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2026071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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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배의 슬픈 노래
목사taejin
예배청년부
본문에스겔27:1-25
날짜2026-07-1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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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도입↔서론 / 본문↔본론 / 마무리↔결론 / 결단↔결단찬양 / 기도↔기도제목
섹션별 본문 (5개)
서론
922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한 주간 각자의 자리에서 애쓰다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다. 시험을 준비하고, 일터에서 버티고, 앞날을 그리며 마음 졸이던 그 마음 그대로 하나님 앞에 앉으셨습니다. 오늘 그 마음에 하나님께서 조용히 던지시는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에스겔 27장입니다. 에스겔은 제사장 집안에서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유다가 바벨론에게 무너지던 때, 그는 여호야긴 왕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간 포로였기 때문입니다. 고향과 성전에서 멀리 떨어진 낯선 강가에서, 하나님은 그를 선지자로 세우셨습니다.
25장부터 32장까지,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 이스라엘 주변의 여러 나라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그 중 하나, '두로'라는 나라입니다. 두로는 지중해 바닷가에 자리 잡은 무역 강국이었습니다. 바다를 누비며 온 세상과 거래해 어마어마한 부를 쌓은, 그 시대 모두가 부러워하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화려한 나라를 두고 에스겔에게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인자야 너는 두로를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으라"(2절). 슬픈 노래, 곧 장례식에서 부르는 애가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잘나가는 나라를 두고, 하나님은 장례 노래를 부르라 하십니다.
이 노래를 처음 들은 사람들은 바벨론에 끌려간 포로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자기 나라 예루살렘이 무너지는 것을 두 눈으로 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세상이 가장 부러워하는 두로마저 결국 가라앉는다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흔들리지 않을 안전은 어디에도, 어느 강한 나라에도 없다는 것을,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을 가르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슬픈 노래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똑같이 물으십니다. 여러분은 무엇 위에 인생을 지으시겠습니까. 세 장면으로 이 노래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첫째, "나는 온전히 아름답다" (3~4절)
846자
두로가 스스로를 어떻게 여겼는지 보십시오.
> "두로야 네가 말하기를 나는 온전히 아름답다 하였도다"(3절)
"나는 온전히 아름답다." 두로의 자기 평가입니다. 흠 하나 없이, 부족함 하나 없이 완벽하다는 것입니다. 바다 한가운데 우뚝 서서 온 세상과 거래하며, 두로는 스스로에게 만점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하나님은 조용히 진실을 덧붙이십니다.
> "네 땅이 바다 가운데에 있음이여 너를 지은 자가 네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하였도다"(4절)
두로는 "나는 아름답다"라고 말했지만, 하나님은 "너를 지은 자가 너를 아름답게 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름다움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두로가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지으신 분에게서 받은 것이었습니다. 두로의 문제는 아름다움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받은 아름다움을 '내가 스스로 이룬 것'이라 여긴 그 마음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좋은 것을 가진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을 준 분을 잊는 것이 문제입니다.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라고 말합니다. 넘어짐은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이건 내가 이룬 거야" 하고 지으신 분을 잊는 그 마음에서 이미 시작됩니다.
우리도 좋은 것을 손에 쥐면 어느새 "이건 내가 한 거야" 하고 말합니다. 내 실력으로, 내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물론 애썼습니다. 밤을 새우며 준비했고, 버티며 견뎠습니다. 그러나 그 실력을 담을 머리도, 견딜 몸도, 그 자리에 설 기회도, 처음부터 내가 만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을 잊는 순간 우리는 두로처럼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온전히 아름답다."
둘째, 온 세상을 실은 큰 배 (5~25절)
964자
5절부터 하나님은 두로를 한 척의 배에 빗대어 노래하십니다. 그런데 이 배가 보통 배가 아닙니다.
돛대는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갑판은 상아로 꾸미고, 돛은 애굽의 고운 베로 만들었습니다(5~7절). 사공과 선장은 주변 여러 나라에서 온 솜씨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8~9절). 심지어 병사들의 방패와 투구까지 성벽에 걸어 "네 영광을 나타냈도다" 하였습니다(10~11절). 무기마저 자랑거리로, 아름다움을 뽐내는 장식으로 걸어 둔 것입니다.
그리고 12절부터는 이 배와 거래한 나라들의 긴 목록이 이어집니다. 다시스의 은과 철, 야완의 놋그릇, 아람의 보석, 유다의 밀과 꿀, 다메섹의 포도주, 스바의 향품과 황금까지.
