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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0260906-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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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오소서

목사samuel
예배청년부
본문창세기 45:1-8
날짜2026-09-06 (일)
📝 정식
📋 간략

정식 = 가이드 §10 (말씀 요약 + 본문 이해 + 질문 + 적용). 간략 = 1장, 질문 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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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별 본문 (6개)

봉독 — 창세기 45장 1절부터 8절

578자
> 1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 2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 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서론 — 얼굴이 드러난 순간

773자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얼굴은 너무 뜻밖의 자리에서 만나면 보고도 믿기 어렵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사람, 다시는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눈앞에 서 있다면 이름을 들어도 곧바로 대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오늘 요셉의 형들이 그런 자리에 섰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총리를 여러 번 만났습니다. 그 집에서 먹었고, 총리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고,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자기들이 팔아버린 아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오래전 도단의 들에서 사라진 요셉과 지금 애굽을 다스리는 사람은 그들의 생각 속에서 이어질 수 없었습니다. 직전 장에서 유다는 베냐민 대신 자기가 종으로 남겠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또 한 아들을 잃는 일을 막아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뒤 요셉은 더 이상 자신을 감추지 못합니다. 시종들을 모두 물리고, 마침내 한 문장을 말합니다. “나는 요셉이라.” 그런데 이 만남은 따뜻한 가족 상봉으로 곧장 흘러가지 않습니다. 요셉의 이름이 드러나는 순간 형들의 죄도 함께 드러납니다. 그들이 버린 아우가 살아 있고, 그 아우가 이제 자기들의 생명을 쥔 통치자로 서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누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죄를 어떻게 다루시며, 그 죄보다 더 큰 구원을 어떻게 이루시는지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숨기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 죄가 우리 인생의 마지막 문장이 되게 두지도 않으십니다.** 이 흐름을 세 문장으로 따라가겠습니다.

첫째, “나는 요셉이라” — 숨은 얼굴이 드러납니다

1750자
### 1) 요셉은 자신을 알렸습니다 1절은 요셉이 더 이상 그 정을 억제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모든 시종을 물러가게 합니다. 애굽 사람들 앞에서 형들의 지난 일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형제들만 남은 자리에서 자기를 알렸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그 울음은 문밖을 넘어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궁중에까지 들렸습니다. 그동안 요셉은 여러 번 울었습니다. 형들이 자기들의 죄를 말할 때에도 돌아서서 울었고, 베냐민을 보았을 때에도 안방에 들어가 울었습니다. 그때마다 눈물을 감추고 다시 나왔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감추지 못합니다. 감추었던 얼굴과 감추었던 울음이 함께 드러납니다. 3절입니다.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찾아낸 것이 아닙니다. 요셉이 자신을 알려 주었습니다. 신약에서 스데반은 이 장면을 다시 전했습니다. 조상들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지만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셨고, 두 번째로 내려왔을 때 요셉이 형제들에게 알려졌다고 사도행전 7장 9절부터 13절은 말합니다. 형제들의 눈이 밝아서 알아본 것이 아니라, 요셉이 자기를 드러냈기 때문에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일도 여기서 시작합니다. 우리가 생각을 오래 밀어 올려 하나님께 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말씀하시고 자신을 보여 주십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고통받는 이스라엘에게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출애굽기 3장 7절입니다.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하나님은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신 분이 아닙니다. 보시고 들으시고 아시며, 내려가서 건지겠다고 말씀하신 분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내가 하나님을 찾아낸 이야기보다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신 이야기입니다. 말씀을 읽다가 내 마음을 정확히 아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예배 가운데 피하고 싶었던 죄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동시에 그 죄인을 버리지 않고 부르시는 주님의 얼굴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알려 주시면,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알기 시작합니다. ### 2) 형들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요셉은 자기 이름을 밝혔지만 형들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3절은 그들이 놀랐다고 말합니다. 눈앞의 통치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순간, 지난 일이 한꺼번에 현재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37장 28절은 그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려 은 이십에 팔았다고 기록합니다. 창세기 42장 21절에서 형들은 이미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라고 인정했습니다. 이제 그 아우의 입에서 “나는 요셉이라”는 말이 들립니다. 죄 앞에서는 변명할 말이 많지만, 죄를 아시는 주님 앞에서는 모든 말이 멈춥니다. 시편 기자도 그 자리를 알았습니다. 시편 130편 3절과 4절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죄가 없어서 설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용서가 있기 때문에 죄인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청년 여러분, 신앙은 주님 앞에서 대답을 잘 준비하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왜 그랬는지 설명하고, 다른 사람도 그랬다고 비교하고, 앞으로 잘하겠다고 약속해서 자리를 지키는 일이 아닙니다. 주님이 나를 아신다는 사실 앞에서 입을 멈추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용서가 내 안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듣는 것입니다. 첫째에서 요셉의 얼굴이 드러났다면, 이제 그 얼굴 앞에서 형제들에게 들린 다음 말을 보겠습니다.

