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2026071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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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림 받아야 깨끗합니다
목사taejin
예배새벽
본문민수기19:11-22
날짜2026-07-1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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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도입↔서론 / 본문↔본론 / 마무리↔결론 / 결단↔결단찬양 / 기도↔기도제목
섹션별 본문 (9개)
예배 순서
111자
2026년 7월 13일 (월요일)
308장 내 평생 살아온 길
449장 예수 따라가며
주기도문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415장 십자가 그늘 아래
본문: 민수기 19장 11-22절
봉독 — 민수기 19장 11-22절
879자
11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12 그는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잿물로 자신을 정결하게 할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려니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냥 부정하니
13 누구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이라 그가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것은 정결하게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하게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대로 있음이니라
14 장막에서 사람이 죽을 때의 법은 이러하니 누구든지 그 장막에 들어가는 자와 그 장막에 있는 자가 이레 동안 부정할 것이며
15 뚜껑을 열어 놓고 덮지 아니한 그릇은 모두 부정하니라
16 누구든지 들에서 칼에 죽은 자나 시체나 사람의 뼈나 무덤을 만졌으면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17 그 부정한 자를 위하여 죄를 깨끗하게 하려고 불사른 재를 가져다가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고
18 정결한 자가 우슬초를 가져다가 그 물을 찍어 장막과 그 모든 기구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뿌리고 또 뼈나 죽임을 당한 자나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에게 뿌리되
19 그 정결한 자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그 부정한 자에게 뿌려서 일곱째 날에 그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그는 자기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저녁이면 정결하리라
20 사람이 부정하고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회중 가운데에서 끊어질 것이니라 그는 정결하게 하는 물로 뿌림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부정하니라
21 이는 그들의 영구한 율례니라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린 자는 자기의 옷을 빨 것이며 정결하게 하는 물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22 부정한 자가 만진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할 것이며 그것을 만지는 자도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서론 — 죽음이 일상이 된 자리
633자
사랑하는 여러분, 한 주의 첫 새벽, 어떤 마음으로 나오셨습니까?
오늘 우리는 민수기의 말씀 앞에 섰습니다. 민수기는 '광야의 책'입니다. 히브리어로 '베미드바르', 곧 '광야에서'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시내산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사십 년의 기록입니다.
이 책의 골격은 두 번의 인구 조사입니다. 한 번은 광야에 들어설 때, 한 번은 광야를 나설 때. 그 사이에 옛 세대는 저물고 새 세대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진영 정중앙에는 성막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백성 한복판에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진영은 거룩해야 했습니다.
민수기의 흐름을 잠깐 보십시오. 1장에서 10장까지, 하나님은 흩어진 무리를 성막 중심의 거룩한 군대로 세우십니다. 11장에서 14장, 백성은 불평하고 정탐꾼의 보고 앞에 무너집니다. 그 결과 광야 사십 년이 선고됩니다. 16장에서 18장, 고라가 반역하고, 하나님은 제사장의 권위를 다시 세우십니다.
그리고 19장입니다. 이제 광야는 거대한 무덤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죽고, 또 죽습니다. 죽음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부정(不淨)도 일상이 되었습니다. 백성은 묻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다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가?"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본론 1 — 부정은 죄가 아니라 '상태'입니다
807자
여러분, 먼저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많은 성도가 '부정'이라는 말을 들으면 곧바로 '죄'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부정'은 곧 '죄'가 아닙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시체를 만졌다고 그 사람이 죄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킨 아들이 그 시신을 붙들었다고 죄를 지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부정은 도덕적 죄가 아니라, 거룩하신 임재 앞에 그대로 나아갈 수 없는 '상태'입니다.
율법을 보면 아이를 낳은 여인도 한동안 부정하다 하였습니다. 출산이 죄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정결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상태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왜 죽음은 부정합니까? 죽음은 하나님이 처음 지으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죽음은 없었습니다. 죽음은 죄가 세상에 들어오면서 함께 들어온 것입니다. 생명이신 하나님, 그 거룩한 임재 앞에 죽음의 흔적을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부정은 가만히 머물지 않습니다. 14절과 15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죽은 그 장막에 들어가는 자도, 그 안에 있던 자도, 뚜껑을 열어 둔 그릇까지도 부정해집니다. 16절은 들에서 뼈나 무덤을 만진 자도 이레 동안 부정하다 합니다. 22절은 이렇게 못 박습니다. "부정한 자가 만진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할 것이며 그것을 만지는 자도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기가 막힙니다. 부정은 손에서 손으로, 사람에게서 물건으로, 물건에서 다시 사람에게로 번져 갑니다. 죽음은 닿는 것마다 물들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죽음의 권세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막을 수 없습니다.
