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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20260828-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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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에 서 계셨습니다

목사taejin
예배새벽
본문민수기22:15-30
날짜2026-08-2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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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별 본문 (5개)

1. 값을 올려서 다시 왔습니다 (15-19절)

1114자
발락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15절입니다. "발락이 다시 그들보다 더 높은 고관들을 더 많이 보내매" 성경이 두 가지를 짚어 둡니다. 더 높은 사람들이었고, 더 많았습니다. 거절당한 왕이 택한 방법은 값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16절과 17절에 그 값이 나옵니다. "청하건대 아무것에도 거리끼지 말고 내게로 오라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하게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 거리끼지 말라고 합니다. 높여 주겠다고 합니다.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를 흔드는 것도 대개 이렇게 옵니다. 한 번 거절했다고 사라지지 않고, 값을 올려서 다시 옵니다. 자녀 일로 마음이 급해진 자리에서, 그 제안은 처음보다 훨씬 그럴듯한 얼굴을 하고 옵니다. 발람의 대답은 참 반듯합니다. 18절입니다.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이보다 더 분명한 대답이 있겠습니까? 여기까지만 읽으면 이 사람은 흔들림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줄이 이렇습니다. 19절입니다.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 돌아가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룻밤 자고 가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더하실지 알아보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이 왜 이상합니까? 하나님께서 이미 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가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같은 일을 다시 묻습니다. 입은 은금을 물리치는데, 손은 사자들을 붙잡아 재웁니다. 본문은 이 사람의 속마음을 열어 보여 주지 않습니다. 다만 신약의 베드로후서가 뒷날 이 사람을 이렇게 평합니다. 2장 15절입니다.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그러나 오늘 본문 안에서도 분명히 보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미 들은 답을 다시 묻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기도에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몰라서 여쭙는 것은 간구입니다. 아는 뜻을 바꾸어 보려고 여쭙는 것은 흥정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한 제목을 붙들고 여러 날 매달리는 기도를 나무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도 겟세마네에서 같은 기도를 세 번 하셨습니다. ---

2. 가라 하셨는데, 진노하셨습니다 (20-22절)

740자
그날 밤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임하십니다. 20절입니다.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가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허락에는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가되, 네 말을 하지 말고 내가 주는 말만 하라는 것입니다. 21절에서 그는 길을 나섭니다.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고관들과 함께 가니" 허락을 받고 떠나는 길이니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줄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22절입니다. "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시므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서니라" 여호와의 사자란 하나님을 대신해 서신 분을 가리킵니다. 여러분, 이 두 줄을 나란히 놓고 보십시오. 하나님이 가라 하셨습니다. 그가 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본문은 그 이유를 자세히 풀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짚어 둔 것이 둘 있습니다. 첫째는 19절입니다. 그는 이미 답을 들은 일을 다시 물었습니다. 둘째는 20절에 붙은 단서입니다. 하나님은 그냥 "가라" 하지 않으시고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하셨습니다. 그 밤의 "가라"는 마음대로 가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문이 열렸다는 것이 언제나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여쭈어 답을 받는 것과,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여쭙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

3. 짐승이 본 것을 사람이 보지 못했습니다 (23-30절)

