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20261007-002
버전
v1
함께 지키는 문 [목사님 검토용]
목사taejin
예배청년부
본문역대상26:1-19
날짜
각 섹션의 ✏️ 수정 버튼을 누르고 지시를 입력하면 해당 섹션만 재생성 → v2 자동 저장.
별칭: 도입↔서론 / 본문↔본론 / 마무리↔결론 / 결단↔결단찬양 / 기도↔기도제목
섹션별 본문 (5개)
서론
797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한 주간도 예배자로 살아오셨습니까?
역대상은 다윗이 예배를 준비하며 사람들을 세워 가는 모습을 기록합니다.
25장에서는 찬송하는 사람들의 반열이 나옵니다.
누가 노래하고, 누가 악기를 맡으며, 누가 예배 가운데 섬길 것인지 이름을 따라 기록합니다.
그런데 26장으로 오면 문지기들의 이름이 이어집니다.
성전 안에서 찬양하는 사람의 이름도 남고, 성전의 문을 맡은 사람의 이름도 남습니다.
우리는 이런 목록을 읽다가 쉽게 지나갑니다.
낯선 이름이 계속 나오고, 어느 문에 몇 사람이 배치되었는지까지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이름들을 그냥 남겨 두지 않으셨습니다.
누가 어느 문을 맡았는지, 누가 능력이 있었는지, 누가 어떤 직무를 맡았는지를 자세히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배는 몇 사람의 눈에 띄는 섬김으로만 세워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찬양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문을 지키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앞에 서는 사람도 필요하고, 들어오는 사람을 맞이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성전의 문을 맡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옛날 성전의 인력 배치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세우시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함께 예배의 자리를 지켜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오늘 말씀을 따라가며 세 가지를 함께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이름을 아시고 세우십니다.
하나님은 맡기신 직무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함께 예배의 문을 지킵니다.
첫째, 하나님은 각 사람의 이름을 아시고 세우십니다.
1387자
역대상 26장 1절은 문지기 반들을 소개하며 시작합니다.
“고라 사람들의 문지기 반들은 이러하니라 아삽의 가문 중 고레의 아들 므셀레먀라”
이름이 이어집니다.
므셀레먀의 아들들이 나오고, 오벧에돔의 아들들이 나오고, 호사의 가문도 나옵니다.
본문은 단지 문지기들이 있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누가 그 일을 맡았는지 이름을 남깁니다.
특별히 오벧에돔의 자손을 소개하면서 본문은 그들과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이 능력이 있어 직무를 잘하는 자들이었다고 기록합니다.
한 가문 안에 여러 사람이 있었고, 그들이 함께 성전의 문을 맡을 수 있었습니다.
본문은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셨다고도 기록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모든 봉사자에게 자녀의 수나 삶의 형통을 보장하신다는 약속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한 가문의 사정과, 그 가문 안에서 문지기의 직무를 감당할 수 있었던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아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이름을 아시고, 가문을 아시고, 그들이 맡을 수 있는 일을 아셨습니다.
문을 지키는 일은 사람들의 눈에 가장 잘 띄는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성전 안에서 노래를 불렀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사람들 앞에서 악기를 연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문을 지켰습니다.
누군가는 출입의 자리를 맡았습니다.
누군가는 예배의 공간이 질서 있게 지켜지도록 섬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도 남기셨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는 자꾸 보이는 자리만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알아주는 자리, 내 이름이 드러나는 자리, 결과가 금방 보이는 자리를 찾습니다.
그러다 보면 조용히 맡은 일을 하는 시간이 작아 보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도 모르는데 꼭 해야 할까?”
“나는 왜 늘 뒤에서만 섬기는 것 같지?”
이런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라지는 자리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예배를 위해 먼저 와서 준비한 사람을 아십니다.
마지막까지 남아 정리한 사람을 아십니다.
낯선 사람 곁에 앉아 준 사람을 아십니다.
말없이 맡은 자리를 지킨 사람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막연한 인력을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이름 있는 사람들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역할이 더 커 보인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자리가 작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아시고 세우셨다는 사실이 먼저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이름 없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름만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함께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세우실 때, 그들에게 맡길 직무도 아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맡기신 직무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1541자
본문은 오벧에돔의 자손을 소개하며 능력이 있어 직무를 잘하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큰 용사였다고 기록합니다.
역대상 26장 12절은 이들을 문지기의 반장으로서 여호와의 성전에서 섬기는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문을 지키는 일은 그 자리에 잠시 서 있기만 하면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맡겨진 자리를 알고, 책임을 알고, 함께 섬기는 사람들과 협력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본문에는 호사의 아들 시므리도 나옵니다.
그는 본래 맏아들이 아니었지만 그의 아버지가 장자로 삼았습니다.
본문은 그 이유를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기록에 없는 이유를 덧붙여서는 안 됩니다.
다만 본래의 순서만으로 모든 역할을 단정할 수 없다는 사실은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자리는 사람이 가진 겉모습이나 눈에 보이는 조건만으로만 결정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아시고, 맡길 일을 따라 세우십니다.
