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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20261007-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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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열려야 보이는 하나님의 길 [목사님 검토용]

목사taejin
예배새벽
본문민수기22:31-40
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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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별 본문 (7개)

서론

538자
사랑하는 여러분, 새벽 자리에 나와 말씀 앞에 선 우리는 무엇을 보며 하루를 시작합니까? 사람은 자기가 갈 길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해야 할 일도 알고, 가야 할 방향도 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길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 길의 실상을 보는 것은 다릅니다. 내 눈에는 바른 길처럼 보여도 하나님 앞에서는 멈추어야 할 길일 수 있습니다. 내 계획에는 빈틈이 없어 보여도 하나님께서 막고 계신 자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발람은 발락의 부름을 받고 모압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앞에 열린 길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발람이 보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 들고 그 길에 서 계셨습니다. 나귀는 보았지만 발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걸어가는 사람은 있었지만, 길의 실상을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까? 내가 붙드는 길 앞에서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고 계십니까?

첫째, 하나님이 눈을 여셔야 길의 실상을 봅니다

1128자
민수기 22장 31절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들고 길에 선 것을 그가 보고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니” 발람은 이제야 보았습니다. 자기가 걷던 길 위에 여호와의 사자가 서 계셨습니다. 그 손에는 칼이 있었습니다. 발람은 머리를 숙이고 엎드립니다. 자기가 보지 못한 현실 앞에 더는 설 수 없었습니다. 무엇이 발람을 보게 하였습니까? 그가 더 오래 생각했기 때문입니까? 그가 더 지혜로웠기 때문입니까? 본문은 분명히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셨습니다. 보게 하신 분은 발람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의 눈은 자기 뜻이 강할수록 더 어두워질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발람에게 묻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라고 물으십니다. 그리고 발람의 길을 막으려고 나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발람은 나귀가 자기 길을 방해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나귀는 칼 든 사자를 보고 발람을 피하게 하였습니다. 발람이 분노한 자리가 실은 발람이 보호받은 자리였습니다. 민수기 22장 33절은 더 엄중합니다. 나귀가 피하지 않았다면 발람은 죽고 나귀는 살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발람은 자신이 얼마나 큰 위험 앞에 있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이 막히면 먼저 실패라고 판단하지 않습니까? 문이 닫히면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계획이 멈추면 길을 잃었다고 여기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멸망에서 돌이키게 하시려고 걸음을 멈추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막으심은 단지 우리 뜻을 꺾으시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를 살리시려는 은혜의 손길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위험에서 건져 내시려는 인도하심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막힌 자리에서 먼저 원망하지 마십시오. “주님, 제가 보지 못하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으십시오. “주님, 이 자리에서 제 걸음을 멈추게 하시는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구하십시오. 말씀 앞에 멈추는 사람이 하나님의 길을 다시 봅니다. 시편 119장 105절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내 길을 비추는 빛은 내 판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새벽 열린 문만 찾지 말고, 주께서 비추시는 길을 구하십시오.

둘째, 하나님 앞에서는 알지 못함을 인정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1069자
민수기 22장 34절에서 발람은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섭니다. 그리고 “내가 범죄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또한 당신이 길에 서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고 말합니다. 발람은 자기가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더 이상 감출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 앞에서 자기의 무지를 인정합니다. 이것은 말씀 앞에 선 사람이 마땅히 서야 할 자리입니다. 사람은 자기 길이 틀렸다는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자기 판단을 붙들고, 자기 이유를 앞세우려 합니다.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상황을 설명하려 합니다. 돌이키기보다 자기를 변호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필요한 것은 자기를 크게 만드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 제가 알지 못했습니다”라는 정직한 고백입니다. 발람은 돌아가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말 이후 발람의 모든 마음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에 없는 발람의 속마음까지 단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본문이 분명히 보여 주는 사실은 있습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막으심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알지 못함을 인정했습니다. 여러분, 내가 이미 다 안다고 여기는 마음보다 위험한 마음이 무엇이겠습니까? 내 판단은 틀리지 않는다고 믿는 마음 아닙니까? 내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여기는 마음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확신을 더 크게 두는 마음입니다. 말씀은 우리를 비추십니다. 때로는 내가 옳다고 여긴 말을 드러내십니다. 때로는 내가 고집한 길을 멈추게 하십니다. 그때 말씀을 피하지 마십시오. 말씀 앞에서 작아지십시오. 돌이킴은 패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믿음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람을 멈추게 하시고, 은혜로 바른 길로 이끄십니다. 잠언 16장 9절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계획하는 일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계획보다 앞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걸음을 정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내 마음의 계획을 주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주님, 제가 알지 못한 길이 있다면 보이소서”라고 기도하십시오. 그 고백으로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셋째,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입을 두어야 합니다

