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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20260719-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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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지 않는 그늘

목사taejin
예배청년부
본문에스겔31:1-18
날짜2026-07-2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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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지 않는 그늘

4422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한여름 뙤약볕 아래를 걸어 보신 분은 아실 것입니다. 길가에 큰 나무 한 그루만 보여도 사람들은 그 아래로 모여듭니다. 그늘이 넓을수록 사람이 많이 모입니다. 그런데 그 아래 서면서 "이 나무는 튼튼한가" 하고 묻는 사람은 없습니다. 당장 시원하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늘의 운명은 시원함에 있지 않고 나무에 달려 있습니다. 나무가 넘어지는 날, 그늘이 가장 먼저 사라집니다. 오늘 본문 앞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질문이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지금 누구의 그늘 아래 서 있는가." 이 말씀이 임한 날은 열한째 해 셋째 달 초하루(1절),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한 달 남짓 전입니다. 성벽 밖에는 바벨론 군대가 진을 친 지 일 년 반이 되었고, 성 안에는 양식이 떨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붙들고 있는 이름이 하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굽이었습니다. 성 안에서는 서로 이렇게 말하며 버텼을 것입니다. "조금만 견디면 됩니다. 애굽 군대가 올라올 것입니다." "애굽은 오래된 강대국입니다. 바벨론도 어쩌지 못할 것입니다." 실제로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바벨론을 배반하고(왕하 24:20) 애굽에 사절을 보내 말과 군대를 구했고(겔 17:15), 애굽 군대가 올라오자 바벨론이 잠시 포위를 풀고 물러간 일도 있었습니다(렘 37:5). 하나님께 돌아가는 대신, 온 성이 애굽의 그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 애굽의 왕 바로에게 말씀을 보내십니다. "네 큰 위엄을 누구에게 비하랴." 그리고 뜻밖에도 다른 나라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볼지어다 앗수르 사람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 앗수르가 어떤 나라입니까. 한때 세상에서 가장 강했던 제국,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바로 그 나라입니다(왕하 17:6). 그러나 이 말씀이 선포되던 때 앗수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수도 니느웨는 주전 612년 바벨론과 메대 연합군에게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가장 커 보이는 나라의 왕에게, 그보다 더 컸던 나무가 어떻게 넘어졌는지를 들려주고 계십니다. 앗수르의 어제로 애굽의 내일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애굽의 그늘로 피해 들어가던 유다도 함께 들어야 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세 가지를 붙들어야 합니다. ### 첫째, 아무리 큰 나무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앗수르는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숲의 그늘 같으며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습니다. 작은 나무가 아니었습니다. 4절, 물들이 그 나무를 길렀고 깊은 물이 자라게 했습니다. 6절, 공중의 모든 새가 그 가지에 깃들었고, 들의 모든 짐승이 그 아래서 새끼를 낳았으며,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에 거주했습니다. 9절에서는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 가지를 많게 하여 모양이 아름답게 하였더니." 그 나무를 그토록 크고 아름답게 기르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니 큰 것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큼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아름답다 하십니다. 그런데 모두가 "저 나무는 절대 넘어지지 않는다"고 믿었던 그 나무가, 지금은 없습니다. 크다는 것과 영원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입니다. 우리에게도 큰 나무처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안정된 직장, 넉넉한 통장, 든든한 사람, 쌓아 온 실력입니다. 그것들이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선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물은 선물일 뿐, 구원자가 아닙니다. 직장도 옮겨지고, 통장도 비고, 사람도 변하고, 실력도 어느 순간 한계를 만납니다. 여러분이 요즘 "이것만 있으면 안전하다"고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크게 보인다고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 둘째, 나무가 넘어지면 그 아래 사람도 함께 넘어집니다 그 큰 나무가 왜 넘어졌습니까. 10절을 보십시오. "그의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아서 높이 솟아났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은즉." 키가 커서가 아닙니다. 키는 하나님이 기르신 것입니다. 키를 따라 마음이 함께 높아진 것, 기르신 분을 잊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나무를 다른 나라의 손에 넘기셨고, 12절, 나무는 찍혀 넘어졌습니다. 