이것은 누가 더 높고 낮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전의 모든 직임이 함께 필요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찬양하는 사람만 준비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문을 지키는 사람도 준비가 필요합니다.
안내하는 사람도 판단이 필요합니다.
사람을 맞이하는 사람도 사랑이 필요합니다.
공동체의 한 자리를 맡는 사람에게는 책임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는 때때로 보이지 않는 섬김을 너무 가볍게 여깁니다.
“누구나 하면 되는 일 아닌가?”
“잠깐 서 있으면 되는 일 아닌가?”
“사람이 없으니 그냥 아무나 하면 되지.”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문지기도 직임을 얻어 성전에서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수고는 예배와 상관없는 주변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시편 84장 10절입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시편 기자는 성전 문지기의 자리를 작고 초라한 자리로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가까이에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를 고백하며, 그 자리를 기쁨으로 바라봅니다.
문지기의 일이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는 일임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섬김을 당연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먼저 와서 준비하는 사람의 수고를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사람들을 맞이하며 마음을 쓰는 사람의 섬김을 작은 일로 여기지 마십시오.
그리고 내가 맡은 일을 할 때에도 준비 없이 지나가지 마십시오.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나서 맡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아시고, 내게 필요한 은혜와 사람들을 붙여 주시며, 그 자리에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은사와 수고를 존중할 수 있습니다.
내가 모든 일을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모든 문을 지켜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맡길 자리를 나누어 주십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마침내 그 사람들이 어느 문을 맡았는지 보여 줍니다.
셋째, 하나님의 사람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함께 예배의 문을 지킵니다.
1676자
역대상 26장 13절은 각 문을 지키기 위하여 대소를 막론하고 제비를 뽑았다고 기록합니다.
이제 문지기들은 동쪽 문과 북쪽 문과 남쪽 문과 서쪽 문을 맡습니다.
오벧에돔의 아들들은 곳간도 맡습니다.
본문은 어느 방향이 더 복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어느 문이 더 높은 자리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방향마다 영적인 길흉을 붙이지도 않습니다.
본문이 보여 주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성전의 문들을 한 사람이 독차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각 사람은 맡은 자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각 문에는 필요한 사람이 배치되었습니다.
17절과 18절은 문마다 몇 사람이 있어야 하는지까지 기록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자리는 누군가 한 사람의 열심만으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함께 맡고, 함께 살피고, 함께 지켰습니다.
16절은 문지기들이 서로 대하여 파수하였다고 말합니다.
서로의 자리가 연결되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한 사람은 문 안쪽만 보고, 다른 사람은 문 바깥쪽만 보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서로의 자리가 있어야 전체가 지켜졌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8절-21절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에게 모든 일을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각 지체를 원하시는 대로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향하여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성전의 문마다 맡은 사람이 필요했던 것처럼, 공동체에도 서로 다른 자리가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공동체도 그렇습니다.
먼저 온 사람에게는 먼저 온 사람의 자리가 있습니다.
익숙한 사람에게는 익숙한 사람의 책임이 있습니다.
말할 기회가 많은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책임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잘 안다고 해서 내 자리가 더 넓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만큼 다른 사람이 들어올 자리를 지켜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문을 지킨다는 말을 잘못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편한 사람만 들어오게 하고, 낯선 사람은 멀리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전의 문을 맡은 본문을 오늘 우리의 차별과 배제의 근거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세우시고 문을 나누어 맡기신 모습은 예배의 자리가 책임 있게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켜야 할 문은 다른 사람을 밀어내는 문이 아닙니다.
함께 예배할 수 있도록 길을 살피는 문입니다.
새로 온 사람이 혼자 있지 않도록 돌아보는 일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눈치 보지 않도록 자리를 내어 주는 일입니다.
누군가의 말이 늘 묻히지 않도록 귀를 기울이는 일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힘이 있는 사람이 자기 자리만 넓히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자리도 세워 주는 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예배의 자리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먼저 들어왔다고 해서 예배의 문이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오래 섬겼다고 해서 공동체가 내 뜻대로 움직여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맡겨진 문을 충성되게 지키되, 다른 사람에게 맡겨진 문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결론
649자
오늘 본문은 문지기들의 이름과 직무를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이름 없는 군중을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각 사람을 아시고, 각 사람에게 직무를 맡기시고, 함께 성전의 문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우리의 준비나 수고로 열린 길이 아닙니다.
우리가 자격이 충분해서 예배의 자리에 들어온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9절입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우리를 받아 주시는 구원의 문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의 자리에 서는 것은 우리의 수고를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열어 주신 은혜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내 이름도 하나님 앞에 기억되어 있습니다.
내 옆의 사람의 이름도 하나님 앞에 기억되어 있습니다.
내가 맡은 자리도 필요합니다.
내 곁의 사람이 맡은 자리도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밀어내지 마십시오.
서로의 수고를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열어 주신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예배의 문을 지켜 가십시오.
예배하기 위해 살고, 예배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