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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20260719-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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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누구와 같으냐

목사taejin
예배청년부
본문에스겔31:1-18
날짜2026-07-2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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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누구와 같으냐

3945자
여러분, 남의 이야기인 줄 알고 편안히 듣고 있다가, 마지막 한 줄에서 내 이름이 불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친구 이야기인 줄 알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어느 대목에서 꼭 내 이야기 같아 뜨끔했던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꼭 그렇습니다. 열여덟 절 가운데 열여섯 절이 옛날 어느 나라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절, 마지막 문장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들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니라"(18절). 긴 이야기가 끝나는 바로 그 자리에, 듣고 있던 사람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분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요. 왜 처음부터 이름을 부르지 않으시고, 긴 이야기 끝에서야 부르셨을까요. 오늘은 이 마지막 한 줄을 향해 처음부터 다시 걸어가 보려고 합니다. ### 하나님은 질문 하나로 말문을 여십니다 (2절) 이 말씀을 처음 들은 사람은 애굽의 왕 바로입니다. 그때 애굽은 남쪽에 버티고 선 강대국이었고, 바벨론에 포위된 예루살렘이 애굽 군대만 오면 살 수 있다고 마지막 희망을 걸던 나라였습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지기 약 한 달 전, 하나님은 바로 그 애굽의 왕에게 사람을 보내십니다. 그런데 첫마디가 판결문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네 큰 위엄을 누구에게 비하랴"(2절). 너는 스스로를 누구만 하다고 생각하느냐. 너와 견줄 만한 이가 누구냐. 이상하지 않습니까. 온 세상이 우러러보는 왕에게, 하나님은 호통부터 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답을 정해 놓고 윽박지르지 않으시고, 바로가 스스로 제 마음을 들여다보도록 질문을 건네십니다. 질문이란 그런 것입니다. 명령은 귀를 닫게 하지만, 질문은 마음의 문 앞에 서서 안에서 열어 주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답을 곧장 주시는 대신, 옛 나라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십니다. ### 답 대신 들려주신 이야기, 그 한가운데 "내가" (3-9절) 그 나라는 앗수르입니다. 한 세대 전까지 온 세상이 그 앞에 엎드렸던 제국, 그러나 이 말씀이 임하던 때에는 이미 무너져 사라진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그 앗수르를 한 그루 나무로 그리십니다.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숲의 그늘 같으며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3절).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고, 짐승들이 그 아래 새끼를 낳고,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에 거주했습니다(6절). 크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큼으로 남들을 살게 하던, 참으로 좋은 나무였습니다. 이야기가 무르익던 9절에서, 문득 이야기하시는 분이 앞으로 나서십니다. "내가 그 가지를 많게 하여 모양이 아름답게 하였더니." 내가 하였다. 여기까지 나무는 그저 잘 자란 나무인 줄 알았는데, 그 뒤에 처음부터 "내가"가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 키도, 그 그늘도, 에덴의 나무들이 다 시기할 만큼 빼어난 그 아름다움도, 나무가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었습니다. 물가에 심은 이가 계셨고, 깊은 물로 자라게 하신 이가 계셨습니다(4절). 나무가 한 일은 무엇입니까. 심긴 자리에서 물을 마신 것뿐입니다. 물을 만든 나무는 없습니다. 바울이 우리에게 물은 그대로입니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전 4:7). 여러분이 지금 누리는 좋은 것들, 쌓아 온 실력과 얻은 자리와 곁에 있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내 손으로 쌓은 것 같지만, 그 손을 만드신 분이 계시고, 그 시간을 허락하신 분이 계십니다. 물은 언제나 바깥에서 흘러들어 왔습니다. 하나님은 나무가 큰 것을 나무라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아름답다 하십니다. 