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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0261028-002
버전 v1

당신이 그 사람이라

목사samuel
예배새벽
본문사무엘하 12:1-8
날짜2026-10-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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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별 본문 (7개)

서론

270자
지난 시간 사무엘하 11장 끝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우리아를 전쟁터 최전방에 내몰아 죽게 만들고, 그의 아내를 왕궁으로 데려와 아이를 낳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철저히 덮었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성경은 11장 마지막 절에서 단호하게 선을 긋습니다.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사람의 눈은 가릴 수 있어도 하나님의 불꽃 같은 눈은 피할 수 없습니다. 1년 가까운 침묵을 깨뜨리시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침묵을 멈추십니다. 오늘 본문이 그 이야기입니다.

본문 진입

861자
1절을 봅니다.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여기서 한 단어를 붙잡으십시오. "보내시니"입니다. 사무엘하 11장을 보면 계속해서 사람이 사람을 보냅니다. 다윗이 사람을 보내 여인을 알아보게 하고, 사람을 보내 데려오게 하고, 요압에게 밀서를 보내 충신 우리아를 사지로 내몹니다. 온갖 음모와 죄악을 감추기 위해 다윗은 쉴 새 없이 사람을 보냈어요. 그런데 오늘 12장 첫머리에서는 주어가 바뀝니다. 하나님이 보내십니다. 인간이 탐욕으로 엮어 짠 죄의 그물을 찢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는 것입니다. 나단은 궁전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다윗의 멱살을 잡지 않습니다. 조용히 한 편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2절과 3절을 봅니다.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딸처럼'이라는 말이 눈에 걸립니다. 부자에게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양과 소가 있었습니다. 반면에 가난한 사람에게는 가진 것이라곤 오직 작은 암양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난한 사람에게 그 어린 양은 단순한 재산이나 가축이 아니었습니다. 식탁에서 자기 밥을 나누어 먹이고, 자기 잔으로 물을 마시게 하고, 밤이면 품에 안고 잤습니다. 자기 자식처럼, 딸처럼 아끼며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가족이었습니다. 가진 것 없는 약자에게 그 양 한 마리는 삶의 전부였고 유일한 기쁨이었습니다.

깊이

1224자
그런데 그 성읍에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집니다. 4절입니다.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하니"**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당시 중동 문화에서 손님을 대접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무였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가 어떻게 합니까. 자기 우리의 수많은 양과 소는 아까워서 손도 대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가난한 사람의 집에 들어가, 그 사람이 딸처럼 품에 안고 자던 유일한 양 새끼를 강제로 빼앗아 도살해 버립니다. 얼마나 파렴치하고 잔인합니까. 내 것을 나누는 손해는 털끝만큼도 보기 싫고, 남의 전부를 짓밟는 것은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이 끔찍한 탐욕을 보십시오. 이야기가 여기까지 이르렀을 때 다윗의 반응을 보십시오.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한지라"** 다윗이 불같이 화를 냅니다.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여기서 '마땅히 죽을 자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벤 마베트'인데요, 직역하면 '죽음의 아들', 반드시 사형에 처해야 할 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율법을 보면 남의 가축을 훔치거나 빼앗은 일로 사형 선고를 내리지는 않습니다. 출애굽기 22장 1절을 보세요. 모세의 율법은 가축을 도둑질한 자에게 이렇게 명합니다. **"사람이 소나 양을 도둑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한 마리에 소 다섯 마리로 갚고 양 한 마리에 양 네 마리로 갚을지니라."** 다윗은 율법이 규정한 "네 배를 갚아 주어야 한다"는 배상 원칙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잔인함에 치를 떨며 "그 놈은 죽어야 마땅하다"고 서슬 퍼런 판결을 내립니다. 얼마나 역설적입니까. 다윗은 지금 하나님을 대리하는 재판관의 자리에 앉아 정의를 외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불의와 악독함에는 이렇게 분노의 피가 끓어오르는데, 정작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은 까맣게 잊고 있습니다. 남의 죄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흥분하지만, 그보다 천 배나 악한 자기 자신의 죄 앞에서는 아무런 감각도 없는 이 무서운 영적 맹목을 보십시오.