둘째,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 죄를 아시고도 부르십니다

1904자
### 1) 요셉은 죄를 이름대로 불렀습니다 형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요셉이 다시 말합니다. 4절입니다.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멀리 물러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경비병을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가까이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부른 뒤 과거를 덮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이 한 문장 안에 두 사실이 함께 있습니다. **나는 여전히 당신들의 아우입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나를 팔았습니다.** 관계를 말하면서 죄를 지우지 않았고, 죄를 말하면서 관계를 끊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값싼 위로와 다른 성경의 용서입니다. 우리는 둘 중 하나를 택하기 쉽습니다. 관계를 지키려다가 잘못을 없는 일처럼 넘깁니다. 반대로 잘못을 분명히 하려다가 그 사람을 죄 하나로만 규정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당신들이 판 자”라고 말하면서도 “당신들의 아우”라고 말합니다. 형제들의 행동은 악했지만, 그 악이 요셉의 형제라는 관계까지 마지막으로 규정하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도 죄를 모른 척해서 우리를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는 장차 오실 종이 우리 죄를 어떻게 담당하실지 말했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과 6절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십자가는 죄가 별일 아니라고 말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동시에 하나님이 죄인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함께 드러난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상처를 없던 일로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를 오늘 당장 좋은 뜻이었다고 바꾸어 부를 필요도 없습니다. 잘못은 잘못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경계가 필요한 관계에서는 지혜롭게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보여 주는 것은 악을 좋게 해석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이 악보다 더 큰 구원을 이루실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 2) 요셉은 죄인을 가까이 불렀습니다 요셉은 자기에게 팔려 온 과거를 정확히 말한 뒤에도 형들을 가까이 세웠습니다. 형들이 먼저 거리를 좁힌 것이 아닙니다. 요셉이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라고 불렀고, 그들이 가까이 갔습니다. 심판할 권한을 가진 사람이 먼저 거리를 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도 두려움 속에 문을 닫은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버리고 달아났고, 베드로는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20장 19절과 20절은 예수님이 닫힌 문 안으로 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신 뒤 손과 옆구리를 보이셨다고 전합니다. 상처의 흔적을 감추지 않으셨습니다. 그 상처를 보이시며 두려워하는 제자들 가운데 서셨습니다. 요셉이 형들의 죄를 말하면서 가까이 오라고 한 장면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이끕니다. 예수님은 죄를 아시기에 우리를 밀어내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죄를 친히 담당하셨기에 가까이 부르시는 분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절과 4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고 전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드러내고, 부활은 그 죄와 죽음이 마지막 말이 아니라고 선포합니다. 청년 여러분, 주님께 가까이 가기 전에 먼저 자신을 정리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기도가 잘 나오면 가고, 마음이 깨끗해지면 가고, 같은 죄를 다시 짓지 않을 자신이 생기면 가겠다고 미루지 마십시오. 주님은 다 정리된 사람을 가까이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숨길 수 없는 사람을 부르십니다. 이번 한 주, 피하고 싶었던 죄 하나를 주님 앞에서 정확히 말해 보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님, 숨지 않고 가까이 가겠습니다.”** 둘째에서 죄를 아시고도 가까이 부르시는 은혜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을 위로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들의 과거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일을 말합니다.

