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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0260806-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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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로 시작합니다

목사samuel
예배청년부
본문요한복음12:20-26
날짜2026-08-06 (목)
📝 정식
📋 간략

정식 = 가이드 §10 (말씀 요약 + 본문 이해 + 질문 + 적용). 간략 = 1장, 질문 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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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별 본문 (6개)

서론 — 첫날 밤

392자
사랑하는 여러분, 드디어 수련회 첫날 밤입니다. 중2, 중3 친구들 여기 있지요? 고1, 고2, 고3 형들과 누나들도 보입니다. 스무 살 넘은 청년 형님, 누님들까지 오늘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버스 오래 타고 오느라 몸은 늘어지는데, 마음은 이상하게 붕 떠 있지요? 그게 정상입니다. 수련회 첫날 밤은 원래 그렇습니다. 이 사흘 동안 우리는 함께 예배하고, 함께 웃고, 함께 말씀 앞에 앉을 것입니다. 그 시간이 어떤 시간이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첫날 밤이 좋은 것입니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고, 전부 앞에 남아 있으니까요. 오늘 밤은 어렵게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딱 그림 하나만 마음에 심고 잠자리에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작지만, 이 사흘 내내 여러분을 따라다닐 그림입니다.

본문 봉독 — 한 알의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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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림은 예수님이 직접 그려 주신 것입니다. 함께 말씀을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3절부터 26절입니다. >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 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오늘 밤은 이 가운데 한 문장만 붙들겠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밀 한 알을 떠올려 보십시오. 손바닥에 올려놓으면 새끼손톱보다 작은 알갱이입니다. 그 작은 알 앞에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창고에 남는 길입니다. 창고 안은 안전해서 비도 안 맞고, 밟히지도 않고, 아무것도 잃지 않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 안전한 알을 이렇게 부릅니다. "한 알 그대로." 일 년이 지나도 한 알이고, 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한 알입니다. 잃는 것이 없는 대신, 얻는 것도 없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땅에 떨어지는 길입니다. 흙에 묻히면 겉이 물러지고 썩습니다. 보기에는 끝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싹이 올라오고, 줄기가 자라고, 그 끝에 이삭이 맺혀 여러 알이 달립니다. 죽은 것처럼 보이던 그 자리가 사실은 열매가 시작되는 자리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 앞에 "진실로 진실로"를 두 번이나 붙이셨습니다. 그만큼 틀림없다는 뜻입니다.

이 밀알이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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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러분, 이 밀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예수님이 농사법을 가르치시려고 이 그림을 그리신 게 아닙니다. 힌트는 바로 앞 문장에 있습니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인자,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부르실 때 쓰시는 이름입니다. 때가 왔다고 하시고는 곧바로 밀알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밀알은 남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무슨 때가 왔다는 것일까요. 조금 뒤에 예수님이 직접 밝혀 주십니다. >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땅에서 들린다니, 이건 또 무슨 말일까요. 성경이 바로 다음 줄에서 답을 줍니다. 예수님이 어떤 죽음으로 죽으실지를 보여 주신 말씀이라고요.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그 일을, 땅에 떨어져 죽는 한 알의 밀로 그려 보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라고 이 길이 아무렇지 않으셨던 것은 아닙니다. 바로 이어지는 27절에서 예수님은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괴로움 속에서도 이렇게 말씀을 이으십니다.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예수님은 안전한 창고에 남지 않으시고, 스스로 땅에 떨어지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열매 때문입니다. 만약 죽지 않는 길을 택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본문이 그대로 말해 줍니다. "한 알 그대로 있고." 잃으실 것은 하나도 없었겠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끝까지 홀로 계셨을 것이고, 우리는 그 곁에 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길 대신, 우리를 얻는 길을 고르셨습니다. 오늘 밤 가장 중요한 말씀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밀알이 되기 전에, 예수님이 먼저 밀알이 되셨습니다.** 이 말씀의 첫마디는 "너희가 죽어라"가 아닙니다. "내가 너희를 위해 죽는다"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기도 전에, 우리가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 따지시기도 전에, 예수님이 먼저 전부를 내어놓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수련회의 출발점도 여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보여 드리러 온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하신 일을 확인하러 온 자리입니다.

