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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0261030-001
버전 v1

번성의 자리에서 약속을 붙들다

목사samuel
예배청년부
본문창세기 47:27-31
날짜2026-10-30 (금)
📝 정식
📋 간략

정식 = 가이드 §10 (말씀 요약 + 본문 이해 + 질문 + 적용). 간략 = 1장, 질문 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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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별 본문 (5개)

들어가는 말

1334자
사랑하는 청년부 여러분, 지난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우리는 지난주일 말씀을 통해 온 세상이 극심한 흉년으로 신음할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명을 보존해 가시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앞서 묵상했던 창세기 47장 13절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먹을 것이 없고, 애굽 온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황폐해져 갔습니다. 사람들은 돈이 떨어지자 가축을 내어놓았고, 가축마저 다 떨어지자 마침내 몸과 토지를 내어놓으며 바로의 종이 되기를 자청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모든 소유를 넘겨주어야만 했던 절박한 생존 현장이 바로 당시 애굽이 마주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7절은 전혀 다른 풍경으로 시작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먹을 양식이 없어 땅을 팔고 바로에게 종속되어 가고 있을 때, 고센 땅에 머물던 이스라엘 가족에게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들은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생업을 얻었으며, 자손이 크게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온 세상이 겪는 결핍과 궁핍 속에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은 생육하고 번성하는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이 광경을 바라보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삶이 풍족해지고 터전이 견고해졌을 때, 성도는 과연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청년 시절을 살아가다 보면 마음속에 가장 간절하게 차오르는 기도 제목이 있습니다. 안정된 일자리를 얻고, 경제적으로 자립하며, 세상 속에서 번듯하게 뿌리를 내리는 일입니다. 치열한 경쟁과 불안 속에서 어떻게든 생존 터전을 마련하고자 애쓰는 모습이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청년들이 마주한 솔직한 현실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안정과 풍요를 손에 쥐게 된다면, 그다음에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살림이 넉넉해지고 더 이상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 그 자리에서 우리는 과연 누구를 예배하고 무엇에 소망을 두며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질문 앞에 선 한 노인이 맞이한 마지막 순간을 비춥니다. 애굽에서 가장 기름진 고센 땅에서 풍요를 누리며 백마흔일곱 살을 맞이한 노년의 야곱입니다. 그는 생을 마감하는 문턱에서 자신이 누린 번영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애굽 총리인 아들 요셉을 불러 엄숙하게 당부합니다. "나를 애굽에 묻지 말라. 내가 죽거든 나를 메어다가 조상들이 묻힌 묘지에 장사하라." 야곱은 왜 이토록 간절하게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돌아가고자 했을까요. 안정된 정착지가 마련된 땅에서 그는 왜 약속하신 땅을 바라보며 침상 머리에서 머리를 숙였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세상 속에서 안정을 누릴 때에도 영원한 언약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야 할 청년의 믿음이 무엇인지 함께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1. 번성의 자리에서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다

