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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20260919-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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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가 끝나도, 우리는 예배자입니다 [풀원고]

목사taejin
예배청년부
본문역대상 16:1-6
날짜2026-09-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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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별 본문 (6개)

본문 봉독 — 역대상 16장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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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나님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에 두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리니라 > > 2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 > 3 이스라엘 무리 중 남녀를 막론하고 각 사람에게 떡 한 덩이와 야자열매로 만든 과자와 건포도로 만든 과자 하나씩을 나누어 주었더라 > > 4 또 레위 사람을 세워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기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칭송하고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으니 > > 5 아삽은 우두머리요 그 다음은 스가랴와 여이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맛디디아와 엘리압과 브나야와 오벧에돔과 여이엘이라 비파와 수금을 타고 아삽은 제금을 힘있게 치고 > > 6 제사장 브나야와 야하시엘은 항상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나팔을 부니라

서론 — 궤는 도착했는데, 이야기는 끝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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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한 주간도 예배자로 살아오셨습니까? 오늘 역대상 16장은 하나님의 궤가 마침내 다윗이 마련한 장막에 들어온 장면입니다. 다윗은 이미 왕이 되었고 예루살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중심은 왕의 궁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궤를 모신 장막입니다. 그런데 이 기쁜 날을 이해하려면 그 전에 멈추었던 행렬을 기억해야 합니다. 역대상 13장에서 다윗은 온 이스라엘과 함께 궤를 옮기려고 했습니다. 새 수레를 준비했고 온 무리가 힘을 다해 노래하며 악기를 연주했습니다. 그러나 궤를 붙든 웃사가 죽으면서 그 길은 중단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모셔 오려던 날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날이 된 것입니다. 궤는 곧바로 다윗 성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오벧에돔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15장에서 다시 길을 나설 때에는 이전과 달랐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성결하게 했고, 레위 자손이 말씀에 따라 궤를 어깨에 메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궤가 준비한 자리에 놓였습니다. 이제 이야기는 끝나도 될 것 같습니다. 어려움을 겪었지만 마침내 궤를 모셨고 모두가 기뻐했습니다.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말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백성에게 축복하고, 각 사람에게 음식을 나누어 줍니다. 그리고 앞으로 궤 앞에서 섬길 사람들을 세웁니다. 마지막 6절에는 이런 말까지 붙습니다. “항상.” 궤를 모셔 오는 일은 마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계속됩니다. 우리는 보통 “오늘 예배가 어땠는가?”를 묻습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다음도 생각하게 합니다. “그 예배를 드린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나님을 가까이 모셨다는 감격이 어떻게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고, 하루하루의 삶으로 이어지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 앞에 설 길을 열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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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16장 1절입니다. > 하나님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에 두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리니라 궤가 들어온 뒤에 가장 먼저 기록된 일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궤를 소유했다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 궤 앞에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을 필요할 때 움직이게 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시며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는 자리입니다. 궤를 가까이 두는 것과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것은 저절로 같은 일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을 다윗은 이미 뼈아프게 배웠습니다. 역대상 15장 13절에서 다윗은 이전의 실패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니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찬양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악기가 부족했던 것도 아닙니다. 앞서 13장에서도 온 무리는 힘을 다하여 노래했습니다. 그러나 뜨거운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하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식도 들어야 합니다. 내 방식대로 밀어붙인 뒤, 하나님을 위해 했으니 받아 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늘의 기쁨을 단순히 “이번에는 사람들이 실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만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역대상 15장 26절을 보십시오. > 하나님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을 도우셨으므로 무리가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로 제사를 드렸더라 “하나님이 … 도우셨으므로.” 말씀을 따라 궤를 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도우신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오늘의 예배는 하나님 없이 일을 해낸 사람들의 자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그 앞에 서게 된 사람들의 감사입니다. 1절에는 번제와 화목제가 함께 나옵니다. 번제는 제물을 제단에서 불살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화목제에는 제물의 고기를 먹는 절차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레위기 7장 15절은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물의 고기를 그날에 먹도록 규정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와 그 앞에서 누리는 식사가 함께 있는 것입니다. 다윗과 백성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함부로 나아갈 수 없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멀리 서 있어야 하는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길을 따라 그분께 나아가 예배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는 예배에서도 내가 한 일을 먼저 셀 때가 있습니다. “제가 이만큼 시간을 드렸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많이 수고했습니다.” “이 정도면 하나님도 제 마음을 알아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수고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수고가 감사의 응답이 아니라 하나님께 내 요구를 받아 달라고 내미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서도 여전히 내가 주인인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만 바라보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누구의 도움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지도 보게 합니다. 오늘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갑니까? 히브리서 10장 19절과 20절입니다. >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 >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하나님께 나아갈 길은 우리가 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많이 봉사한 사람도 자기 공로로 서지 않고, 부끄러움이 있는 사람도 자기 힘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만든 뒤에야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의지하여 나아옵니다. 예배는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해 드렸는지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를 하나님께 나아오게 하신 은혜에 응답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니 많이 했다고 하나님 앞에서 권리를 주장하지 마십시오. 부족하다고 주님께 나아가는 일을 포기하지도 마십시오. 내 열심보다 먼저 주님께서 열어 주신 길이 있습니다. 그 은혜를 의지할 때 우리의 수고도 거래가 아니라 감사가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 나아온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님께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다음, 다윗은 백성을 향해 돌아섭니다.

