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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도입↔서론 / 본문↔본론 / 마무리↔결론 / 결단↔결단찬양 / 기도↔기도제목
섹션별 본문 (7개)
서론 — 좋은 것이 다가오는데, 마음은 오그라들 때가 있습니다
681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는 좋은 일이 다가오면 기뻐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일 때가 많습니다. 누가 밥을 사겠다고 부르는데, "왜 갑자기? 뭘 시키려고 그러나" 하고 먼저 겁이 납니다. 잘해 주겠다는 말 앞에서 마음이 도리어 움츠러듭니다. 왜 그럴까요. 마음 한구석에 걸리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떳떳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다가오는 친절이 반갑지 않고 무섭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우리는 요셉의 형들을 따라왔습니다. 굶주림에 떠밀려 애굽까지 내려간 사람들입니다. 지난주에는 마침내 이 가족이 막내 베냐민을 데리고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 **창 43:15**
> 그 형제들이 예물을 마련하고 갑절의 돈을 자기들의 손에 가지고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 앞에 서니라
이제 그들이 요셉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들이 상상한 것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잡혀갈 줄 알았는데 상에 앉게 되고, 벌 받을 줄 알았는데 대접을 받습니다. **떨며 들어온 자리가, 잔칫상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 반전 속에서,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 세 가지로 나누겠습니다.
첫째, **떨며 들어온 자리.**
둘째,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주셨다.**
셋째, **상에 앉히시고 넘치도록 채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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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떨며 들어온 자리
1265자
### 1) 잔치가 준비되는데, 그들은 겁을 냈습니다
요셉이 베냐민과 함께 온 형들을 봅니다. 그러고는 집안 청지기에게 뜻밖의 명령을 내립니다.
> **창 43:16**
> 요셉은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 자기의 청지기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정오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
짐승을 잡으라고 합니다. 정오에 함께 먹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벌 주는 자리가 아니라 잔치를 여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이 좋은 소식을 받은 형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 **창 43:18**
> 그 사람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 이르되 전번에 우리 자루에 들어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드는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로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잔치에 초대받았는데, 이들은 "우리가 끌려드는도다" 하고 겁을 먹습니다. 집으로 들어오라는 말을 잡으러 온다는 말로 알아듣습니다. 대접하려고 여는 문을, 옥에 가두는 문으로 읽습니다. 왜 그럴까요.
### 2) 양심이 정죄하면, 은혜도 덫으로 보입니다
이유는 본문이 직접 말해 줍니다. **"전번에 우리 자루에 들어 있던 돈의 일로."** 지난번에 곡식을 사고 내려오는데, 웬일인지 냈던 돈이 자루 속에 도로 들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이 돈이 이들의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내가 안 가져온 돈이 내 자루에 있으니, 도둑으로 몰릴까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잔치로 부르는 손짓조차 "돈 때문에 잡으려는 함정"으로 보입니다.
성경은 이런 마음을 정확히 짚어 줍니다. 잠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 **잠 28:1**
>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
쫓아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 사람은 혼자 도망칩니다. 아무도 잡으러 오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잔치를 준비하라고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형들은 혼자 잡혀가는 그림을 그리며 떱니다. **죄책감은 친절을 덫으로 바꿔 읽게 만듭니다.**
청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데, 그 부르심이 반갑지 않고 무섭습니다. 좋은 것을 주시려는데, "이건 나중에 대가를 치르게 하려는 것 아닌가" 하고 의심합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은 죄, 내가 저지른 실수, 아무도 모르지만 나만 아는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손길이 다가오면 도리어 움츠러듭니다. 형들이 그랬습니다. 잔치로 부르는 자리에서 노예로 끌려갈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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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주셨다
1518자
### 1) 문 앞에서 먼저 털어놓는 사람들
겁에 질린 형들은 집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문 앞에서 청지기를 붙잡고 먼저 해명합니다.
> **창 43:20-22**
> 그들이 이르되 내 주여 우리가 전번에 내려와서 양식을 사가지고 여관에 이르러 자루를 풀어본즉 각 사람의 돈이 전액 그대로 자루 아귀에 있기로 우리가 도로 가져왔고 양식 살 다른 돈도 우리가 가지고 내려왔나이다 우리의 돈을 자루에 넣은 자가 누구인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보십시오. 묻기도 전에 먼저 다 털어놓습니다. "그 돈, 우리가 가져가려던 게 아닙니다. 그대로 도로 가져왔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이렇게 묻기도 전에 변명부터 준비합니다. 아직 아무도 추궁하지 않았는데, 벌써 재판정에 끌려온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합니다.
### 2) 안심하라 —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것이라
바로 그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청지기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 전체의 심장 같은 말씀입니다.
