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섹션의 ✏️ 수정 버튼을 누르고 지시를 입력하면 해당 섹션만 재생성 → v3 자동 저장.
별칭: 도입↔서론 / 본문↔본론 / 마무리↔결론 / 결단↔결단찬양 / 기도↔기도제목
섹션별 본문 (7개)
서론 — 좋은 초대가 무섭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849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누가 나를 좋은 자리에 부르면 기뻐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마음은 꼭 그렇지가 않습니다. 직장에서 상사가 "잠깐 볼까요" 하면 가슴부터 내려앉습니다. 교수님이 "연구실로 좀 오세요" 하면 무슨 잘못을 했나 하고 하루 종일 되짚어 봅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 사람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초대가 초대로 들리지 않고, 호출로 들립니다.
오늘 본문에 바로 그런 사람들이 나옵니다. 잔칫상에 불려 갔는데, 잡혀간다고 생각한 사람들입니다.
먼저 본문의 자리를 잡겠습니다. 지금 가나안 땅에는 흉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뒤에 요셉이 "이 년 동안 기근이 있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 하고"라고 말하니(창 45:6), 오늘 장면은 흉년이 두 해째로 접어든 무렵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지난번에 이미 애굽에 한 번 다녀왔습니다. 그 첫 번째 길에서 정탐꾼으로 몰려 갇혔고, 시므온은 볼모로 남겨졌고, 돌아오는 길에는 곡식 값으로 낸 돈이 자루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었습니다. 그 돈은 요셉이 도로 넣게 한 것이었습니다(창 42:25). 그러나 형들은 그 사실을 모릅니다. 그들에게 그 돈은 설명할 수 없는 돈,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돈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이 막내 베냐민을 데리고 두 번째로 내려갑니다. 성경은 이 두 번의 애굽 길을 나란히 붙여 놓았습니다. 같은 길, 같은 총리 앞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길이 감옥과 억류로 얼룩졌다면, 두 번째 길은 잔칫상에서 끝납니다.
오늘 그 잔칫상까지 가는 길을 세 가지로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잔치를 함정으로 읽는 마음.**
둘째, **너희는 안심하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셋째, **다 아시는 분이 차리신 상.**
---
첫째, 잔치를 함정으로 읽는 마음
1679자
### 1) 요셉은 상을 차리게 했습니다
요셉이 베냐민과 함께 온 형들을 봅니다. 그리고 청지기에게 명령합니다.
> **창 43:16**
> 요셉은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 자기의 청지기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정오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
요셉의 입에서 나온 말을 그대로 보십시오.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 조사하겠다는 말도, 재판하겠다는 말도 없습니다. 함께 밥을 먹겠다는 말뿐입니다. 이것은 식사 초대입니다.
### 2) 그런데 형들은 끌려간다고 읽습니다
그 초대를 받은 형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 **창 43:18**
> 그 사람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 이르되 전번에 우리 자루에 들어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드는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로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같은 사건인데 두 개의 읽기가 부딪칩니다. 요셉 쪽의 사실은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입니다. 형들 쪽의 해석은 "노예로 삼으려 함이로다"입니다. 초대의 문이 열렸는데, 형들은 그 문을 감옥 문으로 읽습니다. 왜 이렇게 읽을까요?
이 형들에게는 이십여 년 묵은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동생 요셉을 구덩이에 던지고 애굽으로 팔아넘긴 일입니다. 그 일이 해결되지 않은 채 마음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그것이 지난 첫 번째 방문 때 드러났습니다. 정탐꾼으로 몰려 사흘 동안 갇혔을 때, 아무도 요셉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는데 형들끼리 이렇게 말했습니다.
> **창 42:21**
>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애굽 총리는 요셉의 요 자도 꺼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려움이 닥치자 형들 마음에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이십여 년 전 그 일이었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죄는 이렇게 일합니다. 모든 사건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깁니다. 무슨 일이 생겨도 "그 일 때문인가" 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형들만의 모습이 아닙니다. 성경이 첫 사람에게서부터 보여 주는 모습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이 금하신 열매를 먹고 난 다음, 하나님이 동산에 찾아오셨을 때입니다.
> **창 3:9-10**
>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나님은 아직 벌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으셨습니다. 이름을 부르셨을 뿐입니다. 그런데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그 부르시는 소리부터가 무섭습니다. 그래서 숨습니다. 잠언은 이 마음을 한 문장으로 정리합니다.
