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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20260726-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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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 없는 양에게

목사taejin
예배청년부
본문에스겔 34:11-24
날짜2026-07-26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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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별 본문 (5개)

서론

1471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한 주간 각자의 자리에서 애쓰다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다. 시험을 준비하고, 일터에서 버티고,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 졸이며 지나오셨습니다. 그 마음 그대로 하나님 앞에 앉으신 여러분에게, 오늘 하나님은 아주 오래된 한 장면을 보여 주십니다. 어릴 적에 시장에서 어머니 손을 놓쳐 본 적이 있으십니까. 사람은 가득한데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때 아이가 하는 일은 뜻밖에도 뛰어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울면서 그 자리에 섭니다. 한 발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누군가 찾으러 올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 정말 무서운 것은 길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무서움을 겪고 있던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에스겔 34장입니다. 에스겔은 제사장 집안에서 자란 사람이었지만,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가 살던 시대에 유다는 세 번에 걸쳐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바벨론 군대가 올라와 예루살렘을 에워쌌고, 성전의 그릇 얼마와 함께 왕족과 귀족의 소년들이 끌려갔습니다. 다니엘이 그때 끌려간 소년입니다. 나라는 아직 서 있었지만 이미 금이 가 있었습니다. 몇 해 뒤 바벨론 왕이 다시 올라왔을 때, 이번에는 왕이 직접 성문을 열고 걸어 나가 항복했습니다. 여호야긴 왕입니다. 왕과 신하와 용사와 기술자들이 함께 끌려갔고, 성경은 그때 "비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왕하 24:14)라고 말합니다. 그 포로 행렬 속에 젊은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에스겔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전하는 사람 자신이 포로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남아 있었습니다. 성벽이 헐리고 왕궁이 불타고 성전이 불탔습니다. 남은 백성마저 끌려갔습니다. 그 소식이 강 건너 포로들에게 닿던 날을 에스겔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예루살렘에서부터 도망하여 온 자가 내게 나아와 말하기를 그 성이 함락되었다 하였는데"(겔 33:21).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이제 왕이 없습니다. 성전이 없습니다. 나라가 없습니다. 양을 지킬 목자가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오늘 본문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먼저 백성을 이끌던 자들을 부르십니다. 그들을 "목자들"이라 부르시며, 그들이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고 그 털을 입으면서도 양 떼는 먹이지 않았다고 책망하십니다(2~3절). 연약한 자를 강하게 하지 않았고, 병든 자를 고치지 않았고,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않았고,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않았고,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않았습니다(4절). 그래서 양들이 흩어졌습니다. 하나님은 그날의 풍경을 한마디로 요약하십니다. > "내 양 떼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6절) 찾는 자가 없었습니다. 흩어진 것만이 슬픈 일이 아닙니다. 흩어졌는데 찾는 사람이 없는 것이 슬픈 일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말씀의 방향이 바뀝니다. 오늘 세 장면으로 그 반전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첫째,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11~15절)

938자
목자들을 향해 말씀하시던 하나님이 11절에서 눈을 돌리십니다. 그리고 흩어진 양들을 바라보십니다. >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11절) 짧은 한마디 안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두 번 말씀하십니다. "나 곧 내가." 누구를 대신 보내시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맡겼더니 양이 흩어졌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하나님이 친히 나오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찾고 찾되"라고 하십니다. 한 번 둘러보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찾을 때까지 찾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언제 찾으시겠다고 하십니까. 12절은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라고 말합니다. 날이 맑아 사방이 훤할 때가 아닙니다. 양이 가장 보이지 않는 날, 목자조차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날을 지목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다고 느끼는 그날이, 하나님이 가장 부지런히 움직이시는 날일 수 있습니다. 찾는 것으로 끝나지도 않으십니다. 흩어진 곳에서 건져내어 본토로 데려가시고, 좋은 꼴을 먹이시고, 좋은 우리에 두시겠다고 하십니다(13~14절). 그리고 이렇게 맺으십니다. >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15절) 눕는다는 말에 주목하십시오. 쫓기는 양은 눕지 못합니다. 서서 자고, 소리만 나도 일어납니다. 그런 양이 드디어 눕습니다. 눕는다는 것은 이제 도망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신 결과는 단지 위치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눕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도 속으로 이런 말을 하며 삽니다. 아무도 내 사정은 모른다고, 나 하나쯤 빠져도 아무 일 없다고, 나는 원래 혼자였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은 흐리고 캄캄한 날을 지목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나 곧 내가 찾겠다고. 여러분은 잊힌 사람이 아닙니다.

