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2026073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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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라 깨어 일어나라
목사taejin
예배수요
본문이사야51:1-16
날짜2026-07-3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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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도입↔서론 / 본문↔본론 / 마무리↔결론 / 결단↔결단찬양 / 기도↔기도제목
섹션별 본문 (6개)
1대지. 하나님은 우리를 떠낸 그 반석을 생각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1643자
무너진 사람을 일으키실 때 하나님이 제일 먼저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앞을 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먼저 뒤를 돌아보라고 하십니다.
> **1절**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돌을 떠내는 채석장을 생각해 보십시오. 반듯한 돌 하나가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누군가 바위산을 골라 정으로 쪼고 떠내야 합니다. 돌이 떠나온 자리에는 우묵하게 파인 구덩이가 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떠낸 그 반석을 생각해 보아라. 너희가 파여 나온 그 구덩이를 들여다보아라." 무슨 뜻입니까? **너희는 저절로 생겨난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군가 너희를 떠내셨고, 다듬으셨고, 지금 이 자리에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 반석이 누구입니까? 2절이 대답합니다.
> **2절**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
여기서 "혼자 있을 때에" 라는 말씀을 놓치지 마십시오. 아브라함은 무리를 이끌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혼자였습니다. 자식도 없었고, 자기 땅도 없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근거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한 사람을 하나님이 부르셨고, 복을 주셨고, 창성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굳이 "혼자 있을 때"를 짚으신 것을 보십시오. 바벨론에 남은 자들의 눈에는 자기들이 너무 적어 보였던 것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나에서 시작하는 하나님이다."**
로마서 4장 17-18절 말씀입니다.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숫자로 일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의 계산으로도 일하지 않으십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지금 남은 것이 초라해 보인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기도하는 사람 하나, 무릎 꿇는 가정 하나, 눈물로 예배하는 성도 하나면 하나님은 충분하십니다. 우리 가정에 지금 믿는 사람이 나 하나뿐입니까? 그 하나가 아브라함입니다. 그 하나로 하나님은 온 집안을 창성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돌아본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하시는지 말씀하십니다.
> **3절**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여기서 눈에 들어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황폐한 곳을 버리고 다른 좋은 땅으로 옮겨 주시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황폐한 곳 자체를 에덴 같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막을 없애시는 것이 아니라 사막에 에덴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슨 소리가 나겠습니까? 기뻐하는 소리, 즐거워하는 소리, 감사하는 소리, 함께 노래하는 소리입니다. 무너진 자리에 찬송 소리가 터집니다.
여러분 인생에 지금 사막 같은 자리가 있습니까? 병상입니까. 사업장입니까. 자녀 문제입니까. 하나님은 그 자리를 피해 가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 자리를 동산으로 바꾸십니다. 오늘 이 예배당에서 그 노랫소리가 먼저 터져 나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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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지. 하나님은 영원한 것에 인생을 걸라고 명하시는 분입니다
1956자
뒤를 돌아보게 하신 하나님은 이제 눈을 들어 위를 보라고 하십니다. 4절과 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공의와 구원은 이스라엘 한 민족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만민에게, 저 섬들에까지 미친다고 하십니다.
> **5절** "내 공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
포로로 끌려간 백성에게 이 말이 어떻게 들렸겠습니까. 우리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데, 하나님은 온 세상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언제나 우리 형편보다 큽니다. 그리고 6절에서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가리키십니다.
> **6절**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든든하다고 여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늘과 땅입니다. 하늘은 무너지지 않고 땅은 꺼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그 하늘이 연기처럼 흩어지고, 그 땅이 입던 옷처럼 해어진다고 하십니다. **가장 튼튼해 보이는 것이 가장 먼저 낡습니다.** 우리가 붙들고 사는 것들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통장, 집, 건강, 자리, 사람의 인정. 하나같이 옷처럼 해어질 것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오직 하나 남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25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결단하십시오. 해어질 것에 인생을 걸겠습니까, 영원한 것에 인생을 걸겠습니까? 사라질 것을 위해 밤을 새우면서 영원한 것에는 한 시간도 못 드리는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영원한 것에 인생을 건 사람은 끝까지 남습니다.
이 확신이 서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무엇이 달라집니까? 7절과 8절을 보십시오.
