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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도입↔서론 / 본문↔본론 / 마무리↔결론 / 결단↔결단찬양 / 기도↔기도제목
섹션별 본문 (5개)
서론
1053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한 주간도 예배자로 살아오셨습니까?
역대기에서 다윗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한 걸음씩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온 이스라엘이 다윗을 왕으로 세웠고, 다윗은 예루살렘을 얻었습니다.
나라의 중심에 선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그곳으로 옮기려 했습니다.
그런데 처음 시도는 멈추고 맙니다.
언약궤를 새 수레에 싣고 오던 길에 웃사가 궤에 손을 댔고,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함께 기뻐하며 시작한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방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그 일을 그냥 덮고 다시 밀어붙이지 않았습니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성결하게 하고, 레위 자손이 말씀에 따라 궤를 어깨에 메었습니다.
그렇게 언약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 다윗은 춤추며 뛰놀았습니다.
다윗은 다시 궤를 옮길 때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하나님 앞에 말씀대로 서는 일이었습니다.
실패를 지나 다시 궤를 맞아들이는 그 기쁨이 역대기의 다윗 이야기에 남아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다윗은 백향목 궁에 살게 됩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언약궤는 여전히 휘장 아래에 있습니다.
다윗은 그 차이를 보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짓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을 외면해서 품은 계획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귀하게 여겼기에 마음에 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답은 다윗이 기대한 방향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성전을 건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을, 다윗 자신은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역대상 22장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됩니까?
다윗이 돌을 다듬게 하고, 철과 놋과 백향목을 준비하는 모습을 봅니다.
건축하지 못한다는 말씀을 들은 사람이 건축을 위한 재료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오늘 본문의 긴장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하고 싶던 일까지 허락되지 않을 때도, 우리는 하나님을 구할 수 있습니까?
오늘 다윗의 준비를 따라가며 이 질문 앞에 서 보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없게 되어도, 하나님을 향한 마음까지 내려놓지는 말아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내 뜻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1398자
다윗은 성전을 짓고 싶었습니다.
역대상 17장에서 나단도 처음에는 다윗에게 마음에 있는 바를 행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하나님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했습니다.
역대상 17장 4절입니다.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내가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
하나님은 다윗의 성전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그 이유를 솔로몬에게 전합니다.
역대상 22장 8절에서 하나님은 다윗이 피를 심히 많이 흘리고 크게 전쟁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은 자신의 소원과 하나님의 말씀 사이에 서 있습니다.
본문은 다윗에게 건축의 경계를 분명히 알려 줍니다.
다윗의 마음이 성전을 향해 있어도 그 경계를 자기 뜻으로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다윗에게 아무 말씀도 주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
역대상 17장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짓고자 했지만, 하나님은 먼저 다윗을 어디에서 데려오셨고 어떻게 함께하셨는지를 들려주십니다.
그리고 다윗을 위하여 한 왕조를 세우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무엇을 이루어 드리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다윗에게 행하신 일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그 약속을 듣고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 자신이 누구이기에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느냐고 묻습니다.
그가 붙든 것은 성전 건축을 해낼 자신의 자격이 아니라, 먼저 베풀어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을 짓지 말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버리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 마음마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두라는 부르심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좋은 뜻이라면 반드시 하나님도 그 방식에 동의하실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돕고 싶고, 공동체를 섬기고 싶고, 가진 힘을 뜻깊게 쓰고 싶습니다.
그 마음은 귀합니다.
하지만 선한 목적을 품었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정한 방법까지 하나님의 뜻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께 무엇을 해 드릴지만 생각하다가,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는 듣지 못합니다.
내 계획을 이루어야 사랑을 증명할 수 있다고 여기면, 그 계획이 흔들릴 때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흔들립니다.
그때 필요한 질문은 내가 얼마나 큰일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일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자리에 있어야 하는가입니다.
“하나님, 제가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할까요?”라고 묻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십시오.
“하나님, 주님은 저를 어떻게 사용하기 원하십니까?”라고 물으십시오.
내 뜻을 내려놓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내려놓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내 뜻도 주님 앞에 놓는 일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건축하지 못한다는 말씀 뒤에, 다윗의 손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둘째, 할 수 없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을 보십시오.
1424자
역대상 22장 2절부터 5절을 보면 다윗의 준비가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석수를 시켜 성전을 건축할 돌을 다듬게 합니다.
문짝에 쓸 철과 많은 놋을 준비하고, 백향목도 마련합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아직 어리고 미숙하므로 자신이 죽기 전에 많이 준비하겠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성전을 건축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말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은 건축을 억지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을 빈손으로 흘려보내지도 않았습니다.
성전을 짓지는 못했지만, 다윗은 지금 준비할 수 있는 것까지 놓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두 손을 보십시오.
그 손으로 성전의 돌을 쌓지는 못하지만, 돌을 다듬게 합니다.