본론 2 — 스스로 씻을 수 없습니다. 뿌림 받아야 합니다
703자
그러면 어떻게 정결해집니까? 여기에 오늘 본문의 핵심이 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그는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잿물로 자신을 정결하게 할 것이라." 우리가 놓치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그냥 물이 아닙니다. '정결하게 하는 물', 곧 '잿물'입니다.
그 잿물이 무엇입니까? 이 장 앞부분에 나옵니다. 흠 없고 멍에를 메지 않은 붉은 암송아지를 진영 밖에서 잡아 불사르고, 그 재를 거두어 두었다가, 흐르는 물과 함께 담은 것입니다(17절). 정결한 자가 우슬초를 가져다가 그 물을 찍어 부정한 자에게 뿌립니다(18절).
여러분, 여기서 분명히 보십시오. 부정한 사람이 스스로 자기 몸을 문질러 깨끗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그에게 그 물을 '뿌려 주어야' 합니다. 13절은 말합니다. 정결하게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하게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대로 있다고.
기가 막힙니다. 아무리 깨끗해지고 싶어도, 뿌림을 받지 않으면 그대로 부정합니다. 20절은 더 엄중합니다. 뿌림을 받지 아니한 자는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회중 가운데서 끊어진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자리 아닙니까? 우리는 우리의 부정을 스스로 씻어 낼 수 없습니다. 아무리 결심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죽음이 물들인 자리를 내 손으로 지울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결심이 아니라, 밖에서 뿌려지는 '정결하게 하는 물'입니다.
본론 3 — 깨끗하게 하는 자가 그 부정을 짊어집니다
816자
이제 오늘 본문에서 가장 놀라운 한 절을 보십시오. 21절입니다.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린 자는 자기의 옷을 빨 것이며 정결하게 하는 물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여러분, 이 말씀이 보이십니까? 부정한 자에게 정결의 물을 뿌려 준 그 '정결한 자'가, 도리어 저녁까지 부정해집니다. 남을 깨끗하게 하는 자가, 그 깨끗하게 하는 일 때문에 스스로 부정을 뒤집어씁니다.
기가 막힙니다. 붉은 암송아지를 불사른 자도, 그 재를 거둔 자도, 이 장 내내 저녁까지 부정하다 하였습니다(7절, 10절). 정결을 이루는 그 손이 부정을 짊어집니다.
여러분, 이 그림자가 누구를 가리키고 있습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분명히 말합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 9:13-14).
붉은 암송아지의 재는 그림자였습니다. 참된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깨끗하신 그분이 진영 밖에서 우리의 부정을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 씻지 못합니다. 다윗이 무엇이라 기도했습니까?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시 51:7). 뿌려 주소서 — 이것이 우리의 기도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이 의식을 통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스스로 깨끗한 척하는 백성이 아닙니다. 자기 부정을 알고, 뿌림 받아 깨끗해진 채로, 거룩하신 임재 앞에 나아오는 백성입니다.
결론 — 애매한 시대, 거룩을 '선택하는' 힘
556자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이 시대를 '메이비 세대'라 부릅니다. '아마도', '글쎄요' — 무엇 하나 분명히 선택하지 못하고 미루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정결은 '아마도'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뿌림 받은 자는 이제 선택하는 자로 서야 합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그는 바벨론 왕의 산해진미 앞에서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였습니다(단 1:8). 보십시오. 다니엘도 '더럽힘'을 말합니다.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삶의 기준을 맞추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자기 입에 좋은 것을 절제하고 포기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아무것도 잃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는 것, 그것이 곧 하나님의 주권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뿌림 받아 깨끗해진 사람은 이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애매하게 서 있지 않습니다.
오늘 이 새벽, 뜻을 정하십시오. 흐려진 경계선 위에 다시 선을 그으십시오. 스스로 씻을 수 없어 뿌림 받은 그 은혜가, 오늘 여러분을 거룩을 선택하는 담대한 자로 세우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196자
하나님 아버지, 죽음이 물든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정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씻을 수 없는 자임을 알게 하옵소서. 오직 그리스도의 피, 그 뿌림의 은혜로만 깨끗해짐을 믿게 하옵소서.
이 애매한 시대에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여, 거룩을 선택하는 담대한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결단찬송
21자
찬송가 258장 「샘물과 같은 보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