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20260929-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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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힘으로 섬기겠습니다
목사taejin
예배청년부
본문역대상 18:9-17
날짜2026-09-2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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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도입↔서론 / 본문↔본론 / 마무리↔결론 / 결단↔결단찬양 / 기도↔기도제목
섹션별 본문 (4개)
서론
1251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한 주간도 예배자로 살아오셨습니까?
역대상 17장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성전을 지어 드리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집을 세워 드리는 일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다윗의 왕위와 나라의 미래는 다윗의 계획과 실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18장은 전쟁의 기록으로 이어집니다.
다윗은 블레셋과 모압을 치고, 소바 왕 하닷에셀을 무찌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승리의 소식을 들은 하맛 왕 도우의 사절로 시작합니다.
도우는 아들 하도람을 보내 다윗에게 문안하고 축복하게 합니다.
하도람은 금과 은과 놋으로 된 그릇도 가져옵니다.
이 장면만 보면 다윗의 이름이 점점 널리 알려지고, 왕의 힘이 커지는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본문에는 전쟁과 정복, 조공과 예물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역대기는 그 승리를 다윗의 능력으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13절은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승리의 기록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다윗이 전리품과 예물을 하나님께 드린 일을 말하고, 마지막에는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한 일과 여러 직무를 맡은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합니다.
전쟁의 성과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과 백성을 대하는 일로 이어집니다.
왕은 더 강해졌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예물까지 보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강한 왕 앞에 백성을 세웁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얻었는지 말하던 이야기가, 그 힘으로 사람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묻는 이야기로 바뀝니다.
바깥에서 이겼다는 사실만으로 안에 있는 사람들의 삶까지 좋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왕의 창고에는 금과 은이 쌓일 수 있습니다.
왕의 이름도 멀리 퍼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 안에서 힘없는 한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말할 수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성경은 전쟁의 결과만 보여 주고 우리를 돌려보내지 않습니다.
그 왕이 다스리는 백성의 삶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17장의 언약을 지나 18장을 읽으면 흐름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을 세우시고,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십니다.
다윗은 그 받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힘은 어디를 향해야 합니까?
오늘 이 질문을 마음에 두고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따라가며 한 가지를 함께 붙들고 싶습니다.
승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 받은 힘은 하나님께 드리고 사람을 공정하게 대하는 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첫째, 여호와께서 승리를 주십니다.
2059자
역대상 18장 9절과 10절입니다.
“9 하맛 왕 도우가 다윗이 소바 왕 하닷에셀의 온 군대를 쳐서 무찔렀다 함을 듣고”
“10 그의 아들 하도람을 보내서 다윗 왕에게 문안하고 축복하게 하니 이는 하닷에셀이 벌써 도우와 맞서 여러 번 전쟁이 있던 터에 다윗이 하닷에셀을 쳐서 무찔렀음이라 하도람이 금과 은과 놋의 여러 가지 그릇을 가져온지라”
도우는 다윗의 승리 소식을 듣고 아들 하도람을 보냅니다.
본문은 그가 다윗에게 문안하고 축복했다고 말합니다.
하닷에셀과 도우 사이에는 여러 차례 전쟁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하닷에셀을 무찌르자 도우가 그 소식을 듣고 사절과 예물을 보낸 것입니다.
다윗 앞에 사람도 찾아오고 재물도 들어옵니다.
다윗의 이름을 축복하는 말이 들립니다.
이런 순간에는 승리의 이유를 자기 안에서 찾기 쉽습니다.
사람들의 칭찬이 커질수록 누구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잊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이 승리는 누구의 것입니까? 13절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역대상 18장 13절입니다.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매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본문은 다윗의 이름과 전쟁의 결과를 기록하면서 결론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다윗이 움직였고 아비새가 싸웠습니다.
왕으로서 다윗이 해야 할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승리의 궁극적인 주체는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12절은 아비새가 소금 골짜기에서 싸운 일도 기록합니다.
다윗 한 사람의 이름으로 모든 사람의 수고를 덮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수고를 기록한 뒤에 하나님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한 일을 지워서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수고한 역사 안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 앞 17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함께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18장은 그 약속을 주신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기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집을 세우기 전에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을 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먼저 하나님께 무엇을 해 드려서 이 관계가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함께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도 무언가를 이루면 그 과정에 내가 들인 노력부터 떠올립니다.
