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20260919-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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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길에도 함께하시는 하나님 [풀원고]
목사samuel
예배청년부
본문창세기 46:1-7
날짜2026-09-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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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도입↔서론 / 본문↔본론 / 마무리↔결론 / 결단↔결단찬양 / 기도↔기도제목
섹션별 본문 (5개)
들어가는 말 — 좋은 소식을 들었는데도, 다음 걸음은 두려울 수 있습니다
1242자
여러분, 지난주 우리는 야곱에게 들려온 놀라운 소식을 살펴보았습니다. 죽은 줄로 알았던 요셉이 살아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처음에 야곱은 아들들의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전한 말을 듣고, 자신을 데려가기 위해 보낸 수레를 보면서 다시 기운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죽기 전에 아들을 만나러 가겠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창세기 45장이 끝납니다. (창45)
그러면 이제 어떻게 이야기가 이어져야 하겠습니까?
곧바로 애굽으로 가서 요셉을 만나면 될 것 같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우는 장면이 바로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재회 장면으로 곧장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 사이에 오늘 우리가 읽은 사건을 기록합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질문해야 합니다.
“요셉을 만나는 일 앞에, 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이 놓여 있을까?”
야곱에게 필요한 것은 아들이 살아 있다는 소식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제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자신만 잠시 다녀오는 여행이 아니라 가족과 소유를 이끌고 떠나는 이주입니다. 그리고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그의 가문에 약속하신 땅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동은 단순히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가는 문제로만 읽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창46)
우리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습니다.
원하던 학교에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려니 두렵습니다. 오래 기다린 취업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고, 새로운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감사한 일인데도 마음 한편에는 걱정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을 들었다고 해서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 길을 가도 되겠습니까?”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제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원하는 대답은 대개 구체적입니다. 언제 문제가 풀리는지,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잘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야곱에게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을 설명해 주지 않으십니다. 대신 하나님 자신이 누구신지, 그곳에서 무엇을 이루실지, 그리고 누구와 함께 가실지를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낯선 길 앞에 선 우리가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지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1. 갈림길에서는 좋은 조건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워야 합니다
3441자
본문 1–2절
### 1) 좋은 기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보충 본문: 창세기 26:1–3
먼저 본문 1절과 2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야곱은 이미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브엘세바에 이르러 아버지 이삭이 섬겼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립니다. 그 밤에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고 말씀하십니다. (창46)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요셉에게 가는 길에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면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야곱 앞에는 이미 좋은 조건들이 놓여 있습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높은 지위에 있습니다. 바로도 가족을 데려오라고 허락했습니다. 정착할 땅에 대한 제안도 있었고, 이동할 수레와 길에서 먹을 양식도 마련되었습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길이 열려 있습니다. (창45)
그런데 성경은 이 모든 조건을 보여 준 뒤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줍니다.
왜 이것이 중요합니까?
좋은 조건이 마련되었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은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창세기 26장 1–3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이삭의 시대에도 흉년이 들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 창세기 26:2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가나안에 머물도록 하시면서, 그곳에서 그와 함께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창26)
그런데 오늘 야곱에게는 애굽으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삭에게는 머물라고 하셨고, 야곱에게는 내려가는 길을 허락하십니다.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믿음은 단순히 앞사람의 행동을 똑같이 반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그곳에 머물렀다고 해서 아들도 언제나 같은 장소에 머물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이 어떤 길을 가서 잘되었다고 해서 나도 그 길을 따라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기준은 남이 어디로 갔느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느냐입니다.
물론 이것이 하나님의 기준이 그때그때 달라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특정한 시기에 주신 이동의 명령과, 모든 성도에게 주신 정직과 사랑과 거룩의 명령은 구별해야 합니다.
이삭에게 머물라고 하신 하나님과 야곱에게 내려가도록 하신 하나님은 다른 분이 아닙니다. 두 사람을 서로 다른 자리에서 이끄시면서도 같은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선택할 때 무엇을 가장 먼저 봅니까?
내게 유리한가를 봅니다. 사람들이 알아주는 자리인가를 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가를 봅니다. 이런 조건을 살펴보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 믿음은 아닙니다.
그러나 조건만 보고 결정한 다음, 마지막에 하나님께 허락을 받아내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미 결정했습니다. 이 일이 잘되게 해 주세요.”
기도는 하고 있지만, 정작 내 결정이 말씀 앞에서 바뀔 가능성은 닫아 놓은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기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라고 부르고 있지는 않은가?”