1229자
여호와의 사자는 발람에게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분명한 경계를 세우십니다. 민수기 22장 35절입니다.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 발람은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마음대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는 말씀만 말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 아래 선 사람의 자리입니다.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말하지 않는 자리입니다. 사람의 기대를 채우려고 말씀을 바꾸지 않는 자리입니다. 발락은 발람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모압 변경의 끝까지 나아와 맞이합니다. 그는 발람을 높여 주겠다고 말합니다. 또한 소와 양을 잡아 발람과 함께한 고관들을 대접합니다. 사람의 높임과 풍성한 대우가 발람 앞에 놓였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대우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사람이 높여 주는 자리가 하나님보다 높을 수는 없습니다. 발람은 발락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 그것을 말할 뿐이니이다.” 이 말은 분명합니다. 입에 담을 말씀은 사람이 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말할 뿐입니다. 무엇을 말해야 합니까?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말입니까? 나를 높여 주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말씀은 사람의 유익을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말씀은 우리를 하나님께 복종하게 하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앞에 선 사람은 자기를 높일 수 없습니다. 자기 감정을 앞세워 다른 사람을 상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가정에서 어떤 말을 하겠습니까? 일터에서 어떤 말을 하겠습니까? 내 유익이 먼저 나오겠습니까? 내 감정이 먼저 나오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말이 나오겠습니까? 말하기 전에 멈추십시오. 내 입이 주님의 말씀 아래 있는지 살피십시오. 진리를 따라 사랑으로 말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말을 구하십시오. 베드로후서 2장 15절입니다.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이 말씀은 발람의 길을 경고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문에 없는 모든 동기를 마음대로 확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발람의 길을 막으셨고, 그의 입에 둘 말씀을 정하셨음을 보여 줍니다. 사람의 길이 흔들릴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입을 말씀 아래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이 우리의 가정과 일터에 흐르게 해야 합니다.

결론

443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발람을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보지 못하던 그의 눈을 여셨습니다. 막힌 길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하셨습니다. 또한 그의 입에 둘 말씀을 정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이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 가운데 자기 길을 가던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말씀 앞에 다시 서게 하십니다. 주님의 은혜는 우리를 정죄 속에 묶어 두지 않습니다. 돌이켜 생명의 길로 걷게 하십니다. 오늘 집을 나서기 전 한 가지를 기도하십시오. “주님, 제 눈을 여시고 주님의 길을 보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십시오. 말하기 전에는 “주님, 제 입에 주께서 기뻐하시는 말을 두소서”라고 기도하십시오. 내 뜻보다 주님의 뜻을 구하는 하루가 되십시오.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말씀을 따라 걷는 복이 여러분에게 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174자
하나님 아버지, 보지 못하던 우리를 말씀 앞으로 불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눈을 밝히셔서 주께서 막으시는 길을 깨닫게 하옵소서. 자기 뜻을 앞세우지 않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게 하옵소서. 오늘의 말과 걸음을 붙드시고 주께서 주시는 말씀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결단찬송

36자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