> **잠 28:1**
>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
쫓아오는 사람이 없는데도 도망칩니다. 형들이 지금 그렇습니다. 요셉은 상을 차리라고 했을 뿐인데, 형들은 혼자 노예로 끌려가는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청년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런 자리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시는데 "이게 나중에 어떤 청구서로 돌아올까" 계산하는 마음. 예배로 부르시는데 지난 잘못이 떠올라서 오히려 발이 무거워지는 마음. 그것은 하나님이 무서운 분이어서가 아닙니다.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것이 있어서, 초대를 호출로 읽고 있는 것입니다.
---
둘째, 너희는 안심하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2568자
### 1) 묻기도 전에 먼저 해명하는 사람들
겁에 질린 형들은 집 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문 앞에서 청지기를 붙잡고 먼저 말을 꺼냅니다.
> **창 43:20-22**
> 이르되 내 주여 우리가 전번에 내려와서 양식을 사가지고 여관에 이르러 자루를 풀어본즉 각 사람의 돈이 전액 그대로 자루 아귀에 있기로 우리가 도로 가져왔고 양식 살 다른 돈도 우리가 가지고 내려왔나이다 우리의 돈을 자루에 넣은 자가 누구인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아무도 돈 이야기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먼저 다 털어놓습니다. 그 돈 도로 가져왔다, 다른 돈도 더 가져왔다, 누가 넣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 사람은 이렇게 추궁받기 전에 변명부터 준비합니다.
### 2) 안심하라 — 그 돈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청지기가 대답합니다. 오늘 본문의 심장입니다.
> **창 43:23**
> 그가 이르되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하고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이끌어내고
"너희는 안심하라." 이 말은 당시로 하면 상대에게 평안을 비는 인사요 축복의 말입니다. 죄를 캐물을 줄 알았던 자리에서, 평안의 인사가 먼저 나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이 놀랍습니다.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애굽 총리 집 청지기의 입에서 "너희 하나님"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집 주인 요셉이 평소에 집안에서 하나님을 말하며 살지 않았다면 나오기 어려운 말입니다. 형들이 두려워하던 그 돈을, 청지기는 정반대로 부릅니다. 너희를 잡을 증거가 아니라, 너희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짚고 갈 것이 있습니다. 그 돈을 자루에 넣게 한 것은 분명 요셉이었습니다(창 42:25). 그런데 청지기는 하나님이 주셨다고 말합니다. 둘 중 하나가 틀린 말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손을 통해서 주십니다. 이 일의 답은 뒤에 요셉 자신의 입에서 나옵니다. 두 장 뒤, 요셉이 형들 앞에서 자기 정체를 밝히는 자리에서 그는 자기가 팔려 온 일을 두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 **창 45:8**
>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형들이 판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일 뒤에서 하나님이 보내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자루 속 돈도 같습니다. 넣은 것은 요셉의 손이지만, 그 손을 움직여 굶주린 가족에게 양식과 돈을 함께 들려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부모님의 손, 친구의 손, 어느 은인의 손을 통해 온 것들이 있습니다. 그 손만 보면 사람에게 진 빚이지만, 그 뒤를 보면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형들은 그 돈을 갚아야 할 빚, 언젠가 대가를 치를 일로 알고 무서워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쪽에서의 진실은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이 말하는 은혜입니다.
> **엡 2:8**
>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바울은 구원을 선물이라고 부릅니다. 값을 치르고 사는 것이 아니라 거저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선물을 주시고 나서 계산서를 내미는 분이 아니십니다. 훗날 바울은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하나님이 어디까지 주시는 분인지 이렇게 씁니다.
> **롬 8:32**
>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가장 아까운 것, 자기 아들까지 이미 내주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이 자루 속 돈을 가지고 우리를 잡으실 리가 없습니다.
### 3) 말로 끝나지 않는 안심 — 시므온이 돌아오고, 발을 씻습니다
청지기의 말은 말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본문을 이어 보십시오. 그는 옥에 있던 시므온을 형들에게로 이끌어냅니다(23절). 지난번에 볼모로 남겨 두고 와야 했던 형제가 돌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합니다.
> **창 43:24**
> 그 사람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고 물을 주어 발을 씻게 하며 그들의 나귀에게 먹이를 주더라
발 씻을 물이 나오고, 나귀에게 먹이가 나옵니다. 죄인을 다루는 절차가 아니라 손님을 맞는 절차입니다. 안심하라는 말이 눈에 보이는 대접으로 하나하나 확인됩니다.