“내게 이익이 된다는 이유로, 말씀에 어긋나는 부분을 못 본 척하고 있지는 않은가?”
좋은 기회는 감사히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기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하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은 기회를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말씀은 그 기회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 2) 예배는 내 계획에 하나님을 모셔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보충 본문: 창세기 26:23–25, 로마서 12:1–2
그렇다면 야곱은 왜 브엘세바에서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을까요?
본문은 야곱의 마음속 동기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창세기의 앞부분을 읽으면, 브엘세바와 이삭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26장 23–25절을 보겠습니다.
이삭이 브엘세바에 올라갔을 때, 하나님께서 그 밤에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밝히시고, 이삭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함께하시고 그의 자손을 번성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자 이삭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창26)
이제 오늘 본문에서는 야곱이 그 브엘세바에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말씀하셨던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에게 주셨던 동행과 자손의 약속이 아들에게도 이어집니다.
사람은 바뀌고, 시대는 달라지고, 가야 할 길도 달라집니다. 그러나 약속하신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예배의 중요한 의미입니다.
예배는 내가 얼마나 불안한지만 계속 바라보던 자리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다시 바라보는 자리입니다. 내 계획이 얼마나 좋은지를 주장하던 자리에서, 그 계획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려놓는 자리입니다.
이 점을 신약성경은 더욱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로마서 12장 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바울은 먼저 우리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말합니다. 그리고 곧이어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이 새로워짐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고 권면합니다. 예배와 뜻의 분별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롬12)
왜 그렇습니까?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가 바뀌어야,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도 바르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의 가장 높은 자리에 돈이 앉아 있으면, 모든 선택을 돈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가장 높으면, 사람들이 알아주느냐에 따라 결정하게 됩니다. 편안함이 가장 높으면, 조금만 불편해져도 잘못된 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질문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이 선택을 하면 내가 얼마나 높아질까?”에서 “이 선택 속에서 내가 하나님께 충실할 수 있을까?”로 바뀝니다.
“나는 무엇을 얻을까?”에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할까?”로 바뀝니다.
“내 뜻대로 되게 해 주세요”에서 “제 뜻도 말씀 앞에서 바뀌게 해 주세요”로 바뀝니다.
오늘 우리가 야곱처럼 밤에 환상을 받아야만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에 기록된 특별한 계시의 방식을 모든 선택의 공식으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로마서는 우리에게 하나님께 삶을 드리고, 세상의 가치관을 그대로 따르지 않으며, 새로워진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다면 결과를 구하는 기도와 함께 이런 기도를 드리십시오.
“하나님, 제가 원하는 결과만 구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제 욕심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해 주십시오. 말씀에 어긋나는 길이라면 멈출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제 뜻보다 주님의 뜻을 귀하게 여기게 해 주십시오.”
믿음의 사람은 좋은 조건을 무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좋은 조건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높이 두는 사람입니다.
2. 두려움을 이기는 힘은 앞날을 아는 데 있지 않고,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3928자
본문 3–4절
### 1) 하나님은 낯선 땅에서도 자신의 약속을 이루십니다
보충 본문: 창세기 15:13–16, 출애굽기 1:7–12
이제 3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애굽으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 창세기 46:3
여기서 눈여겨볼 말은 ‘거기서’입니다.
어디입니까? 애굽입니다.
가나안을 떠나면 하나님의 약속도 멀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겠다고 하신 땅을 떠나는데, 어떻게 약속이 이루어지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 낯선 땅에서도 약속을 이루겠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걱정하지 마라.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라는 막연한 위로가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이어 온 자손의 약속을 하나님께서 계속 이루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창46)
이것을 설명해 주는 본문이 창세기 15장 13–16절입니다. 함께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이 자기 땅이 아닌 곳에서 나그네로 살고, 그곳 사람들을 섬기며 괴로움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압제한 나라를 심판하시고, 후손들이 다시 돌아오게 될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창15)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창세기 46장을 읽어 보십시오.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잊으셨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큰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기근을 피해 움직이는 가족이 보입니다. 다시 만날 아들을 찾아가는 아버지가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보면, 그 이동 속에 한 백성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 약속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여 줍니다.
출애굽기 1장 7–12절을 보겠습니다.
