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섹션의 ✏️ 수정 버튼을 누르고 지시를 입력하면 해당 섹션만 재생성 → v2 자동 저장.
별칭: 도입↔서론 / 본문↔본론 / 마무리↔결론 / 결단↔결단찬양 / 기도↔기도제목
섹션별 본문 (1개)
어찌 죽고자 하느냐
4255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한 주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늘 말씀이 선포된 곳은 예루살렘의 성전이 아닙니다. 바벨론의 강가입니다.
에스겔은 예루살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이 완전히 무너지기 여러 해 전, 바벨론 군대가 먼저 쳐들어와 왕과 지도자들을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에스겔도 그 행렬에 있었습니다. 그가 도착한 곳은 바벨론의 그발 강 가, 델아빕이라는 포로들의 마을이었습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할 제사장이, 성전에서 가장 먼 이방 땅 강가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강가에서 에스겔을 부르시고, 파수꾼으로 세우셨습니다. 파수꾼은 성벽 망대 위에서 멀리 다가오는 칼을 가장 먼저 보고 나팔을 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 백성에게는 이제 지킬 성벽도 없습니다. 심지어 본문 바로 뒤 21절을 보면, 예루살렘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 하나가 이 마을에 도착해서 한마디를 전합니다. "그 성이 함락되었다." 고향이 무너졌다는 소식이 문 앞까지 온 그때, 오늘 본문이 선포되었습니다.
그때 포로들의 마음은 그들의 입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한때 이 백성은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말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고생은 내 탓이 아니라 윗세대 탓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10절에서 말이 달라졌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 드디어 내 죄를 내 죄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인정하는 순간, 이번에는 절망이 덮쳤습니다. "어찌 능히 살리요." 나 같은 죄인이 무슨 수로 사느냐는 것입니다. 남 탓하던 백성이 이제는 자기 죄에 깔려 신음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 자리에 떨어진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하나님은 이러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한 가지 마음을 두 걸음으로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자기 생명을 걸고 살라고 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어제가 아니라 오늘의 방향을 보십니다.
### 첫째, 하나님은 자기 생명을 걸고 살라고 하십니다 (10-11절)
10절의 고백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죄를 인정한 것은 옳았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내 죄를 들여다보고, 내 힘을 계산해 보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찌 능히 살리요. 이 계산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없습니다. 내 죄와 나, 둘만 있으면 답은 언제나 절망입니다.
그 계산 위로 11절이 떨어집니다.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하나님이 맹세하십니다. 사람은 맹세할 때 자기보다 확실한 것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는 자기보다 확실한 것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생명을 거십니다. 히브리서도 하나님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이 무너지지 않는 한, 이 말씀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렇게까지 하시며 확정하신 내용이 무엇입니까. 나는 너희가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한다. 베드로후서 3장 9절도 같은 마음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리고 명령이 이어집니다. "돌이키고 돌이키라." 두 번 말씀하십니다. 한 번으로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만큼 애가 타시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한마디를 들어 보십시오. "어찌 죽고자 하느냐." 이것은 판사의 언어가 아닙니다. 죽을 길로 걸어가는 자식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언어입니다. 탕자의 아버지가 아직 거리가 먼데 아들을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갔던 것처럼,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보다 먼저 우리에게 달려와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지금 마음속으로 그 계산을 하고 계십니까. 끊겠다고 기도해 놓고 이번 주에 또 그 자리로 돌아갔으니까, 아무도 모르는 그 습관이 몇 년째 그대로니까, 나 같은 사람은 안 된다고 말입니다. 그 계산은 겸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빼놓은 계산입니다. 오늘 그 계산 위에 하나님의 맹세를 올려놓으십시오. 여러분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는 분이 자기 생명을 걸고 살라고 하십니다.
### 둘째, 하나님은 어제가 아니라 오늘의 방향을 보십니다 (12-19절)
12절에서 하나님은 두 사람을 나란히 세우십니다.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공의가 구원하지 못할 것이요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할 것인즉." 양쪽 모두에 같은 단어가 있습니다. 날입니다. 의인에게도 악인에게도, 지나온 세월이 아니라 오늘이라는 날이 생명을 가릅니다.
