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그 인덱스
t-20260719-001
버전 v1

돌이키면 삽니다

목사taejin
예배청년부
본문에스겔33:10-20
날짜2026-07-19 (일)
각 섹션의 ✏️ 수정 버튼을 누르고 지시를 입력하면 해당 섹션만 재생성 → v2 자동 저장. 별칭: 도입↔서론 / 본문↔본론 / 마무리↔결론 / 결단↔결단찬양 / 기도↔기도제목

섹션별 본문 (1개)

돌이키면 삽니다

4884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한 주간 애쓰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저는 다 알지 못합니다. 다만 기도하러 나온 청년의 마음 한켠에는 대개 같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자리, 몇 번을 무너졌던 자리, 하나님 앞에 다시 서기가 민망한 자리입니다. 오늘 그 마음을 그대로 들고 본문 앞에 서겠습니다. 에스겔은 예루살렘이 무너지기 전에 이미 바벨론으로 끌려간 사람입니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포로의 땅에서, 하나님은 그를 파수꾼으로 세우셨습니다. 파수꾼은 성벽 위에서 칼이 오는 것을 먼저 보고 나팔을 부는 사람입니다. 본문 바로 뒤 21절을 보면, 도망한 자가 와서 "그 성이 함락되었다"고 전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최악의 소식이 바로 앞에 와 있는 시간, 나라도 성전도 무너져 내리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포로 된 백성에게 건네신 말씀입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심판의 확정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살라는 초청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하나님은 이러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이 한 분 하나님을 세 걸음으로 보겠습니다. 첫째, 우리의 절망을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둘째, 하나님이 자기 생명을 걸고 맹세하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가 아니라 오늘의 방향을 보십니다. ###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절망을 들으십니다 (10절) 10절입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 우리로 그 가운데에서 쇠퇴하게 하니 어찌 능히 살리요." 이것은 반항하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 죄를 정확히 아는 사람의 말입니다. 이미 우리에게 있다고 합니다. 지나간 일이 아니라 지금도 나를 붙들고 있다는 뜻입니다. 쇠퇴하게 한다고 합니다. 한 번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말라 간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결론을 냅니다. 어찌 능히 살리요. 나 같은 사람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하나님을 향하지 않습니다. 자기 안에서 시작해 자기 안에서 끝납니다. 죄를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을 보지 않으면, 남는 것은 체념뿐입니다. 여러분 중에도 이런 자리에 계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 잘못인지 몰라서가 아닙니다. 너무 잘 알아서 지쳤습니다. 같은 죄를 몇 년째 들고 다니고, 기도하다 넘어지고, 결단하다 무너지고, 이제는 결단한다는 말 자체가 부끄러워졌습니다. 저도 그런 시간이 있었습니다. 기도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또 같은 말을 하는 내가 미워서 입을 다물었던 때가 있습니다. 본문이 놓인 자리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들은 이미 포로였습니다. 성전도 멀고, 제사도 드릴 수 없고, 눈앞에는 무너진 나라의 소식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다시 시작하라는 말은 사치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어찌 능히 살리요. 그런데 보십시오. 하나님은 이 절망의 말을 못 들은 척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말을 그대로 인용하시고, 거기에 답을 주십니다. 나 같은 게 살겠느냐는 그 한마디가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자리에서 스스로에게 물으십시오. 나는 지금 죄를 하나님께 가져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 혼자 붙들고 말라 가고 있습니까. ### 둘째, 하나님이 자기 생명을 걸고 맹세하십니다 (11절) 11절이 그 답입니다.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하나님이 맹세하십니다. 사람은 자기보다 큰 것을 걸고 맹세하지만, 하나님은 자기보다 큰 분이 없으셔서 자기 생명을 거십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이 확실한 만큼, 이 말씀도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확실합니까. 하나님은 죄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흔히 반대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팔짱을 끼고 계시다가, 내가 또 넘어지면 그것 보라고 하실 것 같습니다. 몇 번 용서받았으니 이번에는 어렵겠다고 스스로 계산합니다. 본문은 정반대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심판이 아니라 회복에 있습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심판을 말씀하시는 그 입으로, 심판을 피할 길을 먼저 열어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명령이 이것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돌이키라는 말은 몸을 돌려 방향을 바꾸라는 말입니다. 