> **7절**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내게 듣고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 **8절** "옷 같이 좀이 그들을 먹을 것이며 양털 같이 좀벌레가 그들을 먹을 것이나 나의 공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우리를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형편보다 말입니다. 사람들의 비방입니다. 뒤에서 하는 말 한마디에 밤새 잠을 못 잡니다. 교회에서 헌신하다가도 "저 사람 왜 저래" 하는 말 한마디에 마음이 식어 버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비방하는 자들을 뭐라고 하십니까? **좀이 먹을 옷이라고 하십니다.** 그 사람이 무섭습니까? 그 사람도 옷입니다. 그 입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낡아질 사람의 입은 무서워하면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가볍게 여깁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진 것은 죄를 지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를 고발할 구실을 찾던 자들이 그를 무너뜨리려고 법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다니엘이 어떻게 했습니까? 창문을 닫지 않았습니다. 전에 하던 대로 창문을 열고 기도했습니다. 결국 사자의 입이 봉해졌고, 사자 굴은 다니엘의 무덤이 아니라 하나님을 증거하는 무대가 되었습니다. <!-- illust: 다니엘의_사자_굴 -->
다니엘이 남달리 강한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방금 읽은 그 말씀, 세세토록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도 다니엘을 흉내 내려고 애쓰는 것이 아닙니다. 다니엘이 붙들었던 그 신실하신 하나님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확증된 그 은혜를 붙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말에 창문을 닫지 마십시오. 기도의 창문을 여십시오. 비방은 좀이 먹지만 여러분의 기도는 하늘에 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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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지. 하나님은 옛날에 일하신 그 팔로 오늘도 일하시는 분입니다
1947자
이제 본문의 분위기가 확 바뀝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9절에서는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절정입니다.
> **9절**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시대에 깨신 것 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깨소서 깨소서."** 얼마나 절박한 부르짖음입니까. 하나님, 잠들지 마십시오. 팔을 걷어붙이십시오. 옛날에 하셨던 그 일을 지금 다시 해 주십시오. 여기 나오는 "라합"을 성경은 애굽을 가리켜 부르기도 합니다. 이사야 30장 7절에서 하나님이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러니까 이 부르짖음은 이런 뜻입니다. "애굽을 꺾으시고 우리를 건져 내셨던 그 하나님, 그 팔이 지금 어디 계십니까?"
> **10절**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홍해입니다. 앞은 바다요 뒤는 병거였던 그 밤, 하나님이 바다 한가운데 길을 내셨습니다. 물만 갈라진 것이 아닙니다. **없던 길이 생긴 것입니다.** 백성은 그 기억을 붙들고 부르짖습니다. "그때 그 하나님이 주님 아니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붙들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본문 어디에도 하나님의 팔이 정말로 주무셨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깨소서"는 백성의 부르짖음이지 하나님의 형편이 아닙니다. 이사야 59장 1절에서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십니다. 내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내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팔이 짧아진 것이 아닙니다. 잠드신 것도 아닙니다. **잠든 것은 우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로 다음 장에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이사야 52장 1절입니다.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우리가 "깨소서 깨소서"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네가 깰지어다 깰지어다" 하십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깨어나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입니다. 식어 버린 기도가 깨어나야 합니다. 접어 두었던 헌신이 깨어나야 합니다. 포기했던 자녀를 위한 눈물이 다시 깨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팔로 실제로 역사를 뒤집으셨습니다. 당시 바벨론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제국이었습니다. 고대 역사가들의 기록에 따르면, 성벽이 얼마나 두꺼웠던지 그 위로 전차가 달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인간의 계산으로는 그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미 이 책 44장과 45장에서 이름까지 불러 두셨던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을 일으키셨습니다. 다니엘 5장이 "그 날 밤에"라고 기록한 그대로, 바벨론이 무너지는 데는 하룻밤이면 충분했습니다. 그 뒤 고레스가 조서를 내렸고, 포로로 끌려갔던 백성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람의 눈에 불가능한 일이 하나님의 때가 되니 순식간이었습니다. <!-- illust: 고레스_왕의_바벨론_정복과_이스라엘_귀환 -->
그 돌아오는 길이 11절에 이렇게 그려집니다.
> **11절** "여호와께 구속 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끌려갈 때는 울면서 갔는데, 돌아올 때는 노래하며 옵니다. 그리고 보십시오. 슬픔과 탄식이 "사라진다"고 하지 않고 **"달아난다"**고 했습니다.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짓누르던 슬픔과 탄식이 달아날 날이 옵니다.
이 홍해의 기적은 더 큰 구속의 그림자였습니다. 바다를 가르신 그 팔이 마침내 십자가에서 펼쳐졌습니다. 우리를 애굽에서가 아니라 죄와 사망에서 건져 내셨습니다. 그리고 11절이 말하는 "영원한 기쁨"은 이 땅의 한때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시는 눈물도 애통도 없는 그날, 하나님이 친히 우리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실 그날에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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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지. 하나님은 우리 입에 말씀을 두고 손 그늘로 덮으시는 분입니다
2177자
이제 하나님이 직접 대답하십니다. 그런데 그 대답이 참으로 뜻밖입니다. 위로로 시작하시더니 곧바로 책망으로 이어집니다.
> **12절** "이르시되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이니라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 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이니라." 하나님이 "나"를 두 번 겹쳐 말씀하십니다. 위로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이 위로자십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말씀이 우리를 찌릅니다.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느냐."**
여러분, 이 말씀 앞에 정직해집시다. 우리가 무엇을 그렇게 무서워합니까? 죽을 사람입니다. 풀같이 마를 사람입니다. 그 사람 눈치 보느라 예배를 미루고, 그 사람 말 한마디에 신앙이 흔들리고, 그 사람 때문에 밤새 뒤척입니다. 하나님이 물으십니다. "너는 도대체 어떤 자냐? 내가 네 위로자인데, 왜 풀을 무서워하느냐?"