둘째,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나 혼자 누릴 몫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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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16장 2절과 3절입니다. > 2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 > 3 이스라엘 무리 중 남녀를 막론하고 각 사람에게 떡 한 덩이와 야자열매로 만든 과자와 건포도로 만든 과자 하나씩을 나누어 주었더라 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합니다. 자신이 복의 근원인 것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한 왕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백성을 축복합니다. 그리고 축복의 말 뒤에 나눔이 이어집니다. 떡과 야자열매로 만든 과자와 건포도로 만든 과자를 나누어 줍니다. 백성에게는 그날의 기쁨이 듣는 말로만 남지 않았습니다. 각 사람의 손에 음식이 주어졌습니다. 여기서 음식의 종류보다 더 눈여겨볼 말이 있습니다. “남녀를 막론하고 각 사람에게”입니다. 궤를 가까이에서 멘 사람에게만 준 것이 아닙니다. 악기를 연주한 사람들에게만 나누어 준 것도 아닙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무리의 남녀 각 사람을 말합니다. 그날의 기쁨은 특정한 몇 사람만의 잔치로 남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예배에 참석하면 물질로 보상받는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날의 음식 분배를 오늘의 성공이나 부를 약속하는 공식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사람을 향한 나눔이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이 있었고, 그 감사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백성이 있었습니다. 신약의 고린도교회에서는 반대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도들이 함께 모여 주의 만찬을 먹으면서도 각자 자기 음식을 먼저 먹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배부르고 취했는데 어떤 사람은 배가 고팠습니다. 바울은 이것이 가난한 성도를 부끄럽게 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는 일이라고 책망합니다. 고린도전서 11장에 기록된 문제입니다. 같은 자리에 모여 있다는 사실만으로 함께 은혜를 누리는 공동체가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기 배만 채우면서도 주님을 기념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 33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서로 기다리라.” 주님을 기억하는 식탁에서 옆 사람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신 주님을 기념하면서, 내 것만 먼저 챙기는 태도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는 예배를 돌아볼 때 “나는 은혜를 받았는가?”를 자주 묻습니다. 그런데 그 질문 뒤에 한 가지가 더 있어야 합니다. “내가 받은 은혜 때문에, 내 옆의 사람도 귀하게 여겨지고 있는가?”입니다. 나는 마음이 편해졌는데 누군가는 우리 안에서 계속 눈치를 보고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좋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새로 온 사람은 들어갈 틈을 찾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찬양을 부르면서도, 찬양이 끝나면 늘 익숙한 사람들끼리만 돌아설 수 있습니다. “나는 이 사람들이 편합니다.” “굳이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합니까?” “저 사람은 우리와 잘 맞지 않습니다.” 그런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편안함이 사람을 대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면, 공동체는 점점 나와 잘 맞는 사람들만의 자리가 됩니다. 오늘 본문은 “각 사람에게”라고 말합니다. 누가 더 익숙한지, 누가 더 가까운지를 묻기 전에 그 기쁨을 함께 누릴 사람이 보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는 자리에서는 빈손으로 와 놓고, 은혜를 나누는 자리에서는 다른 사람의 자격부터 따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나를 받아 주신 은혜를 기억한다면 사람을 대하는 기준도 달라져야 합니다. 먼저 공동체에 들어왔다는 것이 더 많은 관심을 독점할 권리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낯선 사람의 불편을 알아보는 여유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많아도, 아직 자기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 사람의 말을 기다려 줄 수 있습니다. 함께 누릴 것이 있다면 빠진 사람이 없는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무조건 친밀해지거나 필요한 경계를 없애라는 뜻이 아닙니다. 적어도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한 사람을 없는 사람처럼 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린 감사가 이웃에게 아무런 자리를 내어 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감사를 다시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날 다윗이 드린 예배 뒤에는 각 사람이 함께 누리는 나눔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도 나 혼자 만족하고 끝낼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받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날 나누어 받은 음식은 언젠가 다 먹게 됩니다. 모였던 사람들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렇다면 함께 누린 기쁨도 그날로 끝나는 것입니까? 본문은 이제 계속해서 하나님을 섬길 사람들을 보여 줍니다.

