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20260826-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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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한 것은 길이었고 주신 것은 땅이었습니다
목사taejin
예배새벽
본문민수기21:21-35
날짜2026-08-2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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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도입↔서론 / 본문↔본론 / 마무리↔결론 / 결단↔결단찬양 / 기도↔기도제목
섹션별 본문 (5개)
1. 이번에도 먼저 길을 청했습니다 (21-23절)
1164자
21절과 22절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우리에게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하소서 우리가 밭에든지 포도원에든지 들어가지 아니하며 우물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당신의 지경에서 다 나가기까지 왕의 큰길로만 지나가리이다 하나"
여러분, 이 말이 낯설지 않으실 것입니다. 20장에서 모세가 에돔 왕에게 보냈던 그 말과 거의 같습니다. 밭으로도 포도원으로도 들어가지 않겠다, 우물물도 마시지 않겠다, 왕의 큰길로만 지나가겠다. 그러니 길만 열어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낮은 자리인지 헤아려 보십시오. 우물물도 마시지 않겠다는 말은 목이 말라도 참겠다는 말입니다. 밭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말은 곡식 한 이삭도 건드리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보다 더 자신을 낮춘 요청이 있겠습니까?
여기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습니다. 이 백성은 에돔에게 똑같이 청했다가 칼을 든 형제에게 막혀 크게 돌아섰던 백성입니다. 한 번 거절을 겪어 본 사람은 태도가 달라지기 쉽습니다. 아예 청하지 않든지, 힘을 앞세우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백성은 이번에도 사자를 먼저 보냅니다.
그러면 시혼은 어떻게 했습니까? 23절입니다.
"시혼이 이스라엘이 자기 영토로 지나감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그의 백성을 다 모아 이스라엘을 치러 광야로 나와서 야하스에 이르러 이스라엘을 치므로"
성경은 한 절 안에서 두 번이나 적습니다. 치러 나왔고, 그리고 쳤습니다. 먼저 칼을 뽑은 쪽이 어디인지 분명히 해 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길을 물었고, 시혼은 군대를 몰고 나왔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에돔이 막았을 때는 돌아섰는데, 시혼이 막았을 때는 왜 싸웠습니까? 본문은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이 자리에 적어 둔 것은 하나뿐입니다. 시혼이 먼저 나와서 쳤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침묵하는 자리에서는 우리도 함께 멈추어 서는 것이 말씀 앞에 선 자의 태도입니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분명히 배울 것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백성이 붙든 방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았습니다. 먼저 낮추어 청하는 것입니다. 그 청함을 받아 주는가 거절하는가는 이 백성의 손에 있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결과를 손에 쥐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하나님께 두고 먼저 낮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도 그 순서를 지키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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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나가게 해 달라 했는데, 살게 하셨습니다 (24-32절)
1236자
싸움의 결과를 성경은 이렇게 적습니다. 24절과 25절입니다.
"이스라엘이 칼날로 그들을 쳐서 무찌르고 그 땅을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 점령하여 암몬 자손에게까지 미치니 암몬 자손의 경계는 견고하더라 이스라엘이 이같이 그 모든 성읍을 빼앗고 그 아모리인의 모든 성읍 헤스본과 그 모든 촌락에 거주하였으니"
그런데! 여러분, 이 백성이 시혼에게 구했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지나가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밭에도 포도원에도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우물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저 큰길로 통과만 하겠다는 것이 이 백성이 구한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것은 통과가 아니었습니다. 아르논에서 얍복까지의 땅이었습니다. 성읍이었고 촌락이었습니다. 우물물도 마시지 않겠다던 그 땅의 우물이 이제 이 백성의 우물이 되었습니다. 구한 것은 길이었는데, 주신 것은 땅이었습니다.
26절부터 30절까지 성경은 옛 시인의 노래 한 편을 그대로 옮겨 적습니다. 헤스본이 본래 모압의 성읍이었는데 시혼이 빼앗았다는 사연입니다. 그 노래에 우리가 무엇을 더 얹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이것만 보십시오. 사람의 손에서 사람의 손으로 주인이 바뀌던 땅이, 이제 하나님의 손에서 이 백성에게 건네집니다.
31절은 짧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의 땅에 거주하였더니"
참 담담한 한 줄입니다. 그러나 이 한 줄을 듣기까지 사십 년이 걸렸습니다. 사십 년 동안 이 백성의 주소는 늘 장막이었습니다. 그 백성이 마침내 성읍 안에 자리를 잡습니다.
