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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도입↔서론 / 본문↔본론 / 마무리↔결론 / 결단↔결단찬양 / 기도↔기도제목
섹션별 본문 (9개)
봉독 — 느헤미야 1장 1절부터 11절
984자
> 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 2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 수일 동안 슬퍼하며
>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 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 간구하나이다
> 6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 주야로 기도하오며
>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 7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 8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 9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 10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 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 오늘 종이 형통하여
>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
서론 — 오늘 밤 그 종이를 꺼냅니다
750자
둘째 날 밤입니다.
어젯밤 우리는 한 알의 밀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 "종이는 아직 꺼내지 않습니다.
> 꺼내는 밤이 곧 옵니다."
오늘 밤이 그 밤입니다.
두 주 전에 적은 종이가 있습니다.
거기 한 줄이 적혀 있습니다.
**"내가 못 내려놓는 한 가지."**
가방 안에서 그 종이가 하루 종일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꺼내기 전에
같이 볼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못 내려놓는 이유는
대개 하나로 모입니다.
내가 손해 보기 싫어서입니다.
나서면 시끄러워지니까.
모른 척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나니까.
이 마음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안전한 거리**입니다.
이 마음이 제일 무섭게 작동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내가 속한 자리가 무너지고 있는 걸
내가 알고 있을 때입니다.
단톡방에서 한 사람이 계속 놀림을 받습니다.
읽었습니다.
그리고 화면을 내렸습니다.
같이 앉던 자리가 하나씩 비어 갑니다.
누가 안 나오는지 압니다.
그런데 연락은 안 했습니다.
마음속에서 이 한마디가 지나갑니다.
**"나랑 상관없잖아."**
오늘 본문에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그 무너진 자리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천 킬로미터 밖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듣고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그 사람이 느헤미야입니다.
오늘 밤 우리가 볼 것은
그가 무엇을 했는가가 아닙니다.
그가 **어떤 마음을 품게 되었는가**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어디까지 갔는가입니다.
세 가지로 보겠습니다.
---
첫째, 그는 먼저 물었습니다
1560자
### 1) 소식이 그를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1절이 그가 어디 있었는지 알려 줍니다.
수산 궁입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왕궁입니다.
그리고 2절입니다.
>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여기 한 단어를 놓치지 마십시오.
**"물은즉."**
누가 와서 알려 준 것이 아닙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유다에서 사람이 왔을 때
그가 먼저 입을 열어 물었습니다.
궁금하지 않으면 묻지 않습니다.
마음에 없으면 묻지 않습니다.
그는 왕궁 안에 있었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안 물어도 아무 일 없는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물었습니다.
그가 물어서 들은 대답이 3절입니다.
>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성벽이 무너졌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 시대에 성벽은 담장이 아니었습니다.
성벽이 없는 도시는 누구든 들어올 수 있는 도시였습니다.
지킬 힘이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불탄 성문은 그것이 오래되었다는 표시였습니다.
이 소식은 새 소식도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진 지 백 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다들 아는 이야기였습니다.
**아는 이야기였는데, 그가 물었습니다.**
### 2) 듣고 나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앉았습니다
그 대답을 듣고 그가 무엇을 했습니까.
4절입니다.
>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 수일 동안 슬퍼하며
>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읽고 지나가기 쉬운 대목인데
여기 이상한 말이 하나 있습니다.
**"앉아서."**
보통 우리는 급한 소식을 들으면 일어납니다.
벌떡 일어나서 전화를 겁니다.
방법을 찾습니다.
느헤미야는 앉았습니다.
앉아서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냥 잠깐 운 것이 아닙니다.
"수일 동안" 슬퍼했다고 합니다.
먹는 것도 끊었습니다.
돌 하나 옮기지 않았습니다.
사람 한 명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옛날에 이 마음을 노래로 남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벨론에 끌려간 포로들입니다.
그들은 강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끌고 간 사람들이 노래를 시키자
그들은 악기를 나무에 걸어 두고 이렇게 적었습니다.
시편 137편 5절과 6절 말씀입니다.