이 목록을 하나하나 다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한 가지만 붙드십시오. 이 배에는 온 세상의 가장 좋은 것이 다 실려 있었습니다. 최고의 재료, 최고의 사람, 최고의 상품. 없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25절은 이렇게 노래를 맺습니다.
> "다시스의 배는 떼를 지어 네 화물을 나르니 네가 바다 중심에서 풍부하여 영화가 매우 크도다"(25절)
바다 중심에서 풍부하여 영화가 매우 크도다. 이 배는 절대 가라앉지 않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온 세상을 다 실었으니까요. 세상은 이 배를 우러러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도 인생이라는 배에 좋은 것을 실으려 합니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통장의 숫자, 사람들의 인정. 다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많이 실을수록 내 인생은 더 안전하다고 느낍니다. 두로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남의 배와 내 배를 견주어 봅니다. 저 친구는 저만큼 실었는데 나는 이것밖에 못 실었구나 하며 초조해합니다. 더 실어야 안심이 될 것 같아 쉬지 못하고 달립니다. 그러나 두로의 노래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 많은 화물이 정말 너를 안전하게 하더냐고. 배를 무엇으로 채우느냐보다, 그 배가 무엇 위에 떠 있느냐가 먼저라고 말입니다.
셋째, 이 노래의 이름은 '슬픈 노래'입니다 (2절)
932자
그런데 우리는 이 노래의 이름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2절에서 무어라 하셨습니까. "슬픈 노래를 지으라." 이 화려한 배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장례식 노래였습니다.
25절, 배가 가장 빛나던 그 순간 바로 다음입니다. 26절을 보십시오.
> "네 사공이 너를 인도하여 큰 물에 이르게 함이여 동풍이 바다 한가운데에서 너를 무찔렀도다"(26절)
바다 중심에서 영화가 매우 크던 그 배가, 다음 순간 바다 한가운데서 부서집니다. 이어지는 27절에서는 재물과 상품, 사공과 선장, 상인과 용사, 배에 탄 모든 무리가 "다 바다 한가운데에 빠질 것"입니다. 온 세상을 실었던 그 배가, 그 실은 것과 함께 깊은 바다로 가라앉습니다.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가라앉을 때 잃는 것은 더 컸습니다. 많이 실었다는 것이 곧 많이 잃는다는 뜻이 되어 버렸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배가 컸던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배가 "나는 온전히 아름답다", 나를 지은 분 없이도 나는 스스로 선다고 말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지으신 분을 떠난 아름다움은 아무리 커도 동풍 한 번에 무너집니다.
예수님도 같은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면 무너지지만,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고요(마 7:24~27). 두로는 자기 자신이라는 모래 위에 온 세상을 쌓아 올린 배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 위에 인생을 지어야 합니까. 우리를 지으신 그분, 그리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위에 지어야 합니다. 두로는 자기를 자랑하다 가라앉았지만, 우리에게는 우리를 위해 스스로 낮아지신 분이 계십니다. 세상 어떤 배보다 크신 분이, 가라앉는 우리를 건지시려고 십자가에서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 6:14).
결론
733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오늘 하나님은 두로의 슬픈 노래를 통해 여러분 각자의 배를 들여다보게 하십니다.
지금 여러분의 배에는 좋은 것이 실리고 있습니다. 그 좋은 것을 내려놓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무엇 위에 싣고 있는지 물으시는 것입니다. 나 자신 위입니까, 나를 지으신 분 위입니까.
오늘 애쓰며 무언가를 이루어 가는 청년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가진 아름다움은 너를 지은 내가 준 것이라고. 그러니 그것으로 스스로를 높이지 말고 준 나를 바라보라고. 아직 손에 쥔 것이 없어 마음이 초라한 청년에게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인생의 안전은 실은 화물에 있지 않고, 너를 지으신 나에게 있다고.
가라앉지 않는 배는 가장 많이 실은 배가 아니라, 지으신 분을 붙든 배입니다. 오늘 그 한 분 위에 여러분의 인생을 다시 실으시기를 바랍니다. 나를 지으시고 십자가로 건지신 그분을 인생의 반석으로 다시 모셔 들이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잠잠히 주님 앞에 나아가, 내가 무엇을 자랑하며 살아왔는지 돌아보십시다. 함께 결단찬양 "예수 나의 첫사랑 되시네"를 부르며 그 자리로 나아가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아름답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 받은 것을 내 것인 양 자랑하며 살아온 우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무너지지 않는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우리 인생을 다시 세우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