둘째, 가장 약한 양의 이름부터 부르십니다 (16~22절)

1039자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양부터 찾으실까요. 16절이 그 순서를 알려 줍니다. >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16절) 잃어버린 자, 쫓기는 자, 상한 자, 병든 자. 가장 약한 양들의 이름이 하나님의 명단 맨 앞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목록을 우리는 이미 한 번 들었습니다. 4절에서 목자들이 "하지 아니하며"라고 책망받던 바로 그 목록입니다. 사람이 하지 않은 일을 하나님이 하나씩 되짚으십니다. "하지 아니하며"가 "내가 하리라"로 바뀝니다. 사람이 비워 둔 자리를 하나님이 친히 채우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으십니다. 양을 힘들게 한 것이 목자들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살진 양들을 향해 남은 꼴을 발로 밟고 남은 물을 발로 더럽혔다고 물으십니다(18절). 그리고 더 아픈 장면을 지적하십니다. > "너희가 옆구리와 어깨로 밀어뜨리고 모든 병든 자를 뿔로 받아 무리를 밖으로 흩어지게 하는도다"(21절) 같은 우리 안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힘센 양이 약한 양을 밀어냈고, 자기가 먹고 남은 것은 아예 못 먹게 밟아 버렸습니다. 밖에서 들짐승이 오기 전에, 안에서 이미 밀려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사람이 모인 곳에는 늘 밀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이 많은 사람 곁에서 말 없는 사람이 밀리고, 앞서가는 사람 곁에서 처지는 사람이 밀립니다. 그리고 밀린 사람은 조용히 자리를 뜹니다. 아무도 그가 언제 나갔는지 모릅니다. 교회 안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다 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내 양 떼를 구원하여 그들로 다시는 노략 거리가 되지 아니하게 하고 양과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22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양과 양 사이에서 판단하시고, 밀려난 양의 편에 서십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느 자리에 서 있습니까. 누군가를 밀어내는 자리입니까, 밀려서 가장자리에 서 있는 자리입니까. 밀려나 있다면 기억하십시오. 목자의 눈은 늘 뒤처진 양에게 가 있습니다.

셋째, 한 목자를 세워 보내셨습니다 (23~24절)

711자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약속을 어떻게 이루셨습니까. 본문 끝에 그 답이 있습니다. >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23절) "한 목자"라고 하십니다. 여럿이 아닙니다. 한 분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내 종 다윗"이라 부르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선포될 때 다윗은 이미 오래전에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다시 온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윗과 같은 참된 왕, 참된 목자 한 분을 세우시겠다는 뜻입니다. 목자가 하나도 남지 않은 백성에게 목자를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 한 분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셨습니다. >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것을 봅니다. 에스겔 시대의 목자들은 양을 먹고 살았습니다.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고 그 털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정반대로 하셨습니다. 양을 먹은 것이 아니라,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주셨습니다. 십자가가 바로 그 자리입니다. 잃은 양을 찾으러 오신 목자가 그 양을 위해 죽으신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먼 옛날 포로들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나 곧 내가 찾겠다"는 그 약속이 어떻게 지켜졌는지, 우리는 십자가에서 확인합니다. 찾으러 오신 정도가 아니라, 찾은 양을 살리려고 자신이 죽으신 것입니다.

결론

825자
설교를 시작하면서 어머니 손을 놓친 아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이가 우는 이유는 길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아무도 자기를 찾지 않을까 봐 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저쪽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 한 소리에 울음이 그칩니다. 아이가 안전해진 이유는 길을 찾았기 때문이 아니라, 찾아온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찾고 찾는 자가 없던 그 자리에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왕도 성전도 나라도 사라진 자리, 목자가 하나도 남지 않은 자리에서 하나님은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한 목자를 보내셨고, 그 목자는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오늘 흐리고 캄캄한 날을 지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이것을 붙드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을 찾지 못하는 그날에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지금 누군가를 밀어내는 자리에 서 있다면, 목자의 눈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기억하십시오. 우리를 찾으신 그 목자를 따라, 밀려난 한 사람 곁에 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잠잠히 주님 앞에 나아가, 나를 찾아오신 그 음성을 다시 들으시기 바랍니다. 함께 결단찬송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를 부르며 그 자리로 나아가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찾고 찾는 자가 없던 자리에 친히 찾아오신 하나님 아버지,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고 여기며 지냈던 마음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흐리고 캄캄한 날에도 우리를 찾으시는 주님을 믿게 하시고,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르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