이 장면에서 떠오르는 집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이 들려주신 이야기 속의 집입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미리 받아 먼 나라에서 다 날리고, 종으로라도 써 달라는 말을 준비하며 돌아온 작은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이 마당에 들어섰을 때 아버지가 종들에게 외친 말이 이것입니다.
> **눅 15:22-24**
>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종이 될 각오로 돌아온 아들에게 아버지는 옷과 가락지와 잔치로 대답했습니다. 노예가 될까 떨며 들어온 형들에게 발 씻을 물과 잔칫상이 나온 것과 같은 그림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말로만 오지 않습니다. 손에 잡히는 회복으로 옵니다.
---
셋째, 다 아시는 분이 차리신 상
2825자
### 1) 엎드린 형들 — 이십여 년 전 꿈이 이루어지는 자리
정오가 되어 요셉이 집에 들어오고, 형들은 예물을 드리며 땅에 엎드려 절합니다(26절). 그런데 이 절하는 장면은 그냥 지나갈 장면이 아닙니다. 이십여 년 전, 소년 요셉이 형들에게 꿈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형들이 그를 미워하게 된 바로 그 꿈입니다.
> **창 37:7**
>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형들은 그 꿈이 듣기 싫어서 요셉을 팔았습니다. 꿈을 없애 버리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형들은 자기 손으로 판 그 동생 앞에 엎드려 절하고 있습니다. 꿈을 막으려던 그 길이 오히려 꿈이 이루어지는 길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한 일은 흔들리지 않고 이루어집니다.
### 2) 무서운 총리인 줄 알았는데, 우는 형제였습니다
형들 눈에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은 생사를 쥔 무서운 총리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 총리의 속을 우리에게만 살짝 보여 줍니다. 요셉이 어머니의 아들, 친동생 베냐민을 보았을 때입니다.
> **창 43:29-30**
> 요셉이 눈을 들어 자기 어머니의 아들 자기 동생 베냐민을 보고 이르되 너희가 내게 말하던 너희 작은 동생이 이 아이냐 그가 또 이르되 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요셉이 아우를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형들은 총리의 얼굴에서 위협을 읽고 있는데, 그 총리는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뛰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형들이 무서워하던 그 사람의 실체는, 형제를 보고 울음이 복받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하는 방식이 꼭 이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재판받을 걱정을 하고 있는데, 그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마음으로 가득하십니다.
### 3) 다 아시면서, 상에 앉히십니다
요셉이 얼굴을 씻고 나와 상을 차리게 합니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 **창 43:33**
> 그들이 요셉 앞에 앉되 그들의 나이에 따라 앉히게 되니 그들이 서로 이상히 여겼더라
열한 형제가 맏이부터 막내까지 나이 순서대로 정확하게 앉혀졌습니다. 처음 보는 애굽 총리가 알 수 없는 순서입니다. 그래서 형들이 서로 이상히 여깁니다. 형들은 이 총리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이 총리는 형들을 다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름도, 순서도, 그리고 이십여 년 전 구덩이에서 있었던 일도 다 아는 사람입니다.
여기에 오늘 본문의 깊은 은혜가 있습니다. **다 아시면서, 상에 앉히십니다.** 몰라서 받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들이 자기에게 무엇을 했는지 낱낱이 아는 사람이, 그 사람들을 내쫓지 않고 자기 상에 앉혔습니다.
이 은혜를 살아 낸 사람이 있습니다. 2차 대전 때 유대인을 숨겨 주다 가족과 함께 나치 수용소에 끌려갔던 코리 텐 붐입니다. 전쟁 후 독일에서 하나님의 용서를 전하던 그녀 앞에, 수용소에서 언니를 학대했던 경비병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도저히 그 손을 잡을 수 없어 그녀는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예수님, 저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용서를 제 손에 부어 주세요." 그때 손이 움직였고, 그녀는 훗날 "용서는 내가 한 것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이 내 손을 통해 흐른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다 알면서 품는 일은 사람의 결심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나옵니다. 형들을 다 알면서 상에 앉힌 요셉의 자리에서, 우리는 그 하나님의 마음을 봅니다. <!-- illust: 코리_텐_붐의_용서 -->
### 4) 다섯 배로 넘치는 상 — 그리고 이 상이 가리키는 잔치
그 상이 어떤 상이었는지 본문이 마지막으로 보여 줍니다.
