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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도입↔서론 / 본문↔본론 / 마무리↔결론 / 결단↔결단찬양 / 기도↔기도제목
섹션별 본문 (5개)
본문 봉독 — 역대상 16장 1–6절
397자
> 1 하나님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에 두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리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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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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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스라엘 무리 중 남녀를 막론하고 각 사람에게 떡 한 덩이와 야자열매로 만든 과자와 건포도로 만든 과자 하나씩을 나누어 주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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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또 레위 사람을 세워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기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칭송하고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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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아삽은 우두머리요 그 다음은 스가랴와 여이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맛디디아와 엘리압과 브나야와 오벧에돔과 여이엘이라 비파와 수금을 타고 아삽은 제금을 힘있게 치고
>
> 6 제사장 브나야와 야하시엘은 항상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나팔을 부니라
서론 — 멈춰 버린 행렬이 다시 움직이기까지
1329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한 주간도 예배자로 살아오셨습니까?
다윗이 왕이 된 뒤 마음에 품은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제대로 찾지 않았던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 오는 일이었습니다.
역대상 13장에서 다윗은 혼자 결정하지 않습니다. 천부장과 백부장, 지도자들과 의논하고 온 이스라엘을 불러 모읍니다. 백성도 좋게 여겼습니다.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궤를 모셔 오기로 합니다.
사람들이 기럇여아림으로 올라갑니다. 궤를 아비나답의 집에서 꺼내 새 수레에 싣습니다. 웃사와 아히오가 수레를 몰고, 다윗과 온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합니다.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 소리가 울립니다.
누가 보아도 좋은 날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모셔 오고 있고, 왕과 백성이 함께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에 도착하기만 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기돈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일이 벌어집니다.
소들이 뛰었습니다. 궤가 흔들렸습니다. 웃사가 손을 뻗어 궤를 붙잡았습니다. 그 순간 웃사가 하나님의 진노로 죽습니다.
방금 전까지 울리던 음악이 멈춥니다. 사람들의 발걸음도 멈춥니다.
다윗은 두려워하며 말합니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궤를 내 곳으로 오게 하리요.”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궤는 방향을 바꾸어 오벧에돔의 집으로 갑니다. 석 달 동안 그곳에 머물렀고, 하나님은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역대상 15장에 들어가면 다윗이 다시 준비합니다. 이번에는 새 수레를 먼저 준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확인합니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모으고 몸을 성결하게 합니다. 궤는 수레가 아니라 레위 사람들의 어깨 위에 놓입니다.
다윗은 이전의 실패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다”고 인정합니다.
그리고 다시 행렬이 시작됩니다.
이번에도 노래합니다. 이번에도 악기를 연주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 기쁨은 자기 방식대로 하나님을 모셔 오려는 열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기쁨입니다.
마침내 오늘 본문 16장 1절에 도착합니다.
“하나님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역대기는 여기서 “모든 일이 잘 끝났습니다”라고 이야기를 닫지 않습니다. 제사를 드리고, 백성을 축복하고, 각 사람에게 음식을 나누고,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서 섬길 사람들을 세웁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궤를 모셔 오는 것이 목적의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모셨다면 이제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남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한 번의 감격적인 예배가 우리의 삶을 어디까지 바꾸어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열심보다 말씀을 앞세우십니다.
694자
역대상 16장 1절입니다.
> 하나님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에 두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리니라
드디어 궤가 준비한 자리에 놓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앞선 실패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 번째 시도에도 열심은 있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모였고 음악도 있었고 기쁨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열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역대상 15장 1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니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문제는 마음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방식을 앞세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말씀을 따라 궤를 메었습니다. 그리고 도착한 뒤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예배는 내가 하나님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를 보여 주는 자리가 아닙니다. 내 열심과 내 방식까지 하나님의 말씀 아래 다시 놓는 자리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인데”라는 말이 말씀을 듣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좋은 의도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선 예배는 이제 우리의 시선을 옆 사람에게 돌립니다.
둘째,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각 사람에게 흘러갑니다.
772자
역대상 16장 2절과 3절입니다.