셋째, 우리는 특별한 날만이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 앞에 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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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레위 사람들을 세웁니다. 4절은 그들이 해야 할 일을 분명히 밝힙니다.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기며 하나님을 칭송하고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5절에는 여러 사람의 이름과 악기가 나옵니다. 아삽은 우두머리로서 제금을 치고, 함께 세워진 레위 사람들은 비파와 수금을 탑니다. 그리고 제사장 브나야와 야하시엘이 등장합니다. 역대상 16장 6절입니다. > 제사장 브나야와 야하시엘은 항상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나팔을 부니라 “항상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여기에는 그날의 행사를 마치는 것 이상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이어지도록 사람과 직무가 세워집니다. 누군가 마음이 내킬 때만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계속 감사하고 찬양하도록 맡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같은 장 37절은 이 모습을 더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역대상 16장 37절입니다. > 다윗이 아삽과 그의 형제를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있게 하며 항상 그 궤 앞에서 섬기게 하되 날마다 그 일대로 하게 하였고 “날마다 그 일대로.” 항상 섬긴다는 것은 한 사람이 쉬지도 않고 밤낮으로 나팔을 불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직무가 날마다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특별한 날의 큰 기쁨이 평소의 예배를 대신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큰 결심을 한 순간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마음이 뜨거웠던 예배, 오래 기도했던 밤, 하나님께 내 삶을 드리겠다고 고백했던 때를 기억합니다. 그런 순간은 소중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소중하다는 것과 그 순간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앞에 한 번 크게 감격한 사람도, 다음 날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뜻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날 다윗은 궤를 모셔 온 감격만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 앞에서 계속 섬기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날마다 부를 찬양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7절부터 이어지는 노래는 다윗이 이룬 업적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과 조상들에게 하신 언약을 기억하게 합니다. 11절은 항상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라고 하고, 15절은 그분의 언약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감사를 이어 가는 힘은 매번 더 큰 감정을 만들어 내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어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는지 잊지 않는 데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이 흔들릴 때를 돌아보십시오. 하나님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몰라서만 흔들리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들은 말씀이 지금 내 판단에서 밀려나 있기 때문에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예배에서는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고백했는데, 막상 결정해야 할 때에는 내 불안만 크게 들립니다. 하나님이 나를 받아 주셨다고 감사했는데, 사람의 평가 하나에 나를 전부 맡깁니다. 용서받았다고 고백했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오래된 잘못만 되풀이해서 들려줍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 앞에 서는 일이 필요합니다. 같은 정보를 반복해서 듣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오늘 나를 움직이는 생각과 욕심을 그 말씀 앞에서 다시 살피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이 선택에서도 주님을 신뢰하고 있는가?” “내가 옳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주님의 뜻이 더 중요한가?”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도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가?” 이것이 예배자로 살아간다는 고백의 실제 모습입니다. 예배당에 머무는 시간을 무조건 늘리는 것과는 다릅니다. 교회에서 맡은 일을 끊임없이 더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서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처럼 판단하고 행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마음이 지친 날까지 기쁜 표정을 만들어 내라는 뜻은 아닙니다. 감사가 쉽게 나오지 않는 날에는 그 어려움을 주님께 아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힘든 마음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가지고도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입니다. 예배자로 산다는 것은 늘 뜨거운 사람으로 산다는 뜻이 아닙니다. 기쁠 때에도, 지칠 때에도 내 삶이 하나님 앞에 있음을 인정하며 그분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분이 매일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은혜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기분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특별한 감동이 다시 찾아올 때까지 순종을 미루지 마십시오. 그날의 예배가 소중했다면, 오늘의 삶에서도 같은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결론 —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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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많이 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뜻이 꺾이는 것은 어려워합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면서도 내 곁의 사람은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특별한 예배를 기억하면서도 평소의 선택에서는 하나님을 잊고 살기도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결심을 더 세게 하는 것뿐이겠습니까? 신약성경은 우리의 예배가 누구로 말미암아 가능한지를 다시 들려줍니다. 히브리서 13장 15절과 16절입니다. > 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 > 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예수로 말미암아.” 그리고 “항상.” 오늘 우리는 다윗 시대의 동물 제사를 그대로 반복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내어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여셨습니다. 우리의 예배는 그 은혜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찬송을 드립니다. 그래서 서로 나누어 주는 일도 잊지 않습니다. 찬송하는 입술과 이웃을 돌보는 삶이 함께 하나님께 드려집니다. 주님께서 나를 받아 주셨기에 내 공로를 앞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같은 은혜로 받아 주신 사람이 곁에 있기에 내 만족만 챙기며 살 수 없습니다. 주님께 나아갈 길이 열려 있기에 오늘도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해 했다는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밀어내지 마십시오. 내가 받은 은혜가 곁의 사람을 향한 배려와 나눔으로 이어지게 하십시오. 감격했던 날만 기억하지 말고, 오늘의 판단과 선택도 주님 앞에 가져오십시오. 예배의 순서는 마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자로 부르신 은혜는 그 시간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오늘 이 고백을 붙들고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주님, 예배가 끝나도 우리는 예배자입니다.” “우리의 하루도 주님 앞에 드리겠습니다.” 우리를 먼저 받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웃과 은혜를 나누며 날마다 주님 앞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