>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내가 그 성을 잊으면
내 손이 굳고 내 혀가 붙으라는 말입니다.
잊지 않겠다는 말을 이렇게까지 합니다.
그들은 그 성에 갈 수 없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잊지 않는 것을 붙들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남는 것이 마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마음에서 일을 시작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밤 우리에게 물을 것이 이것입니다.
나는 언제부터 마음이 안 아팠습니까.
무너진 걸 몰라서가 아닙니다.
압니다.
아는데 아무렇지 않습니다.
눈에 익어 버린 것입니다.
---
둘째, 그는 남의 무너짐을 자기 셈에 넣었습니다
2407자
### 1) 그들이 아니라 우리, 우리가 아니라 나
이제 그가 어떻게 기도했는지 보십시오.
6절 뒷부분입니다.
>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문장이 어떻게 옮겨 가는지 보십시오.
처음에는 "이스라엘 자손"입니다.
그다음에 "우리"가 됩니다.
마지막에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됩니다.
멀리서 가까이로 옵니다.
그들에게서 나에게로 옵니다.
느헤미야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성벽을 무너뜨린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왕궁에서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무너짐을 자기 셈에 넣었습니다.
이것이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는 사람의 첫 표시입니다.
누구 때문인지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를 그 안에 넣었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한 사람이 또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시내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모세는 산 위에 있었습니다.
그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말린 적도 없습니다.
그가 없는 사이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런데 산에서 내려온 모세가 하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출애굽기 32장 32절 말씀입니다.
>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백성이 지은 죄인데
그 값을 자기 이름으로 치르겠다고 합니다.
신약에도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입니다.
바울은 동족에게 매를 맞고 쫓겨 다녔습니다.
그를 죽이려 한 사람들이 바로 그 동족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을 두고 그가 이렇게 적습니다.
로마서 9장 3절 말씀입니다.
>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나를 죽이려던 사람들을 위해
내가 끊어져도 좋다고 합니다.
느헤미야, 모세, 바울.
세 사람이 똑같은 자리에 섭니다.
남의 무너짐 앞에서 손가락을 들지 않고
자기를 그 안에 넣는 자리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하고 갑시다.
오늘 밤 우리가 할 일은
누구 탓인지 찾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이 본문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느헤미야도 그 이름을 한 번도 대지 않았습니다.
**무너져 있다.**
본문은 여기까지만 말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그 앞에 앉습니다.
### 2) 그 마음은 그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 마음은 어디서 왔습니까.
독하게 마음먹으면 생깁니까.
본문이 답합니다.
그가 기도 중에 붙든 것이 무엇인지 보십시오.
8절과 9절입니다.
>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이건 느헤미야의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오래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느헤미야는 그 말씀을 꺼내 놓고
"기억하옵소서" 하고 붙듭니다.
여기를 잘 보십시오.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모으겠다.
이 말은 그 무너진 자리를
**하나님이 먼저 남의 일로 두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약속을 한 번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다 짓고 봉헌 기도를 드린 밤이 있었습니다.
그날 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 백성이 무너질 것을 미리 아시고
그때 어떻게 하실지를 먼저 말씀해 주셨습니다.
역대하 7장 14절 말씀입니다.
>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무너지기 전에 이미
고치겠다고 말씀해 두신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먼저 아파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한 사람에게 옮겨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 메시지는
"마음을 뜨겁게 만들어 보자"가 아닙니다.
그건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내일 아침이면 식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옮겨 오면
사람은 앉아서 울게 되고,
울다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본문은 한 가지를 마지막에 알려 줍니다.
11절 맨 끝입니다.
>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이상하지 않습니까.
자기 직책을 왜 여기서 말합니까.
1절에서 말했어야 할 이야기입니다.
기도가 다 끝난 뒤에야 나옵니다.
본문은 그 이유를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순서는 이렇습니다.
먼저 마음이 있었고,
그다음에 자리가 밝혀집니다.
왕의 술 관원은 왕이 마실 잔을 먼저 맛보는 사람입니다.
독이 있으면 자기가 먼저 죽습니다.
