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20260827-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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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도 전에 지키셨습니다
목사taejin
예배새벽
본문민수기22:1-14
날짜2026-08-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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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도입↔서론 / 본문↔본론 / 마무리↔결론 / 결단↔결단찬양 / 기도↔기도제목
섹션별 본문 (5개)
1. 강 건너편에서 한 사람이 떨고 있었습니다 (1-4절)
954자
이스라엘이 진을 친 그 시각, 강 건너편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2절과 3절입니다.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보았으므로 모압이 심히 두려워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많음으로 말미암아 모압이 이스라엘 자손 때문에 번민하더라"
발락이 무엇을 보았습니까? 이스라엘이 아모리 사람에게 행한 모든 일, 어제 우리가 함께 본 그 싸움입니다. 그 소식이 강 건너까지 갔습니다.
성경은 발락의 상태를 두 마디로 적습니다. 심히 두려워하였다. 그리고 번민하였다. 번민한다는 말은 속이 뒤집힌다는 뜻입니다.
발락이 미디안 장로들에게 한 말이 4절입니다.
"이제 이 무리가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음 같이 우리 사방에 있는 것을 다 뜯어먹으리로다"
발락의 눈에 이스라엘은 이미 자기 밭에 들어온 소 떼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어딘가 낯익지 않으십니까? 오래전 애굽에서 바로가 이스라엘을 두고 한 말이 꼭 이랬습니다. 출애굽기 1장 9절과 12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백성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많다, 강하다, 이스라엘 자손 때문에 속이 뒤집힌다. 바로가 쓴 말이 그대로 발락의 입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세상의 말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놓치기 쉬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성경은 이 대목에서 이스라엘의 표정을 한 줄도 적지 않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름입니다. 3절까지 세 번 나오던 '이스라엘'이 4절부터 아예 사라집니다. 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이 백성은 한 번도 말하지 않고, 한 번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하루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아는 하루가 있고, 우리가 모르는 하루가 있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겨우 감당하며 삽니다. 보이지 않는 나머지 절반은 누가 지키고 있습니까? 본문은 바로 그 질문에 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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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저주를 돈으로 사려고 했습니다 (5-8절)
1075자
두려움에 사로잡힌 발락이 손을 뻗은 곳이 어디였습니까? 군대가 아니었습니다. 5절과 6절입니다.
"그가 사신을 브올의 아들 발람의 고향인 강 가 브돌에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여 이르되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주하였고 우리보다 강하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칼이 아니라 말이었습니다. 저주하라는 것입니다. 발락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 이것은 발락의 생각입니다. 성경이 발람을 그렇게 평가한 적은 없습니다. 발락이 그렇게 믿고 있었을 뿐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이 손에 복채를 가지고 떠나 발람에게 이르러 발락의 말을 그에게 전하매"
손에 복채를 들었습니다. 복채라고 옮긴 말은 본래 '점치는 일'을 가리킵니다. 뒷날 율법이 하지 말라고 못 박은 바로 그 일입니다. 그러니 이 한 절은 이렇게 들립니다. 저주를 돈 주고 사 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두려우면 무슨 일이든 합니다. 발락은 이스라엘 진영으로 사람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발람의 집으로 보냈습니다. 마주 보고 푸는 대신 등 뒤로 돌아간 것입니다.
우리도 두려울 때 이 길을 걷지 않습니까? 얼굴을 보고 풀어야 할 일을 뒤에서 처리하려 합니다. 하나님께 여쭈어야 할 일을 돈으로, 사람으로 먼저 막아 보려 합니다. 오늘 내가 등 뒤로 돌아가려던 일이 있다면, 그 일을 먼저 하나님 앞에 내놓으십시오. 두려움은 언제나 우리를 하나님 아닌 곳으로 먼저 데려갑니다.
그런데 발람의 대답이 뜻밖입니다. 8절입니다.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
여호와께. 그 이름이 이 사람의 입에서 나옵니다. 성경은 발람이 어떤 사람인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말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하룻밤을 미루었다는 것만 적어 둡니다.
자, 그 밤이 흘러갑니다. 본문은 모압의 귀족들이 그 집에서 유숙했다고만 적습니다. 자기 이름 위에 저주가 흥정되던 그 밤에, 이 백성은 이야기 속에 등장조차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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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 (9-14절)
1613자
그런데! 그 밤에 움직이신 분이 계셨습니다. 9절입니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말씀하시되 너와 함께 있는 이 사람들이 누구냐"
문장의 주어를 보십시오. 발람이 하나님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셨습니다. 발락이 사람을 보냈다면, 하나님은 친히 오셨습니다.