걸어온 거리를 지우라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걷고 있는 방향을 바꾸라는 말입니다. 두 번 반복하신 것은 그만큼 간절하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 어찌 죽고자 하느냐. 이것은 재판관의 선고가 아니라 아버지의 안타까움입니다. 이사야 55장 7절도 같은 말씀을 합니다.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널리 용서하신다고 합니다. 조금이 아니라 넉넉히 용서하십니다. 이 하나님이 끝내 어떻게 하셨는지 우리는 압니다. 돌이키라고 부르시던 그 하나님이, 돌이킬 힘조차 없는 우리를 위해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대신 죽으심으로 그것을 증명하셨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을 부르시는 그 목소리는 십자가를 지나온 목소리입니다. ### 셋째, 하나님은 과거가 아니라 오늘의 방향을 보십니다 (12-16, 19절) 12절부터 하나님은 두 사람을 나란히 세우십니다. 의인과 악인입니다. 그런데 그 결말이 우리 예상과 다릅니다. 12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공의가 그를 구원하지 못하고,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오늘이 결정적입니다. 13절입니다. 의인이라 불리던 사람이 자기의 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지난날의 헌신이 오늘의 면제부가 되지 않습니다. 예배에 빠지지 않았던 이력, 수련회에서 울었던 밤,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신앙의 평판, 그 어느 것도 오늘 내가 어디로 걸어가고 있는지를 대신해 주지 못합니다. 그런데 14절부터 16절은 정확히 그 반대를 말합니다. 죽으리라는 말을 들었던 사람이 돌이켜 자기 죄에서 떠나, 저당물을 도로 주고 강탈한 물건을 돌려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지켜 행하면, 그가 반드시 살고 죽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16절, "그가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반드시 살리라." 기억되지 아니한다. 하나님이 잊어버리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시는 그 죄를 근거로 우리를 대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7절이 그 완성을 말합니다.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그리스도의 피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돌이킴이 말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15절은 아주 구체적입니다. 저당물을 돌려주었습니다. 빼앗은 것을 돌려보냈습니다. 마음만 바뀐 것이 아니라 손에 들려 있던 것이 바뀌었습니다. 돌이킴은 감정이 아니라 방향이고, 방향은 반드시 손과 발로 나타납니다. 눈물을 흘렸느냐가 아니라, 그 눈물 이후에 무엇이 달라졌느냐를 본문은 묻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이 17절과 20절에 두 번 나옵니다. "주의 길이 바르지 아니하다." 하나님이 불공평하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말이 나왔겠습니까. 과거를 계산에 넣어 달라는 것입니다. 내가 쌓은 것은 인정받고 싶고, 저 사람이 무너뜨린 것은 끝까지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19절에서 다시 못 박으십니다. "만일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 정의와 공의대로 행하면 그가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여러분, 하나님의 관심은 여러분의 이력이 아니라 여러분의 방향입니다. 오늘 밤 스스로에게 물으십시오. 나는 지금 하나님께로 한 걸음이라도 방향을 틀고 있습니까, 아니면 예전에 뜨거웠던 기억으로 버티고 있습니까. ### 결단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오늘 밤 우리 앞에 놓인 것은 두 가지입니다. 나 같은 게 되겠느냐는 나의 말과, 돌이키면 살리라는 하나님의 맹세입니다. 둘 중 하나만 붙들 수 있습니다. 지금 30초만 눈을 감으십시오. 그리고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 한 가지를 이름 붙여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뭉뚱그리지 마십시오. 오늘 밤 돌이켜야 할 그 한 가지입니다. 기도가 막히거든 이렇게 시작하십시오. 하나님, 제가 오늘 이 방향에서 돌아섭니다. 길고 근사한 기도가 아니어도 됩니다. 하나님은 그 한 문장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떠나기 전에 한 가지만 정하십시오. 15절의 사람처럼, 돌려주어야 할 것이 있다면 돌려주고, 끊어야 할 연결이 있다면 끊고, 찾아가 말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이번 주에 찾아가십시오. 방향은 손과 발로 나타납니다. 오랫동안 무너져 있던 청년에게 하나님은 오늘 처음처럼 손을 내미십니다. 지금까지 잘 서 있었던 청년에게는 그 서 있음이 어디서 왔는지를 다시 물으십니다. 두 자리 모두 같은 자리로 부르십니다. 하나님께로 몸을 돌리는 자리입니다. 돌이키면 삽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이 오늘 밤 여러분 각 사람의 마음을 붙드시고, 이 기도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1. 나 같은 사람은 안 된다는 절망의 말을 내려놓고,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리게 하소서. 2. 우리가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사는 것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믿게 하소서. 3. 오늘 밤 결단한 그 한 가지를 손과 발로 옮기는 한 주가 되게 하소서. **결단찬양 - 주께 가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