1515자
이제 길 위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23절입니다.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간지라 발람이 나귀를 길로 돌이키려고 채찍질하니" 나귀가 보았습니다. 사자께서 칼을 빼어 들고 서 계신 것을 보고 길을 벗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등에 탄 사람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본 것은 말을 듣지 않는 짐승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때렸습니다. 두 번째입니다. 24절에서 사자께서는 포도원 사이 좁은 길에 서 계셨고, 25절에서 나귀는 몸을 담에 붙이고 피하다가 발람의 발을 담에 짓눌렀습니다. 발람이 다시 때립니다. 세 번째입니다. 26절과 27절에서 사자께서는 좌우로 피할 데가 없는 좁은 곳에 서 계셨고, 나귀는 발람 밑에 그대로 엎드렸습니다. 발람은 노하여 지팡이로 나귀를 때립니다. 여러분, 세 번입니다. 세 번 다 짐승은 보고 피했고, 세 번 다 사람은 보지 못하고 때렸습니다. 걸음이 세 번이나 막혔는데 그는 왜 한 번도 눈을 들지 않았습니까? 그가 길이 자꾸 막히는 것을 짐승의 고집으로만 여기는 동안, 그 길 위에는 칼이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28절, 여호와께서 친히 짐승의 입을 여시는 장면이 성경에 여기 한 번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 나귀가 말을 합니다. 여러분, 이 장면을 신기한 이야기로 흘려보내지 마십시오. 물어야 할 것은 짐승이 어떻게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그 입을 여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눈이 어두워진 사람을 그냥 지나쳐 가지 않으시고, 짐승의 입을 열어서까지 그를 붙드십니다. 발람의 대답이 29절입니다. "네가 나를 거역하기 때문이니 내 손에 칼이 있었더면 곧 너를 죽였으리라" 여러분, 그 칼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칼은 이미 뽑혀 있었습니다. 그의 앞에, 여호와의 사자의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손에 칼이 없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정작 자기 앞에 뽑혀 있는 칼은 보지 못했습니다. 30절에서 나귀가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나는 당신이 오늘까지 당신의 일생 동안 탄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 당신에게 이같이 하는 버릇이 있었더냐" 발람이 대답합니다. "없었느니라." 평생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던 짐승이 오늘 하루에 세 번이나 달라졌습니다. 본문은 그 까닭을 이미 세 번이나 적어 두었습니다.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았습니다. 그러니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신호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신호에 매질로 답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을 받아 전한다는 사람이 보지 못한 것을, 짐승이 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지 않습니까? 하려던 것이 번번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그때 대개는 막은 것을 탓합니다. 사람을 탓하고, 형편을 탓합니다. 오늘 새벽 스스로 한번 물어보십시오. 나는 지금 막는 것을 치우려고만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왜 막히는지를 여쭈어 본 적이 있습니까? 눈을 들면 보이는 것을, 우리는 채찍을 들고 있느라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

결론

749자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가장 은혜로운 대목이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다는 바로 그 줄입니다. 하나님은 저주해 달라는 청을 받고 가는 그 길을 끝까지 열어 두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길에 서셨습니다. 칼을 빼어 들고 막아서셨습니다. 세 번이나 그의 걸음을 돌이켜 세우셨습니다. 그가 끝내 보지 못하자 하나님은 짐승의 입까지 여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그 시간에, 하나님은 그 사람을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한 주간 우리가 민수기에서 본 것도 하나같이 하나님께서 먼저 하신 일이었습니다. 죽어 가던 자리에서 살아난 것도, 막힌 길이 열린 것도, 오늘 이 걸음이 막힌 것도 사람이 만들어 낸 일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향해 오셨습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눈을 떠서 찾아낸 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먼저 가서 서 계신 자리입니다. 오늘 하루, 걸음이 자꾸 막히는 일을 만나거든 먼저 짜증부터 내지 마십시오. 눈을 들어 이렇게 여쭈어 보십시오. "주님, 혹시 이 길에 서 계십니까?" 그리고 이미 주신 답이 있거든 그 답을 다시 묻지 마십시오. 우리를 막아 세우시는 그 손이 우리를 살리시는 손인 줄 아는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마무리 기도

247자
하나님 아버지, 이 한 주간 광야 길에서 저희와 함께 걸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미 주신 답을 두고 다른 답을 찾아 헤매지 않게 하옵소서. 값을 올려 다시 찾아오는 유혹 앞에서 흔들리지 않게 하옵소서. 걸음이 막힐 때에 짜증 대신 눈을 들어 주님을 찾게 하옵소서. 막아 세우시는 그 손이 저희를 살리시는 손인 줄 믿고 오늘 하루를 걷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