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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0260518-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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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_펴신_손_은혜톤

목사samuel
예배주일
본문신15:7-11
날짜2026-05-1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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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별 본문 (7개)

40년, 펴신 손

489자
**__본문: 신명기 15장 7절부터 11절__** __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 주라.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네가 죄를 얻을 것이라.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__ ---

서론

1372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사랑의손 복지재단 가족 여러분. 저는 어릴 적, 어머니의 손을 잊지 못합니다. 우리 집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동네에 끼니를 거른 아이가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부엌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솥에 있는 밥을 한 그릇 덜어내시고, 김치 한 보시기를 옆에 두시고, 그 위에 보자기를 덮으셨습니다. 그러고는 그 작은 손으로 그 보자기를 꼭 쥐고 골목을 나가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그 손을 기억합니다. **움켜쥔 손이 아니라, 펴신 손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어머니는 “오늘은 우리도 좀 적게 먹자” 한 마디만 하셨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어린 저는 그 말의 무게를 그날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어머니의 그 손이 제 마음에 자꾸 살아납니다. 그러다 어느 날, 한 가지 질문이 제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어머니의 그 손은 어디서 왔을까.”** 어머니는 부유하셔서 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손에 무엇이 많아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손은 어디서 왔는가. 저는 이제 그 답을 알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손은 **먼저 누군가에게서 받아 본 손**이었습니다. 어머니도 어려운 시절, 누군가의 펴신 손에 붙들려 살아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머니의 손은 어머니의 손이기 이전에, **어머니가 받은 그 손의 연장**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모인 자리, **사랑의손 복지재단 40주년 정기총회**가 바로 그렇게 받은 손을 다시 펴 오신 자리입니다. 40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지 않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한결같이 손을 펴 오신 모든 분들 위에, 먼저 그 손을 들려 주신 하나님의 풍성한 복이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신명기 15장 7절부터 11절은 우리에게 익숙한 말씀입니다. **“네 손을 펴라.”**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조금 다른 자리에서 듣고자 합니다. 우리가 손을 펴야 한다는 명령 이전에,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손을 펴 주셨다**는 그 자리에서. 모세는 가나안 땅 진입을 앞두고 광야 끝자락에서 마지막 설교를 합니다. 그런데 그 설교 전체가 한 문장 위에 서 있습니다. 15절입니다. __“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__ 신명기 15장의 모든 명령은 이 한 줄의 은혜에서 흘러나옵니다. **먼저 받은 자가 펴는 손**, 그것이 본문의 흐름입니다. 오늘 본문이 가르치는 세 가지를 그 은혜의 흐름 위에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는 가난한 형제에게 손을 펴는 것이요, 둘째는 아끼는 마음 없이 후히 베푸는 것이요, 셋째는 먼저 손을 펴신 하나님의 관대하심을 닮는 것입니다. ---

첫째, 가난한 형제에게 손을 펴십시오.