그 열매 안에 우리가 있습니다

564자
그러면 그 죽음이 맺은 많은 열매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32절을 다시 보십시오.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십자가의 열매는 한 민족, 한 시대에 갇히지 않았습니다. 이천 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그 십자가 앞으로 이끌려 나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밤, 여기 우리가 있습니다. 중학생도 있고, 고등학생도 있고, 청년도 있습니다. 다닌 학교도 다르고 사는 형편도 다릅니다. 그런 우리가 이 밤에 한자리에 모여 예배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 밀알이 맺은 열매의 증거입니다. 여러분은 그냥 수련회에 온 것이 아닙니다. 한 알의 밀이 이천 년 전에 땅에 떨어졌고, 그 열매 안에 여러분이 들어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이 죽음과 바꾸어 얻으신 열매입니다. 열매는 스스로 열매가 된 것이 아닙니다. 밀알이 죽었기 때문에 맺힌 것입니다. 우리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잘나서, 내가 열심히 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먼저 땅에 떨어져 죽으신 예수님 덕분에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회예배는 자랑할 것을 들고 오는 자리가 아니라, 빈손으로 와도 되는 자리입니다.

나를 따르라 — 초대

1184자
그 열매가 된 우리에게, 예수님이 한마디를 더 하십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그런데 그 앞의 25절이 조금 무섭게 들릴 수 있습니다. 자기 생명을 미워하라니요. 성경이 정말 나 자신을 미워하라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두 가지를 나란히 놓고 견주는 말투가 자주 나옵니다. 마태복음 10장에도 그런 장면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처음으로 전도하러 보내시는 자리입니다. 그 길이 쉽지 않을 것을 아시고, 제자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각오를 일러 주십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그런데 누가복음 14장에서는 표현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이 따라오던 큰 무리에게 같은 각오를 말씀하시는 자리인데, 여기서는 "미워하지 아니하면"이라는 센 말을 쓰십니다. 두 말씀을 나란히 놓으면 뜻이 또렷해집니다. 미워하라는 말은 곧, 나보다 더 사랑하지는 말라는 말입니다. 부모님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보다 앞세우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같은 말투입니다. 내 목숨을 증오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을 예수님보다 앞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25절에 "이 세상에서"라는 말이 붙어 있는 것도 보십시오. 지금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무엇을 먼저 쥐고 살 것이냐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움켜쥔 손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손에 꽉 힘을 주고 삽니다. 폰 배터리가 20% 남았을 때 충전기를 아무한테도 빌려주기 싫은 마음, 그 작은 것부터가 그렇습니다. 학생 여러분은 시험지 한 장, 등수 하나에 내 값이 매겨지는 것 같아서 꽉 쥡니다. 청년 여러분은 자소서와 합격 소식을 붙들려고 밤을 새웁니다. 놓치면 내가 사라질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먼저 자기 전부를 내어주신 분이 오늘 말씀하십니다. 나 있는 곳에 너도 있게 하겠다. 네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너를 귀히 여기신다. 놓아도 여러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붙들고 계신 분이 따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세상이 하는 말과 다른 점입니다. 세상도 "내려놓으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내려놓는 기술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기술이 아니라 이유를 주십니다. 내려놓아도 되는 이유, 받아 주실 분이 계시다는 이유입니다. 자기 목숨까지 내어주신 분이라면, 여러분이 내려놓은 것쯤은 얼마든지 맡아 주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결론 — 사흘의 초대

627자
아까 시작하면서 물었지요. 몸은 피곤하고 마음은 들떠 있지 않냐고요. 그 모습 그대로 괜찮습니다. 오늘 밤 무거운 결단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개회예배는 문을 여는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 가지만 권하고 싶습니다. 이 사흘 동안, 움켜쥐고 있던 것 하나만 잠시 내려놓아 보지 않겠습니까. 밀알이 땅에 떨어지는 데서 열매가 시작된 것처럼, 수련회도 익숙한 것을 잠시 내려놓는 데서 시작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폰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늘 붙어 다니는 무리일 수 있습니다. 어떤 친구에게는 "나는 어차피 안 돼"라는 오래된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꼭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됩니다. 저녁 집회 한 시간만이라도, 조별 모임 한 자리만이라도 좋습니다. 내려놓은 그 빈손에 하나님이 사흘 동안 무엇을 채우시는지 지켜보십시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밀알 하나가 떨어진 자리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열매가 맺힌 것처럼, 이 사흘도 여러분이 예상하지 못한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 밀알은 먼저 예수님이셨고, 그 열매 안에 여러분이 있습니다. 이 사흘, 그 사랑 안에서 마음껏 웃고 마음껏 예배하며, 하나씩 내려놓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