늦은 밤까지 공부한 시간, 여러 번 시도한 일,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한 순간이 생각납니다.
그 수고는 소중합니다.
그러나 수고했다는 사실이 모든 결과의 주인이 나라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건강과 시간과 배울 기회와 함께할 사람을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이 말씀을 믿으면 오늘 우리의 모든 일이 뜻대로 된다는 약속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일이 잘되었을 때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는 분명합니다.
내 수고를 기억하는 만큼, 나 혼자서는 만들 수 없었던 도움도 기억하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애썼는데.” 그 말이 틀리지 않아도, 그 말만 남으면 은혜가 보이지 않습니다.
시편 20편 7절입니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가진 자원과 실력만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고백입니다.
의지한다는 것은 준비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준비하고 수고하되 그것을 하나님 자리에 놓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가 한 일을 돌아볼 때 “내가 해냈다”라는 말만 남지 않기를 바랍니다.
수고한 자리를 인정하면서도 그 길에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기억합시다.
일이 기대한 대로 되지 않을 때도 그 결과 하나로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판정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가치는 오늘 받아 든 성적표나 다른 사람의 평가에 매여 있지 않습니다.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은 자신을 크게 보이게 하려고 함께 수고한 사람을 작게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도움받았다는 말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 혼자 한 일이 아닙니다.” 이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은 내 삶이 은혜 위에 서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은 능력도, 기회도, 오늘까지 걸어온 길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겠습니까?
둘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드릴 것을 먼저 주셨습니다.
1996자
역대상 18장 11절입니다.
“다윗 왕이 그것도 여호와께 드리되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들과 아말렉 등 모든 이방 민족에게서 빼앗아 온 은금과 함께 하여 드리니라”
하도람이 가져온 금과 은과 놋의 그릇을 다윗은 여호와께 드립니다.
본문은 앞서 여러 민족에게서 얻은 은금도 함께 드렸다고 기록합니다.
다윗은 승리와 외교적 예물로 자기 이름을 높이는 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받은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여기서 눈에 들어오는 말은 “그것도”입니다.
여러 나라에서 얻은 은금만이 아니라 하도람이 가져온 예물도 여호와께 드립니다.
들어온 길은 달라도 다윗이 그것을 향하게 하는 곳은 같습니다.
여호와께 드리는 자리입니다.
왜 받은 것을 다시 드립니까?
드리기 전에는 온전히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일부를 하나님 몫으로 떼어 놓는 것입니까?
다윗이 뒤에 성전 예물을 드리며 한 고백을 보면 그 뜻이 더 분명해집니다.
역대상 29장 14절입니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다윗은 드린 양을 앞세워 하나님 앞에 자기 공로를 쌓지 않습니다.
드릴 수 있는 힘까지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는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이 먼저 받은 사람임을 기억합니다.
다만 오늘 본문에는 전쟁에서 빼앗은 재물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이 오늘 우리가 남의 것을 부당하게 빼앗아 하나님께 드려도 된다는 허락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드린다는 말로 누군가에게 끼친 손해를 덮을 수는 없습니다.
드림은 내 손에 있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얻고 쓰는 내 삶까지 하나님 앞에 놓는 일입니다.
다윗이 먼저 큰 예물을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함께하시고 다윗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18장의 봉헌도 하나님께 은혜를 사는 거래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먼저 받은 사람이 받은 것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응답입니다.
신명기 8장 18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은 풍요로운 땅에서 살게 될 이스라엘에게 주신 경계입니다.
손에 재물이 많아질 때,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시고 언약을 지키신 하나님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받은 것을 움켜쥔 채 하나님을 잊는 마음을 깨우십니다.
받은 것은 자랑의 근거가 아니라 감사와 책임의 자리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돈과 능력과 시간은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공부와 직장과 꿈을 소홀히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내 정체성을 결정하는 주인이 되게 두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많이 가졌는지로 서로를 평가하고, 가진 것이 적을 때 부끄러워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가진 것을 자기 가치의 증명으로만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만큼 했으니 나를 알아줘야지.” “내가 빠지면 누가 이 일을 하겠어.” 우리도 드리면서 이런 마음을 품을 때가 있습니다.
손은 내어 놓고 있는데 마음은 대가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기억하면 드림의 말이 달라집니다.