1755자
7절을 함께 보십시오. __“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__ 성도 여러분, 본문이 우리에게 손을 펴라고 명하시기 전에, 본문은 먼저 한 가지를 일러 주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그 땅이 누구의 것입니까. 우리가 일군 땅이 아닙니다. 우리가 얻어 낸 땅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주신 땅**입니다. 우리가 가난한 형제와 같이 거하는 그 자리, 그 성읍, 그 집 — 그것부터가 이미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받은 자가 펴는 것입니다. 본문이 명령으로 시작하지 않고 **선물의 진술**로 시작한다는 사실을 놓치지 마십시오. 그 위에서 본문은 두 가지를 금하시고 한 가지를 명하십니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라. 손을 움켜쥐지 말라.** 그리고 8절에서 __“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 주라”__ 하십니다. 여기서 “움켜쥐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카파츠**라고 합니다. 손가락을 하나씩 안으로 접어 주먹을 단단히 쥐는 모양입니다. 무언가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꽉 쥐는 손. 반대로 “펴라”는 단어는 **파타흐**입니다. 잠긴 문을 여는 것과 같은 단어입니다. 닫힌 손을 활짝 여는 것입니다. @@닫힌 손은 더 받지 못합니다. 펴진 손에만 더 부어집니다.@@ 그런데 본문이 정말로 묻는 것은 “네 손이 닫혔느냐 열렸느냐”가 아닙니다. 더 깊은 질문이 있습니다. **“네가 받은 그 손을 기억하고 있느냐.”** 받은 것을 기억하는 마음에는 완악함이 자랄 자리가 없습니다. 받은 것을 잊은 마음에 완악함이 들어옵니다. 본문이 가난한 사람을 부르는 호칭을 보십시오. 그냥 “가난한 자”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가난한 형제”**라고 부르십니다. 7절에 두 번, 11절에도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라고 하십니다. 왜 형제입니까? 같은 아버지 하나님께 똑같이 은혜를 입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한때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이었던 우리가 형제로 받아진 그 은혜**가 먼저였습니다(엡 2:19 참조). 성도 여러분, 그러니 가난한 형제에게 손을 펴는 것은 **자선이 아닙니다.** 가족의 일입니다. 베푸는 것이 아니라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그 환대를 다시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더 분명히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 40절입니다. __“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__ 작은 자 하나가 형제입니다. 그 형제가 곧 주님이십니다. 그러니까 형제에게 손을 펴는 그 자리에서, 우리는 이미 주님께 손을 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손 복지재단이 지난 40년 동안 해 오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길에서 만난 한 사람을 “이방인”이 아니라 **“형제”**로 받아들이신 일. 그 손을 잡고 “당신은 우리 가족입니다” 하고 말씀해 오신 일. 그게 가능했던 것은 우리가 대단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그렇게 받았기 때문**입니다. 받은 자만이 그렇게 부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변에 손을 펴야 할 형제가 있다면 먼저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어떻게 형제가 되었는가.”** 그 답이 떠오르는 순간, 마음의 완악함은 녹아내립니다. 닫혔던 손은 펴집니다. 받은 자로서, 형제에게 손을 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둘째, 아끼는 마음 없이 후히 베푸십시오.

2028자
이제 9절과 10절을 보십시오. 본문은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9절입니다. __“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네가 죄를 얻을 것이라.”__ 여기에 한 가지 배경 설명이 필요합니다. 신명기 15장 1절부터 6절은 **면제년** — 일곱째 해에 빚을 면제해 주는 규례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면제년이 가까워지면 사람의 마음은 계산을 합니다. **“지금 빌려주면 곧 면제년이 와서 돌려받지 못한다. 그러니 빌려주지 말자.”** 본문은 바로 그 계산을 **“악한 생각”**, **“악한 눈”**이라고 부르십니다. 성도 여러분, 손해를 계산하기 시작하면 손은 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__“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__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어떻게 이런 명령을 우리에게 하실 수 있는가.** 손해 계산하지 말라, 아끼는 마음 품지 말라 — 이게 사람의 본성을 거스르는 명령 아닙니까. 본문은 이 명령에 대한 답을 15절에 두십니다. __“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__ @@하나님은 우리에게 손해를 보라 하시지 않습니다. 다만 이미 받은 그 후함을 기억하라 하실 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종에서 풀어 주실 때, 손해를 계산하셨습니까. 아끼는 마음을 품으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낌없이** 손을 펴 주셨습니다. 그 받은 자가 어떻게 다른 형제 앞에서만 손을 오므릴 수 있겠습니까. 본문 8절을 다시 보십시오.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 주라.”** 두 단어를 보십시오. **“필요한 대로”**, 그리고 **“넉넉히.”** 형식적으로 조금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넉넉히”의 모범은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넉넉히”**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넉넉히”를 받은 자입니다. 이것이 바로 12절부터 15절에 이어지는 종 해방 규례와 연결됩니다. 신명기는 7년이 차서 종을 풀어 줄 때 **빈손으로 보내지 말라** 하십니다. 양 무리에서, 타작 마당에서, 포도주 틀에서 후히 주어 보내라 하십니다. 왜냐고요? __“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__ 너희도 빈손으로 풀려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희를 빈손으로 내보내지 않으셨으니, 너희도 누구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누구를 도울 때 흔히 듣는 말이 있습니다. “이만하면 됐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 기준이 있을 자격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만하면 됐다”로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그 사랑은 멈추지 않으셨고, 그 손은 오므라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이만하면 됐다”가 아니라 **“필요한 대로 넉넉히”**라는 하나님의 표준 안에서 손을 펴는 것입니다. 여기에 본문이 부언하는 약속이 있습니다. 10절 후반부입니다. __“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__ 손을 펴는 그 사람을 하나님이 친히 복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잠언 19장 17절도 같은 약속입니다. __“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__ 보십시오. 갚으시는 분이 누구이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사람에게서 갚음을 계산할 필요가 없습니다. 갚으시는 분이 따로 계십니다. 오늘 사랑의손 복지재단 40주년을 맞이하면서 다시 결단합시다. **아끼는 마음 없이, 필요한 대로, 넉넉히.** 우리가 받은 그 후함의 표준 안에서. 이 세 마디가 다음 40년의 표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셋째, 하나님의 관대하심을 닮으십시오.