1787자
### 1) 고센의 번성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 성취입니다 본문 27절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여기서 거주하며,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는 표현이 연이어 등장합니다. 이 짧은 한 구절은 애굽 전역을 휩쓴 기근과 선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주변 사람들은 토지를 내어놓고 바로에게 속한 땅을 경작하게 되었지만, 야곱 가족은 고센 땅에서 거주 기반을 얻고 생육하며 크게 번성했습니다. 우리는 이 번성을 보면서 야곱 가문이 지닌 경영 능력이나 요셉이 발휘한 행정 수완만을 떠올려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인간적 성공담이 아닙니다. 이 번성이 시작된 뿌리는 훨씬 더 깊은 곳, 바로 하나님의 언약에 닿아 있습니다. 야곱이 가나안을 떠나 낯선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할 때, 브엘세바에서 그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십니까. 창세기 46장 3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기근을 피해 내려왔던 그 이방 땅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하신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어 가고 계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역사는 야곱 가문이 스스로 일군 업적이 아니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맺어 주신 열매였습니다. 우리 삶에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계절이 찾아옵니다. 취업 문이 열리고, 직장에서 역량을 인정받으며, 물질적 안정을 누리고, 계획했던 일들이 순조롭게 풀려가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고백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내 열심이나 능력만이 아니라, 나를 신실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메마른 광야에서도 자기 백성을 먹이시며, 세상이 흉년으로 흔들릴 때에도 언약 백성을 번성하게 하시는 신실하신 아버지이십니다. ### 2) 풍요의 땅 고센은 최종 종착역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흐름은 고센에서 누린 번영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자손이 고센에서 크게 번성했다는 사실을 기록하자마자, 곧바로 28절과 29절에서 야곱이 죽을 날이 가까웠음을 알립니다. 번성이 시작되는 자리에서 곧바로 죽음과 장례 준비를 마주하게 하는 것입니다. 왜 성경은 이 두 장면을 나란히 배치했을까요. 고센 땅에서 누리는 번성이 아무리 귀한 선물일지라도, 그곳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영원히 묻힐 최종 목적지는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브엘세바에서 야곱에게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약속하시면서, 동시에 반드시 다시 인도하여 올라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환경이 편안해지면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잊기 쉽습니다. 삶이 넉넉해지면 약속하신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소망도 서서히 흐려지기 마련입니다. 만약 야곱이 애굽에서 누리는 번영에 만족하여 후손들에게 이 풍요로운 애굽 땅에 뼈를 묻고 영원히 정착하라고 당부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스라엘은 애굽이 주는 안락함 속에 머물러 언약 백성으로서 가야 할 길을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속에서 우리에게 직장을 주시고 재정을 채워 주시며 삶을 안정케 하시는 까닭은, 그 풍요 자체에 안주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세상이 주는 안정은 우리가 잠시 머물며 책임을 감당할 자리일 뿐, 영원히 정착할 본향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 성실히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의 언약을 잊지 않는 것, 고센에서 생업을 일구면서도 약속하신 가나안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 바로 성도가 품어야 할 믿음입니다.

2. 험악한 세월을 덮은 은혜와 엄숙한 언약

2384자
### 1) 나그네 130년의 험악함을 품어주신 마지막 17년의 은혜 본문 28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주하였으니 그의 나이가 백사십칠 세라" 성경은 야곱이 애굽에서 보낸 시간을 정확하게 십칠 년이라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의 향년이 백사십칠 세였다고 증언합니다. 야곱이 처음 애굽에 도착하여 바로 앞에 섰을 때 했던 고백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창세기 47장 9절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낳은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백삼십 년 생애를 돌아보며 야곱은 주저 없이 험악한 세월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형을 피해 떠나야 했던 젊은 시절, 외삼촌 라반 집에서 겪은 긴 수고와 갈등, 세겜 땅에서 겪은 시련, 사랑하는 아내 라헬과 겪은 사별, 그리고 요셉을 잃고 보낸 오랜 세월까지, 그가 걸어온 길은 참으로 고단한 나그네 걸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험악했던 백삼십 년 한숨으로 야곱의 생애를 끝맺지 않으셨습니다. 생의 마지막 구간에 하나님은 야곱에게 애굽에서 보낼 십칠 년을 허락하셨습니다. 잃어버렸던 아들 요셉을 다시 만나 온 가족과 함께 머물며,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돌보심을 눈으로 확인하는 십칠 년을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흘린 눈물을 잊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지나온 걸음이 아무리 거칠고 힘겨웠을지라도, 때로는 감당하기 버거운 실패와 아픔이 이어졌을지라도, 하나님은 자기 자녀를 돌보시고 회복시키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야곱에게 마지막 십칠 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거친 세상 속에서 애쓰는 청년들의 삶 또한 신실하게 붙들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 2) 애굽에 묻지 말고 조상의 묘지로 메어가라는 엄숙한 당부 애굽에서 십칠 년을 보낸 야곱은 이제 죽을 날이 가까워지자 요셉을 부릅니다. 29절과 30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야곱은 아들 요셉에게 손을 자기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행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고대 근동에서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서약하는 행위는, 지켜야 할 약속을 가장 엄숙하게 확정하는 맹세 방식이었습니다. 창세기 24장 2절에서도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삭의 아내를 택해 오도록 당부할 때,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게 하고 여호와 앞에서 맹세하게 했던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 역시 지금 요셉에게 단순한 가족 간 부탁을 넘어,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엄숙한 맹세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간청합니다.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여기서 인애와 성실함은 끝까지 약속을 지키는 신실한 사랑과 진실함을 뜻합니다. 야곱이 이토록 간절하게 자신을 조상의 묘지에 장사해 달라고 요청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야곱이 애굽에서 받은 도움을 부정하거나 애굽 땅을 저주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애굽에 내려올 때 바로를 축복했고, 고센 땅에서 가족이 보존되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다만 그의 시선이 애굽 정착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자신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향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묻히기를 원했던 조상의 묘지는 훗날 창세기 50장 13절이 기록하듯,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서 사 두었던 마므레 앞 막벨라 굴이었습니다. 창세기 50장 13절 말씀입니다. "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그곳에는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가 묻혀 있었고, 야곱 자신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했습니다. 그 묘지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후손에게 주실 것이라는 언약의 표지였습니다. 야곱은 애굽에서 누린 지위와 안락함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 담긴 조상들의 묘지에 함께 눕기를 택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장례를 통해 후손들에게 분명한 방향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내가 묻히는 곳을 기억하라. 우리가 번성한 이곳 애굽이 최종 종착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다시 올라가야 한다." 청년 여러분, 우리는 어디에 인생의 소망을 두고 있습니까. 세상에서 성실히 일하고 터전을 일구는 일은 소중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세상에서 지위나 소유가 많아질 때에도, 오직 하나님 말씀과 그분이 주신 신실한 약속 위에 삶의 중심을 두는 사람입니다.