“주님께 받은 것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고백에는 큰 것을 가진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금액과 같은 시간을 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내게 맡겨진 것을 주님 앞에서 정직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많이 드렸는지로 옆 사람보다 높은 자리에 설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먼저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예물을 드렸다는 기록은 승리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다시 보여 줍니다.
그런데 본문은 하나님께 드렸다는 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14절부터는 다윗이 백성을 어떻게 다스렸는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 받은 힘은 예배의 자리뿐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자리에서도 드러나야 합니다.
셋째, 우리는 맡은 자리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해야 합니다.
2398자
역대상 18장 14절입니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
전쟁과 예물의 기록 뒤에 이 문장이 놓입니다.
다윗의 통치를 평가하는 기준은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승리를 거두었는가만이 아닙니다.
본문은 그가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했다고 말합니다.
그 뒤 15절부터는 이름과 직무가 이어집니다.
요압은 군대사령관이 되고, 여호사밧은 행정장관이 됩니다.
사독과 아비멜렉은 제사장으로, 사워사는 서기관으로 섬깁니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다스리고, 다윗의 아들들은 왕을 모시는 우두머리가 됩니다.
이 목록은 이름만 늘어놓은 부록이 아닙니다.
나라의 일은 왕 혼자 하지 않습니다.
군사와 행정, 제사와 기록 등 각기 다른 일이 있고, 그 일을 맡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14절의 정의와 공의는 왕의 선언으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맡은 일들이 실제로 어떻게 수행되는지가 백성의 삶에 영향을 줍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습니다.
“모든 백성에게.” 왕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만이 아닙니다.
왕과 가까운 사람만이 아닙니다.
정의와 공의의 대상은 모든 백성입니다.
왕을 섬기는 사람들의 이름 앞에 이 문장이 놓여 있습니다.
어떤 자리를 맡았는가보다 그 자리에서 누구를 어떻게 대하는가가 중요합니다.
미가 6장 8절입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정의와 공의는 멀리 있는 구호가 아닙니다.
각자가 맡은 자리에서 사람을 공정하게 대하고, 약한 사람의 사정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에게도 각자의 자리가 있습니다.
조별 과제에서 누군가는 자료를 모으고 누군가는 발표합니다.
일터에서는 누군가 일정을 조정하고, 누군가는 기록을 남기고, 누군가는 눈에 띄지 않는 일을 맡습니다.
가정과 교회에서도 맡은 일이 다릅니다.
본문은 어떤 직무가 더 귀하다고 순위를 매기지 않습니다.
각자의 책임이 백성의 삶에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정의와 공의는 직함이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평가를 좌우할 수 있다면 그 기준을 공정하게 세우는 일이 필요합니다.
함께 한 일을 내 공로로만 말하지 않고, 실제로 수고한 사람의 몫을 인정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갈등이 생겼을 때 내게 편한 설명만 듣지 않고 양쪽 이야기를 살피는 일도 필요합니다.
청년 시기에는 아직 권한이 작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맡은 일이 작다고 그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작은 직책을 가졌다고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할 권리가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직무는 남을 누르는 자리가 아니라 공동체를 섬기는 책임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은혜를 기억한다고 말하면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을 함부로 대한다면, 우리의 고백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 편의 말을 들어 주는 것과 모든 사람을 공정하게 대하는 것은 다릅니다.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고, 내게 서운한 말을 하는 사람에게도 말할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합니다.
그 사람 역시 내가 마음대로 평가하고 밀어낼 수 없는 귀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왜 내 힘을 그렇게 사용해야 합니까?
내 힘이 나를 높이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 낸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은혜로 받은 사람은 힘을 자기 권리로만 쥐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드린다고 고백한 삶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납니다.
예배자로 산다는 것은 예배 시간의 고백이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받은 것을 잊고, 드리면서 인정받기를 원하고, 내게 유리한 사람만 가까이하며 살아갑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이 마음을 바꾸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먼저 섬기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섬기라고 말씀만 하신 분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을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쓸모 있는 사람이 된 뒤에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인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를 움직이는 힘은 더 인정받아야 한다는 두려움이 아니라, 이미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받은 것을 자랑하며 다른 사람 위에 서려고 하지 마십시오.
내게 맡겨진 것으로 한 사람을 섬기십시오.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섬기셨기 때문입니다.
“주님, 제게 있는 것은 주님께 받은 것입니다.
받은 힘으로 섬기겠습니다.”
이 고백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며, 사람 앞에서 공의를 행하는 예배자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