2308자
이제 마지막 셋째 대지로 갑니다. 11절을 함께 보십시오. __“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__ 성도 여러분, 본문은 조금 슬픈 현실을 말씀하십니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가난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본문 4절에서는 __“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__고도 말씀하셨습니다. 4절과 11절이 모순처럼 보입니다. 자세히 보면 두 가지 진실입니다. 4절은 **이상** —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때 가능한 그림. 11절은 **현실** — 우리의 부족함과 죄 때문에 가난은 계속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이 두 가지 사이에서 한 가지를 명하십니다. **“너는 반드시 네 손을 펼지니라.”** 가난이 사라지지 않는 동안, 우리의 손도 닫히지 않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그 긴 시간 동안 손을 펴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의지로는 불가능합니다. 사람의 결심은 식고, 사람의 사랑은 마릅니다. 그런데 본문이 가리키는 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그리고 지금도 손을 펴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시편 145편 16절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__“주께서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나이다.”__ 보십시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손은 펴져 있습니다.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려고 펴져 있습니다. 우리가 호흡하는 이 한 모금의 숨이, 우리가 먹는 한 끼의 밥이, 우리가 누리는 한 줌의 평안이 — 모두 **그 펴신 손에서** 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한순간도 오므라든 적이 없습니다.@@ 우리의 손이 흔들리는 동안에도, 우리의 마음이 식는 동안에도, **그분의 손은 여전히 펴져 있습니다.** 우리가 손을 펼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 그것은 **그분의 손이 먼저 펴져 있고, 지금도 펴져 있고, 영원히 펴져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펴신 손의 절정이 어디입니까. 한 자리,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갈보리 십자가**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 십자가를 한 번 마음에 그려 보십시오. 거기 한 분이 달리셨습니다. 손에 못이 박히셨습니다. 그런데 그 손이 어떤 모양이었습니까. **주먹 쥔 손이 아니었습니다.** 카파츠가 아니었습니다. **활짝 펴진 손**이었습니다. 파타흐였습니다. 좌우로 끝까지, 더 펼 수 없을 만큼 끝까지 펴진 손이었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그 손에 못을 박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펴진 손에 못이 박혀야, 그 손에서 우리의 죄가 사함받고, 그 손에서 영원한 생명이 흘러나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인류 전체에게 펴신 손**입니다. 그 손은 누구도 배제하지 않습니다. 그 손은 어느 형제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습니다. 그 손은 “이만하면 됐다”로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손바닥이 찢어지기까지, 마지막 피 한 방울이 떨어지기까지, **끝까지 펴신 손**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을 보십시오. __“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__ 예수님은 부자이셨는데 가난해지셨습니다.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려고. 손해를 계산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끼는 마음을 품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본받아야 할 단 하나의 모델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랑의손 복지재단이 40년을 이어 올 수 있었던 비밀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의지가 아닙니다. 사람의 열심도 아닙니다. **먼저, 그리고 끝까지 손을 펴신 그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보고 또 보았기에, 그 손을 잡고 또 잡았기에, 우리도 손을 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요일 4:19). 그러니 다음 40년의 길도 분명합니다. 우리가 더 헌신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더 결심해서가 아닙니다. **그 십자가의 펴신 손을 다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손이 우리를 붙들고 계신 한, 우리의 손도 닫히지 않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__“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__ 한 세대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받은 그 손길을 다음 세대에 흘려보내야 합니다. 그것이 **십자가에서 시작된 손이 우리를 거쳐 다음 40년으로, 또 그다음 40년으로 흘러가는 길**입니다. ---