셋째, “하나님이 보내셨나이다” — 악보다 큰 구원을 보이십니다

2419자
### 1) 형들은 팔았고 하나님은 살리셨습니다 5절은 순서가 분명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요셉은 형들이 한 일을 다시 말합니다. 그리고 곧이어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형들은 팔았고, 하나님은 보내셨습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사람의 악한 행동과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일을 함께 말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형들의 책임을 없애는 말이 아닙니다. “결국 잘됐으니 그때의 악도 필요했다”는 말도 아닙니다. 성경은 악을 선이라고 바꾸어 부르지 않습니다. 다만 악이 하나님의 구원을 무너뜨릴 만큼 크지는 않다고 선포합니다. 사람은 해치려고 계획했지만 하나님은 그 악에 끌려가지 않으셨습니다. 요셉은 훗날 창세기 50장 20절에서 이 고백을 다시 말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하나님은 악을 선이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악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잠언 19장 21절은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고 말합니다. 형들의 계획은 요셉을 없애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계획은 하나님의 뜻을 없애지 못했습니다. 시편 105편은 이 긴 이야기를 돌아보며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라고 말합니다. 종으로 팔린 일을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의 발이 차꼬를 차고 몸이 쇠사슬에 매였다고 고통도 함께 기록합니다. 그 고통을 지나 하나님은 요셉을 왕의 집을 맡은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니 섭리를 믿는다는 것은 상처가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 겪는 일을 억지로 좋은 일이라고 포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 이해되지 않는 일을 두고도 하나님이 생명을 향한 뜻을 버리지 않으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이유를 알지는 못해도, 우리의 인생이 사람의 악한 결정에만 매여 있지 않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 2) 하나님은 큰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6절에서 요셉은 기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미 두 해가 지났고 앞으로도 오 년 동안 밭갈이와 추수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문제가 끝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기근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말했습니다. 7절입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여기서 구원의 범위가 넓어집니다. 요셉 한 사람을 회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 가족과 그 후손의 생명을 보존하는 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높은 자리에 올려 그의 억울함만 풀어 주신 것이 아닙니다. 굶주림 속에서 죽어 갈 사람들을 살리셨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가정을 보존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요셉 이야기를 “견디면 언젠가 성공한다”는 말로 줄일 수 없습니다. 요셉이 총리가 된 것이 중심이라면 8절은 요셉의 능력을 자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세 번이나 하나님이 보내셨다고 말합니다. 자기가 여기까지 올라왔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살리기 위해 앞서 보내셨다고 말합니다. **요셉의 자리는 성공의 증거가 아니라 구원을 위한 자리였습니다.** 이 장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더 분명해집니다. 오순절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의 책임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2장 23절과 24절입니다.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였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살리셨습니다. 십자가에는 인간의 죄가 드러났고, 부활에는 하나님의 구원이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누가복음 24장 26절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은 십자가를 피해 구원을 이루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저지른 가장 큰 악을 통과하여 죄인을 살리는 길을 여셨습니다. 이사야 53장 11절은 그분이 자기 영혼의 수고를 보고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실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요셉은 기근에서 가족의 생명을 보존했지만, 예수님은 죄와 죽음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28절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말씀을 가볍게 사용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일이 그 자체로 선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으시며, 어떤 악과 고난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끊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아직 고난 한가운데 있을 때에는 그 뜻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때 성급히 결론을 만들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십자가와 부활을 바라보십시오. 거기서 하나님이 이미 증명하셨습니다. **악은 하나님의 마지막 말이 아닙니다. 생명이 하나님의 마지막 말입니다.**

결론 — 가까이 가겠습니다

780자
오늘 본문에는 세 문장이 이어졌습니다. “나는 요셉이라.” 숨은 얼굴이 드러났습니다.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죄가 드러난 사람들을 가까이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나이다.” 사람이 저지른 악보다 더 큰 하나님의 구원이 드러났습니다. 형들은 요셉의 이름을 듣고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침묵한 그들을 버려두지 않았습니다. 한 걸음 가까이 부르고, 그들이 한 일을 정확히 말하고, 하나님이 이루신 생명을 들려주었습니다. 복음도 우리에게 같은 길을 엽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시지만 수치 속에 세워 두지 않으십니다. 십자가의 상처를 보이시며 가까이 부르시고, 부활의 생명을 주십니다. 이번 한 주에 두 가지를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피하고 있던 죄 하나를 주님 앞에서 숨기지 말고 말하십시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주님께 가까이 가겠습니다”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사람의 말이나 결정 때문에 끝났다고 여긴 자리 하나를 놓고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하나님, 저는 아직 뜻을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일이 주님의 구원을 막을 수 없음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판 사람의 결정도, 우리가 저지른 죄도, 지금 지나고 있는 기근도 하나님보다 크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모든 일을 이해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죽임당하셨으나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죄를 숨기지 않고 주님께 가까이 가며, 악보다 크신 하나님의 생명을 붙들고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