가는 가지는 산과 골짜기에 떨어졌고, 굵은 가지는 물 가마다 꺾였습니다. 그런데 12절 끝을 보십시오. "세상 모든 백성이 그를 버리고 그 그늘 아래에서 떠나매." 나무가 넘어지자 그늘부터 사라졌습니다. 17절은 더 아픈 말씀입니다. 그 그늘 아래 거주하며 그의 팔이 되었던 자들은 나무와 함께 스올, 곧 죽은 자들의 세계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늘을 잘못 고르면 위험을 피한 것이 아니라 그 나무의 운명에 묶인 것입니다. 이것이 애굽을 바라보던 유다를 향한 경고였습니다. 유다의 가장 큰 문제는 힘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에 인생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힘들면 본능처럼 그늘을 찾습니다. 외로우면 사람에게 매달리고, 불안하면 통장 잔액을 확인하고, 초라해지면 사람들의 인정을 셉니다. 그런데 한번 살펴보십시오. 그것이 흔들릴 때 나까지 흔들리고 있지 않습니까. 관계가 끝나자 삶 전체가 무너지고, 시험에 떨어지자 내가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면, 그 나무 아래 내 인생 전부를 두었다는 뜻입니다. 소중히 여기는 것과 영혼을 맡기는 것은 다릅니다. 무너질 나무 아래 여러분의 영혼까지 두지 마십시오. ### 셋째, 하나님은 무너지지 않는 그늘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느 그늘로 가야 합니까. 하나님은 이미 답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같은 에스겔서 17장에서, 하나님은 바벨론에 의해 꺾여 버린 다윗 왕가를 두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백향목 꼭대기에서 연한 가지 하나를 꺾어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겠다, 그 가지가 아름다운 백향목이 되어 각종 새가 그 그늘에 살게 되리라(겔 17:22-23). 스스로 높아진 나무가 아니라 하나님이 손수 심으시는 나무, 크게 시작하지 않고 연하고 작게 시작하는 나무입니다.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제국의 왕처럼 오시지 않았습니다. 군대도 병거도 없이 작은 마을에 아기로 오셨습니다. 높아지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낮아지셨습니다. 병든 자 곁에 앉으셨고, 죄인과 함께 식사하셨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라는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여기에 세상 나무와 전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앗수르는 넘어질 때 그늘 아래 사람들까지 끌고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홀로 무너지심으로 그 아래 있는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세상 나무는 저 살자고 사람을 모으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려고 자기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죽음도 꺾지 못한 나무,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그늘이 우리에게 열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더 큰 나무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무너지지 않는 그분의 그늘 아래로 들어오라는 초청입니다. 합격해야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나를 선택해 주어야 소중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미 여러분을 선택하셨고, 여러분을 위해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이 여러분의 가장 깊은 뿌리입니다. 그래서 직장이 흔들려도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관계가 끝나도 나는 버려진 사람이 아닙니다. 계획이 무너져도 내 인생은 끝나지 않습니다. ### 결단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유다는 무너져 가는 성 안에서 애굽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도우려고 나왔던 바로의 군대는 자기 땅으로 돌아가리라(렘 37:7). 그 말씀 그대로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이 다가옵니다. "너는 무엇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느냐." 취업 소식입니까. 그 사람의 연락입니까. 통장의 숫자입니까. 그것들이 올 수도 있습니다. 오면 감사한 선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구원자는 아닙니다. 이번 한 주, 기도의 자리에서 이렇게 아뢰어 보십시오. "주님, 제가 기대고 있는 애굽이 무엇인지 보여 주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예수님, 무너질 그늘에서 나와 주님의 그늘 아래 살겠습니다." 가장 높았던 앗수르는 넘어졌습니다. 유다가 기다리던 애굽도 말씀의 선고 그대로 그 뒤를 따랐습니다(18절). 그러나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가셨던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분의 그늘 아래 서 있는 사람은 세상 나무가 흔들려도 함께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 청년들이 무너질 나무 아래 인생을 두지 않고, 영원한 그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깊이 뿌리내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크고 강해 보이는 것들을 붙들며 그 그늘이 저희를 지켜 줄 것이라 믿었던 어리석음을 고백합니다. 저희를 위해 십자가 나무에서 홀로 무너지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의 그늘 아래로 저희를 옮겨 주옵소서. 이 한 주, 흔들리는 것들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주님만 의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결단찬양 - 주만 바라볼지라**