7절은 이스라엘 자손이 크게 번성하여 그 땅에 가득하게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창세기 46장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일이 출애굽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내용은 뜻밖입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을 두려워한 애굽이 그들을 억압하고 무거운 노동을 시킵니다. 그럼에도 12절은 학대를 받을수록 백성이 더욱 번성했다고 말합니다. (출1:7–16)
이것이 무엇을 보여 줍니까?
하나님의 약속과 고난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둘 중 하나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길이면 힘들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이런 문제는 없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역사 속에서도 억압이 있었고 눈물이 있었습니다. 다만 그 억압조차 하나님의 약속을 끝내지는 못했습니다.
고난 자체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학대가 선한 일로 바뀌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이 보여 주는 것은 고난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자기 백성을 놓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를 조심해야 합니다.
어려움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지금 어렵기만 하면 반드시 내가 원하는 성공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오늘 본문은 모든 청년이 낯선 곳에 가면 출세한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모든 실패가 더 좋은 직장과 더 많은 돈으로 바뀐다는 약속도 아닙니다.
본문이 우리에게 보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하신 약속을 낯선 땅에서도 이루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의 계획은 바뀔 수 있습니다. 예상했던 길이 막힐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부르신 하나님의 신실하심까지 무너진 것은 아닙니다.
내가 지금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뜻을 잃어버리셨다는 주장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 둘을 구별해야 합니다.
### 2) 하나님의 동행은 고난이 없다는 약속이 아니라,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약속입니다
보충 본문: 창세기 28:15, 히브리서 13:5–6
이제 4절 앞부분을 보겠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 창세기 46:4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애굽에 가서 혼자 잘해 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곳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뒤에 찾아오겠다고 하지도 않으십니다.
야곱이 그 길을 갈 때 함께 가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두려움을 이기는 근거가 드러납니다.
야곱이 애굽의 상황을 충분히 파악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앞으로의 모든 일을 준비해 놓았기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은 야곱에게 처음 주어진 말씀이 아닙니다.
창세기 28장 15절을 보겠습니다.
오래전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향하던 길이었습니다. 낯선 곳에서 돌을 베고 잠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함께하시고, 지키시고, 다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것을 이루기까지 그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창28)
그때 야곱은 하란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애굽을 향하고 있습니다.
가는 방향도 다르고,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도 다르고, 인생의 형편도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확신의 중심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야곱에게 필요한 것은 매번 새로운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상황 속에서도 동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이 필요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학교에서는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말했는데, 직장에 들어가면 전혀 다른 기준으로 살아야 할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익숙한 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믿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낯선 환경에서는 믿음이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소가 달라졌다고 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야곱에게 주신 이 동행의 약속을 오늘 우리가 어떻게 붙들 수 있습니까?
신약성경으로 가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13장 5–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 히브리서 13:5
히브리서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동행의 약속을 성도들에게 적용합니다. 그리고 그 약속 때문에 하나님을 도움으로 삼아 두려움에 맞설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히13)
그런데 이 약속 앞에 어떤 권면이 있는지 보십시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지금 가진 것으로 만족하라는 권면입니다.
왜 돈에 대한 권면 뒤에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으신다는 약속이 나옵니까?
우리의 불안이 무엇을 붙들게 만드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불안할수록 돈을 더 붙들고 싶습니다. 나를 보호해 줄 지위를 붙들고 싶습니다. 나를 인정해 줄 사람의 평가를 붙들고 싶습니다. 그런 것들이 있어야 버림받지 않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는 우리의 안전을 다른 곳에 둡니다.
재산이 많아야만 버림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높이 평가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도움이 되십니다.
이것이 돈을 벌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준비하지 말라는 뜻도 아닙니다. 돈과 준비에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안전을 요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원하는 것은 종종 미래에 대한 완벽한 설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설명보다 더 깊은 약속입니다. 우리가 그 미래를 지날 때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설명을 다 얻지 못해도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모든 걱정이 사라지지 않아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떨리는 중에도 정직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마음속에 두려움이 전혀 없는 상태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두려움이 나의 주인이 되지 못하도록,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에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3. 약속을 믿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맡기고 순종의 걸음을 내딛습니다
3888자
본문 5–7절, 4절의 귀환 약속
### 1) 믿음은 말씀을 듣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실제 삶으로 이어집니다
보충 본문: 히브리서 11:8
이제 5절부터 7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다음, 야곱의 가족은 브엘세바를 떠납니다. 아들들은 아버지와 가족들을 수레에 태웁니다. 가축과 가나안에서 얻은 재물을 이끌고, 온 가족이 애굽으로 이동합니다. (창46:1–7)
이 장면을 그냥 이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의 말씀과 연결해서 읽으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야곱은 그 말씀을 듣고 길을 계속 갑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실제 가족의 이동으로 이어집니다.
