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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20261007-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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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지키시는 복의 말씀 [목사님 검토용]

목사taejin
예배새벽
본문민수기23:27-24:9
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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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별 본문 (8개)

예배순서

87자
찬송가 308장 내 평생 살아온 길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주기도문 찬송가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찬송가 415장 십자가 그늘 아래

서론

462자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 앞에 어떤 마음으로 새벽을 여십니까?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미 정해 둔 답을 하나님께 요구합니다.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으면 자리를 바꾸고 방법을 바꿉니다. 이 정도 정성을 들였으니 이번에는 뜻대로 되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발락이 바로 그렇게 움직입니다. 그는 발람에게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거듭 요구합니다. 앞선 시도에서 축복의 말이 나왔는데도 멈추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곳으로 데려가면 달라질지 모른다고 여깁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고 제단을 세우고 제물을 드립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들리는 말도 발락이 기다린 저주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어떻게 보시는지가 드러납니다. 이 장면은 누가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는지 묻습니다. 또한 복이 사람의 계산에서 오는지, 하나님의 뜻에서 오는지 묻습니다. 본문의 흐름을 따라 그 답을 들으십시다.

첫째, 장소를 바꾸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바뀌지 않습니다

1054자
민수기 23장 27절에서 발락은 발람에게 “오라 내가 너를 다른 곳으로 인도하리니 네가 거기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기를 하나님이 혹시 기뻐하시리라” 하고 말합니다. 여기서 발락이 붙드는 말은 “혹시”입니다. 다른 곳에 가면 하나님이 저주를 기뻐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듣고 따르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말을 들을 때까지 다시 시도합니다. 28절에서 발락은 발람을 브올 산 꼭대기로 인도합니다. 그곳에서는 광야가 내려다보입니다. 이스라엘이 있는 쪽을 바라보게 하고 다시 저주를 구합니다. 발락에게는 장소가 달라졌으니 결과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도 장소에 따라 달라집니까? 사람의 눈앞에 놓인 풍경이 바뀌면 하나님의 뜻도 바뀝니까? 29절에서 발람은 일곱 제단과 수송아지 일곱 마리,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게 합니다. 30절에서 발락은 그 말대로 각 제단에 제물을 드립니다. 본문은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준비했는지 보여 줍니다. 동시에 그 많은 준비가 무엇을 위해 쓰이는지도 보여 줍니다. 발락이 바라는 것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향한 저주입니다. 제단이 늘어난다고 그 마음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제물을 드린다고 하나님이 발락의 요구를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민수기 23장 1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이 말씀 앞에서 발락의 “혹시”는 힘을 잃습니다. 사람은 자리를 옮기며 유리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요구에 맞추어 하신 말씀을 뒤집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발락의 거듭된 시도는 무엇을 드러냅니까?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하나님을 자기 뜻에 맞추려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저주를 구하는 시도가 거듭될수록 하나님의 복의 말씀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발락이 계획한 것은 저주였지만, 하나님은 축복의 말을 막지 않으십니다. 여기서 먼저 보아야 할 분은 끈질긴 발락이 아닙니다. 자기 백성을 향한 뜻을 지키시는 하나님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보여 주신 장막을 바라봅니다