그리고 12절, 이 본문의 심장입니다.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
세 마디입니다. 가지 말라. 저주하지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
한 가지만 눈여겨보십시오. 발락은 6절에서 복과 저주를 말했습니다. 이 두 마디가 본문에서 다시 나오는 곳은 오직 12절, 하나님의 입뿐입니다. 발락이 저주하라고 한 그 말을 하나님이 그대로 집어 드십니다. 그리고 '말라'를 붙여 되돌려 보내십니다.
앞의 두 마디는 금지입니다. 마지막 한 마디는 금지가 아니라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이미 복을 받은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앞으로 받을 복이 아니라, 이미 받아 지금 지니고 있는 복입니다.
여러분, 이 선언이 언제 나왔는지 보십시오. 이 백성이 무슨 대단한 일을 한 다음이 아닙니다. 바로 앞 21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길이 멀다고 마음이 상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다가 뱀에 물려 죽어 가던 백성입니다. 그들이 잘해서 복 받은 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부르셨기 때문에 복 받은 자였습니다.
이 말씀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복 받은 자로 정해졌으니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발람처럼 흔들리지 않아야 그 복이 유지된다는 말씀도 아닙니다. 본문이 말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저주가 오기 전에 복이 먼저 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서 있어서 복이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복이 우리를 서 있게 합니다.
이것은 갑자기 생긴 말씀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래전 아브라함에게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2장 3절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복과 저주를 누가 정합니까? 발락은 그것을 사람의 손에 맡기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래전부터 그 일이 자기 손에 있다고 말씀해 오셨습니다.
결과는 13절과 14절입니다. 발람은 아침에 일어나 사자들을 돌려보냈습니다. 모압의 귀족들은 빈손으로 돌아갔습니다. 발락은 사람을 보냈고, 돈을 보냈고, 먼 길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은 한마디로 그 모든 것을 멈추셨습니다.
한 가지만 짚고 가겠습니다. 하나님은 세 마디를 하셨습니다. 발람이 전한 것은 첫 마디뿐이었습니다. 복을 받은 자들이라는 마지막 한마디는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본문에 없습니다. 다만 내일 이 사람이 어떤 길에 오르는지 함께 보겠습니다.
저주를 겨눈 것도 이 백성 밖이었고, 그 저주를 막은 것도 이 백성 밖이었습니다. 시편 기자가 노래한 그대로입니다. 시편 121편 4절입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우리가 잠든 밤에도 주무시지 않는 분이 계십니다. 여러분, 어젯밤에도 우리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 밤을 누가 지켰습니까? 오늘 하루의 첫 고백을 그 자리에서 시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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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809자
사랑하는 여러분, 이 이야기에서 이스라엘이 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기도한 것도 아니고, 싸운 것도 아니고, 알아차린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들은 안전했습니다. 그들이 깨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을 복 받은 자라 이미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훗날 이 밤의 이유를 한마디로 적어 둡니다. 신명기 23장 5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이유는 그것 하나였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내가 알지 못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몸 안의 일, 멀리 있는 자녀가 오늘 겪고 있을 일, 내 등 뒤에서 오가는 말들. 우리는 그것을 다 볼 수 없고, 다 막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 눈보다 훨씬 앞선 자리를 가리킵니다. 에베소서 1장 3절과 4절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창세 전입니다. 우리가 알기도 전에, 우리가 있기도 전에,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복 받은 자로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니 오늘 두려움이 올라오거든, 그 두려움과 씨름하기 전에 먼저 이 이름을 기억하십시오. 나는 복 받은 자입니다. 내가 그렇게 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부르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를 나서기 전에, 내가 알지 못하는 그 자리 하나를 떠올리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아뢰십시오. "주님, 제가 모르는 그 자리, 주님은 이미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알기도 전에 우리를 복 받은 자라 불러 주신 하나님, 그 사랑 안에 오늘 여러분이 서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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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기도
231자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도 저희를 지키고 계심을 오늘 말씀으로 배웁니다. 저희의 안전이 저희의 깨어 있음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에 있음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보이지 않는 것 때문에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님 앞에 내려놓게 하옵소서. 복 받은 자라 불러 주신 그 말씀을 오늘 하루 붙들고 걷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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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