자라는 것, 커지는 것, 내 그늘에 사람들이 깃드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다만 그 자람에는 심으신 분이 계십니다. ### 나무를 쓰러뜨린 것은 한 가지였습니다 (10절) 그런데 그 좋은 나무가 쓰러집니다. 10절, "그러므로"라는 말과 함께 판결이 시작되는데, 이유가 분명히 적혀 있습니다. "그의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아서 높이 솟아났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은즉." 잘 들어 보십시오. 키가 커서 벌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 키는 하나님이 기르신 것입니다. 문제는 키를 따라 함께 높아진 마음, 받은 높이를 제 높이로 여기고 심으신 분을 잊은 마음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나무는 여전히 푸르고, 그늘은 여전히 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잎사귀가 아니라 마음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나무는 찍혀 넘어졌고, 그 그늘에 살던 모든 백성이 그를 버리고 떠났으며(12절), 끝내 죽은 자들의 세계까지 내려갔습니다(15-17절). 세상에서 가장 좋았던 나무의 끝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판결의 뜻을 덧붙이십니다. 물 가의 모든 나무가 "스스로 높아 서지 못하게 함이니"(14절). 한 그루를 베신 일이 물을 마시는 모든 나무를 향한 말씀이 된 것입니다. 물을 마셔야만 사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 지점이 옵니다. 합격한 다음, 인정받은 다음, 일이 풀리기 시작한 다음입니다. 입으로는 감사하다면서 마음은 슬며시 내 실력을 계산합니다. 기도가 짧아지고, 사람이 아래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도끼가 오기 훨씬 전에, 무너짐은 그렇게 마음에서 먼저 시작됩니다. ### 이야기가 끝나자 질문이 내 앞에 놓입니다 (18절) 그리고 18절입니다. 하나님이 이야기를 덮으시며 처음의 그 질문을 다시 물으십니다. "너의 영광과 위대함이 에덴의 나무들 중에서 어떤 것과 같은고." 질문으로 여셨던 말씀을 같은 질문으로 닫으시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마지막 문장에서, 앗수르 이야기인 줄 알고 듣던 바로는 제 이름을 듣습니다. "이들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니라."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부자의 비유를 들려주고 나서 던진 그 한마디와 같습니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삼하 12:7).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이 말씀이 선포된 곳은 애굽의 왕궁이 아니라 바벨론 포로들의 마을이었고, 이 말씀을 받아 들은 것도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바로에게는 이미 내려진 선고였습니다. 그러나 애굽만 바라보며 그 큰 나무의 그늘로 피해 들어가려던 백성에게, 이 이야기는 아직 늦지 않은 경고요 초청이었습니다. 다윗은 나단의 그 한마디 앞에서 무릎을 꿇었고, 살았습니다. 이야기가 아직 들리는 동안은, 돌이킬 시간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질문에 몸소 답까지 마련해 두셨습니다. 예수님이십니다. 스스로 높아진 나무는 끌려 내려갔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내려가야 할 가장 낮은 곳으로 스스로 내려가셨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빌 2:8-9). 너는 누구와 같으냐. 이 질문 앞에 우리가 내밀 수 있는 이름은 내 위엄이 아니라, 나를 위해 낮아지셨다가 높임 받으신 그분뿐입니다. ### 결단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오늘 그 질문이 우리 앞에 놓였습니다. 지금 내 마음은 누구와 같습니까. 나는 아직 왕도 아니고 제국도 아니니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높아지는 데는 큰 키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작은 인정 하나, 잘 풀린 한 학기, 나보다 못해 보이는 한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이번 한 주, 이 질문 하나를 품고 다녀 보십시오. 그리고 내가 붙들고 높아지던 것 하나를 찾았다면, 그것을 기도의 자리로 가져와 이렇게 아뢰십시오. 하나님, 이것도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 고백을 드리는 사람은 무너져서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 안에서 낮아집니다. 우리를 심으시고 기르신 하나님이, 쓰러지기 전에 먼저 찾아와 물으시는 그 사랑으로 우리 모두를 끝까지 붙들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던 말씀 끝에서 저희 이름을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신 것을 내 것이라 여기던 마음을 내려놓게 하시고, 저희를 위해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가신 예수님만 자랑하며 이 한 주를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결단찬양 - 하나님의 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