> **13절**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준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여기 오늘 설교의 결론이 다 들어 있습니다.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은 담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펴신 분, 땅의 기초를 놓으신 분, 나를 지으신 그분을 잊으니,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하늘처럼 커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하십니다. 두려움이 무서운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두려움은 잠깐 왔다 가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따라다닙니다. 밥 먹을 때도, 운전할 때도, 누워서도 그 생각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끝에 뭐라고 하십니까?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그렇게 하루 종일 무서워하던 그것이, 하나님 앞에 세워 놓고 보니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에서 예수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두려움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옮겨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사람이 작아지고,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작아집니다. 오늘 저녁, 여러분 마음속에서 하늘처럼 커져 있는 그 이름 하나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그러면 그 두려움에서 풀려난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이 세 가지를 약속하십니다.
> **14절** "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일 것이니 죽지도 아니할 것이요 구덩이로 내려가지도 아니할 것이며 그의 양식이 부족하지도 아니하리라"
첫째, 풀어 주십니다. 그것도 "속히" 놓아 주십니다. 오래 묶여 있었다고 영영 묶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순식간입니다.
> **15절**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바다를 휘저어서 그 물결을 뒤흔들게 하는 자이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둘째, 하나님이 자기 이름으로 보증하십니다.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바다를 뒤흔드시는 분, 만군의 여호와. 하늘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신 분이 내 하나님이십니다.
> **16절**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말하기 위함이니라"
셋째가 가장 놀랍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입에 말씀을 두시고, 손 그늘로 덮으신다고 하십니다. 이 둘은 언제나 붙어 다닙니다. **입에는 사명을 주시고, 위에는 보호를 덮으십니다.** 말씀을 전하라고 입을 열어 주시고, 그 입 때문에 당할 일은 당신의 손으로 가려 주십니다. 한여름 땡볕에 나무 그늘로 들어가 보셨습니까. 하나님의 손이 우리 위에 그런 그늘이 되십니다.
마지막 한마디가 우리를 붙듭니다. **"너는 내 백성이라."** 포로로 끌려가 이름도 없이 살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이름을 다시 붙여 주십니다. 갈라디아서 3장 29절은 우리에게도 같은 이름을 붙여 줍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오늘 본문 2절에서 돌아보라고 하신 그 반석이 우리 것입니다. 오늘 16절에서 덮어 주신 그 손 그늘이 우리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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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잊지 말라 깨어 일어나라
983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마디를 하셨습니다. 앞에서는 "생각하여 보라" 하셨고, 뒤에서는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하셨습니다. 우리 병의 이름은 형편이 아니라 망각입니다. 하나님을 잊은 그 빈자리에 두려움이 들어와 하루 종일 우리를 끌고 다닌 것입니다.
이제 기억하십시오. 우리를 떠내신 반석이 계십니다. 혼자였던 아브라함을 창성하게 하신 하나님이 오늘도 하나에서 시작하십니다. 하늘이 연기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같이 해어져도 하나님의 구원은 영원합니다. 우리를 비방하던 입은 좀이 먹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습니다. 홍해에 길을 내신 그 팔은 한 번도 짧아진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오늘 우리 입에 말씀을 두시고 손 그늘로 덮으시며 "너는 내 백성이라" 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깨어나야 할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입니다. 우리가 "깨소서 깨소서"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은 "네가 깰지어다 깰지어다" 하십니다. 식어 버린 기도를 깨우십시오. 접어 두었던 헌신을 깨우십시오. "우리 집안은 여기까지"라고 못 박았던 그 말을 오늘 취소하십시오. 여러분의 사막은 버려질 땅이 아니라 에덴이 될 땅입니다.
11절 말씀이 오늘 우리의 결론입니다. **"여호와께 구속 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울며 끌려간 사람이 노래하며 돌아옵니다. 그 눈물을 완전히 닦아 주시는 날은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 완성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그날의 확실한 보증을 손에 쥔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아직 형편이 그대로여도 먼저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무거운 어깨로 들어오셨다면, 이제 노래하는 사람으로 일어나 나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다시 깨우시고, 이 마지막 때에 말씀을 입에 담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실 줄 믿습니다. 잊지 말고, 깨어 일어나는 복된 성도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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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제목
352자
**1. 하나님을 잊었던 자리를 회개하고, 나를 지으신 주님을 다시 기억하게 하소서**
형편만 바라보다 나를 떠내신 반석을 잊고 살았음을 회개합니다. 하늘을 펴시고 땅의 기초를 놓으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날마다 기억하게 하시고,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던 마음에서 놓임받게 하소서.
**2. 영종중앙교회와 다음 세대 위에 다시 깨어나는 부흥을 허락하소서**
식어 버린 기도와 접어 두었던 헌신이 다시 살아나게 하시고, 우리 가정과 일터의 사막 같은 자리를 에덴 같게 하여 주옵소서. 영종중앙교회가 말씀을 입에 담고 주의 손 그늘 아래 사는 공동체 되게 하시고, 우리 자녀와 다음 세대가 노래하며 돌아오는 회복을 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