3. 약속을 붙들고 드리는 마지막 경배와 부활 신앙

1418자
### 1) 요셉의 맹세 앞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순례자 야곱의 부탁을 들은 요셉은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야곱은 다시 한번 맹세를 요구하고 요셉이 맹세합니다. 본문 31절 말씀을 다 함께 읽겠습니다. "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 요셉이 맹세하자 이스라엘은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죽을 날이 가까워 침상에 머물러 있던 노년의 야곱이, 아들 요셉이 한 맹세를 확인한 뒤 몸을 굽혀 하나님께 경배드리는 장면입니다. 신약성경 히브리서는 구약에 기록된 믿음의 증인들을 돌아보면서, 죽음을 앞둔 야곱이 드린 이 경배를 믿음의 행위로 증언합니다. 히브리서 11장 21절 말씀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구약 본문은 침상 머리에서 경배했다고 기록하고, 히브리서는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했다고 전합니다. 기력이 쇠한 노년의 야곱이 침상 머리에서 지팡이를 의지해 몸을 굽히며 하나님께 경배드린 모습을 함께 보여 줍니다. 야곱이 그 순간 하나님께 경배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난 백사십칠 년 생애 동안 험악한 나그네 길을 걸어온 자신을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기근 속에서 온 가족을 살리시며, 마침내 죽음 너머 약속하신 땅까지 신실하게 이끌어 주실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자리에서 두려움이나 원망으로 끝맺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신실한 약속을 붙들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으로 서 있었습니다. ### 2) 무덤을 넘어선 영원한 소망,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야곱이 약속하신 땅에 묻히기를 소망하며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었던 근거는 하나님의 언약이었습니다. 죽음이 모든 것을 끝내지 못하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은 세대를 넘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었습니다. 구약 족장들이 붙들었던 이 언약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절에서 복음의 핵심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죄와 죽음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죄를 사하시고 부활 생명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에게 죽음은 절망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겪는 기근이나 흔들림도, 반대로 이 땅에서 누리는 일시적인 성공도 우리의 최종 결론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맺는말

941자
사랑하는 청년부 여러분, 오늘 우리는 고센 땅에서 번성을 누리면서도 약속하신 땅을 바라보며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한 야곱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학업과 취업을 준비하고, 일터에서 책임을 감당하며, 삶의 기반을 세우기 위해 구슬땀을 흘립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서 있는 자리마다 필요한 은혜와 열매를 허락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고센 땅에서 생업을 얻고 번성했던 이스라엘처럼, 여러분의 일터와 가정 위에 하나님의 돌보심이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고센에서 누리는 안정이 인생의 최종 목적지가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살림이 넉넉해질 때에도, 반대로 앞길이 막막할 때에도, 우리의 소망은 세상의 조건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있습니다. 지나온 세월 속 아픔까지도 은혜로 덮으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삶의 자리에서, 날마다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께 경배드리는 믿음의 청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기근 속에서도 자기 백성을 돌보시고 고센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신 주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일하며 살아갈 때 주께서 주시는 열매를 감사함으로 누리게 하시고, 눈앞의 안정에 안주하여 영원한 약속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험악한 나그네 세월을 지나온 야곱에게 마지막 십칠 년 동안 은혜를 베푸셨듯이, 오늘 삶의 무게와 염려 가운데 있는 청년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침상 머리에서까지 하나님께 경배드린 야곱처럼 날마다 주님만을 예배하는 청년부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