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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20260719-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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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서 있는 나무에게

목사taejin
예배청년부
본문에스겔31:1-18
날짜2026-07-2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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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서 있는 나무에게

4174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반갑습니다. 한 주간 각자의 자리에서 애쓰고 이 자리에 오셨습니다. 오늘 말씀이 주어진 그날, 예루살렘입니다. 성벽 바깥에는 바벨론 군대가 진을 친 지 일 년 반, 성 안에는 양식이 떨어져 갑니다. 그 절망의 성에 남은 희망은 딱 하나, 애굽이었습니다. 남쪽의 강대국 애굽이 군대만 보내 주면 산다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애굽 군대가 올라오자 바벨론이 잠시 포위를 풀고 물러간 일도 있었습니다(렘 37:5). 애굽이 우리를 살린다, 성 안은 그 기대로 부풀었습니다. 바로 그 무렵, 멀리 바벨론 포로의 땅에 있던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지기 한 달쯤 전입니다. 그런데 받는 이가 뜻밖입니다. 무너져 가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모두가 기대고 있던 애굽의 왕 바로입니다. 하나님은 바로에게 "네 큰 위엄을 누구에게 비하랴" 물으시고, 옛날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십니다. 나무 이야기, 앗수르 이야기입니다. 앗수르가 어떤 나라였습니까. 백삼십여 년 전 북이스라엘 열 지파를 통째로 사로잡아 가 지도에서 지워 버린, 온 세상이 그 아래 엎드렸던 제국입니다(왕하 17:6). 그런데 그 앗수르가, 이 말씀을 듣던 포로 청년들이 태어나던 즈음, 나훔 선지자가 미리 외친 그대로 무너졌습니다. 수도 니느웨는 폐허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컸던 그 나라의 몰락을, 지금 가장 큰 나라의 왕에게 들려주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하나님은 이러하신 하나님입니다. **나무가 쓰러진 뒤에 오시는 분이 아니라, 아직 서 있을 때 찾아와 말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이야기를 세 걸음으로 따라가겠습니다. 첫째, 그 나무는 하나님의 작품이었습니다. 둘째, 나무를 쓰러뜨린 것은 키가 아니라 마음이었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이 이야기를 아직 서 있는 나무에게 들려주십니다. ### 첫째, 그 나무는 하나님의 작품이었습니다 (3-9절) 3절에서 하나님은 앗수르를 레바논 백향목이라 부르십니다.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숲 같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성전 기둥으로 쓰이던 그 시대 최고의 나무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나무는 스스로 크지 않았습니다. 물가에 심겼기에 컸습니다. 5절, 물이 많으므로 키가 들의 모든 나무보다 컸습니다. 6절, 그 가지에 새들이 깃들고, 짐승들이 새끼를 낳고,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에 거주했습니다. 크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큼으로 남들을 살게 하는 나무였습니다. 9절에서 하나님이 이 나무의 비밀을 밝히십니다. "내가 그 가지를 많게 하여 모양이 아름답게 하였더니." 내가 하였다고 하십니다. 그 키도, 그 그늘도, 그 아름다움도 하나님의 손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노래하는 시편 104편도 같은 고백을 합니다. "여호와의 나무에는 물이 흡족함이여 곧 그가 심으신 레바논 백향목들이로다"(시 104:16). 백향목은 심으신 분이 따로 계신 나무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 나무의 큼을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아름답다고 하십니다. 실력이 자라고, 자리가 생기고, 사람들이 내 그늘을 찾아오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다만 그 자람에는 심으신 분이 계십니다. 만나게 된 사람들, 열렸던 문들, 버틸 수 있었던 힘까지, 물은 늘 바깥에서 흘러들어 왔습니다. 여러분이 누리는 좋은 것들은 여러분의 작품이기 전에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 둘째, 나무를 쓰러뜨린 것은 키가 아니라 마음이었습니다 (10-14절) 10절에서 이야기가 꺾입니다. "그의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아서 높이 솟아났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은즉." 키가 자란 만큼 마음도 높아졌습니다. 11절에서 하나님은 그 마음을 "그의 악"이라 부르시고, 나무를 다른 나라의 손에 넘기십니다. 12절이 그 결과입니다. 포악한 민족이 그를 찍어 버렸고, 가지는 골짜기와 물가에 꺾여 흩어졌으며, 그늘 아래 살던 모든 백성이 그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치신 것은 키가 아닙니다. 