그만큼 신임받는 자리였고
왕과 가장 가까운 자리였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이미 다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
셋째, 그 마음이 보고만 있던 사람들을 일으켰습니다
1603자
### 1) 그들은 이미 보고 있었습니다
이 마음이 어디까지 갔는지 보려면
한 장만 더 넘기면 됩니다.
느헤미야가 소식을 들은 때가 기슬르월입니다.
1장 1절에 적혀 있습니다.
그가 왕 앞에 서는 때가 니산월입니다.
2장 1절에 적혀 있습니다.
그 사이가 **약 넉 달**입니다.
넉 달을 그는 그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울고 나서 바로 달려간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
도착해서 사흘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밤에 혼자 짐승을 타고 나가
무너진 성벽을 한 바퀴 돌아봅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람들 앞에 섭니다.
느헤미야 2장 17절 말씀입니다.
>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여기 한마디를 오늘 밤 붙드십시오.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거기 살던 사람들은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매일 보고 있었습니다.
무너진 성벽을 지나 아침에 나가고
불탄 성문을 지나 저녁에 들어왔습니다.
본문은 그들이 왜 세우지 않았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말하지 않으니 우리도 짐작하지 맙시다.
다만 이것만은 본문이 분명히 말합니다.
**보는 것과 세우는 것은 다른 일이었습니다.**
천 킬로미터 밖에 있던 사람은 울었고,
매일 그 앞을 지나던 사람들은 지나갔습니다.
가까이 있다고 마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매일 보면 눈에 익습니다.
무너진 게 배경이 됩니다.
### 2) "일어나 건축하자"는 그들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느헤미야가 이어서 무엇을 전했는지 보십시오.
2장 18절입니다.
>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그가 전한 것은 설계도가 아닙니다.
공사 일정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문장의 주어를 보십시오.
17절에서는 느헤미야가 "건축하자"고 했습니다.
18절에서는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입니다.
말이 옮겨 갔습니다.
한 사람의 입에 있던 말이
그들의 입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일어납니다.**
기억하십니까.
1장에서 느헤미야는 앉았습니다.
2장에서 그들이 일어납니다.
앉은 사람 하나가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사람 여럿이 생겼습니다.
**먼저 앉은 사람 없이는
일어나는 무리도 없습니다.**
오늘 낮에 우리는 함께 붙드는 손을 보았습니다.
오늘 밤 본문은 그보다 한 걸음 앞을 보여 줍니다.
누가 **먼저** 그 무너짐을 자기 일로 느끼는가입니다.
한참 전에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지기 전이었습니다.
선지자 에스겔을 통해 하신 말씀입니다.
에스겔 22장 30절 말씀입니다.
>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이 찾으셨습니다.
무너진 자리에 서 줄 한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그때는 찾지 못하셨습니다.
느헤미야에 와서 한 사람이 섰습니다.
---
예루살렘을 보고 우신 분
963자
그런데 이 이야기는 느헤미야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느헤미야가 세운 그 성벽 안으로
사백 년쯤 뒤에 한 분이 들어오십니다.
나귀를 타고 감람산 내리막을 내려오실 때였습니다.
사람들은 겉옷을 길에 펴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그 환호 한복판에서 그분은 성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우셨습니다.
누가복음 19장 41절 말씀입니다.
>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느헤미야는 무너졌다는 **말을 듣고** 울었습니다.
예수님은 아직 서 있는 성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느헤미야는 그 성을 위해 자기 자리를 떠났습니다.
예수님은 그 성을 위해 성문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이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옛날 속죄일에는 짐승을 잡아 그 피를 성소에 들이고
몸은 진영 밖으로 가지고 나가 태웠습니다.
히브리서를 쓴 사람이 그 장면을 설명한 뒤
바로 이렇게 적습니다.
히브리서 13장 12절 말씀입니다.
>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성벽 안이 아니었습니다.
느헤미야가 다시 세운 그 성벽 바깥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죽으셨습니다.
느헤미야는 돌을 쌓아 성을 세웠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몸이 헐리는 것으로 우리를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신 날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무슨 권한으로 이러느냐고 따졌습니다.
