내려갔습니다. 곡식을 사서 돌아가는 길에 총리의 청지기가 뒤를 쫓아왔습니다. 총리의 은잔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자루를 풀어 보니 그 잔이 막내 베냐민의 자루에서 나왔습니다. 형제들은 옷을 찢고 성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총리 앞에 다시 엎드린 그들에게 판결이 떨어집니다. 창세기 44장 17절입니다.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내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것이니라." 막내 하나만 두고 가면 됩니다. 나머지는 죄가 없다고 했습니다. 아무도 붙잡지 않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유다가 앞으로 나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이 사람이 어디에 남겠다고 했는가**입니다. 한 사람이 열어 놓은 자리 하나, 그리고 그 자리가 끝내 어떻게 되었는가입니다.
첫째, 돌아가도 되는 자리에서 한 걸음 나섭니다
884자
### 1) 돌아가라는 말은 협박이 아니라 허락이었습니다
방금 들으신 판결을 다시 보십시오. 너희는 평안히 아버지께로 올라가라고 했습니다. 겁을 주는 말이 아닙니다. 길을 열어 주는 말입니다. 여기서 돌아서면 아무도 그들을 잡지 않습니다.
돌아가도 되는 이유도 넉넉합니다. 12절을 보면 나이 많은 자에게서 시작해 나이 적은 자에게까지 조사했는데, 그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나왔습니다. 형제들이 그 잔을 넣은 것도 아닙니다. 억울한 것은 억울한 것이고, 법대로 하면 잔을 가진 사람이 남습니다. 이보다 깨끗하게 빠져나갈 길은 없습니다.
### 2) 엎드려 있던 자리에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그가 나아갑니다. 18절입니다.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이 짧은 말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바로 앞 14절에서 이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요셉의 집에 이르러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엎드려 있던 자리에서 앞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누구에게 나아갑니까. 유다가 자기 입으로 이렇게 부른 사람입니다. "주는 바로와 같으심이니이다." 애굽에서 바로 다음가는 사람, 방금 그 판결을 내린 사람입니다. 이미 떨어진 판결을 되돌려 달라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첫마디가 "주의 종에게 노하지 마소서"입니다. 노여움을 살 말을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아무도 붙잡지 않는 자리가 있습니다. 돌아서도 아무 일 없고, 지나쳐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자리 말입니다. 그런데 이 한 걸음을 흉내 내기 전에, 이것이 무엇을 향한 걸음이었는지 끝까지 봐야 합니다. 유다가 용감했다는 이야기로 끝나면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합니다.
앞으로 나간 사람이 입을 엽니다. 그런데 그 입에서, 당연히 나올 줄 알았던 말 하나가 끝내 빠져 있습니다.
둘째, 잔은 한 번도 꺼내지 않고 아버지만 부릅니다
1397자
### 1) 그 긴 말 안에 잔이 없습니다
19절부터 34절까지 유다의 말은 깁니다. 그런데 이 긴 말 안에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은잔 이야기가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훔치지 않았다는 말이 없습니다. 누가 넣었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없습니다. 베냐민이 그럴 아이가 아니라는 변호도 없습니다.
지금 자기 동생이 도둑으로 몰려 종이 되게 생겼습니다. 도둑이 아니라는 말 한마디면 될 것 같은데, 그 말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지키는 말도, 동생을 지키는 말도 없습니다.
없는 것을 세다 보면 있는 것이 보입니다.
### 2)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아버지입니다
이 긴 말을 채우고 있는 말이 따로 있습니다. **아버지입니다. 열일곱 번 나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아버지는 이 자리에 없습니다. 44장 어디에도 야곱은 나오지 않습니다. 열일곱 번 불린 사람이 정작 그 자리에 없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의 말은 유다가 옮기는 말 안에서만 들립니다. 27절과 28절입니다.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하나는 내게서 나갔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틀림없이 찢겨 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 여기서 말하는 그 아내는 라헬입니다. 라헬이 낳은 아들은 요셉과 베냐민입니다. 내게서 나간 그 하나는 요셉입니다.
형들은 요셉을 상인들에게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 옷에 염소 피를 적셔 아버지 앞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아버지는 그 옷을 보고 짐승이 아들을 찢었다고 알았습니다. 유다는 지금 그 이야기를 자기 입으로 꺼내고 있습니다. 왜 굳이 이 대목까지 꺼냈는지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유다의 말은 대부분 남의 말입니다. 총리가 물었던 말, 형제들이 대답했던 말, 아버지가 했던 말을 차례로 옮깁니다. 그러다 자기 말로 돌아오는 것은 그 긴 말이 거의 끝나갈 때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이 말이 놓입니다.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아이가 없으면 아버지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아이의 이름을 끝내 부르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아이, 막내 아우라고만 합니다. 대신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옮깁니다.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된다는 말입니다. 아버지가 요셉을 잃고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겠다고 했던 그 말입니다. 유다는 그것을 총리 앞에서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다가 지키려는 것은 자기 결백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서 있는 그 자리입니다. 우리도 우리를 지키는 말을 내려놓을 때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용기를 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보다 먼저 그 자리에 서서, 자기를 지키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으신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그토록 부른 그 말이 어디로 가는지가 아직 남았습니다. 아버지를 말한 사람은 이제 자기 몸으로 답해야 합니다.
셋째, 그 아이의 자리에 자기를 놓습니다
1717자
### 1) 말이 우리에서 나로 바뀝니다
잔이 나온 직후에 유다가 이미 한 번 입을 열었습니다. 16절입니다.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우리가 다 종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총리가 그 제안을 받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만 남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33절에서 유다가 다시 답합니다.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말이 바뀐 것을 들으셨습니까. 조금 전에는 우리였습니다. 지금은 나입니다. 혼자 지겠다고 하는 순간, 전부가 자기 몫이 됩니다.