결론

1488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눈 말씀을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가난한 형제에게 손을 펴십시오.** 우리가 먼저 형제로 받아진 그 자리에서. **둘째, 아끼는 마음 없이 후히 베푸십시오.** 우리가 먼저 빈손으로 풀려나지 않은 그 은혜에서. **셋째, 하나님의 관대하심을 닮으십시오.** 십자가에서 끝까지 펴신 그 손을 바라보면서. 세 가지 모두에 공통된 한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먼저”에 응답하는 자들입니다. 이 한 글자가 사랑의손 복지재단 40년의 비밀이었고, 또한 다음 40년의 비밀이 될 것입니다. 처음에 제가 어머니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가진 것이 적은데도 보자기 하나에 밥을 싸 들고 골목으로 나가시던 어머니. 어린 저는 그날 어머니의 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습니다. 그저 “우리도 적게 먹는데 왜 남에게 주실까”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그 어머니의 손이 바로 **십자가에서 흘러나온 손**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손에는 어머니의 것이 들려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어머니에게 들려 주신 것**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 들려 주신 손길의 처음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거기에 **갈보리에서 못 박히신 그 펴진 손**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손은 그 십자가 손의 한 줄기였습니다. 어머니는 자기 것을 움켜쥐지 않고, 받은 그것을 옆집 아이에게로 흘려보내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의 손에는 하나님이 먼저 들려 주신 것들이 있습니다. 시간, 재능, 물질, 마음.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움켜쥐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펴라**고 주신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미 펴진 그분의 손에서 받았으니, 그 흐름을 끊지 말고 다음 손으로 흘려보내라**고 주신 것입니다. 사랑의손 복지재단이 40년 동안 그렇게 살아오셨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손이 모여 큰 손이 되었고, 그 큰 손이 수많은 형제 자매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한 그릇의 밥이 되었고, 어떤 분에게는 따뜻한 방 한 칸이 되었고, 어떤 분에게는 다시 일어설 용기가 되었습니다. 그 모든 손길 뒤에 **먼저 우리에게 펴 주신 하나님의 손, 그리고 그 손의 절정인 십자가의 손**이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 손길을 받고 또 펴 오신 모든 분들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음 40년에도 우리의 손이 계속 펴져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강해서가 아닙니다. **그분의 손이 먼저 펴져 있고, 지금도 펴져 있고, 영원히 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손에 우리 손을 포개기만 하면, 우리의 손도 자연스럽게 펴집니다. 그래서 어느 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이 우리의 손을 보시고 **“네 손에 내 손길이 묻어 있구나”** 하시기를, 그 칭찬을 듣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기도

507자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먼저 우리에게 손을 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형제로 받아진 그 환대, 빈손으로 풀려나지 않은 그 후함, 십자가 위에서 끝까지 펴 주신 그 사랑 —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먼저 받은 자들입니다. 사랑의손 복지재단 40주년을 맞이한 오늘, 지난 40년 동안 그 받은 손길을 다시 펴 오신 모든 동역자들, 후원자들, 봉사자들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부어 주옵소서. 다음 40년에도 우리의 마음이 완악해지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손이 움켜쥐지 않게 하시고, **십자가에서 펴신 그 손을 우리도 잇게 하옵소서.** 우리가 펴는 것이 아니라, **이미 펴진 그 손의 흐름 안에 우리가 머물게** 하소서. 작은 자 하나가 우리의 형제임을 잊지 않게 하시고, 그 형제 안에 계신 주님을 알아보게 하소서.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모든 가정과 모든 사역 위에 하늘의 은혜가 임하시기를 기도드리오며, 먼저 손을 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