그때 주신 대답입니다.
요한복음 2장 19절 말씀입니다.
>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돌 성전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자기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헐리는 쪽에 자기를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앉아서 우신 분이 계십니다.
우리보다 먼저 그 값을 치르신 분이 계십니다.**
그러니 오늘 밤 우리가 짜낼 것이 없습니다.
없는 마음을 만들어 내는 밤이 아닙니다.
이미 우신 분 앞에 앉는 밤입니다.
---
결론 — 넉 달이 있습니다
1279자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그 종이를 꺼내십시오.
거기 적힌 그 한 가지가 무엇이든,
그것을 못 놓는 이유는 대개 같습니다.
내가 손해 보기 싫어서입니다.
그 마음이 오늘 밤 다른 자리에서도 작동했습니다.
무너진 걸 알면서 지나간 자리입니다.
종이 뒷면에 한 줄만 더 적으십시오.
누구 이름을 적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만 적으십시오.
**"내가 무너진 줄 알면서 아무렇지 않았던 자리."**
그리고 두 가지를 결단하고자 합니다.
**결단 1 — 오늘 밤 이 종이를 내려놓겠습니다.**
쥐고 있던 그 한 가지를 여기 두고 가십시오.
꺼내기 싫었던 그 종이입니다.
오늘 밤 이 자리에 놓으십시오.
아무 말도 안 해도 됩니다.
울지 않아도 됩니다.
눈물이 결단의 증거가 아닙니다.
**결단 2 — 이것을 남의 일로 두지 않겠습니다.**
무엇을 하겠다는 결단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겠다는 결단입니다.
행동은 시선을 따라옵니다.
느헤미야가 그 증거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미리 말씀드립니다.
내일 아침이면 오늘 밤의 뜨거움이 식습니다.
그때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어젯밤은 다 가짜였나."
아닙니다.
느헤미야도 그랬습니다.
그가 운 것은 기슬르월이고
그가 움직인 것은 니산월입니다.
그 사이가 넉 달입니다.
**결단은 오늘 밤 시작되지만
오늘 밤 끝나지 않습니다.**
넉 달을 품고 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 넉 달이 있습니다.
돌아가면 그 자리는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무너진 그 자리는 저절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거기서 무엇을 할지는 내일 밤에 함께 듣겠습니다.
오늘 밤은 여기까지입니다.
앉는 것입니다.
무너진 것 앞에 처음으로 앉아 보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이 한마디를 드리십시오.
**"하나님, 제 마음도 좀 아프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저를 여기 세워 주십시오."**
하나님이 찾으셨습니다.
무너진 데를 막아 설 한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서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붙여 주시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사야를 통해 하신 말씀입니다.
그때 백성은 금식은 열심히 하면서
옆 사람이 굶는 것은 못 본 척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꾸짖으신 뒤에
이런 약속을 주십니다.
이사야 58장 12절 말씀입니다.
>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
오늘 밤 이 자리에서
그 한 사람으로 세움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제목
201자
1. 무너진 것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았던 제 마음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내어놓게 하옵소서.
2. 제가 마음을 짜내지 않게 하시고, 먼저 아파하신 주님의 마음이 제게 옮겨 오게 하옵소서.
3. 손해 보기 싫어 지나쳤던 그 자리를, 오늘 밤부터 남의 일로 두지 않게 하옵소서.
4. 내일 아침 마음이 식을 때에도 오늘 밤 시작된 것을 넉 달 동안 품게 하옵소서.
나눔 질문
205자
오늘 밤 얼마나 뜨거웠는지 서로 묻지 마십시오.
언제부터 안 아팠는지 물으십시오.
1. 느헤미야는 안 물어도 되는 자리에서 먼저 물었습니다. 나는 요즘 누구의 형편도 묻지 않고 지냈습니까.
2.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내가 매일 보면서 눈에 익어 버린 자리는 어디입니까.
3. 오늘 밤 종이 뒷면에 적은 그 자리를, 나는 무엇 때문에 남의 일로 두어 왔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