> **창 43:34**
> 요셉이 자기 음식을 그들에게 주되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다섯 배나 주매 그들이 마시며 요셉과 함께 즐거워하였더라
베냐민의 상에는 다섯 배가 놓였습니다. 왜 하필 다섯 배인지 본문은 밝히지 않습니다. 다만 주석가들은 당시 애굽에서 다섯이라는 숫자가 넉넉함과 충만함을 나타냈고, 귀한 손님에게 더 많은 음식을 내는 것이 특별한 애정의 표시였다고 전합니다. 분명한 것은 이 상이 모자라지 않은 상, 필요한 만큼만 내놓은 상이 아니라 넘치게 차린 상이라는 것입니다. 노예로 끌려갈 줄 알고 떨며 들어온 사람들이, 지금 마시며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이 넘치는 상 앞에서 다윗의 노래가 떠오릅니다. 원수에게 쫓기던 시절을 지나온 다윗이 하나님의 대접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 **시 23:5**
>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나님이 차리시는 상은 넘칩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 상이 마지막 날의 한 잔치를 미리 보여 준다고 말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모든 민족을 위해 여실 잔치를 멀리서 내다보았습니다.
> **사 25:6**
>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예수님도 이 잔치를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경고하시던 그 자리에서, 그 문 안에 어떤 사람들이 앉게 될지를 이렇게 여셨습니다.
> **눅 13:29**
> 사람들이 동서와 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그리고 성경의 마지막 책은 그 잔치의 이름을 알려 줍니다.
> **계 19:9**
>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떨며 들어온 형들이 요셉의 상에서 즐거워한 이 장면은, 죄인이 그리스도의 상에 앉게 될 그날의 예고편입니다. 우리도 형들처럼 끌려갈 것밖에 생각할 수 없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우리를 잡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상에 앉히려고 부르셨습니다.
---
결론 — 초대를 호출로 읽지 않겠습니다
905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오늘 본문을 정리하겠습니다.
형들은 잔치에 부름받고도 노예로 끌려간다고 읽었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죄가 그 부름을 함정으로 보이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문 앞에서 들은 말은 "너희는 안심하라, 너희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라"였습니다. 시므온이 돌아왔고, 발 씻을 물이 나왔고, 무서운 줄만 알았던 총리는 안방에서 울고 있었고, 상은 다섯 배로 넘쳤습니다. 그들을 다 아는 사람이, 다 알면서 상을 차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안심하라. 그 말씀 앞에서 두 가지를 결단하고자 합니다.
**결단 1 — 다 아시는 그분 앞에, 숨기던 것을 내놓겠습니다.**
아담은 부르시는 소리에 숨었고, 형들은 초대 앞에서 떨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형들을 다 알면서 상에 앉혔듯이, 하나님은 내 모든 것을 아시면서 나를 부르십니다. 그렇다면 더 숨길 이유가 없습니다. 이번 한 주, 요일과 시간을 정해 십 분만 기도의 자리를 만드십시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아무에게도 말 못 하고 눌러 두었던 그 일 하나를 "하나님, 다 아시지요" 하고 그분 앞에 소리 내어 내놓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결단 2 — 받은 것을 빚이 아니라 선물로 받겠습니다.**
형들은 자루 속 돈을 언젠가 갚을 빚으로 알고 떨었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아들까지 내주신 하나님은 주시고 나서 계산서를 내미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번 한 주, 내 삶에 들어온 좋은 것 하나를 두고 "이건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하고 소리 내어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잡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상에 앉히려고 부르시는 하나님, 다 아시면서도 우리를 잔치 자리에 앉히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껏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제목
196자
1. 해결되지 않은 죄책 때문에 하나님의 초대를 함정으로 읽던 마음을 내려놓고, "너희는 안심하라"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믿게 하소서.
2. 사람의 손을 통해 주신 것들 뒤에 계신 하나님을 보고, 빚진 마음이 아니라 감사로 받게 하소서.
3. 다 아시면서도 상에 앉히시는 그 은혜를 힘입어, 미뤄 두었던 예배와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소서.
---
나눔 질문
282자
1. 좋은 초대나 호의를 받고도 "무슨 의도가 있지 않을까" 하고 움츠러들었던 경험이 있나요? 그때 마음에 걸려 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2. 형들이 폭탄처럼 여기던 돈은 사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내 삶에서 부담이나 빚으로만 여겨 왔지만, 다시 보면 하나님이 사람의 손을 통해 주신 선물인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3. 요셉은 형들을 다 알면서도 상에 앉혔습니다. 하나님이 내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사실이 두려움이 아니라 위로가 되려면, 이번 주 무엇을 내려놓고 어떤 자리로 나아가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