머릿속으로 동의하는 것과 삶을 맡기는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그 약속을 의지하여 오늘의 선택을 하는 것은 다릅니다.
야곱의 가족에게 순종은 추상적인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가족을 태우고, 짐을 챙기고, 가축을 이끌고, 익숙한 삶의 자리를 떠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신앙과 생활을 분리합니다.
예배에서는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월요일이 되면 실제 선택은 전혀 다른 기준으로 합니다. 하나님께 삶을 맡겼다고 말하지만, 시간과 돈과 관계에 관한 결정에서는 하나님을 거의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물어야 합니다.
“내가 믿는다고 말하는 그 말씀이, 내 삶의 어디를 바꾸고 있는가?”
이 점을 히브리서 11장 8절이 잘 보여 줍니다.
히브리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나아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 히브리서 11:8
이 말씀은 아무 근거 없이 무작정 움직였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다만 그 길의 전모를 다 알고 출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히11)
여기에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믿음은 근거 없는 충동이 아닙니다. 모든 결과를 알지 못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자기 후손에게 일어날 모든 일을 다 설명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약속을 이루시겠다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 말씀을 의지하여 걸어갑니다.
우리도 미래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미래를 모른다는 이유로 오늘 순종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직장에 가게 될지 다 알 수는 없어도, 오늘 내게 맡겨진 일을 정직하게 해야 한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인간관계가 어떻게 바뀔지 알 수는 없어도, 지금 누군가를 속이고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어떻게 이끌어 가실지 다 알 수는 없어도, 오늘 말씀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큰 질문을 붙들고 고민하느라, 이미 분명하게 주어진 말씀에 대한 작은 순종을 미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제 인생의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기도하면서, 정작 오늘 고쳐야 할 거짓말은 그대로 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저를 어디에 사용하시겠습니까?”라고 묻지만,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뒤로 미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로마서 12장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고 말한 뒤, 거짓 없는 사랑과 형제에 대한 존중, 부지런한 섬김과 기도, 어려운 이웃과의 나눔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뜻은 먼 미래에 숨겨진 진로표로만 제시되지 않습니다. 지금 살아야 할 삶의 모습으로도 주어집니다. (롬12)
여러분, 모든 것을 알게 되는 날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물론 성급하게 결정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충분히 살피고, 책임 있게 준비하고, 지혜로운 조언도 구해야 합니다. 본문의 가족들도 수레를 이용하고 가축과 재산을 챙겨 이동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고 현실적인 준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준비를 이유로 순종을 끝없이 미루지도 마십시오.
오늘 들은 말씀 가운데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 정하십시오. 돌이켜야 할 태도가 있다면 돌이키고, 끊어야 할 죄가 있다면 끊고,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다면 감당하십시오.
믿음의 걸음은 그렇게 실제 삶에서 시작됩니다.
### 2) 순종하는 사람은 내 생애보다 큰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봅니다
보충 본문: 창세기 50:12–13, 24–25; 히브리서 11:21–22
그런데 이 길을 걸어가는 야곱에게 주신 약속에는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시 올라오게 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같은 절 끝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 창세기 46:4
귀환을 약속하시면서 동시에 야곱의 죽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애굽에서 잘 살다가 건강한 모습으로 가나안에 돌아올 것이다”라는 뜻으로만 읽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뒤 이야기는 어떻게 이어집니까?
창세기 50장 12–13절을 보면, 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명령을 따라 그의 몸을 가나안으로 옮겨 막벨라 굴에 장사합니다. 야곱은 죽은 뒤 가나안에 묻힙니다.
그리고 같은 장 24–25절에서는 요셉이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하나님께서 후손들을 찾아오셔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이끌어 내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죽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은 계속될 것을 바라본 것입니다. (창50)
이 후속 본문들과 함께 읽으면, 오늘의 귀환 약속을 야곱 개인의 생전 경험 안에만 가둘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야곱은 가나안에 묻힙니다. 그리고 야곱에게 속한 백성의 미래에는 애굽에서 나오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한 사람의 생애를 넘어 하나님의 약속이 이어집니다.
야곱의 생애는 끝나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끝나지 않습니다.