> **창 43:23**
> 그가 이르되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게 이르렀느니라 하고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이끌어내고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형들이 그렇게 무서워하던 그 돈을 두고, 청지기는 정반대로 말합니다. "그건 너희를 잡을 증거가 아니다. 너희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선물이다." 잡혀갈 빌미인 줄 알았던 그 돈이, 도리어 하나님이 거저 주신 선물이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의 심장을 봅니다. 형들은 그 돈을 갚아야 할 빚으로 알고 무서워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갚을 빚이 아니라, 받은 선물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자꾸 계산합니다. "내가 이만큼 잘못했으니 이만큼 갚아야겠지. 이 은혜도 결국 대가가 있겠지." 그러나 은혜는 원래 값을 매기지 않는 것입니다.
> **엡 2:8**
>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바울은 여기서 구원을 "선물"이라고 부릅니다. 값을 치르고 사는 것이 아니라, 거저 받는 것입니다. 청지기가 형들에게 한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너희가 낼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미 주셨다." 떨며 계산하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두려워 말라, 내가 이미 주었다" 하십니다.
### 3) 붙잡혀 있던 시므온이 돌아옵니다
그리고 이 안심의 말 끝에, 본문은 한 사람을 조용히 데려옵니다.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이끌어내고."** 시므온이 누구입니까. 지난번에 형들이 애굽을 떠날 때, 볼모로 붙잡혀 옥에 남겨졌던 형제입니다. 형들은 시므온을 그 애굽 땅에 남겨 둔 채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 붙잡혀 있던 형제가 돌아옵니다.
두려워 말라는 말이 그냥 말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잃었던 형제를 실제로 돌려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안심하라"는 빈말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회복으로 옵니다. 붙잡혀 있던 것을 돌려주시고, 빼앗겼던 것을 되찾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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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상에 앉히시고 넘치도록 채우시다
2423자
### 1) 급히 울 곳을 찾은 사람
이윽고 요셉이 집으로 들어오고, 형들은 예물을 드리며 땅에 엎드려 절합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안부를 묻다가, 마침내 자기 친동생 베냐민에게 눈이 갑니다.
> **창 43:29-30**
> 요셉이 눈을 들어 자기 어머니의 아들 자기 동생 베냐민을 보고 이르되 너희가 내게 말하던 너희 작은 동생이 이 아이냐 그가 또 이르되 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요셉이 아우를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요셉은 지금 애굽의 총리입니다. 이 사람들의 생사가 그의 말 한마디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이, 동생을 보자마자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자리를 뜹니다. 남들 앞에서 울 수 없으니 안방으로 뛰어 들어가 혼자 웁니다. 본문은 요셉의 속마음을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울 곳을 찾았다"고만 적습니다. 그러나 이 한 줄이면 충분합니다. 통치자의 근엄한 얼굴 뒤에, 형제를 향한 뜨거운 사랑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청년 여러분, 이 장면에서 우리는 한 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를 다스리시는 그분도, 우리 앞에서는 근엄하기만 한 분이 아니십니다. 히브리서는 높이 올림받으신 예수님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 **히 2:11**
>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요셉은 애굽의 총리 자리에서 형제를 보고 마음이 복받쳤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 높은 자리에서 우리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죄를 다스리실 권세를 가진 그분이, 우리를 향해서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사랑을 품고 계십니다.
### 2) 다 아시면서, 상에 앉히십니다
눈물을 닦고 나온 요셉이 상을 차리게 합니다. 그리고 형들을 앉히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 **창 43:33**
> 그들이 요셉 앞에 앉되 그들의 나이에 따라 앉히게 되니 그들이 서로 이상히 여겼더라
형들이 나이 순서대로 정확히 앉혀졌습니다. 맏이부터 막내까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자리가 정해졌습니다. 형들은 "이 사람이 우리 순서를 어떻게 알았지?" 하고 서로 이상히 여깁니다. 형들은 이 총리가 자기 동생 요셉인 줄 아직 모릅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을 다 알고 있습니다. 이름도, 순서도, 지난 세월도 전부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놀라운 은혜가 있습니다. **다 아시면서 상에 앉히십니다.** 형들이 이십여 년 전 자기를 구덩이에 던지고 팔아넘긴 것을 요셉은 다 압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낱낱이 압니다. 그런데도 그들을 내치지 않고 자기 상에 앉힙니다. 우리를 상에 부르시는 그분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모르셔서 받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 아시면서, 그 앎에도 불구하고 상에 앉히십니다.