확장

1126자
나단 선지자가 그런 다윗의 눈을 똑바로 응시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당신이 그 사람이라." 선지자의 단 한마디가 허공을 가르고 다윗의 심장에 비수처럼 꽂힙니다. 그 잔인한 부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왕관을 쓰고 왕좌에 앉아 점잖게 판결을 내리고 있는 다윗 자신이라는 폭로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단을 통해 다윗의 과거를 하나하나 들추어내십니다. 8절을 봅니다.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묻고 계십니다. "다윗아, 내가 너에게 무엇을 아꼈느냐." 목동에 불과했던 다윗을 택해 왕으로 기름 부으신 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사울의 칼날이 목을 죄어 올 때 광야에서 건져 주신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왕의 보좌를 주셨고, 백성을 맡기셨고, 풍성한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보십시오.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하나님은 다윗에게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그를 대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넘치는 은혜를 받고도 무엇을 했습니까. 생명을 바쳐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충성스러운 부하 우리아에게서, 그의 목숨보다 소중한 아내 밧세바를 빼앗아 버렸습니다. 수많은 것을 손에 쥐고도 가난한 자의 유일한 암양 하나를 강탈해 자기 배를 채운 것입니다. 죄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주신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가지려는 탐욕에 눈이 멀어 이웃의 생명과 영혼을 짓밟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5장 17절을 보세요.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 왕을 책망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다윗도 스스로 작고 초라한 목동으로 여길 때는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쥐고 배부르고 편안해지자, 은혜를 잊어버리고 교만의 괴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복음

647자
다윗은 자기가 선고한 대로 율법의 칼 아래 "마땅히 죽어야 할 자"였습니다. 남을 정죄하던 그 서슬 퍼런 잣대가 고스란히 자기 머리 위로 떨어져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비유 속에 등장하는 암양 새끼를 다시 보십시오. 아무런 죄도 없이, 주인의 식탁에서 사랑을 받다가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부자의 식탁을 위해 피를 흘리며 죽어간 그 어린 양 말입니다. 성경 전체는 이 억울하게 죽임당한 어린 양을 통해 갈보리 언덕을 비춥니다. 우리 모두가 탐욕에 눈이 멀어 남의 것을 탐하고, 남의 허물에는 칼날을 세우면서도 정작 자기 죄는 보지 못하는 "그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아 마땅히 죽어야 할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심판의 칼로 베지 않으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을 보세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흠도 점도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 도살장으로 끌려가셨습니다. 그 거룩한 살이 찢기고 피를 흘리심으로, 마땅히 죽어야 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다윗의 추악한 범죄를 덮고도 남는 하나님의 한없는 긍휼이, 바로 그 십자가의 어린양 안에서 완성된 것입니다.

적용

502자
오늘 말씀의 거울 앞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보며 분노하고 정죄하면서, 정작 더 큰 은혜를 받고도 은혜를 짓밟고 있는 네 자신의 죄를 보고 있느냐." 우리는 너무나 쉽게 남의 티끌에는 분노하며 "마땅히 죽을 자"라고 손가락질합니다. 뉴스에 나오는 파렴치한 죄인을 보며 혀를 차고, 직장에서 이웃이 저지른 작은 실수에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단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바로 그 사람이다." 오늘 하루, 누군가를 향해 불타는 분노가 올라오고 정죄의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때, 그 자리에 멈추어 서십시오. 출근길 차 안에서, 일터의 책상 앞에서, 가족들과 마주 앉는 식탁에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들추기 전에 내 안의 탐욕과 완악함을 먼저 주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오늘 하루 이 한 문장을 가슴에 품고 조용히 읊조리십시오. "하나님, 제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제게 십자가의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기도

285자
하나님 아버지, 남의 허물과 연약함에는 분노하고 정죄하면서도, 정작 하나님께 넘치는 은혜를 받고도 은혜를 잊은 채 살아온 제 안의 탐욕은 보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말씀의 거울 앞에서 "당신이 그 사람이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피하지 않게 하시고, 제 죄를 정직하게 인정하며 주님의 십자가 앞에 엎드리게 하옵소서. 마땅히 죽어야 할 저를 위해 피 흘리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그 크신 사랑과 긍휼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