유다는 이 긴 말 내내 자기를 주의 종이라고 부릅니다. 높은 사람 앞에서 하는 예의의 말입니다. 그런데 33절에 오면 그 말의 뜻이 바뀝니다. 주의 종으로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해 달라고 합니다. 한 문장 안에서, 예의로 하던 말이 진짜 신분이 됩니다.
이 말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32절입니다. "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지금 지어낸 말이 아닙니다.
애굽으로 내려오기 전, 가나안 집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버지가 베냐민을 내놓지 않으려 할 때 유다가 아버지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창세기 43장 9절입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자기를 걸었다는 말입니다. 아버지 앞에서 자기를 건 사람이, 지금 총리 앞에서 그 값을 치르겠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오래전 도단 들판에서 동생을 죽이지 말고 상인들에게 팔자고 먼저 말한 사람이 유다입니다. 그 사이에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본문이 보여 주는 것은 두 자리뿐입니다. 동생을 넘기자고 말하던 자리, 그리고 동생 대신 자기를 놓겠다고 말하는 자리입니다.
34절이 유다의 마지막 말입니다. 종이 되는 것이 두렵다고 하지 않습니다.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끝까지 아버지입니다.
### 2) 그는 이 자리를 열었지만 채우지 못했습니다
44장은 이 말을 들은 총리가 무엇을 느꼈는지 한 문장도 적지 않습니다.
그다음 장에서 요셉은 그 제안을 받지 않습니다. 유다는 애굽에 종으로 남지 않았고, 형제들과 함께 아버지에게로 올라갑니다. 유다는 걸 수 있는 것을 다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를 채우지는 못했습니다. **사람이 다 걸어도 그 자리는 비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자리가 있습니다. 걸 수 있는 것을 다 걸어도 채워지지 않는 자리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사람의 이름을 여기서 끝내지 않습니다. 야곱이 임종을 앞두고 아들들을 하나씩 불러 축복하는 날이 옵니다. 유다의 차례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창세기 49장 10절입니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실로는 사람들이 오래 물어 온 이름입니다. 오늘 우리가 붙들 것은 그 이름이 아니라 그 뒤에 붙어 있는 시간입니다. 규와 지팡이는 왕이 쥐는 것입니다. 이 집안에서 왕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뒤에 시간이 하나 열려 있습니다. 오시기까지, 라고 했습니다. 누군가 오실 때까지 그 왕좌가 지켜진다는 것입니다.
유다는 그 자리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가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가 아직 남았습니다.
결론 — 그 자리를 채우신 분
1565자
유다는 돌아가도 되는 자리에서 한 걸음 나섰고, 잔 대신 아버지를 불렀고, 그 아이의 자리에 자기를 놓았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 준 것이 이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를 채우지 못했습니다. 다 걸었는데도 그렇습니다. 그 자리는 사람이 채워서 되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야곱이 축복한 그 왕좌는 오래 비어 있었습니다. 그 지파에서 다윗이 났고, 그 다윗의 자손으로 한 분이 오셨습니다. 오시기까지, 라고 열려 있던 그 시간이 그분에게서 닫혔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왜 오셨는지 직접 말씀하신 날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주님 곁의 자리를 두고 다투던 날이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께 청했습니다. 주님의 영광 중에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나머지 제자들이 화를 냈습니다. 자리를 두고 다투는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우리가 오늘 내내 들어 온 두 가지가 이 한 절에 함께 있습니다. 하나는 섬기는 자리입니다. 유다가 그 긴 말 내내 자기를 종이라 부르던 그 자리입니다. 또 하나는 값입니다. 유다가 아버지 앞에서 자기를 걸며 하던 그 말입니다. 유다는 그것을 말로 걸었고, 예수님은 그것을 몸으로 치르셨습니다.
어디서 치르셨습니까. 아무도 남지 않은 자리에서 치르셨습니다. 자리를 두고 다투던 그 제자들이 다 도망한 뒤에, 그분 혼자 그 값을 치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거기 그대로 계시지 않았습니다. 사흘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유다가 열어 놓고 채우지 못한 그 자리를, 유다에게서 나신 분이 끝까지 채우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이번 한 주간 두 가지를 함께 하기 원합니다.
먼저, 이번 주에 한 번, 오 분만 혼자 앉으십시오. 그리고 오늘 봉독한 33절을 소리 내어 읽으십시오. "대신하여"라는 말이 나올 때 잠깐 멈추시고 그 자리에 누가 서셨는지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주님, 제 자리에 주님이 남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그렇게 앉았다가 일어나시면, 이번 주 어디선가 아무도 손대지 않은 자리 하나가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아무도 치우지 않는 일일 수도 있고, 아무도 먼저 연락하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고, 손이 모자라는 섬김일 수도 있습니다. 그중 하나만 가져오십시오. 가져오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주님, 제가 남겠습니다."** 우리가 그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말을 먼저 하신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집안에 큰일이 생기면 결국 한 사람이 남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병원 복도에서 밤을 지키는 그 한 사람 말입니다. 그 자리에 우리가 서기 전에, 우리 자리에 먼저 남으신 분이 계십니다. 우리가 아직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했을 때 그분이 그 밤을 지키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값을 치르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값이 이미 치러진 자리에서 걸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그렇게 걸어 나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제목
156자
1. 내 자리에 남으신 주님을 이번 한 주간 기억하게 하시고, 그 은혜 위에서 걸어가게 하옵소서.
2. 돌아가도 되는 자리에서 한 걸음 나가게 하시고, 우리를 지키는 말을 내려놓게 하옵소서.
3. 아무도 손대지 않은 자리 하나를 보게 하시고, 그 자리에서 주님을 섬기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