32절에서 모세는 사람을 보내어 야셀을 정탐하게 합니다. 정탐이라는 말 앞에서 우리 마음이 한 번 멈춥니다. 사십 년 전 가데스에서도 이 백성은 정탐꾼을 보냈고, 그 정탐이 어떻게 끝났는지 우리는 압니다. 성경은 이번에 보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고 돌아왔는지 한 마디도 적지 않습니다. 다만 그 촌락들을 빼앗았다고만 적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붙들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과 하나님이 주시기로 하신 것은 종종 크기가 다릅니다. 우리는 그저 지나가게만 해 달라고 구하는데, 하나님은 그 자리에 살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잊지 마십시오. 구한 것과 주신 것 사이에 거절이 놓여 있었습니다. 시혼이 순순히 길을 열어 주었다면 이 백성은 그 땅을 그저 지나쳐 갔을 것입니다. 막아선 자리가 머무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뒤에 민수기 32장에서 르우벤과 갓 자손이 기업으로 받아 정착하는 땅이 바로 오늘 이 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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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싸움보다 말씀이 먼저였습니다 (33-35절)
1713자
오늘 본문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33절입니다.
"그들이 돌이켜 바산 길로 올라가매 바산 왕 옥이 그의 백성을 다 거느리고 나와서 그들을 맞아 에드레이에서 싸우려 하는지라"
여기서도 먼저 나온 쪽은 상대편입니다. 성경은 이 옥이라는 왕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온 백성을 이끌고 나왔다는 것만 적습니다. 시혼 때와 같은 형국이 다시 벌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앞의 싸움에 없던 것이 하나 있습니다. 3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와 그의 백성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나니 너는 헤스본에 거주하던 아모리인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 같이 그에게도 행할지니라"
오늘 본문에 기록된 하나님의 음성은 이 한 마디뿐입니다. 스물한 절을 지나오는 동안 잠잠하시던 하나님이 여기서 입을 여십니다. 그 말씀이 온 자리를 보십시오. 싸움이 끝난 뒤가 아니라, 싸움이 시작되기 전입니다.
이 말씀 안에 세 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순서입니다.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본문은 이스라엘이 옥을 보고 떨었다고 적지 않습니다. 무서워서 부르짖었다는 말도 없습니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먼저 말씀하십니다. 월요일 본문에서는 백성이 뱀에 물려 죽어 가며 부르짖은 뒤에 사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 소리도 나기 전에 말씀이 먼저 옵니다. 여러분,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두려움이 있으십니까?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한 그 마음을 하나님이 모르실 리 없습니다.
둘째는 시제입니다. "내가 그와 그의 백성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나니." 넘기겠다가 아닙니다. 넘겼다입니다. 칼이 부딪히기도 전에 하나님 편에서는 이미 끝난 일입니다. 아직 상대가 온 백성을 거느리고 눈앞에 서 있는데, 하나님은 다 된 일을 말씀하듯 말씀하십니다.
셋째는 근거입니다. "시혼에게 행한 것 같이 그에게도 행할지니라." 하나님은 새로운 증거를 내놓지 않으십니다. 어제 하신 일을 근거로 오늘을 명하십니다. 우리는 믿음이 흔들릴 때 흔히 새것을 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미시는 것은 대개 어제까지의 기록입니다.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이 누구였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리고 35절, 결과는 단 한 줄입니다.
"이에 그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백성을 다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그의 땅을 점령하였더라"
성경은 이 싸움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한 줄도 적지 않습니다. 누가 앞장섰는지, 며칠이 걸렸는지 적지 않습니다. 34절의 말씀 다음에 곧바로 결과입니다. 이 백성이 강해서 이긴 이야기가 아니라, 말씀하신 대로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먼 훗날 시편 기자는 오늘 이 두 싸움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시편 136편 19절과 20절입니다.
"아모리인의 왕 시혼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바산 왕 옥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 기자는 이 일을 이스라엘의 무용담으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불렀습니다. 우리 눈에 전쟁으로 보이던 장면이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인자하심의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바울도 같은 하나님을 고백했습니다. 로마서 8장 32절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가장 귀한 것을 먼저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 우리 앞에서도 먼저 말씀하시고 먼저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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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374자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을 나가서 이기라는 말씀으로 받지 마십시오. 이 백성이 한 일은 낮추어 길을 청한 것이었고, 나머지는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구한 것은 통과였는데 거주를 주셨고, 아무도 구하지 않았는데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먼저 왔습니다. 열린 길은 모두 열어 주신 길이었습니다.
오늘 집을 나서기 전, 앞에 서 있는 것을 재기 전에 뒤를 한 번 돌아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어제까지 나에게 행하신 일 한 가지를 소리 내어 세어 보십시오. 시혼에게 행한 것 같이 하시겠다던 그 하나님이 오늘도 같은 분이십니다. 아직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여러분의 그 자리에 먼저 찾아오시는 주님의 음성이 오늘 하루 여러분을 붙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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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기도
250자
하나님 아버지, 막힌 길 앞에서도 저희를 먹이시고 인도해 오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사람 앞에서 힘을 앞세우지 말고 먼저 낮추어 손 내미는 자 되게 하옵소서. 저희가 구한 것보다 크게 주시는 주님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두려운 것 앞에 설 때에 어제까지 행하신 주님의 일을 기억하며 걷게 하옵소서. 아직 아뢰지 못한 저희 마음에도 먼저 찾아와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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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