이 점을 히브리서는 믿음의 모습으로 설명합니다.
히브리서 11장 21–22절을 보십시오.
야곱은 죽음을 앞두고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하며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요셉은 죽음을 앞두고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을 떠날 일을 말하며 자신의 유골에 관해 당부합니다. 히브리서는 이 두 사람의 행동을 믿음으로 설명합니다. (히11)
두 사람이 무엇을 믿었습니까?
자기 눈앞에 모든 일이 완성되어 있기 때문에 믿은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죽은 뒤에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일을 이루실 것을 믿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청년의 삶에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자꾸 어떤 시한을 정합니다.
“이 나이까지는 이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올해 안에는 반드시 결과가 나와야 합니다.”
“이렇게 오래 했으면 이제는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어야 합니다.”
계획하고 목표를 세우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시한이 지나면 하나님까지 실패하신 것처럼 생각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내가 정한 시간 안에 내가 원하는 그림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신실하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
또한 우리는 내가 시작한 좋은 일이 내 손에서 다 완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내가 전한 복음이 당장 열매를 맺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섬긴 사람이 금방 변화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감당한 수고가 지금 인정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께 결과를 맡기는 것입니다. 오늘 맡겨진 일에는 충실하되, 내가 확인할 수 있는 성과만으로 하나님의 일을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체념이 아닙니다. 책임을 피하는 것도 아닙니다.
내 몫의 순종은 성실하게 감당하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시간과 결과는 신실하신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역사를 완성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역사 안에서 말씀을 듣고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리를 맡을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결과를 책임지려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을 믿으며, 오늘 우리에게 맡기신 순종을 감당하면 됩니다.
맺는말 — 우리의 확신은 우리의 용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1991자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야곱에게는 요셉이 보낸 수레가 있었습니다. 바로의 호의가 있었습니다. 먹고살 수 있는 길도 열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가장 깊이 들려주는 확신은 그것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이루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그것은 야곱에게 주어진 약속인데, 오늘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하나님의 동행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확신은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12절은 예수께서 자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고난을 받으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20절은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셨다고 선포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우리가 하나님께 올라갈 힘을 마련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시고 죽음을 이기신 주님께 있습니다. (히13)
그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면서 무엇을 약속하셨습니까?
마태복음 28장 18–20절을 보겠습니다.
주님은 모든 권세가 자신에게 있음을 말씀하시고,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며 주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 마태복음 28:20
이 약속은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선택하면 주님께서 성공시켜 주신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감당하는 백성에게 주신 동행의 약속입니다. (마28)
여러분, 우리는 용감해진 다음에야 예수님을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약하고 두려운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다만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주님을 이용하는 데 머물지 맙시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살아나신 주님께 우리 삶의 주인 자리를 드립시다.
내가 원하는 길을 반드시 보장해 달라는 자리에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걷게 해 달라는 자리로 나아갑시다.
지금 여러분 앞에 어떤 길이 있습니까?
기대되는 길일 수도 있고, 피하고 싶은 길일 수도 있습니다. 아직 결정하지 못한 갈림길일 수도 있습니다. 이미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힘들어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길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 앞에서 세 가지를 붙드십시오.
좋은 조건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십시오.
앞날에 대한 완벽한 설명보다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모든 결과를 통제하려 하지 말고, 오늘 맡겨진 순종을 감당하십시오.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길 전체를 다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따라 한 걸음을 내딛을 수는 있습니다.
믿음은 미래를 다 알아서 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 미래를 맡기고, 오늘 그분의 말씀을 따라 걷는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낯선 길에서도 주님을 따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좋은 조건이 갖추어지면 하나님을 묻지 않고 앞서가고, 어려움이 생기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은 아닌지 의심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 주십시오.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을 더 귀하게 여기게 해 주십시오. 예배 속에서 우리의 계획과 욕심도 주님 앞에 내려놓게 해 주십시오.
낯선 길 앞에서 두려워하는 청년들을 붙들어 주십시오.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와 알 수 없는 미래 때문에 마음이 무너지지 않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는 주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하게 해 주십시오.
모든 것을 알아야만 순종하겠다고 미루지 않게 하시고, 오늘 분명히 들은 말씀에 삶으로 응답하게 해 주십시오. 우리의 생애보다 크고 우리의 계획보다 깊은 주님의 뜻을 신뢰하며, 맡겨진 자리에서 성실하게 주님을 따르게 해 주십시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