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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도입↔서론 / 본문↔본론 / 마무리↔결론 / 결단↔결단찬양 / 기도↔기도제목
섹션별 본문 (3개)
1. 두려움에 머물지 말고 온 마음으로 여호와만 섬겨야 합니다.
961자
죄를 깨달았을 때 백성들이 보인 첫 반응은 깊은 두려움이었습니다. 본문 19절을 보면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가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라고 절규합니다. 그들은 왕을 구한 일이 단순한 정치 제도의 선택이 아니라, 참된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버린 영적 배역이었음을 비로소 고백했습니다. 그때 사무엘은 뜻밖의 위로로 입을 엽니다. 20절 말씀입니다.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사무엘은 그들의 악행을 축소하거나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너희가 과연 죄를 지었으나, 그 죄책감과 절망의 자리에 주저앉아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죄를 깨달은 사람이 경계해야 할 가장 위험한 유혹은 체념하고 주님에게서 멀어지는 일입니다.
사무엘은 21절에서 "돌아서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따르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고 강력히 권면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찾게 되는 모든 대체물은 실상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하고 건져내지도 못하는 헛된 것에 불과합니다. 회개란 단순히 감정적으로 과거를 후회하며 자책하는 눈물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참된 회개는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라와 사회의 불안한 현실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은 내 안에 여전히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있는 헛된 우상은 없는가 하는 점입니다. 권력이나 재물, 인간적인 수단은 우리에게 참된 평안을 주지 못합니다. 여호수아 24장 14절에서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고 명령했던 것처럼, 헛된 기대를 모두 내려놓고 우리의 전심을 다해 주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2.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823자
우리가 지은 허물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낙심하지 않고 주님 앞에 다시 나아갈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우리 자신의 결단이나 도덕적 우월함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에 있습니다. 본문 22절은 가슴 벅찬 복음의 선언을 담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자격이나 행위를 보시고 언약을 맺으신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권적인 사랑으로 그들을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크신 이름'의 명예를 걸고 자기 백성을 결코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으십니다.
인간은 약속을 쉽게 깨뜨리고 상대의 허물을 보면 등을 돌리지만, 하나님은 한 번 품으신 백성을 절대로 내치지 않으십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에서도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확증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구약의 언약 공동체 이스라엘과 오늘의 특정 국가를 문자 그대로 동일시하는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성경의 언약 백성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구속받은 거룩한 교회요 성도들입니다. 구약의 사무엘이 백성의 멸망을 막아서며 탄원했던 그 중보는, 궁극적으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시며 우리의 모든 죗값을 친히 담당하시고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 중보를 바라보게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기에, 우리는 아무리 어두운 절망의 밤을 지나더라도 기도의 자리에서 소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3.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결코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1880자
하나님의 변함없는 신실하심을 확인한 사무엘은 백성들 앞에서 엄숙한 사명과 책임을 고백합니다. 본문 2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왕이 세워진 뒤에도, 사무엘은 영적 파수꾼으로서의 기도를 내려놓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사무엘은 중보 기도를 선택 사항이나 여유가 있을 때 하는 취미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 것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명백한 '죄'로 규정했습니다. 기도를 멈추는 것은 영적 무관심이며, 하나님의 통치와 도우심을 신뢰하지 않는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사무엘은 기도에 머물지 않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이라고 다짐하며, 24절에서 권면을 맺습니다.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성도의 기도는 공허한 관념이 아니라 진실한 순종과 삶의 섬김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신명기 10장 21절 말씀처럼 "그는 네 찬송이시요 네 하나님이시라 네 눈으로 본 이같이 크고 두려운 일을 너를 위하여 행하셨느니라" 하셨던 그 큰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 땅을 위해 기도할 때, 기도가 곧 국가의 무조건적인 물질적 번영이나 정치적 승리를 자동적으로 보장해 주는 주문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정 정파나 정견에 얽매여 서로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은 교회가 취할 태도가 아닙니다. 성도의 기도는 먼저 우리 자신의 부끄러운 죄악을 통회하고, 이 땅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정직과 공의로 지혜롭게 국정을 감당하도록 도우며, 가난하고 연약한 이웃의 안전과 평안을 구하고, 교회가 낮아져 세상을 실제로 섬기도록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거룩한 사명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의 무릎을 다시 꿇으라고 부르십니다. 상황이 어렵고 혼란스러울수록, 우리는 염려하거나 불평하는 대신 무너진 성벽의 틈 사이에 서서 주님의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기도를 쉬는 영적 안일함에서 깨어나십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기 백성 삼으시고 베풀어 주신 십자가의 큰 은혜를 기억하십시다. 우리의 가정이 살고, 교회와 이웃이 온전한 평안을 누리며, 나라의 지도자들이 공의와 겸손으로 바로 서도록, 기도하기를 쉬지 않는 신실한 파수꾼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붙들고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다음 세 가지 제목으로 한마음이 되어 부르짖겠습니다.
첫째, 우리 안에 자리 잡은 불신앙과 헛된 우상을 온전히 회개하고, 오직 주님만을 전심으로 경외하게 하소서.
둘째, 이 땅의 지도자들이 정직과 겸손의 지혜로 국정을 이끌게 하시고, 모든 이웃이 안전하고 평안한 삶을 누리게 하소서.
셋째, 교회가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게 하시고,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책임을 다하며 실제적인 사랑과 섬김으로 이 땅을 품게 하소서.
다 함께 합심하여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드리겠습니다.
(합심 기도 후 마무리 기도)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연약하고 허물 많은 저희를 영원한 언약 백성 삼아 주시고, 결코 버리지 아니하시는 그 크신 사랑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가 나라와 시대를 바라볼 때 불평과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시고, 공동체의 무너진 틈을 기도로 막아서는 신실한 파수꾼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세움받은 지도자들에게 공의와 정직의 지혜를 더하시고, 어려움 속에 처한 이웃들을 지켜 주시며,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쉬지 않는 기도와 참된 섬김으로 세상을 바르게 섬기게 하옵소서.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끊임없이 중보하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