### 3) 다섯 배로 넘치는 상
그리고 상이 차려지는데, 그 상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 **창 43:34**
> 요셉이 자기 음식을 그들에게 주되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다섯 배나 주매 그들이 마시며 요셉과 함께 즐거워하였더라
막내 베냐민의 상에는 다른 형제들보다 다섯 배나 많은 음식이 놓입니다. 왜 하필 다섯 배인지, 본문은 그 까닭을 밝히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이 상이 딱 필요한 만큼만 주는 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넘치게, 지나칠 만큼 후하게 차려진 상입니다. 잡혀갈 줄 알고 떨며 들어온 사람들에게, 벌 대신 잔치가, 그것도 넘치도록 차려진 것입니다.
이 넘치는 상을 보며 우리는 다윗의 고백을 떠올립니다.
> **시 23:5**
>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나님이 차리시는 상은 늘 넘칩니다. 목마르지 않을 만큼만 따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잔이 흘러넘치도록 부어 주십니다. 그리고 이 넘치는 상은, 마지막 날에 완성될 한 잔치를 미리 보여 줍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오래전에 그 잔치를 내다보았습니다.
> **사 25:6**
>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하나님이 마지막에 자기 백성을 위해 베푸실 잔치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맨 마지막 책은 그 잔치의 이름을 알려 줍니다.
> **계 19:9**
>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떨며 들어온 형들이 요셉의 상에 앉아 즐거워한 그 장면은, 죄인이 그리스도의 상에 앉게 될 그날을 미리 그려 보여 줍니다. 우리는 노예로 끌려갈 자격밖에 없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우리를 상에 앉히시고, 넘치도록 채우시고, 마침내 어린 양의 혼인 잔치로 부르십니다. 형들이 마시며 요셉과 함께 즐거워한 것처럼, 우리도 그분과 함께 즐거워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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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떨며 들어온 자리가 잔칫상이 되었습니다
1101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오늘 본문을 정리하겠습니다.
이 가족은 잡혀갈 줄 알고 떨며 요셉의 집에 들어왔습니다. 자루 속 돈 때문에 노예가 될까 무서워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그들이 들은 말은 "안심하라,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것이라"였습니다. 붙잡혀 있던 시므온이 돌아왔고, 총리는 동생을 보며 울었고, 상이 넘치도록 차려졌습니다. 벌 받을 줄 알았던 자리가, 은혜의 잔칫상이 된 것입니다.
우리도 떨며 서 있습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을 안고, 하나님이 다가오시면 도리어 움츠러듭니다. "이 은혜에 무슨 대가가 있지 않을까" 계산하며 움츠러듭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은 그 움츠린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이미 주었다."** 우리가 갚아야 할 그 빚을, 우리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 그분이 이미 다 치르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그 상에 앉는 일뿐입니다.
오늘 두 가지 결단으로 이 자리를 마치고자 합니다.
**결단 1 — 다가오는 은혜를 덫이 아니라 선물로 받겠습니다.**
죄책감 때문에 하나님의 친절을 함정으로 읽던 자리에서 멈추지 않겠습니다. 형들처럼 "이건 나를 잡으려는 것"이라 의심하며 떨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안심하라, 내가 주었다" 하시면, 그 말을 그대로 믿고 받겠습니다. 이번 한 주, 내가 자꾸 대가를 계산하며 밀어냈던 하나님의 은혜 하나를, "이건 값없이 주신 선물입니다" 하고 감사함으로 받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결단 2 — 자격 없는 그대로, 그분의 상에 앉겠습니다.**
내가 무엇을 했는지 다 아시는 그분이, 그럼에도 나를 상에 앉히십니다. 완전히 깨끗해진 다음에 나아가겠다고 미루지 않겠습니다. 떨며 들어온 형들이 그대로 상에 앉았듯이, 나도 자격 없는 그대로 그분의 넘치는 상에 앉겠습니다. 이번 한 주, "나 같은 게 어떻게" 하며 물러섰던 그 자리에서, 그분이 차려 주신 상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떨며 들어온 자들을 상에 앉히시고 넘치도록 채우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 가운데도 동일하게 일하십니다. 두려움을 끝내고 은혜의 상에 앉는 여러분, 그분과 함께 즐거워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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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제목
183자
1. 죄책감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함정으로 읽던 마음을 내려놓고, "안심하라, 내가 주었다" 하시는 음성을 그대로 믿게 하소서.
2. 자격 없는 그대로 그분의 상에 앉아, 넘치도록 채우시는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3. 우리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상에 앉히신 그 사랑을, 날마다 의지하며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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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질문
260자
1. 좋은 것이 다가오는데 도리어 마음이 움츠러들었던 경험이 있나요? 그 뒤에 마음에 걸리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2. 형들은 갚아야 할 빚인 줄 알고 무서워했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내가 "대가가 있을 것"이라 계산하며 밀어내고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3. 요셉은 형들을 다 알면서도 상에 앉혔습니다. "나 같은 게 어떻게" 하며 물러섰던 자리가 있다면, 이번 주 그 상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