> 2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
> 3 이스라엘 무리 중 남녀를 막론하고 각 사람에게 떡 한 덩이와 야자열매로 만든 과자와 건포도로 만든 과자 하나씩을 나누어 주었더라
다윗은 예배를 마친 뒤 백성을 축복합니다. 그리고 음식을 나누어 줍니다.
여기서 본문이 강조하는 말은 “각 사람에게”입니다.
궤를 멘 레위 사람에게만 주지 않았습니다. 악기를 연주한 사람에게만 주지 않았습니다. 남녀를 막론하고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날의 예배는 몇 사람만 감격하고 끝나는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기쁨이 공동체 전체가 함께 누리는 기쁨으로 이어졌습니다.
신약의 고린도교회에서는 정반대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함께 주의 만찬을 먹으면서 어떤 사람은 배부르고 어떤 사람은 굶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 33절에서 말합니다.
>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서로 기다리라.”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은혜를 받았다는 말은 내 마음이 좋아졌다는 보고로 끝나지 않습니다. 은혜는 옆 사람을 보게 합니다.
예배가 끝난 뒤 나는 누구를 보고 있습니까? 늘 익숙한 사람만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본문은 “각 사람에게”라고 말합니다.
주님이 나를 은혜로 받아 주셨다면, 그 은혜는 내가 보지 못했던 한 사람을 다시 보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날 나누어 받은 음식은 곧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그날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셋째, 우리는 특별한 날이 아니라 날마다 예배자로 살아갑니다.
1562자
4절부터 다윗은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기며 하나님을 칭송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게 합니다.
그리고 6절은 이렇게 끝납니다.
> 제사장 브나야와 야하시엘은 항상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나팔을 부니라
“항상.”
궤가 들어온 그날 한 번 크게 찬양하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날의 감격이 계속 하나님을 섬기는 삶으로 이어지도록 사람들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역대상 16장을 끝까지 읽어 보면 이 “항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선명해집니다.
7절부터 다윗은 아삽과 그의 형제들에게 감사의 노래를 맡깁니다. 그 노래의 첫마디는 “여호와께 감사하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그의 능력을 구하고, 그의 얼굴을 항상 찾고, 그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라고 노래합니다.
특별한 날의 감정을 붙잡아 두라는 말이 아닙니다. 특별한 날에 경험한 하나님을 일상에서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장 37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 다윗이 아삽과 그의 형제를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있게 하며 항상 그 궤 앞에서 섬기게 하되 날마다 그 일대로 하게 하였고
“날마다 그 일대로.”
16장 앞부분에는 특별한 날이 있습니다. 궤가 예루살렘에 들어왔고 온 백성이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16장 뒷부분에는 평범한 날들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다음 날에도 궤 앞에 서고, 누군가는 다음 날에도 노래하고, 누군가는 맡은 일을 계속합니다.
역대기는 이 둘을 떼어 놓지 않습니다.
감격적인 예배와 평범한 월요일이 같은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신앙이 흔들릴 때마다 새로운 감동이 없어서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새로운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이미 받은 말씀을 잊어서 흔들립니다.
예배할 때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고백했다면, 삶의 선택에서도 그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배할 때 하나님이 나를 받아 주셨다고 감사했다면, 사람을 대할 때도 그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예배자로 산다는 것은 매일 뜨거운 감정을 유지하는 일이 아닙니다. 매일 같은 하나님 앞에 다시 서는 일입니다.
오늘 기분이 좋든 무겁든, 일이 잘 풀리든 뜻대로 되지 않든, “나는 오늘도 하나님 앞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약은 이 예배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히브리서 13장 15절과 16절입니다.
> 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
> 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예배는 예배당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찬송하는 입술로, 선을 행하는 삶으로, 서로 나누는 모습으로 이어집니다.
예배의 순서는 끝납니다. 그러나 예배자는 삶으로 돌아갑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오늘 예배가 끝난 뒤에도 같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이제 이 말씀을 붙들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예배가 끝나도 예배자로 살게 하옵소서.”
나는 예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