그 손으로 성전의 문을 달지는 못하지만, 문에 쓸 철을 마련합니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의 크기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작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물론 재료만 쌓이면 성전이 저절로 세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윗도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를 구하고,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율법을 지키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는 준비한 재료를 알려 주면서도 솔로몬이 먼저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는 것을 놓치지 않습니다.
돌과 철과 놋과 백향목을 마련한 뒤에도, 다윗은 그 모든 일보다 먼저 하나님을 구하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가 원하던 직장이나 관계, 사역이나 계획이 뜻대로 이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의 실망을 가볍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애써 준비한 시간도 있었고,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일이 막혔다고 해서 그 이유를 다윗처럼 분명히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는 일도 있습니다.
그 이유를 몰라도 오늘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지금 맡은 일과 곁에 있는 사람, 예배의 자리에서 답을 찾아보십시오.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지 못했어도 오늘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할 수 있습니다.
바라던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대했던 사역을 맡지 못했어도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마음을 드릴 수 있습니다.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하는 때에도 정직하게 선택하고, 필요한 도움을 구하며, 오늘 해야 할 책임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길이 막힌 지금, 더 좋은 결과가 반드시 온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어떤 일이 왜 닫혔는지 우리는 모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준비는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된 날에도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어떻게 살아낼 수 있는지 보여 줍니다.
할 수 없는 일을 세다가 오늘의 순종까지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살펴보십시오.
그런데 돌과 철과 놋과 백향목을 모두 준비한 뒤에도 질문 하나가 남습니다.
그 많은 준비와 앞으로 세워질 성전은 결국 누구를 향해야 합니까?
셋째, 결국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일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1224자
다윗은 솔로몬을 불러 성전 건축을 당부합니다.
이스라엘의 방백들에게도 솔로몬을 도우라고 말합니다.
다윗의 준비, 솔로몬의 건축, 방백들의 협력이 한곳으로 모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람들을 향해 일어나 건축하라고 말하기 전에 더 먼저 붙들어야 할 것을 말합니다.
역대상 22장 19절입니다.
“이제 너희는 마음과 뜻을 바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라 그리고 일어나서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하나님 성전의 기물을 가져다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에 들이게 하라 하였더라”
다윗이 명한 순서를 들어 보십시오.
마음과 뜻을 바쳐 여호와를 구하고, 그다음 일어나 성전을 건축하라고 합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구하는 마음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 예배받으실 하나님보다 건물이 더 중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준비한 재료도, 솔로몬이 맡을 건축도, 방백들이 보탤 힘도 여호와를 구하는 일에서 방향을 얻습니다.
앞서 다윗은 언약궤를 옮기려다 멈추었습니다.
다시 옮길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이제 성전을 바라보는 자리에서도 같은 질문이 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한다는 일 속에서, 정작 하나님을 구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취업을 구할 수 있습니다.
결혼을 바랄 수 있고, 일에서 성장하고 인정받기를 원할 수 있습니다.
사역의 열매를 기다리는 마음도 귀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만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원하던 결과가 오지 않으면 하나님까지 멀리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배하면서도 하나님보다 내가 바라는 답만 기다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호와를 구한다는 것은 삶의 필요를 숨기는 일이 아닙니다.
필요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되, 그 필요보다 하나님 자신을 더 깊이 찾는 일입니다.
함께 여호와를 구하라는 말씀도 모든 사람이 같은 일을 맡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윗과 솔로몬과 방백들의 몫은 달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함께 향해야 할 분은 한 분이셨습니다.
누군가에게 더 많은 일을 떠맡기거나 무리한 헌신을 요구하지 마십시오.
오늘 각자의 형편과 책임 속에서 먼저 하나님 앞에 서는 일이 중요합니다.
함께 예배하는 우리가 서로의 성과를 재촉하는 대신, 하나님을 찾는 마음을 잃지 않도록 곁에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전보다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더 중요합니다.
일이 커져도 하나님을 놓치지 않고, 일이 막혀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816자
시편 127장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이 말씀은 수고를 그만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집을 세우는 수고 속에서도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지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준비했고, 솔로몬은 건축할 것이지만, 그들의 수고가 향할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우리는 때로 내가 원한 방식으로 주님을 섬기지 못하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자격도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우리가 원하는 일을 이루어 낸 공로 위에 세워지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2장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다고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2장 22절입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그 은혜 안에서 우리는 혼자 완성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함께 지어져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을 안고서도 하나님께 나아오십시오.
할 수 없는 일 때문에 오늘의 순종을 놓지 마십시오.
먼저 우리를 받아 주신 주님을 의지하여, 지금 맡겨진 자리에서 걸어가십시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없게 되어도 하나님을 향한 마음까지 내려놓지는 마십시오.
우리의 일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구합시다.
함께 여호와를 구하는 예배자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