키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문제 삼으신 것은 단 하나, 높아진 마음입니다. 받은 높이를 자기 높이로 여기는 마음, 심으신 분을 잊은 마음입니다. 잠언이 이것을 한 문장으로 말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무너짐은 도끼가 오기 전에 마음에서 먼저 시작됩니다. 14절에서 하나님은 판결의 이유를 밝히십니다. "물 가에 있는 모든 나무"가 스스로 높아 서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판결은 물을 마셔야만 살고 스스로는 물 한 방울 만들지 못하는 모든 나무를 향합니다. 우리 이야기입니다. 합격한 다음, 인정받은 다음, 일이 풀리기 시작한 다음, 우리에게도 그 지점이 옵니다. 말로는 감사하다고 하는데 마음은 내 실력을 계산합니다. 기도가 짧아지고, 사람이 아래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주셨다"가 "내가 해냈다"로 바뀌는 지점, 키는 그대로인데 마음이 먼저 무너지는 지점입니다. ### 셋째, 하나님은 이 이야기를 아직 서 있는 나무에게 들려주십니다 (15-18절) 마음에서 시작된 무너짐은 결국 끝까지 갑니다. 15절부터는 장례의 장면입니다. 나무가 스올, 곧 죽은 자들의 세계로 내려가던 날, 하나님은 레바논이 슬피 울게 하셨습니다. 16절, 그 떨어지는 소리에 백성들이 진동했습니다. 17절, 그 그늘 아래 거주하며 그의 팔이 되었던 자들도 함께 스올에 내려갔습니다. 기대던 나무가 넘어지면 함께 넘어집니다. 애굽만 바라보던 예루살렘이 꼭 들어야 했던 대목입니다. 가장 컸던 나무는 그렇게 끝났습니다. 이미 끝난 일, 지나간 역사입니다. 그런데 18절에서 하나님이 이야기를 덮으시며 듣는 사람을 부르십니다. "너의 영광과 위대함이 에덴의 나무들 중에서 어떤 것과 같은고. 그러나 네가 에덴의 나무들과 함께 지하에 내려갈 것이요." 그리고 마지막 한 문장입니다. "이들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니라." 앗수르 이야기인 줄 알고 듣던 것이, 마지막 줄에서 듣는 사람의 이야기가 됩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바로에게 남의 역사가 아니라 그의 앞날을 보여 주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까. 조롱이 목적이라면 무너뜨린 다음에 하셔도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직 서 있는 나무에게, 무너지기 전에 찾아와 말씀하십니다. 언약 백성도 아닌 이방 왕에게까지 미리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에스겔서에 이미 나와 있습니다.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 18:23). 여러분, 경고가 들린다는 것은 아직 기회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야기는 언제나 아직 서 있는 사람에게 들려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야기로 그치지 않으시고, 마침내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높아지려다 끌려 내려가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내려가야 할 가장 낮은 곳으로 스스로 내려가셨습니다. 바울은 증언합니다.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엡 4:10). 스스로 높아진 나무는 끌려 내려갔지만, 스스로 내려가신 그분은 하나님이 높이셨습니다. 우리가 붙들 높이는 우리가 쌓는 높이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내려가셨다가 다시 오르신 그분입니다. ### 결단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오늘 이 이야기가 어떻게 들리십니까.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높아지는 데는 큰 키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작은 인정 하나, 잘 풀린 한 학기면 충분합니다. 쓰러지기 전에 미리 들은 것이 은혜입니다. 또 어떤 분에게는 이 말씀이 내 이야기로 들릴 것입니다. 요즘 마음을 계속 찌르는 말씀, 피하고 싶은 권면이 있는 분입니다. 그 찔림을 피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아직 서 있는 여러분을 찾아오신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번 한 주, 그 찔림 하나를 기도의 자리로 가져가 이렇게 아뢰어 보십시오. 하나님, 제 마음이 어디서 높아졌는지 보여 주십시오. 그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무너져서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 안에서 낮아집니다. 우리를 심으시고 기르신 하나님이, 쓰러지기 전에 찾아와 말씀하시는 그 사랑으로 우리 모두를 끝까지 붙들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직 서 있을 때 찾아와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높아지는 마음을 내려놓게 하시고,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가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이 한 주를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결단찬양 - 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