13절은 앞의 사람에게 주시는 경고입니다. 의롭다는 사람이 그 공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몇 년째 빠지지 않은 예배, 사람들이 알아주는 봉사, 예전에 뜨거웠던 기억. 그 어제가 오늘의 죄를 덮어 주지 못합니다. 반대로 14절과 15절은 뒤의 사람에게 주시는 약속입니다. 너는 죽으리라는 판결까지 받았던 사람이, 돌이켜 저당물을 도로 주고 강탈한 물건을 돌려보내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않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보실 것이 있습니다. 돌이킴이 마음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잡아 둔 저당물이 손에서 떠나고, 빼앗은 물건이 주인에게 돌아갔습니다. 돌이킴은 뉘우치는 기분이 아니라 방향이고, 방향은 손에 든 것이 바뀌는 데서 드러납니다. 여러분의 손에도 아직 들려 있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미뤄 둔 사과가 있고, 돌려주지 않은 것이 있고, 끝내야 하는데 붙들고 있는 관계가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백 번 뉘우쳤어도 그것이 손에서 떠나지 않았다면, 오늘이 그것을 내려놓을 날입니다.
그리고 16절입니다. "그가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반드시 살리라." 하나님이 우리 죄를 더 이상 꺼내 들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25절에서도 하나님은 이렇게까지 말씀하십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이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 자리가 있습니다. 예수님 옆 십자가에 달린 강도입니다. 그에게는 내세울 어제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몸으로는 15절처럼 무엇을 돌려줄 수도 없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방향을 트는 것뿐이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주님의 대답이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오늘입니다. 에스겔에게 말씀하신 그 날이, 십자가 곁에서 오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강도가 살 수 있었던 진짜 이유가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그의 죄가 기억되지 않도록, 그 죄를 대신 지고 죽어 가시는 분이 곁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돌이키면 사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우리의 어제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값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하나님께 항의합니다. 17절과 20절에서 두 번이나 "주의 길이 바르지 아니하다"고 합니다. 평생 쌓은 것이 왜 인정되지 않느냐, 평생 망가뜨린 자가 왜 하루아침에 사느냐는 것입니다. 내 적립금은 계산되기를 바라고, 저 사람의 전과는 끝까지 남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짧습니다. "나는 너희가 각기 행한 대로 심판하리라." 하나님은 오늘 여러분의 발끝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를 보십니다.
### 결단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오늘 밤 하나님의 질문은 하나입니다. 어찌 죽고자 하느냐. 이 질문은 오래 무너져 있던 청년에게도, 지금까지 잘 걸어온 청년에게도 똑같이 오늘이라는 하루를 내밉니다.
이제 기도의 자리로 들어가면서, 돌이켜야 할 한 가지를 하나님 앞에서 이름 부르십시오. 그리고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하십시오. 하나님, 저 오늘 여기서 돌아섭니다. 말이 짧아도 됩니다. 하나님은 그 한 문장에 자기 생명을 걸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번 주, 15절의 사람처럼 손과 발로 한 가지만 옮기십시오. 지워야 할 것이 있다면 지우고, 돌려줘야 할 것이 있다면 돌려주고, 멈춰야 할 것이 있다면 오늘 멈추십시오. 방향이 바뀌면 손에 든 것이 바뀝니다.
죽을 길로 걸어가는 우리를 차마 보지 못하셔서 자기 생명을 걸고 부르시는 하나님, 그 부르심에 오늘 밤 몸을 돌이키는 우리 모두에게, 본래 범한 모든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는 그 크신 은혜가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1. 나 같은 사람은 안 된다는 절망의 계산을 내려놓고, 자기 생명을 걸고 살라 하시는 하나님의 맹세를 붙들게 하소서.
2. 오늘 밤 돌이켜야 할 한 가지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이름 부르게 하소서.
3. 이번 주에 손과 발로 방향을 옮기는 순종이 있게 하소서.
**결단찬양 - 어서 돌아오오 (찬송가 527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