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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도입↔서론 / 본문↔본론 / 마무리↔결론 / 결단↔결단찬양 / 기도↔기도제목
섹션별 본문 (5개)
1. 여호와께서 그 목소리를 들으셨습니다 (1-3절)
797자
21장은 전쟁으로 시작합니다. 1절입니다.
"네겝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 곧 아랏의 왕이 이스라엘이 아다림 길로 온다 함을 듣고 이스라엘을 쳐서 그 중 몇 사람을 사로잡은지라"
먼저 친 것은 아랏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사람을 빼앗겼습니다. 아론을 잃고 삼십 일을 애곡한 백성이 다시 길에 나서자마자 맞은 싸움이었습니다.
여러분, 이런 자리에서 이 백성이 늘 하던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원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릅니다. 2절입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만일 이 백성을 내 손에 넘기시면 내가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리이다"
사람을 붙잡고 따지는 대신 여호와를 향해 입을 엽니다. 이 백성이 여호와께 서원하는 장면은 민수기 안에서 여기 한 번입니다. 그리고 3절에서 성경은 이렇게 적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들으셨습니다. 그 결과 승리했고, 그곳 이름을 호르마라 불렀습니다. 호르마는 '진멸'이라는 뜻입니다.
이 서원을 한 번 더 들여다보십시오. 이 백성은 조건을 걸었습니다. 주께서 넘겨 주시면 우리가 그 성읍을 진멸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되찾아 오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께서 넘겨 주셔야만 한다는 고백입니다. 본문은 이 서원을 잘했다 잘못했다 평가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승리가 어디에서 왔느냐 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강해졌다고 말하지 않고,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넘겨 주셨다고 말합니다. 광야의 승리는 언제나 이 순서였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붙잡아야 할 순서도 바로 이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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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길로 말미암아 마음이 상하니라 (4-6절)
1046자
그런데 이 승리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성경은 원인을 분명히 적어 둡니다. 길입니다. 에돔이 통과를 거절했기 때문에 이 백성은 크게 돌아가야 했습니다. 가나안을 향해 북쪽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발걸음은 홍해 쪽으로, 곧 나왔던 방향으로 되돌아갑니다.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참 담담한 한 줄입니다. 그러나 이 한 줄 안에 많은 것이 들어 있습니다. 굶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매를 맞아서도 아니었습니다. 길이 길어서, 돌아가야 해서 마음이 상한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은 큰 시련만이 아닙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 사람의 속을 더 자주 무너뜨립니다. 기도한 지는 오래되었는데 응답은 보이지 않고, 어제와 오늘이 똑같고, 걸어도 걸어도 제자리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마음 밑바닥에서 한마디가 올라옵니다. "이럴 거면 왜 시작했나." 이스라엘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도 꼭 그 말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새벽, 어떤 길 위에서 마음이 상해 계십니까?
상한 마음에서 나온 말이 5절입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이 말을 천천히 들어 보십시오. 먹을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숨에 그 음식이 싫다고 합니다. 없다는 것입니까, 있는데 싫다는 것입니까? 원망은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찮다고 부른 그 음식은, 아침마다 거두어 먹던 만나였습니다.
그리고 6절, 결과는 무겁습니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하나님은 이 원망을 가볍게 넘기지 않으셨습니다. 광야 사십 년이 시작되던 그날에도 이 백성은 원망으로 광야를 얻었습니다. 그 사십 년이 다 지난 지금도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원망은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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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뱀은 그대로 두시고,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7-9절)
1474자
불뱀에 물려 죽어 가던 바로 그 자리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7절에서 백성이 자기 입으로 죄를 말합니다.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그리고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조금 전까지 자기를 원망하던 그 사람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자, 이제 하나님의 응답을 들으십시오. 백성이 구한 것은 뱀을 치워 달라는 한 가지였습니다. 그런데! 8절에서 하나님은 그 뱀을 치우지 않으십니다.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뱀은 여전히 진영 안에 있습니다. 여전히 뭅니다. 하나님은 그 뱀들을 쓸어 내시는 대신, 장대 하나를 세우게 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보면 살리라.
여러분,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문제를 없애 주시는 것이 은혜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문제를 그대로 두신 채, 그 한복판에 사는 길을 여셨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길이 얼마나 단순한가 하는 사실입니다. 9절입니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쳐다본즉. 그것이 전부입니다. 물린 자리를 스스로 치료하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공로를 쌓아 오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힘이 남은 사람이든 다 빠진 사람이든, 눈만 들면 살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모두 살더라"라고 적습니다. 쳐다보고도 죽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단순한 일이 늘 쉬운 것은 아닙니다. 우리 눈은 자꾸 자기 상처로 갑니다.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남았는지를 자꾸 헤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눈을 들어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장대는 무엇을 가리킵니까? 이것만은 우리가 짐작할 필요가 없는데, 주님께서 친히 그 답을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장 14절, 15절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주님은 저 장대에 달린 놋뱀이 바로 자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그 십자가를 이렇게 풀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우리를 물어 죽이던 것과 똑같은 모양이 장대에 달렸듯이, 저주를 받을 이유가 없으신 분이 우리의 저주를 지시고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우리가 할 일도 똑같습니다.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은혜의 방식은 오늘도 그때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무는 것을 치워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아랏 앞에서처럼 위협을 아예 없애 주실 때도 있고, 이 광야의 뱀처럼 그대로 두신 채 그 가운데 사는 길을 여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그 한복판에 십자가가 서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자마다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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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401자
사랑하는 여러분,
아랏 앞에서 백성이 입을 열자 여호와께서 그 목소리를 들으셨습니다. 뱀에 물려 죽어 갈 때에도 하나님께서 먼저 사는 길을 여셨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이 백성이 구한 것은 뱀이 없는 광야였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뱀 가운데서도 사는 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앞에도 상한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길이 길고, 자꾸 돌아가는 것 같고, 물린 자리가 아직 아프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앞에는 이미 세워진 장대가 있습니다.
오늘 집을 나서기 전, 눈을 드십시오. 상한 자리를 들여다보는 대신, 나를 위해 들리신 그분을 바라보십시오. 쳐다본즉 살더라 하신 그 말씀이 오늘 여러분의 하루에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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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기도
225자
하나님 아버지,
돌아가는 광야 길에서도 저희를 놓지 않으시니 감사합니다.
길이 길다고 마음이 상할 때, 원망 대신 주님을 향해 입을 열게 하옵소서.
물린 자리를 들여다보며 주저앉지 말고, 저희를 위해 들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쳐다본즉 살더라 하신 그 말씀을 오늘 하루 붙들고 걷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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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149장 주 달려 죽은 십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