1062자
민수기 24장 1절에서 발람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심을 봅니다. 그래서 전과 같이 점술을 쓰지 않고 낯을 광야로 향합니다. 이 변화는 발람이 마침내 복을 만들어 냈다는 뜻이 아닙니다. 본문이 먼저 밝히는 것은 여호와께서 축복을 선히 여기셨다는 사실입니다. 발람의 방법보다 앞서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2절에서 발람은 눈을 들어 이스라엘을 봅니다. 이스라엘은 그 지파대로 천막을 치고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영이 발람 위에 임하십니다. 그가 본 것은 광야에 자리 잡은 여러 장막입니다. 그 장막을 두고 무슨 말을 하게 될까요? 발락이 원한 대로 그들을 낮추고 저주할까요? 3절과 4절에서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환상을 본다고 말합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근원을 본문이 먼저 짚어 줍니다. 이어 5절에서 그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야곱이여 네 장막들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들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발락은 저주할 대상을 보여 주려고 이스라엘 쪽으로 발람을 데려왔습니다. 그러나 발람의 입에서는 장막이 아름답다는 말이 나옵니다. 누가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 냈습니까? 광야의 천막 자체가 화려해서입니까? 본문은 하나님이 그들을 향해 복을 말씀하시는 자리로 우리를 이끕니다. 6절에서 그 장막들은 골짜기와 강가의 동산에 비유됩니다. 또 여호와께서 심으신 나무와 물가의 나무에 비유됩니다. 광야를 바라보던 눈앞에 물과 나무의 모습이 펼쳐집니다. 특히 “여호와께서 심으신”이라는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자기 백성의 자리를 설명하는 중심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발람의 칭찬이 그들에게 가치를 더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그들을 향한 복을 뜻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장면을 들으며 도움의 근원을 혼동하지 마십시오. 시편 121장 2절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장소를 바꾸는 발락에게서 도움을 얻을 수 없습니다. 점술을 멈춘 발람에게서도 복의 근원이 나오지 않습니다. 복의 말씀을 주시고 장막을 바라보게 하시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 앞에 선 자가 바라볼 분은 바로 그 하나님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복을 선언하십니다

1179자
민수기 24장 7절은 물이 넘치고 씨가 많은 물가에 있는 모습을 말합니다. 이어 왕이 높아지고 나라가 흥왕할 것을 말합니다. 6절의 강가와 물가의 나무에 이어 물의 이미지가 계속됩니다. 말씀은 메마름보다 넘침을, 끊어짐보다 이어짐을 그립니다. 이것은 발락이 듣고 싶어 한 저주와 정반대입니다. 그러나 이 그림을 오늘 각자의 형편에 대한 보장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먼저 이스라엘을 향한 축복의 말로 들려야 합니다. 8절은 그 복의 근원을 다시 분명히 합니다. “하나님이 그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 힘이 들소와 같도다” 힘에 관한 말보다 먼저 나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이 스스로 구원의 길을 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그들의 이야기를 앞서 갑니다. 8절의 뒤쪽에는 적국을 삼키고 뼈를 꺾는 강한 전쟁 표현도 나옵니다. 이 말은 발람의 축복 선언 안에 있는 표현입니다. 오늘 우리가 누군가를 적으로 정해 공격하라는 명령은 아닙니다. 본문의 초점은 발락이 요구한 저주가 이스라엘의 앞날을 결정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9절은 이스라엘을 꿇어앉아 누운 사자에 비유합니다. “일으킬 자 누구이랴”라는 물음이 그 뒤를 잇습니다. 그리고 축복과 저주의 선언으로 신탁이 끝납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지로다” 발락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말을 얻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들리는 말은 저주하려는 그의 뜻을 거스릅니다. 누가 이 결말을 정했습니까? 제단을 세운 발락입니까, 말을 전한 발람입니까? 본문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분이 먼저 행하시고 자기 백성을 향한 복을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복을 어떻게 들어야 하겠습니까?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이 선언을 곧바로 우리의 힘이나 성공에 대한 약속으로 옮길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를 말할 때는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복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1장 3절은 이렇게 찬송합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우리의 소망은 사람의 저주를 물리칠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분의 은혜가 우리의 믿음과 순종보다 먼저입니다.

결론

346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복은 우리가 하나님을 설득해 얻어 낸 결과가 아닙니다. 본문에서 발락은 거듭 저주를 구했지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향한 복의 말씀을 지키셨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들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은혜를 바라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이기에 오늘 말씀 앞에 순종합니다. 오늘 집을 나서기 전, 내 뜻에 맞는 답만 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 앞에서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오늘 순종해야 할 한 가지를 기도로 아뢰십시오. 결과를 장담하며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가십시오. 그 믿음과 순종이 오늘 여러분의 걸음에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234자
하나님 아버지, 자기 백성을 향한 복의 말씀을 지키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원하는 답을 얻으려고 말씀을 내 뜻에 맞추려 한 마음을 돌아보게 하옵소서. 광야의 장막을 바라보게 하신 주님의 뜻에 귀 기울이게 하옵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은혜를 신뢰하며 오늘 순종할 한 가지를 실천하게 하옵소서. 사람을 저주하는 말이 아니라 주께 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말을 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결단찬송

16자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